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3
182. 나가의 섬 4
데하슈람은 아자딘의 언중유골에 은근히 불쾌함을 느꼈지만 그는 나가라쟈이면서 상인 흉내를 잘 내고 사는 인물이었다.
‘영웅호걸답게 자존심이 강하구나. 그래, 사내가 이 정도 오만함은 가지고 있어야지.’
데하슈람은 강자의 여유로 아자딘의 발언을 웃어넘겼다.
“어쨌거나 당신은 굉장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세간은 모르더라도 당신이 해낸 일들을 전령일족들에게 설명한다면 그들도 당신이 그만한 실력이 있고 지위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걸 납득할 겁니다. 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왜냐면… 내 오기지.”
“오기?”
“나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 일족에게 내가 먼저 머리를 조아리고 날 예뻐해 달라고, 나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냈다고 증명하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 일족이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는 일을 돕고 그들의 방식대로 행동해야 하잖아? 하지만 나는 그것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정확히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불필요한 살육의 확대. 원수도 아닌 주민들을 학살하는 행위 말야.”
“전령일족들의 원로원도 아라엘 지파도 그 살육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왕의 교회를 섬기는 이들은 당신들이 왕좌를 차지하는 걸 용납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선제적으로 그들을 죽여서 힘을 빼는 게 뭐 어떻단 말입니까?”
“그래도 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구제 불능의 악인이라고 해도 죽일 때는 심사숙고해야 하는데 단지 입장 차이 때문에 별 원한도 없는 사람들을, 농부나 상인이나 어부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떼로 몰살하고 싶지 않아.”
“그럼 당신은 원로원에도 아라엘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그저 브투마 침공을 막기 위해서, 경고하기 위해서 브투마로 향하고 있었단 말이로군요. 나가들의 침공을 경계하고 마침 얻은 청건당 도사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청건당을 조직해 우리 나가들의 침공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저지하려고?”
“그렇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등에 차고 있던 아주어 스틸 장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이 우는 소리가 싸늘하다.
“설마 이 많은 나가들을 뚫고 도망가려고 그러십니까? 하하.”
“할 수 있느냐가 아니야. 해야 하느냐지.”
“저는 당신을 초대했습니다. 초대한 후로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당신의 무기도 무장해제 시키지 않고 음식에 약을 타지도 않았지요. 우린 접대의 관습을 잘 지켰는데 당신이 그걸 깨겠다는 겁니까?”
데하슈람은 미소를 지으며 아자딘을 보았다.
데하슈람의 경호원들은 경계하느라 무기를 빼 들고 입에서 쉿쉿 소리를 내며 아자딘을 노려보았지만 아자딘은 이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데하슈람의 목을 자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데하슈람이 말하는 대로 접대의 관습을 그가 잘 지켰다는 게 문제였다.
호의를 가지고 접대의 관습을 지킨 자를 죽인다니. 불필요한 살육을 피하기 위해 브투마로 향하겠다는 아자딘이 그런 염치없는 짓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데하슈람과 이곳의 나가들을 공격하는 것은 브투마의 살육을 막겠다는 아자딘의 목적에는 부합되는 행위다.
접대의 관습을 깨고 데하슈람을 공격해 브투마를 지킬 것인가?
접대의 관습을 지킬 것인가.
아자딘은 장탄식을 하고 데하슈람을 바라보았다.
“데하슈람. 뭔가 달리 원하는 게 있나? 있다면 거래하지. 접대의 관습에 의지해서 시간을 끌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한시라도 빨리 브투마에 가고 싶거든.”
“설마. 이미 제 손에 잡은 고기인 당신과 거래라는 형태로 뭔가를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당신이 원하는 게 나와의 대화 그 이상이라면 분명히 거래할 게 있을 거야.”
다만 아자딘도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본 바, 데하슈람은 호기심이 많은 인간, 아니 나가였다.
아자딘의 논리가 맞다면 그는 분명히 아자딘에게 과거 이야기 이상의 원하는 바가 있다.
‘평소라면 일단 허세를 부렸겠지만….’
아자딘은 아주어 스틸 장검 ‘파랑이’를 든 손에 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접대의 관습을 깨고 성의 있게 대해준 호스트를 죽여 버리는 건 너무 미안하군.’
즉 필요하다면 데하슈람의 목을 떨어뜨릴 각오를 이미 마친 것이었다.
그때 데하슈람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사람 잘 보신 겁니다. 후후. 마침 당신과 거래할 게 있습니다.”
“아. 다행이군.”
“그렇지요?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데하슈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난 네 목 떨어뜨리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라고 한 건데.’
아자딘은 그리 생각했지만 괜히 입 밖에 내어 데하슈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
나가들은 본래 쿠르트 신족 코브라 여왕 데비슬린을 섬기며 과거 휘브리스 대륙을 위협하던 사악한 고대신 네더의 존재들과 싸운 것을 긍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나가들 사이에도 네더 신앙이 퍼지고 있었다.
네더의 영향을 가장 받기 쉬운 것이 바로 심해의 영향을 받는 바다뱀 나가족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크고 강력한 바다뱀 나가들이 네더의 은총을 받아 완전히 흉포해지자, 다른 부족 나가들이 그들을 어쩌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다른 나가들로서는 이 상황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네더와 싸워 문명을 지켜낸 것을 자긍심으로 여기는 나가들이었다.
그런데 네더의 사신을 숭배하며 타락한 동족들을 자신들의 힘이 약하다고 인정해야 하다니?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 바다뱀 나가들을 휘브리스인들이나 아니면 전령일족과 싸우게 해서 그 숫자를 줄이려고 합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저희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내용이지요.”
“너무 노골적인데 바다뱀 나가들이 뭐라고 하지 않나?”
“네더의 권속이 된 바다뱀 나가들은 판단력이 떨어지더군요. 적당히 구슬리며 속여 먹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성이 없는 짐승이 되다 보니까 자신들의 요구를 마구 강요하는데 이놈들이 무례하고 멍청해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놈들, 내 하인을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정원사의 아들을 잡아갔습니다.”
“…….”
“정원사.”
“아, 네.”
중년 남성이 작은 신발과 개 목줄을 가지고 왔다.
“제 아들놈이 개가 사라졌다고 찾으러 나갔다가 그만… 나가들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를 구하거나, 만약 죽었으면 복수를 해 달라는 건가.”
“네. 부탁드립니다. 만약 성공해주면 당신들이 도망갔다고 공식적으론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작은 보트를 하나 내드리죠. 그리고 샤티에게 수류 조정 마법을 가르쳐줄 테니 그녀가 보트를 몰면 도망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실패하고 도중에 걸리면?”
“그때는 저는 시치미를 뗄 겁니다. 당신은 접대의 관습을 이용해서 스파이 및 암살행위를 하려고 한 무뢰한으로 여겨져서 명예를 더럽히고 참살당할 겁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지요.”
“흠. 알겠어. 해보지.”
아자딘은 데하슈람의 의뢰를 들어주기로 했다.
“괘, 괜찮습니까? 아자딘 도사? 나가들이 저렇게나 많습니다만.”
지스와는 당혹스러워했다. 아무리 봐도 데하슈람이 내건 의뢰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나가들의 야영 막사엔 못해도 수백 마리의 바다뱀 나가들이 있으며 이놈들은 감각도 뛰어나고 전투능력도 엄청나다.
그런 놈들의 막사를 뒤적여서 정원사의 자식을 찾거나 복수를 하라니? 아무리 아자딘이나 스콧의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도 고작 이 정도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너무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지스와. 그보다 당신은 물건이나 준비해.”
“물건 말입니까?”
“배를 타고 도망쳤을 때 여기서 브투마까지 가려면 식량과 물이 필요해. 그걸 좀 배낭에 잘 싸서 준비해줘.”
“…어. 네?”
즉 지금 나가들 야영지 근처를 뒤적이는 잠입 임무에는 지스와를 데려가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뒤에서 짐이나 싸라니.
지스와는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아자딘의 태도에 당황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저야 위험한 데 안 들어가니 좋긴 합니다만… 제가 빠지면 스콧 씨와 당신, 단둘이서 움직이셔야 하는데요?”
“싸우고 싶은가? 지스와? 용맹을 자랑하고 싶어?”
“그,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혈마법사이긴 하지만 그렇게 높은 경지는 아니라서….”
지스와는 부끄러워했다.
“여럿이 돌아다녀봤자 남들 눈에 더 잘 띌 뿐이야. 잠입에는 소수가 낫지. 그럼 시작해볼까, 스콧?”
“어. 대장. 좀 쉬어서 마력도 회복되었고 언제든지 좋아. 단 시체가 없으니 시작은 내가 못한다.”
“시체쯤이야 금방 만들어주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지스와가 아자딘에게 경고했다.
“바다뱀 나가들은 해가 져도 주위를 잘 봅니다. 애초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도 살아가는 놈들이고 놈들의 몸에 흐르는 것은 피부 점액과 혈액 가릴 것 없이 인간에게는 전부 다 독입니다만….”
“상관없어.”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지스와와 잠시간의 작별을 고했다.
“그럼 이제 시작해보지.”
*********
지스와와 헤어진 아자딘과 스콧은 어둠 속으로 걸어 바다뱀 나가들의 야영지로 접근했다.
“황제의 목소리.”
[인간 소년과 개를 찾아 달라는 건가?]“듣고 있었나 보군. 어떻게 생각해?”
[찾아보겠다.]잠시 후 황제의 목소리가 반응했다.
[…찾긴 했는데. 죽어 있다. 부모에게 보여줄 꼴은 아니군.]“어느 쪽이지?”
[네가 있는 능선 쪽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네 번째에 있는 막사다. 아이와 개 모두 잡아먹혔다.]“그럼 사형이군.”
아자딘은 바다뱀 나가들의 막사에 접근했다.
“아, 대장 그런데 잠입하려고 하면 난 못 따라가는데?”
스콧이 아자딘의 뒤를 따라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자딘이야 몸이 날래니 나가들에게 들키지 않고 네 번째 막사까지 접근할 수 있겠지만 자신은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한 것인데 아자딘은 의아해했다.
“뭔 소리야? 가장 가까운 막사부터 그 네 번째 막사까지 다 죽인다.”
“엉?”
“어린아이와 개가 그냥 네 번째 막사까지 갔겠어? 첫 번째 막사에서 이미 납치당했고 도축만 네 번째 막사에서 한 거다. 즉 거기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놈들은 다 공범이라고.”
“아. 그러니까 그놈들에게 죄를 묻겠다 이거지. 대장? 그런데 다 죽인다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스콧이 그런 의문을 품을 때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활을 당겼다. 간만에 활에 탄궁의 활줄을 걸고 돌을 쏘았다.
탄궁 활줄은 두 줄의 활줄에 가죽끈을 가운데 걸어 돌을 쏘아 날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그렇게 날아간 돌은 그 위력이 굉장하다. 그러나 두꺼운 가죽과 비늘을 가지고 독성점액을 뿜어대는 바다뱀 나가들에게도 과연 통할까?
스콧의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퍼억!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나가의 머리가 통째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