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7
186. 슈가러시 2
바네마 일가에서 가까운 부두에 시체가 걸려 있었다.
바네마 일가는 다른 농장들이 인신매매를 하는 것과 달리, 제대로 된 급료를 준다는 소문에 다른 농장에서 탈출한 노동자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을 누군가가 살해해서 저 크레인 위에 걸어둔 것이었다.
“이 더러운 조합 놈들!”
란다 바네마는 사람의 죽음에 순수하게 분개했다.
그녀가 행한 행동이 가져온 결과다. 물론 죽인 것은 조합 놈들이겠지만 그녀가 철없는 생각으로 벌인 일의 파장이 이렇게 클 줄이야.
란다 바네마는 저자의 죽음이 흡사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서 더더욱 분노하고 슬퍼했다.
“바네마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시체를 내려. 그리고 저이의 가족들에겐 쌀과 콩 한 섬씩, 말린 어육 한 바구니와 은화 여덟 닢을 위로금으로 주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도와주도록.”
“이건 틀림없이 다른 농장 놈들의 소행입니다. 이대로라면 우릴 다 죽일 거예요!”
“그 전에 보복해야 합니다!”
“병기고를 여시지요. 그리고 돈을 풀어서 용병을 고용하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흥분했다. 하지만 란다 바네마는 냉정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 하나로 다른 농장들 전부와 전쟁을 하자는 거냐? 기다려봐. 이런 일에 특화된 인물을 불렀으니까.”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작은 보트 하나가 부두에 접안했다. 보트에서 내려선 가면을 쓴 청년이 대뜸 란다 바네마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청원자인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당신이 전령일족인가?”
“그렇다. 황제의 전령 제2령, 아자딘이지.”
“흠. 어제부터 오늘까지 자칭 전령일족이라는 놈이 여덞 놈이나 찾아왔는데. 당신은 진짜인가?”
“뭐?”
아자딘은 예상치 못한 발언에 깜짝 놀랐다.
전령일족을 사칭하는 놈들이 있다니?
‘그전에도 없지는 않지만 말야. 보통 술 먹고 으스댈 때나 사기꾼이 사람 협박할 때 전령일족의 이름을 팔곤 하지만 청원자를 찾아오는 사칭범은 없었어.’
아자딘이 당혹스러워하자 바네마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농장주들의 교란작전이지. 그러니까 얼굴 가린 거 벗어. 일단 얼굴을 보고 판단하지.”
“…이거 말인가?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텐데? 하지만 벗어주지.”
아자딘이 가면을 벗었다.
“헉?”
바네마 사장이 당황했다. 아자딘이 가면을 벗고 드러낸 얼굴에는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큰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눈이 없어? 그런데도 주위가 보이나?”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이거 참 보기 역한 걸 보여줬군.”
“당신이 진짜 전령인 것 같군. 현재로서는 말이지.”
“믿어주니 고맙군. 뭣하면 활 솜씨라도 보여줘야 하나 했지 뭐야.”
아자딘은 다시 가면을 썼다.
“눈도 없는데 활을 쏠 수 있다고?”
“그걸 못하면 전령이 아니지. 그래서 일단 사람이 좀 드문 곳으로 안내해줄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 떠들 만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지.”
란다 바네마는 자신의 하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무장하고 있는 이들이 아자딘 일행을 포위했다.
“자,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라기보다는 연행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
그렇게 아자딘 일행은 란다 바네마의 하인들에게 이끌려 투기장으로 향했다.
이 투기장은 핏이라 불리는 구덩이인데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고 주위엔 널판지로 막혀 있으며 그 주위로 관객석이 배치되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는 구조였다.
“여기는…?”
“평소에는 투견 시합을 하고 종종 사람들끼리 격투시합을 하는 곳이지. 브투마 브롤링이라고 하는 시합이라면 알 텐데?”
란다 바네마는 그리 말하고 아자딘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이 경기장의 VIP석이라 아자딘 일행이 있는 투기장 안과 상당한 고저차가 있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지스와가 불안을 느꼈다.
“만약 저 여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럼 그날이 저 여자 제삿날이지. 우리 대장이 나가들 척추를 뒤로 접어 버리는 거 못 봤어?”
스콧은 아자딘의 실력을 믿는지 하품을 하면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최대한 체력과 마력을 아끼고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보아하니 별로 전령일족을 환영하는 분위기에서 청원을 넣은 것 같지는 않군. 그럼 청원 내용을 들어보지. 뭐 대충 짐작은 간다만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어서.”
“이야기가 길어지겠지만, 최대한 이야기해보지.”
란다 바네마는 자신이 농장을 상속받고 사업의 방식을 바꾼 것, 그것 때문에 주위 농장들이 공격해오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아자딘에게 전해줬다.
“아, 그래서 전령일족을 사칭하는 놈들이 당신을 찾아왔다 이건가? 그렇다면 당신이 황제의 금화로 청원을 할 때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 배신자가 있다는 거네? 경쟁자들이 청원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렇지.”
란다 바네마는 아자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녀는 자신 덕분에 해방되어 자유민이 된 농장 노동자들, 그리고 보수가 높아져서 그녀를 지지하는 농장 노동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다 보니 그 안에 배신자와 첩자가 드글드글하다.
어린 시절부터 바네마 일가를 섬겨왔던 이들 중에도 얼마나 배신자가 있을지 헤아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믿을 수 있는 건 금화의 청원으로 불러오는 전령일족뿐이다.
“브투마의 대농장주면 돈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모험가들을 고용할 생각은 안 해봤나?”
“돈이야 있지만 그걸로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돈이라면 저들이 더 많을 테니까. 심지어 솥 수선할 땜장이도 고용을 못할 판인데 셀 소드들이 내게 오겠어? 그나마 다행인건 저들은 이미 사병이 엄청나게 많아서 굳이 셀 소드들을 고용할 필요 없이 그냥 힘만으로 나를 짓눌러 죽이기에 충분하다는 점이지.”
“그런 상황이라 이거지? 흠. 알겠어.”
아자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구난기사단에 유학을 다녀왔다니?”
“휘브리스 반도의 세인트 말로리에서 성기사 수양을 받았어. 내 어머니가 측실이었거든. 본래 이 농장은 내 이복 오빠가 물려받기로 했었는데 성병으로 죽는 바람에 내가 성기사에서 환속했지.”
“구난기사였다고? 그건 좀 부럽군.”
아자딘은 란다 바네마가 구난기사였다는 말을 듣자 눈을 빛냈다.
“흥. 구난기사? 허울만 좋은 쓰레기야.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을 만날 때마다 맥을 못 추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더라고. 그런데 부럽다니 그건 무슨 뜻이야?”
그때 지스와가 아자딘에게 기뻐하며 말했다.
“한때는 굳이 이런 청원 때문에 시간을 끌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청원자가 벨 호다의 농장주라니 잘됐군요. 도사. 벨 호다 농장주들은 어지간한 귀족들보다 더 부자입니다. 그들의 지원을 끌어낸다면 청천의 도를 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청천의 도? 당신 전령일족이라면서? 설마 청건당이었어?”
“어쩌다 보니 청건당 도사 직도 겸하게 되었지.”
“어쩌다가?”
“거기에 더해서 나는 천사 신앙자야. 어린 시절부터 삼위의 대천사가 인류를 위해 헌신한 이야기, 그리고 구난기사단의 영웅적이고 미덕의 기사들 이야기를 읽고 자랐지. 부럽다고 한 건 나도 구난기사가 되고 싶었거든.”
‘…이 새끼 이거 진짜 전령 맞아? 갑자기 격렬한 불신이 고개를 치켜드는데?’
란다 바네마가 아자딘을 불신하자 아자딘이 활을 풀고 활줄을 걸었다. 란다 바네마의 경호원들이 흠칫 놀랐다.
“이, 이 자식! 무슨 짓이냐?”
그들이 석궁과 활을 아자딘에게 겨누었다.
“아무래도 방금 발언으로 날 못 믿는 것 같은데 가벼운 잔재주를 보여줄까 하고.”
아자딘은 그리 말하더니 잽싸게 활을 쏘았다.
“엇?!”
놀란 란다 바네마의 경호원들도 활을 쏘았지만 더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자딘이 발사한 화살이 란다 바네마의 경호원, 그가 활시위에 건 화살을 정확히 맞춰 날려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자딘은 자신의 전면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서 떨구고 옷자락을 펼쳐 배후에서 날아드는 화살들도 쳐냈다.
구덩이로 만들어진 이런 투기장의 구조상 관객석에서 화살을 발사해도 중앙에 있지 않으면 벽이 사각을 만들어줘서 반대쪽 면에 선 이들의 공격만이 닿는다.
아자딘은 그 사각을 활용해 날아드는 화살들을 쳐내 혼자서 동료들까지 지켜낸 것이다.
“화살 한 발을 쏘니 여러 발이 생기는군. 좋아.”
아자딘은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집어 들었다.
방금 전 벌어진 사격전, 그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로 란다 바네마의 경호원들은 전신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자딘은 태연히 화살을 줍는다.
“사, 사장님.”
“그만둬. 저 녀석은 진짜 전령일족이군.”
란다 바네마는 아자딘에 대한 의심을 거두었다.
“그럼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지. 청원의 구체적인 범위를 결정해볼까?”
“범위?”
“그래. 원하는 게 뭐지?”
“뭐냐니? 그야 당연히….”
란다 바네마는 말문이 막혔다.
“경쟁자들을 말살하고 벨 호다의 설탕 산업 전체를 장악하고 싶어? 다른 농장주를 죽이고 그들의 가족까지 몰살하고 그 집안의 젖먹이 애새끼도 남기지 말고 다 처분해서 누구도 상속받을 수 없게?”
“그건.”
암살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공법으로는 답이 없다.
벨 호다의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돈이 있으면 나가도 부릴 수 있다.’
‘브투마의 왕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술자리에서 주정뱅이들이 허풍을 떠는 거야 흔한 일이라지만 이들의 금력과 권력을 생각해보면 마냥 빈말은 아니다.
그런 이들을 정식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니 암살을 하는 걸 생각해보았지만 농장주 한두 명 암살해봤자 그 자식들이 물려받을 테고 분노한 상속자들이 그녀를 살려둘 리가 없다.
그런데 모든 상속자를 다 죽인다고?
젖먹이까지 전부?
그렇다면 란다 바네마는 무엇을 위해 노예를 해방했단 말인가?
란다 바네마의 대답이 굼뜨자 아자딘은 한탄했다.
“그런 걸 원한다고 말하진 않는군. 이거 골치 아픈 청원자네.”
“골치가 아프다고?”
“당신이 한 행동, 그러니까 노동자의 복지를 개선하고 이 일대에서 행해지던 납치, 인신매매, 노예제를 거부한 것은 선하고 훌륭한 행동이 맞아. 하지만 그것은 이쪽의 다른 농장에는 그런 당신의 체제에 따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죽여야 하는, 체제 전쟁의 선전포고였다고.”
“…….”
“죽일 각오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선전포고를 날려 버린 꼴이라 난처한 청원자라고 했어.”
란다 바네마는 아자딘의 말에 뼈가 저릴 정도로 아픔을 느꼈다.
조금 전 벨 호다에 도착한 이 이방인이 벨 호다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녀보다 훨씬 더 농장주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