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88
187. 슈가러시 3
“아마 다른 농장주들은 당신에게 지금 당장 하는 짓을 그만두라고 경고도 많이 했을 거야. 그런데도 그 경고를 무시하고 이런 상황까지 왔겠지. 이게 전쟁이라는 의식 없이 그냥 내가 올바른 일을 하는 건데, 이 정도는 농장 노동자들에게 줘도 충분히 수익이 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나 혼자 좀 덜 먹으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왜들 그러지? 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지 않아?”
아자딘이 말한 그대로였다.
란다 바네마는 자신에게 경고하는 다른 농장주들을 그저 입에 아무리 쑤셔 박아도 족함을 모르는 공허한 탐욕에 가득 찬 이들로 보았다.
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있었지만 그런 탐욕에는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대대로 물려온 사악한 지혜가 깃들어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저들을 그저 탐욕에 눈먼 이라 얕잡아 보고, 죽고 죽일 각오 없이 싸움의 서막을 올려 버렸다는 것, 그것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 이제 와서 황제의 금화로 전령일족을 불렀다는 점.
란다 바네마의 모든 것을 아자딘은 훤하게 꿰뚫어 보았다.
“지금 날 비난하는 거야? 나는 좋은 의도로 한 것뿐이라고!”
“힘과 지략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의도도 종종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지.”
“…….”
란다 바네마는 그런 아자딘의 질책에 말문이 막혔다.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냥 포기하고 정략결혼 같은 걸 하고 저들과 같이 노예제를 하라고? 이제 와서 날 따라와 준 농장 노동자들의 기대를 꺾고 그들을 배신하란 말야?”
“사, 사장님.”
경호원들은 란다 바네마가 약한 소리를 하자 당황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주위의 농장들 전부와 전쟁하지 않는 한 이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이라니.
평생을 벨 호다에서 살아온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싸움을 벌이면 벨 호다 전체에 피를 피로 씻는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벨 호다의 사탕수수 농장들은 다들 엄청난 자금을 축적해두고 있어서 하나하나가 사실 대귀족이라 할 수 있었다. 전쟁이 시작하면 그 엄청난 돈이 마를 때까지 아무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이 땅이 피로 젖어 마르는 날이 없게 되리라.
차라리 포기하면 평화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아. 안심해, 청원자. 지금 내가 한 말은 어디까지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지. 당신의 뜻을 꺾으려는 게 아니야.”
아자딘은 미소를 지으며 란다 바네마를 가리켰다.
“당신 같은 사람은 마음에 들어. 보통 사람들은 선의와 지혜가 모두 없거든. 그에 반해 선의라도 있는 사람은 얼마나 소중한데.”
“…….”
욕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면전에 넌 멍청하다고 말하는 거니까 욕이긴 한데 눈도 없는 녀석이 입으로 웃으면서 말하는데….
보통 그런 웃음은 비웃음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이자의 웃음은 진실로 흡족해서 나오는 듯한 것이었다.
“감정이 너무 널뛰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군. 내가 힘과 지혜가 부족해서 무리한 짓을 저질렀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과 타협할 수는 없어. 전령일족, 당신의 힘과 지혜를 빌려줘. 어디까지 해줄 수 있지?”
“음. 그럼 청원의 범위를 이렇게 정하도록 하지. 적어도 벨 호다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사람을 납치해 노예,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로 부려먹는 행위를 금한다. 그리고 란다 바네마, 당신의 일가가 농장끼리의 무력행사로 망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 어때?”
“어?”
란다 바네마는 아자딘의 말에 놀랐다.
처음부터 그녀의 잘못을 질책하고 나온지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아자딘이 제안한 청원의 범위는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게 가능해?”
“그야 충분한 힘과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지.”
“…의지.”
“그럼 우선 상대 농장주들을 설득하자고. 피 보지 않고 설득으로 끝나면 더 좋으니까. 그럼 이제 이 투기장에서 나가도 되지?”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란다 바네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쉭!
아자딘의 몸이 흔들리나 싶더니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어느새 란다 바네마의 VIP석에 설치된 난간을 손으로 붙잡았다.
“맙소사.”
너무 빠르다. 조금 전 화살 때도 그랬지만 아자딘이 원한다면 란다 바네마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이렇게 확실하게 안전한 곳에서 교섭을 했음에도 등골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럼 청원을 접수하도록 하지.”
*********
벨 호다의 설탕 산업 조합에서는 전령일족이 당도했다는 사실을 곧장 알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벨 호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들 호족은 다른 농장 사람들이라 해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기 농장의 노동자 누구의 사촌, 사돈, 친구, 동기, 선배, 후배 등등으로 연결되기 마련이었다.
바네마 농장의 사람들이라 해도 그들과 인연이 닿는 누군가는 반드시 벨 호다 설탕 산업 조합의 다른 농장에 속해 있었고 그들을 통해서 란다 바네마는 상시 감시당하고 있었다.
“전령일족이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설탕 산업 조합의 클럽하우스에서 농장주들은 상아로 만든 당구공으로 당구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구와 볼링, 그것은 브투마에서 유행하는 놀이로 특히 당구는 사치를 자랑하는 데 특히 좋았다.
이들 농장주는 썩어나는 돈을 자랑하기 위해 고급진 재료들로 당구공과 채를 만들면서 서로서로의 향락과 사치를 경쟁하는 것이었다.
“그래, 전령일족이 왔다고? 정말 실존하는 거였군, 그거.”
“그야 실존하지요. 최근에 코랄 사하르를 전령일족들이 차지했다는 소문은 못 들어보셨습니까?”
“듣기야 했지. 하지만 소문이라는 게 하도 중구난방이라서 말이야. 다른 소문에는 나가들이 코랄 사하르를 습격했다고도 하던데?”
“하여튼 영혼 없는 불경한 것들, 신왕살해자 일족, 황제가 몰락한 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조직력이 남아 있다니 대단한 일이야.”
그들은 전령일족의 등장을 듣고 감탄했지만 그들의 감상에는 위기감이 결여해 있었다.
전령일족의 뛰어난 무력에 대한 소문, 임무 달성을 위해 그들이 들이는 노력과 수고에 대한 소문조차 그들에겐 아무런 위기감을 주지 못했다.
왜냐면 그들은 돈이 많았고 여느 귀족들 못지않은 군대를 부리고 아주 뛰어난 모험가들을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령일족의 흉흉한 악명, 그들의 영혼에 대한 모멸적인 명칭들은 이제 그들의 흥미를 다른 방향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전령일족은 위계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온 놈은 위계가 어떻게 되지?”
“제2령입니다.”
보고자가 말하자 당구를 치던 농장주의 손이 멈칫했다.
“제2령?”
“엄청 높은 거 아닌가, 그거?”
시가를 커터로 자르고 불을 붙인 농장주가 카악 하고 가래를 모으더니 뱉었다. 은쟁반을 든 하인이 그 가래를 공손하게 양손으로 받아내어 클럽하우스 밖으로 내갔다.
“전령일족 제2령이라. 몇 놈이 왔나?”
“그, 전령일족 한 놈이랑 남자 둘, 여자 하나입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고작 네 명이 왔다고?”
“네. 남자 한 놈은 푸른 수건을 매고 있는 게 아마 청건당인 것 같고 다른 한 놈은 엄청난 근육질인데 타이나 교도인지 맨날 바닥에 드러누워 있더군요. 그리고 여자는 굉장한 미녀입니다만, 나가들이 다루는 곡검과 사슬 베일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나가 여자라고?”
“겉모습은 인간 여자입니다만.”
곡검은 크고 무거워서 여자가 다루기 좋은 무기가 아니다. 비술로 근력을 보강할 수 있는 마법사거나 진짜 나가이리라.
“그 여자가 나가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놈들은 활이 없는 걸 보니 전령일족은 그 남자 한 명뿐인 것 같습니다.”
“전령일족 하나에 나머지는 그냥 떨거지인가. 제2령이라면 부하들도 많이 데리고 다닐 텐데. 그래서 뭘 하고 있다던가?”
“그게….”
소식을 가져온 하인이 망설이면서 말했다.
“그냥 뭘 기다린다면서 바네마 농장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밥이나 축낸다고?”
“어제 왔으니 아마 여독을 푸는 거겠지요.”
“그런가.”
납득이 가는 이유다. 여행을 다니면 피로가 쌓이기 마련. 피로가 쌓인 상태로 뭘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러나 피로가 안 쌓인다고 뭘 할 수 있을까?
“증원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요?”
몇몇은 신중한 의견을 취했지만 젊고 야심 찬 농장주 한 명이 으스대며 나섰다.
“뭐가 되었건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자네가 처리한다고?”
“네. 저희 농장에는 종종 출몰하는 마물들을 퇴치해주는 모험가들과 계약을 하고 있는데 이들 실력이 꽤 대단합니다.”
“그런 거라면 우리도 만만치 않아.”
농장주들은 자신들의 농노를 무장시켜 사병을 조직했을 뿐 아니라 사비로 셀 소드 조합의 A급 이상 모험가들을 고용한 상황이었다.
이 셀 소드 조합의 모험가들은 돈으로 고용한 관계이지만 장기 고용이 되면서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에 충성심과 애착이 생겨났다. 농장주들이 자신들이 고용한 모험가들의 명성이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던 차에 전령일족은 훌륭한 명성벌이감이었다. 자신이 고용한 모험가가 전령일족을 쓰러뜨린다면?
이미 온갖 향락에 중독되어 이성이 마비된 농장주들의 욕망과 허영심이 간만에 활기를 얻고 꿈틀대기 시작했다.
“제2령이라. 그걸 물리치면 우리 모험가들에게 아주 훌륭한 타이틀이 되겠는걸?”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제가 후원하는 친구들이 먼저 상대해볼까요? 전령일족 제2령의 실력을 보고 싶기도 하고….”
“치사하게 먼저 하려고?”
“어허, 상대의 능력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니…. 만에 하나 제가 실패한 후 도전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알고 하는 것이니 더 쉽지 않겠습니까?”
“그런 고생을 자네에게 시킬 수는 없지. 내가 먼저 선봉에 서겠네.”
“아이고 살코 님. 연세도 많으신데. 이제 그런 투견처럼 흥분하는 일은 자제하시지요.”
농장주들은 자기들끼리 누가 먼저 전령일족을 잡을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며 익살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계십니까?”
문밖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클럽하우스 문이 폭발하듯 부서지더니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투석기로 문을 부숴 버린 것 같은 폭발적인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때 하인들이 나와서 놀라운 솜씨로 날아드는 문짝을 받아냈다.
이 클럽하우스는 온갖 향락을 혼자 즐기다 지친 농장주들이 모여 서로의 악취미를 자랑하는 곳. 농장주들의 경호원들이 이미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들은 솜씨 좋게 날아온 문짝의 힘을 흡수하며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이쿠, 실례. 솜씨가 좋으시군.”
입으로 노크 소리를 내고 들어온 이는 가면을 쓴 젊은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