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9
18. 귀족의 부산물 3
“어?”
“대, 대장?”
용병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원래 이런 인물이었나 싶어 겁에 질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장의 얼굴은 기묘한 표정으로 굳어 있을 뿐이었다.
“내, 내게 뭘 원하는 거야?”
“저는 역참 마을을 징발하고 그곳을 지나는 놈들을 마구 약탈해서 제 물건을 훔쳐간 놈을 찾고 싶습니다.”
용병대장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은 흉흉한 살기로 빛나고 있었다.
“내 이름으로 그런 짓을 하라고? 그랬다가는….”
왕의 교회가 타르키와 그 아버지, 살라스마 변경백 카젤 백작을 징벌하려 할 것이다. 어쩌면 코라사르 국왕이 직접 철퇴를 휘두를지도 모르겠다.
“괜찮습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재빠르게 제 물건을 찾으면 됩니다. 게다가… 어차피 도련님의 아버님께서는 왕에게 반기를 들 생각이 가득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까 신왕진서 사본을 찾는 거겠지요.”
“…….”
“이 방식은, 제 물건을 찾는 데도 좋지만 신왕진서 사본을 찾는 데도 좋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용병대장은 다시금 휘파람을 불었다. 타르키는 다시 배를 감싸쥐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속에서 살을 파먹는 고통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크악! 아, 알겠다! 하자고! 젠장!”
너무나 격심한 고통에 결국 타르키는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자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진다.
“자, 그럼 도련님. 같이 힘써 보자고.”
용병대장은 새롭게 정립된 주종관계를 확인시키기 위함인지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타르키에게 손을 뻗어왔다. 타르키는 마지못해서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음?”
나무 위에 올라서서 멀리 떨어진 용병단을 감시하던 아자딘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 이상 접근하는 건 무리겠는데?”
타르키와 용병들의 태도가 변했다. 그들은 지금 병장기를 꺼내서 손질하고 있었다.
인근에서 나무를 베어서 화살촉과 결합해 화살을 만들고, 도검의 녹을 닦아내고 날을 세우며, 갑옷도 브러시로 닦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배부르게 먹어두고 잘 손질된 병장기를 활용할 일을 앞두고 있다. 즉 대규모 전투를 앞에 두고 있다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경계가 철저해져서 어중간하게 감시하다간 오히려 이쪽이 들통날 수 있었다.
“해가 떠 있는 와중에는 접근하면 안 되겠네요. 꽤 실력이 있는 자들이잖아요? 용병단 야영지로 접근하는 길목마다 보초를 세워두고 있어요.”
미디암도 전쟁 준비를 하는 용병단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 이제 어쩌실 건가요? 저들을 계속 감시하게 일단 멀어졌다가 밤에 다시 오실 건가요?”
“아니. 저들을 앞질러서 먼저 마을에 가자.”
“네?”
“어쩌면 저놈들, 마을을 습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 아래 마을은 역참이 설치되어 있잖아요? 거의 성인데?”
500여 호가 넘는 마을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북방에서는 어지간한 도시라 불러도 무방할 크기다. 개척민 마을도 아니라 역참이 설치된 마을을 일개 용병단이 약탈한다면 왕의 교회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리라.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쿠르트 신족의 마법이 담긴 뼈 완드를 저놈들이 가지고 있었단 말야. 단순한 약탈품이 아니라 보급품에 들어 있었던 걸 보면 저 용병단 놈들 중에 쿠르트 사교도가, 그것도 꽤 많이 있단 말이지.’
사교도 한 놈뿐이라면 어떻게든 뼈 완드를 자신이 보관하고 있지 보급품에 넣어두진 않았을 것이다. 즉, 용병단 보급품을 관리하고 손댈 수 있는 입장의 녀석이 쿠르트 사교도인 건 확실하다.
‘완드의 성능이나 그 안에 담긴 마법의 본질을 보면 놈들의 목적은 신왕진서를 찾기 위해서겠지? 그런데 그 완드가 사라졌으니 저놈들 안에 쿠르트 사교도가 있으면 이제 슬슬 본색을 드러낼 거다.’
종사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에 의해서 아자딘은 저 용병단이 역참 마을을 점령하고 싶어 할 거라는 걸 눈치 챘다.
역참 마을은 인근의 길들이 모두 하나로 모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통제하려면 가장 좋은 위치였다. 무엇보다 상부에서 지급해준 뼈 완드를 잃어버린 쿠르트 사교도 입장에서는 더 이상 몸을 사릴 이유도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할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 저 용병단들을 피해서 먼저 마을로 가자.”
아자딘은 뼈 완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자딘은 장님 행세를 해 어렵지 않게 관문을 통과해 역참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눈이 멀어 있으니 위험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해 방심한다. 게다가 휘브리스의 백성들은 다들 내세를 믿고 있어서 눈먼 순례자라고 하면 다들 공덕을 쌓을 기회로 여기고 친절히 대해준다.
때 마침 역참 마을에는 장이 들어서 있어서 마을 입구 공터에 캐러밴들이 마차를 세우고 야영지를 만들고 있었다.
“아, 저건?”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 왔군요. 잘됐습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깃발이 걸린 마차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은 원래 등짐을 지고 돌아다니는 작은 영세상인들의 조합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상인들이 자금을 축적한 지금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은 코라사르 내에서 상당한 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거대상단이 되었으며….
이 보부상 조합이 바로 전령일족, 아라가사의 민족이 운영하는 위장조직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음. 보부상 조합이라….”
아자딘은 쓴웃음을 짓고 마차로 향했다.
*********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캐러밴은 다섯 개의 마차가 원형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마치 들소들이 사냥꾼들에게서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는 때처럼.
초원 등에서 야영할 때 마차 그 자체를 방벽으로 삼는 방어진이었다. 그 가운데에 커다란 숙영캠프들을 설치하고 밖에 마차들은 곧 상점이 되어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
상점 밖에는 호객을 위해서인지 곡예사가 곡예를 보이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는데 곡예사와 점원들 모두 다 전령일족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곡예사와 캐러밴 경호원들이 아자딘을 발견하고 실실 웃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그 명성 높은 108령 아자딘 님 아닙니까?”
“킬킬킬.”
“3개월간 전령 행세는 잘하셨나 모르겠군요?”
“…….”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늘 이런 식이다. 전령일족들 입장에서는 배신자의 아들, 자신들의 비원을 망가뜨린 아크레의 아들인 아자딘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정작 그런 주제에 아라엘에게는 다들 심장이라도 꺼내줄 것처럼 굽신거린다. 아라엘은 자신의 강력함, 아름다움, 천재성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아라엘에게 이렇게 빈정거렸다 턱뼈가 부서진 놈도 있었다. 아라엘은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빈정거리는 놈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했고 아자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음습한 괴롭힘은 온전히 아자딘의 몫이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뒤따르자 그들은 아자딘을 더더욱 비웃었다.
“아이고 종사까지 두셨네 그랴. 재주도 좋은데?”
“됐고. 이 애들은 내 종사가 아니야.”
“오, 아니라고?”
“그래. 그래도 일족이니까 산양에 편자 좀 박아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그럼요. 누구 명령이신데.”
“카자스 장로의 추천씩이나 받아서 기초 훈련에 낙오되었어도, 정식 절차 없이 전령이 되신 분이 명령하시는데 어찌 무시하겠습니까?”
다들 말투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침착하게 산양의 안장가방에서 은촛대와 식기류를 꺼냈다.
“이거도 돈으로 바꿔주고. 그리고 혹시 청강(靑鋼)촉이 있으면 좀 구할 수 있나?”
“어이쿠. 이거 참 값진 걸 가져오셨네 그랴.”
“어디서 좀도둑질을 해오셨나. 전령 체면이 있지.”
“…….”
아자딘 들으라는 듯 빈정거리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서로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자딘이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욕먹는다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다.
본래 전령일족이 만든 상인 길드들은 전령을 서포트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물론 요즘에는 어째 주객이 전도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전령의 활동자금과 물품을 지원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은신처를 제공하는 게 이들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사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명조차 탐탁치 않아 하는 듯했다.
“갈아입을 옷이 좀 필요한데. 빌려가지. 그리고 세탁 해주나?”
아자딘은 그들에게 빨랫감을 넘기고 갈아입을 옷을 받았다. 그런데 여성복이다.
“뭐 하자는 거지?”
“아니 그게 옷이 그런 거밖에 안 남아서. 그거라도 입지 그래?”
“뭐 별로 티도 안 나잖아? 낄낄.”
“하아. 유치한 짓 하지 말지? 지금 내가 너희들 상대 안 하는 건 강행군을 많이 해서 피곤해서 그러는 거야. 무엇보다 앞으로도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에는 계속 신세를 질 건데 네놈들을 반병신 만들어서 감정을 쌓고 싶지 않거든?”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옷을 반환했다.
“뭐 임마?”
“아니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너 우리보고 여자 옷을 입으라고? 우릴 능욕하는 거냐?”
“우릴 반병신으로 만들어? 모욕하는 거냐?”
그들이 한 모욕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지만 그들은 돌아온 모욕에만 신경쓸 뿐, 아자딘에게 자신들이 한 모욕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이 새끼가 운좋게 카자스 장로 추천빨로 전령이 되어놓고선….”
“동기인 우리가 하인인데 왜 네놈은 전령이 된 거야?”
“너는 기초 훈련에서도 낙오한 놈이잖아! 그런데 네놈이 전령이 되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냐?”
즉 여기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직원들은 아자딘과 훈련 동기들이었다.
아자딘이 전령일족들의 기본적인 훈련조차 다 받지 못하고 도중에 낙오하는 걸 직접 보았던 이들은 자신들도 되지 못한 전령이 된 아자딘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미디암이 물었다.
“정 그렇게 억울하시면 결투를 걸어보시지 그래요?”
“결투? 이 꼬맹이가 돌았나.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거냐?”
“너부터 혼나고 싶냐?”
다들 험악한 태도로 미디암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태연했다.
“음습하게 뒤에서 떠들기만 할 뿐 결투의 리스크를 감당할 생각은 없나 보군요.”
듣고 있던 아자딘이 실소했다.
‘결투의 리스크라고? 말은 그럴싸한데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과연 결투를 언급하자 동기들이 코웃음쳤다.
“오냐. 그렇지 않아도 아자딘에게 결투를 걸 셈이었다.”
“이 녀석을 이기면 우리가 전령이잖아? 안 그래?”
“문제는 우리 중 누구부터 하냐지. 먼저 하는 놈이 너무 유리하잖냐? 낄낄.”
다들 아자딘을 무슨 주머니 속 동전 꺼내듯 쉬운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미디암이 피식 웃었다.
“아, 그러세요?”
그 순간!
미디암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