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93
192. 양자 결연 1
벨 호다에서 나와 한나절을 달리니 저 멀리 브투마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금색으로 빛나는 건물들이 그득한 대도시를 보며 아자딘은 감탄했다.
“와… 저기가 브투마인가. 아무리 금이 많이 난다고 해도 건물에 금을 칠했나?”
“아, 저건 황칠입니다.”
지스와가 아자딘의 의혹에 답해주었다.
“황칠?”
“예. 특수한 나무 수지로 만든 도료를 바른 거지요. 금박보다는 쌉니다만 그래도 엄청나게 비싼 재료입니다.”
“대단한데? 멀리서 보면 진짜 금 같아. 저거 튼튼한가? 폭우와 폭풍에 벗겨지지 않고?”
“튼튼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안 벗겨지진 않지요. 때때로 유지 보수가 필요합니다.”
“그래? 대단하군. 얼마나 하지? 금박보다 싸다면 나중에 내 거처에도 칠하고 싶어. 지금은 뭐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지만 말야.”
“하하. 개인 거처에 칠하기엔 엄청나게 비쌉니다. 황칠 한 통에 같은 무게의 은화 세 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것도 최하급을요.”
“중량으로 은 세 배? 그런 걸 건물에 바른다고? 가능해 그게?”
아자딘은 지스와의 말에 깜짝 놀랐다. 금색 외관을 한 건물이 하나둘이 아닌데 거기에 다 황칠을 했다면, 지스와가 말하는 황칠의 가격이 잘못된 게 아닌가? 그 가격의 칠을 저렇게 건물 외곽에 막 바를 수가 있나?
아자딘이 의문을 품자 지스와가 대답했다.
“보통 그릇이나 미술품, 가구 등에 쓰지 황칠을 건물에 바르는 건 브투마나 할 수 있는 사치입니다. 황금의 나라 브투마의 수도니까요.”
“그런데 브투마의 수도는 브투마인가?”
“브투마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 발음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은의 세 배나 하는 칠을 발랐다라…. 대단한데? 그런데 아직 전쟁은 안 하는지 나가 군대가 안 보이는군.”
아자딘은 감탄하면서 도시를 살펴보았다.
브투마의 도시 중앙은 커다란 십자로를 중심으로 발달해있는데 이 십자로는 길의 폭이 마차 여섯 대가 동시에 지나도 끄떡없는 넓이에 한켠에는 방수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방수로를 포함해 폭이 엄청나게 넓은 이 길에 전부 포석이 깔끔하게 깔려 있는 것만 보아도 이 도시의 부와 번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원 세상에. 이렇게 잘살다니 대단해. 하지만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자, 그럼 가볼까.”
아자딘 일행은 브투마의 성문을 향했다.
*********
브투마 성문 앞에서는 병사들이 신경질적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나가가 인간으로 둔갑해 들어올 수 있으니 모두 검문에 협조하도록!”
“젠장! 지금 들여보내야 할 짐이 너무 많은데 무슨 헛소리요?”
“나가들이 선박을 공격해서 육로로 짐을 실어야 하는데 이럴 거요?”
“상인들은 검사할 필요 없잖아! 여행자들이나 검사하라고!”
나가들의 선박 공격으로 부득불 육로로 물건을 들여와야 했던 상인들은 통관작업이 오래 걸리자 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관 검사를 진행 중인 장교는 깐깐했다.
“그 상인 무리에 섞여 들어올 수도 있잖소! 우리도 귀한 혈마법사를 쓰고 있으니까 양해 바라오!”
놀랍게도 그들은 도시에 들어오는 이들의 손가락에 바늘을 찌르고 있었다. 청건을 두른 혈마법사가 그 피로 인간인지 나가인지 다른 종족인지 검사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행하는 중이었다.
“윽… 이건 큰일인데?”
아자딘 일행에는 인간으로 둔갑한 샤티와 스콧이 있었다. 저렇게 철두철미하게 검문검색을 한다면 이들의 정체를 들킬 게 분명하다.
“멍청한 짓이군. 브투마 내부에 이미 나가들이 장난 아니게 들어갔을 텐데.”
샤티는 이제 와서 부랴부랴 검문하는 병사들을 비웃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하는 게 좋지만 수로를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엄청난 수영 실력을 가진 나가들을 육로에서 막아봤자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물자를 빨리 성안으로 들이는 게 훨씬 나을 것을….
그만큼 사람들이 인간으로 둔갑한 나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샤티.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나가들이 수영을 잘하나?”
“그렇지. 물뱀 부족 나가들은 민물에서 호흡할 수 있는 아가미가 있고 바다뱀 부족 나가들은 바다에서 호흡할 수 있는 아가미가 있지.”
“보통 물뱀이나 바다뱀도 아가미는 없는데?”
“완전한 아가미는 아니야. 귀 옆에 물에 닿을 수 있고 여닫는 호흡 점막이 있는데 그 점막이 물에 닿으면 호흡이 좀 도움이 되어서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을 수 있어. 다만 물뱀 나가는 바닷물에 대면 위험하고, 바다뱀 나가는 민물에 대면 위험하니까 그냥 닫고 행동할 수 있지.”
“그렇구나. 그럼 마른땅 부족은?”
“마른땅 부족은 그 점막이 없어. 몸도 무거워서 수영을 그렇게 잘하진 않고. 대신 근력이 뛰어나.”
“흠. 그렇다면 도시의 방수로와 배수로를 통해서 얼마든지 진입이 가능한 거로군.”
“그보다 앞에서 혈마법으로 검사하고 있는데 어쩔 거야?”
“어쩔 수 없지. 지스와와 내가 따로 들어가서 청건당 천주를 만나보지. 스콧과 샤티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어?”
“알겠어, 대장. 그럼 그 란다 바네마가 준 과자를 먹어도 되나?”
“란다가 준 과자와 술은 나중에 교섭할 때 교섭품으로 쓰기로 하고 일반 식사를 해.”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지스와와 함께 검문소로 향했다. 검문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곤란한 상황인 혈마법사에게 다가갔다.
“뭐, 뭐냐?”
“이쪽은 청건당 도사 지스와 님이다. 아무래도 급한 소식이 있어서 천주님을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아, 도사님? 하지만 검문이 너무 많이 밀려 있는데요. 게다가 여기 장교 중엔 저희 형제가 아닌 이들도 많아서 그냥 통과시켜 드리긴 어렵습니다. 뭔가 주지 않으면….”
“돈이면 되나?”
“돈도 좋지만 그걸로 포섭하려면 정말 엄청나게 부으셔야 할 겁니다. 반면 경비대장이 술을 좋아하는데요. 술로 주면 더 싸게 먹힐 것 같습니다만.”
“그래? 마침 좋은 게 있는데.”
아자딘은 짐에서 란다에게 받은 술을 한 병 꺼내 주었다.
“아이쿠. 이건! 네. 이거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때 검문소를 관리하던 장교가 다가왔다.
“거기 뭐야? 왜 새치기를 하고 있어?”
“아, 이분은 저희 청건당의 도사이십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검사를 받을 수 없냐고 하시는데.”
“안 돼. 그런 놈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저기 이걸 경비대장님께 선물로 드린다고….”
“음. 어?”
술병을 본 장군의 눈이 흔들렸다.
“이야. 이거 벨 호다의 카샤샤잖아. 이런 귀한걸! 음, 뭐 청건당이면 신분도 확실하겠지. 좋아, 들여보내.”
장교는 술병을 받아들고 아자딘과 지스와를 혈마법 검사도 안 하고 통과시켜 주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스콧이랑 샤티도 데려오는 건데.’
아자딘은 설마 검사도 안 할 줄 몰라서 당황했지만 이제와서 일행들도 통과해도 되냐고 물으면 일을 그르칠 게 분명했기에 참아야 했다.
*********
브투마 시내는 한창 방어 작업이 진행 중이라 소란스러웠다.
인부들이 동원되고 코끼리가 목재를 실어나르며 수로 근처에 모래주머니나 목재 방책을 쌓아 나가들이 수로로 올라올 때를 대비한 방벽을 세우고 있었는데 수로가 너무 많아서 막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오, 코끼리….”
아자딘은 책에서 보던 코끼리가 실제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흥분했다.
“하하하. 신기하십니까, 도사?”
“브투마 지방은 처음이라서. 코라사르도 원래 내가 살던 곳과 식생이 많이 달랐는데 여긴 놀랍기 그지없군.”
하지만 코끼리로 작업하는 이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브투마는 우기에 비가 많이 오기에 도시들은 수해에 대비해 방수로를 만들기도 하고 아예 집을 기둥 위에 지어서 지상은 평상시엔 장터로 쓰다가 비가 오면 치우곤 했었다.
강과 바다,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우기의 스콜, 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브투마는 나가들이 침입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인 것이다.
이에 브투마에서는 방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물이 잘 들어와서 방책을 쌓기 어려운 곳이나 저지대에 사는 주민들을 퇴거시키기는 소개(疏開) 작업을 진행했다.
문제는 물이 잘 들어오는 저지대가 브투마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면 버티기 힘들다. 돈이 좀 있어야 자기 집 아닌 곳에서 지낼 수 있지 돈도 없고 어디 기댈 곳도 없는 사람들에겐 방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소개 명령이 야박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병사들의 태도도 문제였다. 그들은 저지대의 주민들, 하층민들을 우습게 보고 윽박질렀다.
“아이고, 여기서 나가라는 겁니까? 너무하십니다! 평생 이곳에서 살았는데!”
“닥쳐! 평생 이곳에서 살았으면 어차피 오늘 당장 죽어도 아쉬울 거 없는 목숨 아니냐!”
“우린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이 작업을 하는 거다! 그런 우리를 방해하다니! 네놈. 인간으로 둔갑한 나가로구나!”
병사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방해하는 이들을 창칼로 위협하며 강제로 퇴거시켰고 가구와 집을 해체해 목재를 얻으려 했다.
방어전이 한창일 때는 사람들도 많이 죽어서 빈집이 넘치고 재산보다 목숨이 중요해져서 가구가 부서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직 전쟁 초반, 한창 성의 방비를 강화하는 지금 개인 재산을 부수니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다만, 코끼리를 앞세운 브투마 병사들 앞에서 함부로 대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으음. 분위기가 별로 안 좋군. 병사들이 긴장하는 걸 보니 사정이 나쁜 모양이야. 청건당 천주는 어디 있을까, 지스와?”
“예. 청건당은 이쪽입니다.”
지스와는 이 상황에서도 신이 나서 아자딘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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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건당은 브투마에서 발현한 학질과 열병을 치료하며 많은 신도를 확보했다. 왕의 교회가 청건당을 이단 신앙이라 보고 처벌하려 했지만 민중의 반발이 엄청났다.
입교만 하면 질병을 치료해주는 청건당과 막대한 기부금을 내야 치료해주는 왕의 교회.
민중들이 어느 쪽에 호의적인지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이에 브투마의 현 국왕 만자-자덱은 왕의 교회가 무단으로 청건당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규제에 나섰다. 왕의 교회는 만자-자덱을 파문하겠다며 벼르고 있었지만 코랄 사하르가 전령일족에게 넘어간 지금 왕의 교회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어차피 브투마의 풍토병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별 힘을 못 씁니다. 왕의 교회가 뭐라고 해봤자 브투마 왕을 끌어내릴 힘은 없지요. 나가들이 공격해올 때 브투마를 도와주지도 못하는 게 흠이긴 합니다만. 청건당 입장에선 좋은 일이지요.”
“그래서. 그 청건당이 브투마 왕에게 인정받았다고?”
“예. 직접 건물도 하사했는걸요. 저기가 바로 청건당 천주가 기거하는 천주각입니다.”
지스와는 자랑스러워하면서 아자딘에게 천주각을 소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