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96
195. 황금왕 1
“그림스로운의 신체를 강탈한 네놈이 날 죽이거나 교단을 탈취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흘러간다면, 이 땅에 뿌리내린 내 체면은 어찌 되겠는가? 그러니 어떻게든 너를 나의 권위 안에 두려는 것이다. 안심해라.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저 나의 권위를 지켜주면 되는 것뿐이다. 너도 그걸 원하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혼란보다는 통제된 힘이 필요할 테니까.”
청건당의 천주는 아자딘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의 교단을 탈취하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하며 아자딘은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아자딘이 원하는 건 전령일족의 내란이 외환으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브투마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그걸 들어줄 테니 대신 교단에서의 천주의 권위를 인정해 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굳이 양자란 말인가.”
“그림스로운은 내게 실망해서 더 이상 기적을 내리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네가 나의 양자가 된다면 네가 체험한 기적 또한 나의 것이 되지.”
“치밀하군.”
아자딘은 천주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천주의 외모는 어린 소년 같았다. 그의 나이를 헤아린다면 분명히 아자딘보다 많을 텐데. 선천적으로 이렇게 태어났는가? 아니면 그림스로운의 계시가 그에게 이런 외모를 안겨주었는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그의 제안은 외모와 일치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말이 아니라 노회한 권력자의 음습함이 담겨 있었으니. 그 제안에는 어딘가 불쾌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이득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내키지 않지만 대국적인 관점에서는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으니까.”
“이해가 빠르니 좋군. 정말 자식으로 삼고 싶을 정도다.”
“그럼 천주, 아니 아버님이라 불러야 하나?”
“대외적으로 내 체면만 갖춰준다면 사적인 자리에서 그럴 필요는 없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나에게 한없는 존경을 보여주었으면 좋겠군.”
“그래, 알겠어. 그럼 당신의 이름은 뭐지?”
“나는 카자스다.”
“카자스라고?”
“왜 놀라지?”
“아니, 아는 사람이 그런 이름이라서. 왜 하필이면 그런 이름이야?”
“옛날에 이 근처에서 아주 유명했던 엘프 마법사의 이름이다. 그런 강한 이름을 써야 어린 시절에 병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어서 말이지.”
사이비 교주인 그의 목소리에 미신에 대한 경멸이 옅게 깔려 있었다.
아자딘은 그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스운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이었다. 자신이 혐오하는 미신과 미개함을 탐욕을 위한 수단으로 기꺼이 선택하는 자는 위험하다.
비록 아자딘이 힘으로 그를 꺾고 합의를 도출해 냈지만 이자의 심모원려는 경계해야 했다.
“가족이 된 걸 환영한다. 전령일족.”
“제2령 아자딘이다.”
“그래. 아자딘.”
천주는 그리 말하고 일어났는데 이제 귀의 출혈이 멎어있었다.
아자딘이 발사한 창대가 귀를 거의 두 조각으로 쪼개놨었는데 출혈이 일어났던 상처가 나무 수지 같은 걸로 굳어져서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그림스로운이 그에게 실망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스로운의 힘이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
청건당 천주, 카자스는 아자딘을 공식적으로 계시받은 자로 인정하고 자신의 양자라고 선포했다.
본래 축제를 하며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워낙 사정이 급하여 축제 대신 소개지에서 쫓겨난 주민들을 수용했다.
또한 그들을 위해 교단의 창고를 여니 소개지에서 쫓겨난 주민들과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브투마 하층민들 모두가 청건당의 덕을 칭송했다.
그리고 청건당의 도움으로 샤티와 스콧 또한 별다른 검문 없이 통과했다.
애초에 검문소에서 둔갑한 이들을 확인하는 혈마법사들이 청건당원이라서 그들이 입을 맞춰주면 스콧과 샤티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필요해서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남의 양자가 되다니.”
샤티는 아자딘의 선택에 놀라워했다.
“형식이야, 형식. 굳이 지금 혼란스러운데 일을 만들 필요는 없잖아. 게다가 그 청건당 천주라는 자가 아주 말이 잘 통하는 상대더라고.”
아자딘은 도시 방어를 준비하는 브투마 군의 움직임을 보며 샤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스스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분을 굳이 들춰내는 그녀를 대하기 어렵다.
“저, 정말 잘된 일입니다. 한때는 천주님이 당신을 무슨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제거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계시를 받았다면 제게도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지스와는 순진하게 아자딘이 정말 천주에게 새 계시를 전해줬고 그래서 모든 일이 좋게 마무리되었다고 믿는 듯했다.
사실 힘과 권력의 밀고 당기기가 있었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말해주기엔 지스와의 신앙이 너무 깊고 투철해서 아자딘은 입을 다물었다.
“지스와.”
“네?”
“청건당 사람들을 도와서 도시의 방벽 보강 작업을 돕도록 해줘. 그리고 나는 천주의 소개로, 국왕을 알현해보겠어.”
“국왕 알현 말입니까?”
“이야 대장, 대단한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네. 설마 그 만자-자덱을 만날 줄이야.”
“뭐 국왕도 일이 있으니까 만나는 거겠지. 왜 오크 사령술사인 네가 그렇게 신경 쓰지?”
“어? 설마 황금왕 만자-자덱을 몰라?”
“황금왕 만자-자덱 아냐?”
“만자-자덱은 브투마의 부를 노리는 이들을 물리쳤고 특히 젊은 시절에 많은 오우거를 토벌했지. 우리 오크들은 타고난 그 예리한 지성 덕분에 오우거나 나가들에게 지혜를 빌려주며 막대한 사례금을 받고 있었는데 만자-자덱의 군대에 쓴맛을 많이 봤어. 내 부모님도 만자-자덱의 코끼리 군단에 죽었지.”
그렇다면 만자-자덱은 스콧 입장에서 부모의 원수인 셈이다. 그런데 스콧은 만자 자덱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눈치였다.
“강하고 위대한 왕이란 그런 것이지. 여기 금빛으로 빛나는 도시도 그렇고. 나도 만나보고 싶은데.”
“알현장에는 나 혼자, 청건당 사람들과 함께 간다.”
“아쉽군. 황금왕의 위광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내가 보고 나서 전해주지.”
아자딘은 만자-자덱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듯한 스콧을 보며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그때 청건당의 사자가 아자딘을 찾아왔다.
“부당주님. 알현 약속이 잡혔으니 입궐할 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오시지요.”
아무래도 만자-자덱을 알현할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
아자딘은 청건당 사람들이 준비해준 브투마의 옷으로 갈아입고 알현실 앞에서 천주를 만났다.
“말을 조심하게, 아자딘. 국왕 폐하께서는 황금왕, 지혜롭고 또한 무서운 분이다.”
천주는 만자-자덱을 만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천주를 만날 때보다 간소하다. 단지 만자-자덱의 업무가 많아서 시간이 나길 기다릴 뿐이었다.
기다리기도 지루해서 아자딘은 천주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아, 그럼 부자지간이 된 김에 물어보고 싶은데, 그 의식절차는 왜 하는 거야? 왕보다 더한 것 같은데?”
“왜일 것 같나?”
“음… 아마도 서열 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이거 놀랍군.”
천주 카자스는 대답이 바로 나오는 아자딘의 말에 감탄했다.
“그 말대로다. 본래 브투마와 코라사르를 오가는 상인이던 나는 그림스로운의 권속이 된 후… 이 힘을, 내 몸 하나에 담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든 나누어서 부담을 덜 필요가 있었다. 조직을 운영하려면 혼자서는 무리니까 말이야. 그래서 당시 상인 시절 나의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들이 내 첫 도사가 되었지. 다들 유능하고 영특한 친구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브투마의 상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
천주 카자스는 그들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과거를 알고 있고 동기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그것이 내 약점이 되었다. 결국 저들은 나에게 함부로 굴기 시작했고 내 권위를 위협했지.”
“그래서 이런 허례허식을 만들었나?”
“필요해서 만든 거니까 허례허식이 아니지. 실리를 추구한 의식이라고 해두지.”
“그때 시작한 도사들은 그럼 이 의식에 굴종하고 당신을 섬기기로 했나?”
“아니. 의식에 반대하고 공공연하게 어겨서 숙청당했지.”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다. 교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동업자인 양 행동하던 이들을 교주가 살려둘 리가 없다.
이 허례허식은 그런 이들을 숙청하기 위한 아주 좋은 핑계가 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교주는 교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놀랍군. 설마 단번에 이 의식의 목적과 내가 처한 환경을 추론하다니 참으로 영특해. 그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머리도 아주 잘 돌아가는데? 과연 전령일족인 건가. 아니면 네가 그중에서도 특출난 건가?”
“음. 뭐 이야기하자면 좀 길어서.”
아자딘은 천주에게 자신과 전령일족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하는 것은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 여겼다.
그때 왕의 종자가 들어와 알현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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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자-자덱의 왕성 또한 청건당 천주의 건물이 그러했듯 브투마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기둥을 세우고 벽을 대신한 거대한 천들이 복잡하게 드리워져 있는데, 바람을 필요로 할 때 천의 배치를 바꾸기만 하면 통풍이 잘되게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스스로 벽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있었다. 말 한 마리 몸길이가 될 법한 거대한 유화 그림이었다. 그 커다란 화폭 안에는 금색 왕홀을 들고 오우거 군장의 시체를 짓밟고 승리의 자세를 취한 위엄 있는 검은 피부의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가 바로 브투마 북방에서 쳐들어오는 오우거들을 물리치고 브투마의 부를 지키는 황금왕인 것이다.
하지만… 알현실 한복판에는 이게 인간인가 싶을 만큼 비대하게 살이 찐 남자가 석영 옥좌 위에 앉아 있었다. 코끼리만큼 커다란 덩치에 살이 너무 쪄서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것을 억지로 피부 속에 담아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이목구비만은 묘하게 초상화와 비슷해서 그가 만자-자덱임을 알 수 있었다.
‘화가가 목에 칼이라도 들이 밀어진 채로 그렸나. 아니면 원래 젊은 시절엔 저랬다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저런 모습이 될 수가 있지? 그리고 왜 이렇게 커? 거인인가?’
아자딘은 만자-자덱의 왕좌 옆에 있는 커다란 왕홀을 보았다. 초상화에 있던 금색 왕홀이다.
그 길이가 사람 키의 두 배만 했는데, 초상화의 모습에 비견하여 생각해보면 만자-자덱이 본래부터 보통의 인간보다 거대한 체구를 타고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그 콧대 높은 스콧조차 흠모하던 황금왕의 모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