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97
196. 황금왕 2
아자딘은 만자-자덱의 흉측한 모습에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우선 득남을 축하하네 천주. 하하. 장성한 자식이 알아서 찾아와 늘어나주다니 재주도 좋군.”
“부끄럽사옵니다.”
“그래. 이 시기에 알현이라니, 무슨 일이지? 도시의 방어를 위해 최근 재산을 좀 털었다고 들어서 고맙게 여기고는 있네만.”
희첩들이 포도알을 떼어 주는 것을 받아먹으며 만자-자덱은 눈을 굴렸다. 마치 거대한 맹수가 노려보는 듯한 노란색 눈동자는 용맹한 아자딘에게도 공포와 거리낌, 혐오감을 안겨주었다.
이게 브투마의 황금왕이란 말인가?
황금왕의 파격적인 용모에 이미 익숙한지 천주 카자스는 능숙하게 말을 꺼냈다.
“다름이 아니오라 폐하. 불민한 제 자식이 우둔한 재주라도 보태어 폐하께 충성하고자 하니 부디 미관말직일지라도 써주길 바랍니다.”
아자딘이 도시 방어에 대해서 조언을 한다 한들 왕이 그 말을 귀담아들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청건당의 천주는 아예 아자딘을 만자-자덱의 군문에 들이고자 이러한 청탁을 한 것이었다.
“허례허식은 관두도록 하지. 어차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입이 무겁지 않은가?”
만자-자덱은 웃으며 아자딘을 돌아보았다.
“전령일족이라고 들었다. 고개를 들도록. 편하게 이야기하지.”
“예.”
아자딘은 자신이 전령일족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만자-자덱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어느 쪽에 속하지?”
“황송하오나 어디냐고 물으시면….”
“아자딘. 네 누이가 반역자 아라엘일 텐데 왜 굳이 청건당을 통해서 내게 연락을 해왔느냐? 너는 아라엘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는 거냐? 그럼 원로원 쪽이냐?”
“…….”
아자딘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전령일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만자-자덱의 반응에 당황했다. 게다가 말하는 걸 보면 이미 아라엘과 내통하고 있지 않은가?
“소인의 행각을 이미 알고 계셨군요. 게다가 아라엘과 이미 연락을 하고 계셨다니요.”
“브투마는 부유한 곳이다. 이곳의 황금은 귀신조차 부릴 수 있지. 아라엘 그 어린 소녀가 아무런 뒷배 없이 혼자서 자기 기량만 믿고 반역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자금을 대주는 누군가가 있을 테고. 그게 바로 나다.”
살집이 흘러내릴 것 같은 추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만자-자덱이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정말 저 앞에 걸린 초상화처럼 아름답고 강건한 존재였으리라.
“그래서. 너는 어디에 속해 있지? 원로원이냐? 아니면 반역자냐?”
그 순간 아자딘에게 예리한 살기가 쏟아져 내렸다. 만자-자덱의 알현실에 숨어 있던 실력자들이 왕의 말 한 마디면 일제히 공격에 나설 것이다.
왕의 비대한 몸을 수호하기 위해 몸을 감춘 실력자들이 이 알현실에 잔뜩 깔려 있다는 것을 아자딘은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놀랍군. 그저 미친 자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똑똑해. 과연 황금왕인가.’
아자딘은 만자-자덱의 날카로운 반응에 감탄하며 솔직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는 그저 백성들의 고통을 덜고자 힘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황제의 율법이고 전령의 사명이니까요.”
“하하하. 즐거운 대답이로군. 그게 네 진심이라면 너는 참으로 재미있는 자로구나?”
아자딘의 답변에 갑자기 만자-자덱이 웃음을 터뜨렸다.
“황제를 시해한 전령일족이 황제의 율법을 지키겠다니. 여전히 신참 전령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나 보군. 전령일족들은.”
“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봐라. 전령일족의 애송이. 혼자서 여덟 개 석영 왕좌를 전부 차지한 강력한 황제가 어째서 후계자도 없이 갑자기 몰락했지? 설마 병에 걸려 쇠약해져서 죽었단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겠지?”
만자-자덱은 그리 말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희첩들이 물수건을 가져와 만자-자덱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과 음식물 파편들을 정성 들여 닦아냈다.
사람을 대한다기보다는 가축을 빗질하는 듯한 모습에 아자딘은 경악했다.
하지만 만자-자덱의 말은 그의 모습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황제는 너희들에게 시해당했다.”
*********
아라가사들은 복무의 저주에 속박되어 있지만 황제가 자신들을 전령으로 선택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의 무예, 그들의 지략, 그 능력이 다른 어떤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복무의 저주는 무거운 것이나 황제가 그들을 선택한 것은 영광된 일이며 단지 황제가 예상치도 못하게 급하게 몰락하였기 때문에 복무 계약이 저주가 되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란 말인가?
“오, 이런. 보아하니 아무것도 몰랐나 보구나. 아니면 모르고 싶었던 건가? 후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건 즐겁지.”
그 미소에 서리는 광기를 보며 아자딘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황제의 시해가 전령일족의 손에 의한 것이라면 어째서 세간에는 그것이 공표되어 있지 않지요? 그리고 그걸 폐하께서는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왕의 교회의 입장에서 황제는 왕들의 존립을 부정한 자이나 또한 가장 야에가스 신족에 가까운 자였다. 그런 이가 신왕살해자에게 살해당한다면 그들의 불경함, 부덕함도 부각되겠지만 또한 그들의 유능함도 부각되기 마련이 아닌가? 내 이를 증빙하는 많은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증거들이 아니라 네가 그걸 믿고 싶으냐, 그렇지 않느냐가 우선 아니겠느냐?”
만자-자덱의 태도, 그리고 그가 지적한 대로 황제의 몰락 부분이 모호한 점들 모두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황제를 시해한 너희 일족이 황제의 이름으로 잊힌 저주를 내세워 너희에게 충성을 갈취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 너도 전령일족 따위는 관두고 내 밑에서 날 섬기는 건 어떻겠느냐? 이미 많은 전직 전령일족이 나를 섬기고 있다. 복무의 저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야에가스 신족의 후예인 내가 그 정도는 막아줄 수 있으니 말이다.”
“우선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네더를 섬기는 나가 일족들이 곧 브투마를 공격하고 그 틈을 타서 제 동족들이 이곳의 왕좌를 찬탈하려 획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브투마의 많은 백성들이 학살당할 겁니다. 그걸 막고자.”
“하하하.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심이로구나. 진심으로 황제의 율법을 따르는 전령일족이라니!”
황금왕 만자-자덱은 아자딘이 진심으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는 걸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
“더더욱 탐이 나는구나. 너 아자딘, 나를 섬기도록 해라.”
“그래서 지금 폐하를 섬기게 해 달라고 청원하고 있는 중 아닙니까.”
“아니 고작해야 잠깐 성의 방어를 돕고 난 뒤에 사라질 셈인 것 같은데 진심으로 날 섬기라는 거다. 아, 그러려면 우선 내가 너의 충성을 받을 만한 군주라는 걸 입증해야겠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날 보면 그저 향락에 찌든 돼지새끼로 보일 테니까. 그렇지 않느냐?”
“아닙니다.”
“하하하. 좋은 종자가 되겠구나. 뻔한 거짓말도 할 줄 알고. 하지만 뭐 좋다. 사정을 모르는 데 내 모습을 경멸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 말이다.”
만자-자덱은 자신의 왕좌를 가리켰다. 그가 앉아 있는 왕좌는 코끼리도 앉을 수 있는 거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밑에 석영 왕좌, 야에가스의 왕좌가 있지. 내가 왜 그 신성한 야에가스의 왕좌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필부인 제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심모원려가 있을 것이라고 밖에는… 제가 어찌 폐하의 깊은 뜻을 헤아리겠습니까?”
“왜냐면 왕화의 빛을 조금이나마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들어서 왜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그걸, 제게 말입니까?”
아자딘은 만자-자덱이 놀라운 비밀을, 야에가스 신족의 비밀을 말하려 한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래. 내가 섬길 만한 주군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귀를 씻고 듣도록 해라. 내가 그동안 연구한 야에가스 신족의 비밀과 황제의 비밀을 말해 줄 테니.”
아자딘은 만자-자덱의 말에 빨려 들어가듯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
야에가스 신족은 본래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 날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 육체를 버리고 고차원적인 영적 존재로 승화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휘브리스 대륙을 발견했을 때 이 땅의 지배자들은 나가들이었고 인간들은 나가들의 학정에 고통받거나, 인간으로서는 불가해한 네더의 사신들에게 유린당했다.
숭고한 이상을 가진 야에가스 신족들은 고통받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강림했다. 물론 그중에는 숭고한 이상 대신 오래전 그들이 버린 육체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함께 강림한 이들도 있었다.
휘브리스 대륙에 여덟 개의 석영 왕좌가 설치되었고 그를 통해서 야에가스 신족들은 인류를 구원하는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났을 때, 숭고한 이상만으로 강림한 이들은 돌아갔고,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 강림한 이들은 이 땅에 남았다.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들이 이 땅에 남겨진 이유였다.
그러나 쾌락은 이내 질리고, 이 땅에 강림했던 신들이 다시 그들의 세계로 돌아갔을 때, 남겨진 이들은 자신들이 조상들만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힘은 점차로 약해진다.
야에가스 신족이 세운 질서, 왕의 교회는 왕화의 빛을 가져오는 신족들을 추앙하는 교회.
처음에 이 질서는 왕족들을 위한 충실한 도구였다. 하지만 신의 힘이 약해져 가자 왕족과 귀족들은 점차 이 도구가 자신들의 목을 조여오는 족쇄가 되어감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조상령, 야에가스 신족들은 그들을 떠나고 있는데, 자신들을 일반인들과 구별 짓던 신의 혈통은 점차 약해지고 있고 어둠의 힘은 다시금 강성해지고 있다.
진실을 알고 두려움에 떨던 왕족들이 집단으로 자살하거나 정신이 나가 버릴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태어나는 후대의 왕족들에게 그 사실을 은폐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신족이라고 주장했다.
야에가스 신족이란 본디 강림한 자들만을 지칭하던 명칭.
하지만 그 신족의 후손들은 용어를 혼동시켜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하는 한편, 이 땅에 남아 있는 온갖 마술과 마법의 힘을 얻어서 사라지는 신의 힘을 대신하고자 노력했다. 그들 중에는 본래 적이었던 사악한 힘에 유혹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야에슬라트 황제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