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98
197. 황금왕 3
황제는 간만에 태어난 진짜 야에가스 신족. 그러나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던 그는 광기에 가까운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철혈의 통치자였다.
황제는 왕위를 가질 자격이 없는 왕족들을 처단하고 숙청하기 시작했고 그를 위해 전령일족을 기용했다.
그러나 그의 숙청이 지나치자 보다 못한 전령일족이 황제를 시해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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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건 표면적인 핑계고, 사실은 그들과 황제와의 사이에서 얻은 사생아가 야에가스 신족이라서 그랬다는 소문도 있더군. 황제를 시해하고 황제의 아이를 황제로 옹립하려는 게 그들의 음모였다는 의견이 있다.”
아자딘은 충격적인 만자-자덱의 말에 놀랐다.
이것이 야에가스 신족들의 비밀이란 말인가? 그리고 황제 시해의 비밀이라고?
“이게 바로 왕화의 빛이 약해지는 이유고, 또한 너희가 황제를 시해한 이유다. 그리고 내가 여기 왕좌에서 이렇게 육체의 쾌락을 호소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지.”
본래 만자-자덱은 이름 그대로 황금왕, 강력한 마법사이자 무사였다.
그는 브투마의 위광을 드높이기 위해 북방의 오우거들에 대한 정복 전쟁에 나섰고 나가들과 오우거들을 격퇴하며 100번의 친정에서 단 한 번도 패배 없이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의 치세하에서 브투마의 부는 더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마법을 탐구하던 그는 조상들의 기록을 접하게 되고 석영 왕좌 안에 잠들어 있는 신왕진서, 그리고 야에가스 신족들과의 연결을 통해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신들은 이 세계를 떠났고, 이곳에 남겨진 것은 그들의 버려진 자식인 왕족들과 과거 쿠르트 신족과 네더의 힘에 유린당한 원주민들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육체의 쾌락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내가 영광을 버리고 향락에 타락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나의 기도다.”
초상화의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가 흉측한 살덩이가 되어 왕좌 위에서 꿈틀거린다.
“우리 조상들이여, 야에가스 신족들이여. 여기 육체의 쾌락이 있나이다. 당신들이 다시금 돌아와 임할 때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의 것이니 부디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그것이 기도고 염원이란 말인가?
아자딘은 만자-자덱과 완전히 초면이지만 마음이 아팠다.
한 영혼이 감당하기 힘든 절망 앞에서 타락해 버린 모습, 그것이 지금의 황금왕, 만자-자덱이었다.
“외람되오나 폐하. 제가 보기에 폐하께서는 고통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하. 무슨 말이냐. 이런 고통쯤은, 보아라.”
만자-자덱이 손짓하자 희첩이 담뱃대를 하나 가져와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만자-자덱이 그걸 빨고 내뱉자 달큼한 향기가 대기 중으로 흩어져 나갔다. 아편이었다.
“고통 따위는 이내 사라지고 쾌락만이 남게 되지. 후후후. 어떠냐?”
“…….”
지금 아편 따위를 고통의 해답으로 내놓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분노보다는 측은함이 앞섰다.
만자-자덱, 황금왕. 팔왕국 중 가장 부유한 브투마의 왕이며 만인이 우러러보는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
하지만 그 실상은 너무나 절망해서 향락에 뇌를 마비시키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절망한 자였다.
그런 그가 아자딘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뭘 믿고 있든지 간에 그건 헛된 것이다. 거짓이다. 진실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쾌락뿐이니, 나를 따르면 온갖 쾌락을 네게 선사하마.”
“제가 폐하께 종사한다면 저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제 무엇을 원하시고 제게 그런 영광된 자리를 제안하십니까?”
“브투마의 부를 지키는 것이다. 이곳의 부와 재산을 지켜야 육체의 쾌락을 유지할 수 있고, 그 쾌락을 유지하면 언젠가 반드시 조상들께서 다시금 우리를 굽어살피실 것이다.”
신들이 돌아올 것을 바라며 석영 왕좌 위에서 쾌락을 계속 반복할 뿐인가.
“외람되오나.”
아자딘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아편을 빨아서 몸의 아픔을 지워 버렸다 해도 제 눈에는 여전히 폐하가 고통스러워하는 걸로 보입니다만.”
“쯧.”
만자-자덱은 혀를 찼다.
“그래. 인정하지. 고통스럽다. 나는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으로서 내 혈통을 자랑스러워했었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오우거들을 토벌하며 100번 친정해서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고 내정도 충실히 해서 번영을 이룩했었지. 하지만… 신들은 우릴 버렸다. 이 세상에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신들이 우릴 포기하고 버려 버린 거다. 그러니까 이제 남은 건….”
만자-자덱은 다시금 아편을 깊이 빨아들였다. 그리고 마치 용이 불을 토하듯 연기를 토해내며 신음했다.
“이 몸에 남는 쾌락만이 진실이다.”
“그럼 아둔한 질문이지만 신왕진서는, 그리고 그 사본은 무엇입니까?”
아자딘은 지금까지 모아온 신왕진서 사본을 꺼내어 보였다.
“많이도 모았구나. 신왕진서는 왕화의 빛이 이 세상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모은 규범이다. 가장 강력한 마도서이며 야에가스의 세계에서 전해져 오는 왕화의 빛이 우리 세계에 작용하는 원리 그 자체이지. 만약 그걸 이해하고 고쳐 써 왕좌에 다시금 그것을 입력한다면, 왕화의 빛의 규정이 바뀔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신왕진서 사본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너희 전령일족에게 뭔가 사고가 나서 유출되었다지?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암약하고 있던 전령일족이 코라사르의 왕좌를 차지했다면 이미 너희 두령은 신왕진서의 해석을 끝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새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참고 지내다가 이제 와서 왕좌를 차지하기 시작한 거지.”
“신왕진서의 해석이 이미 끝났다고 보십니까?”
“그래. 그래서 너희 전령일족들은 왕좌를 차지하고 그 왕좌에 새로운 신왕진서를 써넣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왕화의 빛을 너희가 독차지할 수 있을 테니. 그러면 휘브리스 백성들은 그동안 무시하던 너희를 새로운 왕족이자 귀족으로 섬기고 두려워하게 되겠지. 아마도 그게 목적일 것이다.”
만자-자덱의 발언은 놀라웠다. 그는 전령일족의 야욕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왕의 교회가 믿고 있는 왕화의 빛, 그게 베풀어지는 방식을 바꾸어 전령일족이 휘브리스 대륙 전역을 통치할 수 있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는 의미 없는 짓이다. 이 석영 왕좌가 가져오는 왕화의 빛과 신왕진서의 힘은 분명히 한 사람이 쓰기엔 강력한 힘이지만 야에가스 신족들이 이 세계를 버린 이후에는 그저 숯 더미 안에 명멸하는 잔불일 뿐이다. 뭐 그걸 가져서 약간의 온기는 차지할 수 있겠다만 곧 어둠이 몰려오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냐?”
그때 갑자기 왕성 종루에 있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종루도 일제히 울기 시작하고 곧 뇌광이 창밖에서 번뜩인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강한 바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폐하!”
알현실 안으로 무장한 무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바다에서 폭풍우가 밀려오고 있사옵니다.”
“나가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시작이로군. 그럼 아자딘. 이 도시의 방어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었지?”
“예.”
“여기 내 금령을 받아라.”
만자-자덱은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뽑아 아자딘에게 던져주었다. 보통 사람은 반지가 아니라 손가락 세 개가 동시에 들어갈 만한 굵기, 팔이 가는 여성이라면 팔찌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크기였다.
“그대를 왕의 기사, 금령사자로 임명하겠다. 브투마 방어에 최선을 다하도록.”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임무 기꺼이 받들겠나이다.”
아자딘은 만자-자덱이 내리는 금령사자의 지위를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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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알현은 어땠어?”
스콧이 알현실 밖에서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금왕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그의 눈이 열정으로 빛났다.
“성공적이었다. 왕이 나에게 기사 작위와 금령사자의 직위를 내렸다.”
“그래? 별로 기쁜 표정이 아닌데?”
아자딘이 가면을 쓰고 있는데 표정을 어떻게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이었다.
아자딘은 혼란스러웠다.
황제를 아라가사가 시해했다는 사실과 아라가사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계를 찬탈할 준비를 해왔다는 이야기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카자스와 알디스 외엔 같은 동족이라고 해도 나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어. 그러나 아라가사는 이 대륙에서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며 외면받고 있는데 동족들조차 믿을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아자딘의 마음이 굳건하다 하더라도 만자-자덱의 말은 그의 머리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홀로 고뇌할 시간은 없었다.
“나가의 군대가 해일과 함께 오고 있어. 이제 어쩔 거지? 금령사자라는 직위가 쓸모가 있어? 어떻게 방어할 거야?”
샤티가 아자딘에게 물어보았다. 이제 와서 기사 작위라던가 허울뿐인 관직을 얻는다 해서 과연 무슨 쓸모가 있는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만자-자덱의 방어는 훌륭해. 솔직히 황금왕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요소요소 적절하게 집을 철거해 가면서까지 소개지를 만들었고 병력도 충실한 데다가 청건당마저 도시 방어를 도울 테니까. 문제는 암살이지.”
정규군이 공격하는 사이 주요 지휘관이나 왕을 암살한다.
그것이 전령일족, 아라가사의 방식이었다. 아자딘은 아라가사로서 훈련받았기에 아라가사들의 방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황금왕 만자-자덱의 방비는 생각보다 훌륭하다. 쾌락과 향락에 찌들어 통치를 느슨히 하는 암군들은 향락이 곧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자-자덱은 향락이 수단인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향락은 신들의 관심을 불러들이기 위한 기도, 향락을 취하면 취할수록 오히려 본인이 고통받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간절히 원할 그 향락을 만자-자덱은 끔찍한 고통과 절망의 몸부림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여전히 황금왕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통찰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아라가사들이 노릴 것은 바로 왕의 암살이다.
아자딘은 왕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경호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금령사자라는 관직이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확인해보지.”
아자딘은 알현실 밖 대기실에서 식물에 물을 따라주고 있는 시동을 돌아보았다.
“이봐. 왕의 경호팀에 합류하고 싶은데 누구와 상의해야 하지?”
“허억?”
시동이 놀라서 한걸음 물러나더니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금령사자를 뵙습니다!”
“…….”
아무래도 만자-자덱이 준 관직이 상상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아자딘의 뒤쪽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신입. 왕의 경호 임무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지? 내가 바로 왕의 호위대장인 카르첸이다.”
갈색 피부의 중년 여성이 걸어왔다. 그녀는 허벅다리에 월각궁을 감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만자-자덱에게 포섭된 전령일족인 것 같았다.
“카르첸?”
“그래. 네놈은 무안의 아자딘이로군. 둔재로 유명한.”
“당신은….”
‘누구지?’
그런 질문이 아자딘의 목구멍 안에서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