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00
199. 일족의 배신자 1
“카르첸. 저라면 다가오는 암살자들을 처치할 수 있습니다.”
“둔재로 유명하던 네가 우리 아라가사들을, 다른 전령을 상대할 수 있다고?”
“이미 현역의 많은 전령들과 결투에서 승리했으니까요. 그 외에 이래저래 공을 많이 세워서 지금 저는 제2령입니다.”
“제2령?”
아자딘이 그런 높은 지위를 획득했다는 말에 카르첸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니 암살자들을 제게 맡겨주세요.”
“헛소리하지 마. 널 어떻게 믿고? 그러다가 네가 만자-자덱을 해치려고 하면 우리는 고용주를 잃고 완전 망하는 거라고. 영혼 없는 불경자라고 만인에게 모욕당하며 평생 떠돌아다니는 삶은 나로 족해. 내 자식들에게는 그런 끔찍한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
아자딘은 카르첸의 말을 듣고 왜 많은 이가 전령을 그만두고 진심으로 황금왕을 섬기는지 이해했다.
황제의 전령으로서의 삶은 고되고 모욕스럽다. 설령 명예롭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누가 그 고통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을까.
그저 복무의 저주가 강제로 대물림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런 혜택을 제공하는 만자-자덱에게 충성하는 게 당연했다.
‘영문을 모를 때는 전령일족을 배신하고 어떻게 저런 폐인을 섬기냐고 폄하했었지만 내막을 알고 보니 이들의 심정도 절실히 이해가 되는군.’
자신의 자식에게는 박해받지 않는 삶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카르첸과 다른 전령일족들이 황금왕 만자-자덱을 섬기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자딘은 카르첸과 그녀의 부하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낮추고 성심성의를 다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가 만약 만자-자덱을 직접 죽이고 그 왕좌를 차지한다면 다른 일족들이 절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야 우러러보겠지.”
“그걸 원로원 최상부에서 원할 것 같습니까? 전 무안의 아자딘입니다. 일족 모두가 경멸하고 무시하던 녀석이라고요. 그런 녀석이 갑자기 공을 세워 벼락출세하는 꼴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이미 제2령이라면서?”
“그러니까 더 문제지요. 제 후견인인 알디스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입니다. 다들 불만이 많을 걸요.”
카르첸은 아자딘의 말에 당황했다.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봤어도 자신의 악명을, 나쁜 평판을 믿어달라는 사람은 처음이다.
“저를 믿을 수 없다면 제 악명을 믿어주시지요. 저를 증오하는 동족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이제 와서 제가 출세하는 걸 용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별 해괴한 설득이 다 있군.”
“그리고 그와 별개로 제가 실력이 있다는 걸 믿어주시지요. 전 현역 전령 여럿을 실력으로 꺾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편에 서면 당신들은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고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카르첸은 자신들만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제대로 된 전령의 암살 시도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아자딘의 말은 그녀가 도망가고 싶어 하는 공포와 불안을 파고들었다.
“좋아. 금령사자. 너에게 금령을 맡긴 폐하의 안목을 믿어보지. 그분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시니 뭔가 생각이 있어서 널 받아들였겠지.”
*********
폭풍우가 쏟아지는 왕성 지붕 위에서 왕실 경호대장 카르첸은 경호대원 간부들을 모았다.
다 함께 모여서 아자딘을 처단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카르첸이 아자딘을 믿기로 하자 다른 경호대원들도 기뻐했다.
“젊고 팔팔한 놈이 현역 전령들을 상대해 주겠다면 우리도 좀 숨통이 트이지.”
“저는 전령도 아닌 하인이었는지라 전령들이 쳐들어올 걸 생각하면 밤잠을 설쳤는데 그나마 다행이군요.”
“하지만 무안의 아자딘은 둔재로 유명하잖아? 정말 현역 전령을 상대할 수 있다고?”
경호대원들 중에 아라가사는 세 명. 하지만 다들 나이가 꽤 있고 본래부터 전령의 위계가 낮거나 아니면 전령도 아닌 이들이어서 전령이 쳐들어올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아자딘이 나서서 현역 전령들을 상대하겠다고 하니 쌍수 들고 환영하는 것이었다.
“자자. 우리 경호대원은 아라가사 외에도 사령술사, 혈마법사, 그 외 왕의 교회가 쳐죽이고 싶어 하는 이단 마법사들이 많아. 그들의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지원해주지. 아자딘, 너는 성의 중심, 왕성 지붕 위에 있다가 우리가 암살자를 발견하면 그쪽으로 지원을 와줘.”
“괜찮겠습니까?”
그런 식이면 경호대원들이 사방팔방에 흩어지게 되고 아자딘은 만자-자덱과 가장 가까운 곳을 맡는다.
믿어 달라고는 했지만 정말 이렇게 본격적으로 믿어주다니.
“아, 몰라. 이래저래 어차피 도박이라면 판돈을 제대로 걸어야지.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잘 막아줘야 해. 뭐 동족과 싸우는 데 불만은 없지? 너는 일족들에게 모멸을 당하고 있었으니, 이 기회에 그놈들을 처치하고 만자-자덱에게 임관하는 것도 좋을 거야.”
“임관 말입니까?”
“나쁘지 않아. 언제까지 죽어 버린 황제의 망령에게 매달리며 시키는 대로 떠돌아다닐 거야? 여기 정착해서 살아가는 것도 좋아.”
“많이 덥고 습하고 벌레들은 독하고 그렇지만 왕의 교회 눈치를 안 보고 살 수 있지.”
브투마에서의 삶이 마음에 들었는지 경호대 안의 아라가사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하지만 저 자식 금령사자면 벼락출세하는 거 아냐? 여기 정착하면 우리가 개털 될지도?”
그러자 카르첸도 아차 하고 혀를 찼다. 애초에 그녀는 아자딘이 금령을 받고 왕의 대행자인 금령사자가 된 것에 불만을 품고 접촉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브투마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것의 기쁨을 말하고 있었다.
“뭐 이번 위기 넘기고 나서 생각하자. 벌써부터 알력 다툼은 배가 불렀지.”
“그건 그렇네.”
“그럼 조안.”
어깨에 시랍으로 만든 까마귀를 얹고 있는 젊은 술자가 화들짝 놀랐다.
“네!”
“이 친구 옆에서 붙어서 보좌해줘.”
“알겠습니다.”
“누구지?”
“조안. 우리 팀이야. 혈마법사인데 피를 보면 기절하지.”
“…….”
“그래도 연락책으로는 쓸 만해. 그럼!”
카르첸과 경호대원들은 각자 분담한 위치로 이동했다.
*********
폭풍우가 밀려오지만 나가들의 공격은 지지부진했다.
나가의 전술은 일단 도시를 침수시킨 후 도시의 방어능력이 침수로 인해 망가져 제구실을 못 할 때 몰아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에서 싸우는 데 익숙하지만 인간들은 물에 침수되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이는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침수가 진행될 때까지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문제는 브투마가 평상시에도 스콜을 자주 겪는 곳이라 항상 하수도 시설을 완비해 두었으며 이번에는 아예 침수지역을 소개해 버려서 방어를 철저히 대비했다는 것이었다.
코랄 사하르는 폭풍우 앞에 바로 침수되어 정신을 못 차렸지만 브투마는 물이 빨리 빠지면서 침수가 잘 되지 않았다.
나가들이 수로를 통해서 진입해도 이미 수로를 훤하게 꿰뚫어 보고 있던 브투마 군이 집중 공격으로 응답했다.
보통 인간들보다 덩치가 몇 배는 더 큰 바다뱀 부족 용사들이 수로에서 튀어나왔지만 그런 이들을 전투 코끼리가 밀어서 찢어발겼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체는 브투마 군에 소속된 사령술사들이 즉각 시체병으로 만들어 오히려 나가들에게 돌려보냈다.
나가들 또한 사령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지만 위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 쪽이라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
“…그렇다고 합니다.”
왕실 경호대원 소속인 혈마법사, 조안은 자신의 어깨에 올려둔 시랍화 된 까마귀를 통해서 전황을 보고받고 그걸 아자딘에게 전해주었다.
아자딘 일행은 왕성 지붕의 옥상에 장식되어 있는 석상 밑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브투마 군이 너무 잘 싸우는데?”
“그러니까 황금왕 치하에서 연전연승했다는 거 아냐. 대단하지 대장?”
샤티는 브투마 군의 선전에 골치 아파했지만 스콧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나도 잘 싸울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도시를 소개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거든.”
아자딘은 마음이 복잡했다. 브투마 군이 잘 싸운다는 건 그만큼 전령일족들이 개입할 시간이 빨라진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일족들과 싸울 각오가 되어 있을까? 아자딘은 스스로의 각오에 확신이 없었다.
정황상 알디스도, 카자스도 이 끔찍한 살육극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가 알던 그들의 성격상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카자스는 한때 마왕이라 불리며 나가 제국에서 종사하던 인물, 아자딘이 그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은 알디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기회에 만자-자덱에게 임관하고 여기 정착하는 건 어때? 다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돌아다닐 거야? 왕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고. 보아하니 제수한 직위도 상당한 것 같은데.”
샤티는 만자-자덱이 자신들에게 만족스러운 보수와 지위를 약속한 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부유하고 인심 좋은 왕, 그 밑에서 종사로서 복무하는 것은 분명히 만인이 바라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일 것이다. 그게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그러나….
“왜? 별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지? 나에겐 동족을 배신하라고 해놓고 정작 자기 동족을 배신하는 건 마음이 아픈가 보지?”
“그게….”
“이상한 일이군. 당신은 동족들에게서 차별받았잖아. 별로 좋은 대접을 받지 않았을 텐데 그런 동족들 배신하는 게 뭐 그리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샤티는 아자딘에게 빈정거렸다. 그때 경호대원이 아자딘에게 붙여준 혈마법사 조안이 깜짝 놀랐다.
“아, 큰일입니다.”
“큰일이라니?”
“동쪽 하수도 방어거점에 암살자가 침입했다고 합니다. 상당한 실력자로 아마도 전령일족이라고 하네요.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으음.”
아자딘이 각오가 되어있건 안 되어 있건, 동족들과의 싸움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
브투마 성 동쪽 문 뒤쪽 수로, 좁은 하수도를 통해 나가들이 침투했다가 오히려 된서리를 맞고 있었다.
나가 한 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수로가 우연히 열려있어서 나가들이 그곳을 통해 진입해 들어왔는데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이 창으로 응대한 것이었다.
명백한 함정이었다.
하지만 피에 굶주려 있던 나가들은 이 작은 틈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공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방부처리하고 사령술사의 사령술로 강화한 미라 병대를 투입했다. 미라가 몸으로 창칼을 막아내는 동안 나가들이 지속적으로 들어가 일단의 병력을 투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투 코끼리를 앞세운 동문 경비대가 출동하자 상황은 다시 뒤집어졌다.
“그래서 우리 차례로군.”
“비린내 나는 놈들 눈치보기 싫었는데 잘되었네.”
전령일족의 내분 때문에 많은 전령이 갈렸다. 그래서 새롭게 전령이 된 이들은 공훈에 굶주려 있었다.
아라가사의 오대 혈족인 아만의 후손인 할둔이 농을 걸어왔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미디암 에타르? 에타르 혈족들이 설마 브투마를 다 먹어 치우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