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01
200. 일족의 배신자 2
부유하기로 유명한 브투마 왕국을 차지했을 때 그 핵심 사업들을 누가 먹는가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사냥을 성공하기도 전에 모피값을 계산하는 꼴이지만 이 젊은 전령들은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설탕 농장과 금광이 브투마의 부의 원천이지. 우리 아만은 설탕 농장을 먹고 싶은데.”
할둔의 말에 미디암은 고개를 저었다.
“벌써부터 이긴 기분을 내는 건 성급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황금왕의 까마귀라고 불리는 경호대원들이 있어. 아마도 우리 일족이던 자들이 막아설 거야.”
“아. 그 일족의 배신자들? 어차피 하인들이었거나 간신히 전령의 말석이나 차지하던 얼간이들이다. 진짜 전령인 우리의 적이 될 것은 아냐.”
“우리도 진짜 전령은 아니지. 그저 아라엘에게 동조해서 일족을 떠난 이들의 빈자리에 운 좋게 들어간 부잣집 자식들일뿐.“
과거에 미디암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겸손함이 지나칠 지경이었다.
“그 말은 에타르 혈족인 너도 포함하는데?”
“맞아. 사실이야. 나는 아직 몸이 완전히 자라지 않았어.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부족하지.”
미디암 에타르가 쉽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자, 할둔은 혀를 찼다.
“글쎄? 나는 내가 성인 전령들 못지않다고 생각하는데. 잘 보라고.”
할둔은 월각궁에 청강전을 걸었다.
화려한 갑옷을 입고 전투 코끼리 위에서 초대형 석궁을 이용해 나가들을 공격하는 브투마 군 지휘관의 모습이 보인다.
나가들은 브투마 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접근하면 전투 코끼리가 짓밟는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초대형 석궁에서 화살이 날아오는데 창 같은 대형 볼트에 맞으면 나가조차 찢어진다.
나가들은 원거리에서 자잘한 화살을 날려봤지만 코끼리의 몸에 두른 대나무 갑옷과 지휘관이 입은 갑옷에 걸려 무용지물이다.
저주의 주술 같은 걸 써도 혈마법사가 걸어둔 액막이가 대신 마법을 흡수해 버린다. 혈마법사가 만들어준 부적이 주위 마법을 흡수해서 마법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 브투마 군 지휘관을 향해 할둔이 화살을 날렸다. 푸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청강전이 지휘관의 갑옷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나가들의 화살은 다 튕겨내던 갑옷이 전령일족의 화살, 그것도 청강전에 맞자 마치 종잇장처럼 쉽게 뚫렸다.
뛰어난 솜씨로 나가들을 척살하던 지휘관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병사들이 깜짝 놀랐다.
모두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찾아보았지만 알아낼 리 만무하다. 할둔은 화살을 휘어져 날리게 해서 거의 직각에 가깝게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엉뚱한 곳을 노려보며 고함만 질러댔다.
“하하하. 저 꼴 보라지.”
할둔은 유쾌하게 웃으며 미디암을 돌아보았다.
“어때? 저 나가들이 꼼짝 못 하는 녀석을 이렇게 쉽게 제압하잖아?”
그러나 미디암은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럼 이동하지. 우리의 목적은 까마귀들을 불러내 왕의 경호대원들을 최대한 분산시키는 거야. 이 자리에 오래 있으면 틀림없이 까마귀와 맞닥뜨리게 될 거야.”
“황금왕의 까마귀 따위는 무섭지 않아. 오히려 잘됐지. 여기서 불러내서 잡을 거다.”
“그렇게 과신하지 않는 게 좋을걸?”
미디암은 할둔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과거 아자딘이 날 보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정말 철없고 한심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계속 움직여서 혼란을 가하는 게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까마귀를 잡는 건 그 후의 일입니다.”
미디암의 곁에서 그녀를 보필하는 이스마일이 나서서 말하자 할둔이 이스마일을 흘겨보았다.
“뭐야? 하인 주제에 낄 데 안 낄 데 모르냐?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렇지만 이러는 동안에도 까마귀가 다가올 겁니다.”
“그러니까! 까마귀 따위는 무섭지 않다고!”
할둔이 그렇게 외칠 때였다. 갑자기 그들의 옆 지붕 위에 한 인영이 올라왔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놀랍게도 아자딘이 지붕에 내려선 것이었다.
“아자딘?!”
미디암이 그를 보고 반가워했다. 하지만 이스마일은 냉정하게 미디암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네? 멀리 간 줄 알았는데 브투마에 와 있구나?”
“명령은 하달받으셨습니까?”
“어떤 명령.”
“모든 전령은 브투마에 모여서 브투마의 거짓된 왕, 만자-자덱을 쓰러뜨리고 브투마의 왕좌를 차지할 것.”
“…아니. 왜 난 못 들었지? 황제의 목소리로 전달한 지령이 아닌 것 같은데.”
아자딘은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배척받는 존재다. 황제의 목소리를 통해서 명령을 전달하지 않으면 하인들로 이뤄진 연락망,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나 브투마 행상 조합 등을 통해서 명령을 전달받아야 하는데….
아라엘과 관계가 깊은 아자딘을 일족 모두가 배척하고 있었다. 알디스가 아자딘을 제2령으로 올린 것도, 일족의 배척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무모한 승진, 알디스의 편애가 엿보이는 승진은 다른 이들의 적개심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황제의 목소리는 이 작전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따로 연락망을 통해서 명령을 하달했습니다만, 뭐 이제라도 명령을 들었으니 다행 아닙니까?”
이스마일은 사정을 잘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 그래. 당신이 무안의 아자딘인가? 흠 들리는 소문에는 말도 못 할 정도의 팔푼이라고 들었는데, 말을 더듬거리진 않네.”
할둔은 아자딘을 향해 거들먹거렸다.
“나는 아만 혈족의 할둔이다. 아자딘. 나에게 협력할 영광을 안겨주지. 함께 황금왕의 까마귀들을 사냥하자고. 그러면 내가 나중에 좋은 자리를 알선해주지.”
“좋은 자리라면 어떤?”
“글쎄. 브투마의 사탕수수 농장 작은 거 하나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겠어?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 봐.”
아직 어리고, 이제 막 공석을 메우기 위해 전령이 된 할둔이 아자딘을 자신의 하인 대하듯 한다.
반면 미디암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좌불안석, 아자딘의 눈치를 살폈다.
아자딘의 태도를 보니 전령일족이 브투마를 공격한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걸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이다.
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딱히 정당성 없이 도시를 습격하고 많은 희생자를 내는 행위에 동조할 리가 없다.
“황금왕을 축출하면 그 왕좌에는 누가 앉지? 코라사르는 알디스가 앉았고, 브투마에는 누가 앉을 것이냐?”
“아마도 두령 하티르 님일걸? 알고 있어? 그분이 사실 황제와 하르코니아 님 사이에서 태어난 적통이라는 걸? 야에가스 왕족의 적통인 그분이 왕좌를 차지하면 황제가 돌아오고 우린 다시 황제의 전령이 되는 거야.”
할둔은 으쓱거렸다.
“당신 같은 반푼이도 황제의 전령이란 영광된 자리를 되찾을 거란 말이지.”
“그럼 두령님이 여기 와 있겠군.”
자신의 가문만 믿고 제2령의 지위인 자신을 무시하는 할둔이었지만 아자딘은 물어보는 족족 술술 대답하는 그가 고마웠다.
반면 미디암은 아자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거리를 슬슬 벌렸다.
“아자딘. 어찌하실 건가요?”
“답은 나와 있지. 황금왕 만자-자덱은 왕좌에서 축출될 만큼 폭정을 저지르지 않았어. 그를 끌어내리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서 살육을 벌이는 건 황제의 목소리가 납득할 수 없다. 아니….”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납득할 수 없지.”
“뭐?”
그제야 할둔은 아자딘이 작전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아니 오히려 그들을 막기 위해 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안의 아자딘이 아닌가?
“하… 이놈이 미쳤나. 아니, 아니지 잘됐군. 제2령의 지위를 내놓아라. 아자딘.”
“그렇다는 건 결투를 걸 셈인가?”
아자딘이 물어보자 할둔이 코웃음을 쳤다.
“일족의 배신자에게 결투는 무슨! 이봐!”
할둔이 하인들에게 손짓하자 모두 일제히 아자딘에게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아자딘은 망토를 휘둘러 화살들의 경로를 차단하고 그 망토에 일장을 가했다.
펑 하고 북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흩뿌려지며 날아들던 화살이 힘을 잃었다.
화살 중에는 마법이 걸린 것마저 있었는데 그 마법이 힘을 잃고 평범한 화살이 되자 아자딘이 휘두르는 망토에 휘말려 감겼다.
그와 동시에 아자딘이 튀어나와 제일 먼저 할둔을 노렸다.
-딱!
아자딘이 중지 손가락을 튕겨 할둔의 미간을 강타했다. 아이들끼리 장난할 때나 쓰는 딱밤이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미간의 살이 찢어지고 대량의 출혈이 뿜어져 나와 할둔의 얼굴을 피로 물들였다.
“끄아악!”
“도련님!”
하인들이 검을 들고 달려들었지만 아자딘이 더 빨리 검을 휘둘렀다.
아주어 스틸로 만들어진 보검이 춤추며 하인들의 병장기를 가볍게 분질러 버렸다.
“큭!”
“이런!”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그림스로운의 곤봉이 날아들었다. 스스로 춤추며 날아가는 곤봉이 하인들의 머리, 가슴을 강타해 그들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날아가던 그림스로운의 곤봉 자루를 한 손이 덥썩 붙잡았다.
이스마일이었다.
“아자딘. 고작 휘브리스의 백성들을 위해서 일족을 배신할 겁니까?”
“애초에 일족을 배신한 건 원로원이었다. 복무의 저주는 황제가 건 게 아니야. 원로원이 건 거다. ”
아자딘은 하인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할둔을 인질로 잡고 돌아섰다.
-콰르르릉!
비바람 속에서 천둥이 울어대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망발을 하는 겁니까? 복무의 저주를 황제가 건 게 아니라니!”
“황제의 목소리가 직접 인정했다. 황제를 시해한 건 하르코니아이고, 복무의 저주는 원로원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서 건 거라고.”
빗줄기가 거세어진다. 그 빗줄기 아래 이스마일이 한 손만으로 그림스로운의 곤봉을 붙잡은 채로 아자딘을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제 곧 우리 일족의 숙원이 이뤄집니다. 왕좌를 차지하고 나면 누구도 우리를 감히 얕잡아보지 못합니다.”
“무고한 이들을 짓밟는 야심일 뿐이다.”
“저들은 무고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줄곧 우리를 무시하고 모욕했다고요! 저들은 우리 민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르코니아는 저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던 황제마저 죽였다. 그녀만이 아니야. 우리들 황제의 전령은 휘브리스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들의 목숨에 관심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타락이라 부를 만한 것이겠지.”
“그게 뭐 어떻습니까? 권력을 탐해서 뭐가 나쁜가요? 왜 우리는 가져서는 안 됩니까?”
이스마일은 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아자딘을 향한 것인가?
아자딘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이스마일에게 말했다.
“우선 첫째로는 당연히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고통받게 하는 일은 나쁜 거다. 둘째로는… 일족이 모든 것을 지배하더라도 그 안에 하인이나 박해받는 자는 가질 수 없어. 당장 이스마일, 네가 저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
“셋째로는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왕의 교회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고 환란이 다가오는 이때 우리가 사람들을 지켜내면 저들도 더 이상 우리를 배척하지 못 할거야.”
“그런….”
“이게 올바른 방법이지. 우린 휘브리스 백성들에게 존중을 받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해! 그게 두려워서 원로원이 복무의 저주로 우리를 옭아맨 거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정당하게 존중을 받아내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니까!”
“…….”
“원로원이 바라는 바는 바로 이것! 침략이다! 이걸 하고 싶어서 그동안 우리를 구속한 거야. 휘브리스 백성들에 대한 증오로 이 패악질을 정당화하지 마라!”
“젠장.”
이스마일은 아자딘의 말을 들어 버린 자신의 행동에 후회했다. 차라리 그냥 싸우면 될 걸, 말을 듣고 나니 반박할 말이 없다. 그 자신도 지금 일족이 하는 짓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여전히 혀가 잘 굴러가는군요, 아자딘. 전 당신이 치 떨리게 싫어요.”
“그러냐? 나는 널 좋아하는 편인데.”
“…….”
이스마일은 말없이 곤봉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