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05
204. 추락 2
그때 하티르의 곁에 서 있던 다른 전령이 튀어나와 몸으로 막아섰다.
물론 그냥 막아선 것은 아니다. 그는 전통에 있던 자신의 흑강전을 들어 날아드는 흑강전을 받아내면서 방어에 나섰고 놀랍게도 하티르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손가락이 찢어져 잘려나가는 중상을 입었지만 이 완벽한 기습에 대한 대가치고는 매우 싸게 먹힌 것이었다.
“윽!”
“두령님!”
“쯧.”
하티르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왕성 알현실의 2층 창문에서 아자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아자딘!”
“네놈! 감히 두령님에게!”
전령일족들은 동족인 아자딘이 두령에게 흑강전을 쏜 사실에 분개했지만 아자딘 또한 전령들이 자신들의 몸을 던져가며 하티르를 지켜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신들 제정신이야? 복무의 저주로 우리를 얽어맨 자를 위해 몸을 던지다니!?”
“감히!”
“네놈 같은 배신자가 따지고 들 일이 아니다.”
아라가사들은 구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설령 정당한 수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그동안 그들이 정당하지 못한 수단으로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일족 모두가 일제히 아자딘을 향해 활을 겨눴다. 아무리 아자딘이라고 이 많은 공격을 다 피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중 상당수는 흑강전이다.
‘대체 얼마나 오래 준비해 온 거야? 이 많은 흑강전이라니. 젠장.’
아자딘은 죽음을 예감했다.
-쐐애액!
모두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아자딘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자딘이 죽음을 각오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이미 인간이라기보다는 오우거에 가까운 거구인 만자-자덱이 자신의 몸으로 화살들을 받아내고 아자딘을 지켜준 것이다.
“폐, 폐하!”
본래 만자-자덱의 황폐화된 심성을 경계했던 아자딘은 큰 감동을 받았다.
일족 모두가 그를 죽이려 드는 데 일족도 아닌, 오히려 일족의 적이라 할 왕이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을 구했으니 말이다.
“신경 쓰지 마라.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지키는 게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자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이거 몸을 불려서 아주 좋군. 화살을 받아도 그럭저럭….”
괜찮을 리가 없다.
그의 몸에 박힌 화살들은 흑강전이다. 오우거조차 머리를 날려 버리는 화살들이 살 좀 찌웠다고 뚫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강전이 만자-자덱의 몸을 관통하지 못한 것은 그가 자신의 영성을 끌어모아 최대한 방어의 마법을 쓰고 또한 왕의 교회에서 허락하지 않는 사술, 혈마법을 쓰기 때문이었다.
이미 치명상을 입었지만 그는 혈마법으로 몸을 움직이고 상처의 출혈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이거 너무 설치는군.”
하티르가 투덜거리며 손을 허공에서 비틀었다.
만자-자덱의 몸에 박혀 있던 화살들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먹이를 물어뜯고 몸부림치는 육식성 물고기 떼처럼 화살들이 일제히 요동치며 만자-자덱의 상처를 찢어발겼다.
“끄아아악!”
만자-자덱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의 몸을 유지하던 혈마법이 깨지면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갑작스런 출혈의 충격으로 만자-자덱의 눈이 돌아가며 경련을 일으켰다. 쇼크를 일으키면 절대로 살아나지 못한다.
그렇게 쓰러진 브투마의 황금왕은 영혼 없는 불경한 일족의 청년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생을 마감했다.
“으윽!”
아자딘은 주위에 떨어진 흑강전들을 주워 연거푸 두령에게 쏘았다.
아무리 두령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라고 해도 흑강전 같은 무기는 충분히 위험하다.
그러나… 아자딘이 속사로 연사한 흑강전을 일족들이 막아선다. 두령 하티르를 지키기 위해 다들 몸을 사리지 않았다.
‘젠장!’
아자딘은 일족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티르만 쓰러뜨린다면 이 끔찍한 모독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럴 리 없다. 다들 몸을 던져서 하티르를 지키고 있었다.
이 세상을 네더의 악으로 물들이더라도 일족의 울분을 풀 수만 있다면 다들 기꺼이 하티르의 뜻에 따른다. 설령 그가 일족을 속여서 저주로 지배하던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민족들, 백성들, 국가들을 파멸시킬 수만 있다면 다들 하티르를 몸으로 지키는 것이다.
더욱더 화가 나는 건 하티르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제발! 다들 비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아자딘은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흑강전을 연거푸 쏘았다. 일족들의 방어를 피해 하티르를 해치우기 위해서.
그러나 하티르를 막아서는 일족들 때문에 하티르에게는 긁힌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그리고….
-퍼억!
아자딘의 활과 활을 들고 있던 왼팔을 흑강전이 뚫고 지나갔다. 손목의 뼈가 부러지고 팔뚝 앞쪽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윽!”
아주 잠깐 사이에 엄청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자잘한 부상은 아자딘도 많이 겪어보았지만 이렇게 팔이 날아가 버리는 끔찍한 부상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순간적으로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눈앞에서 팔이 날아갔는데도 마치 남의 일 같다.
그러나 엄청난 출혈을 막으려면 즉시 겨드랑이를 조이고 오른손으로 절단된 환부를 억눌러야 했다.
상처가 너무 커서 그대로 방치하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실혈사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혈하는 동안 아자딘은 아무런 움직임도 취할 수 없다.
이래서야 자신의 몸을 지킬 수도 없다.
-쐐액!
일족의 칼날이 아자딘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자딘은 차마 칼을 뽑아 휘두르지 못하고 그저 피해야 했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깊고 피를 많이 흘려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칼날이 아자딘의 몸을 강타했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 칼날이 살을 베지는 않았지만 강한 충격이 아자딘을 때려눕혔다.
평소라면 그 일격으로 쓰러질 리 없겠지만 지금의 아자딘은 큰 충격을 받아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죽어라! 배신자!”
일족들은 아자딘을 죽이고자 칼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때, 폭음과 함께 아자딘에게 접근하던 이의 몸이 갑자기 튕겨 나갔다.
굉음과 함께 왕성 안으로 돌 파편이 쏟아졌다.
돌포탄을 깎아서 쏘는 사석포였다. 공성용 대포를 놀랍게도 왕성으로 돌려서 발사한 것이다.
“폐하!”
알현실로 병사들과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앞에 청건당 병사들까지 들어오고 있었는데 다들 눈에서 노란빛을 발하며 흥분한 상태였다.
전령일족들이 그들에게 화살 세례를 퍼부었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머리에 화살을 맞아도 죽지 않고 다가온다.
그림스로운의 권속이 된 이들은 야에가스의 왕좌가 네더의 언어로 더럽혀지자 오히려 힘을 얻고 있는 중이었다.
“큭!”
“어떻게 할까요?”
“목적은 달성했다. 물러나도록 하지.”
이미 왕좌를 더럽히는 일을 끝낸 하티르는 더 이상 이곳에 남을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 황금왕을 대신해 왕좌에 앉아 다시 신왕진서를 불어넣어 야에가스의 왕좌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황금왕의 자식들, 왕자들의 역량은 황금왕에 미치지 못한다.
왕화의 빛이 사라진 지금 브투마는 풍전등화이리라.
“배신자는 어떻게….”
전령들이 쓰러진 아자딘을 보며 하티르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하티르는 왼손이 잘린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아자딘을 차갑게 일별했다.
“저 상처면 어차피 죽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팔을 잃은 전령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그보다는 서둘러라. 앗 하는 순간 포위될 테니까.”
전령일족들은 몰려드는 브투마 병사들을 피해 창문으로 뛰쳐나갔다.
병사들이 뒤쫓으려 했지만 사람 키 두 배가 넘는 높이를 마치 평지처럼 재빠르게 이동하는 그들을 잡을 재간이 없었다.
“이런.”
돌아온 병사들을 지휘한 카르첸은 도망쳐 버리는 전령일족들을 보며 혀를 찼다.
국왕은 시해당하고 실행범들은 도망쳤다.
몇몇이 아자딘의 화살에 맞아 죽거나 다쳐서 남아 있긴 하지만… 브투마에서 황금왕 만자 자덱의 죽음은 크나큰 파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게다가….
왕화의 빛이 사라지자, 하늘에 비춰지는 불길한 그림자의 힘은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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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습한 흙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창살이 둘러쳐져 있고, 아자딘에겐 빈 몸만이 있었다.
“팔은….”
왼손과 손목 윗부분 한치 정도가 잘려나갔다.
절단면에는 호박색 진액이 들러붙어서 출혈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림스로운의 수액이다. 이것이 아자딘의 상처를 막아 지혈해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죽었으리라.
“나는 포로가 된 건가?”
아자딘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렇다.]황제의 목소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긴 어디야?”
[여긴 아문-자덱의 감옥이다.]“아문-자덱?”
[황금왕 만자-자덱의 아들이자 현재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권자이지.]“으음.”
아자딘은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예상보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상황은 어떻게 되었지?”
[왕화의 빛이 사라지고 네더의 마물들을 앞세운 나가들의 공격이 거세어지면서 브투마 군은 구심점을 잃었다. 다행히 네더의 권속으로 이뤄진 청건당의 분투로 질서 정연하게 브투마에서 퇴각할 수 있었지만, 브투마 군은 왕도를 잃고 근처 농장과 요새로 피신한 상태지.]“그럼 분위기는 어때?”
[사람들은 전령일족한테 분노하고 있지. 자신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던 왕을 죽이고 목성의 시대를 연 장본인이니 말이다. 물론 너는 그런 일족에 맞서 싸웠지만 저들에게 그런 개개인의 구별은 할 수 없겠지.]“하긴 황금왕이 죽었으니.”
아자딘은 황금왕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일족들에게 버림받은 아자딘을 위해서 일족도 아닌, 오히려 야에가스 신왕인 그가 몸을 던졌다.
비록 절망에 미쳐 버린 모습이라지만 그는 정말로 위대한 왕이었다.
그런 인물을 일족들이 죽였으니 사람들의 일족에 대한 증오가 쌓이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신왕살해자, 영혼 없는 불경자.
일족에게 따라붙는 꼬리표가 가지는 의미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황제의 목소리는, 어떻게 할 건가? 일족과의 계약은 여전히 유효한가?”
황제의 사명을 저버리고 네더의 사술에 의존하는 아라가사들을 황제의 목소리는 여전히 전령으로 인정하는가?
아자딘이 물어보자 황제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아라가사와의 계약은 파기되었다.]“…….”
그게 순리라는 건 알지만 정말 계약을 파기했다는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역시 복무의 저주는 황제가 건 것이 아니라 원로원이, 두령 하티르가 건 것이란 말인가?
이렇게 쉽게 파기할 수 있는 계약이었나.
“그럼 나는?”
[지금 남아 있는 전령은 그대가 유일하다.]“그래?”
아자딘은 잘려나간 손을 보았다.
이 상처로는 활도 제대로 당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자딘이 유일하게 남은 황제의 전령이란 말인가.
쓴웃음이 나왔다.
그림스로운의 덕분인가. 피를 그렇게나 많이 흘렸는데도 상태는 꽤 양호했다.
“윽….”
상처를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까?
갑자기 잃어버린 왼손이 아프다. 웃기게도 손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데 손이 가렵고 욱신욱신 쑤시는 듯했다.
절단면의 통증도 있지만 그보다는 잃어버린 곳의 가려움, 쑤심,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가려워서 미칠 것 같은데 긁지 못하는 고통과 아픔이 공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