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06
205. 추락 3
끔찍한 가려움과 고통이 계속되었지만 잠시 후 또 다른 고통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허기가 밀려온 것이다.
“우습군. 일족에게 버림받고 왼손도 잘려나가서 아픈데… 배고픔이 그보다 우선하다니. 그나저나 상처를 하나도 치료하지 않고 내다 버리다시피 한 걸 보니까 그냥 여기서 죽으라고 버려둔 것 같은데.”
아자딘은 고통스러워하며 감옥 창살로 다가가 보았다.
“이봐! 나 일어났어!”
아자딘이 그렇게 외치자 간수가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그들은 아자딘에게 접근하지 않고 누군가를 부르러 사라졌다. 전령일족인 아자딘이 간수를 습격해 창살을 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별로 우호적이진 않군. 나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감옥에서 깨어났을 때, 그리고 무기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전부 없어진 채인 걸 보았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황금왕이 죽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다행스럽게도 청건당에서 너의 구명을 청하고 있다. 네가 천주의 양자이니 너를 처벌하면 청건당에도 불똥이 튈 테니까. 왕화의 빛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청건당은 강해졌다. 그들은 네더의 권속이니 큰 공을 세웠지. 너를 처벌하고자 하는 이들도 청건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그것만으로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청건당 천주와의 관계는 철저히 거짓된 관계다.
아자딘에게 있어서 타인과의 관계라는 것은 늘 그랬다. 알디스와 카자스도, 아자딘과 하티르 중에 하티르를 택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자딘은 그저 불쌍한 아이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싸구려 동정의 대상이지 감히 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나, 사랑하던 여인의 후신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일족의 모두가 눈앞의 복수와 권력에 눈이 멀어서 하티르가 일족을 기만했던 사실도 덮어두고 아자딘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황금왕이 죽은 지금, 왕을 시해한 전령일족인 아자딘을 브투마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까?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아니, 예전부터 그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본인 스스로 그저 싸구려 동정에 기대어 끈질기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 이 목숨을 지켜주는 게 그런 거짓된 관계뿐인 것이겠지.
“아자딘. 깨어났나?”
그때 옆 감옥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르첸이었다.
“당신도 감옥에 들어와 있었나?”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다. 아마도 감옥에서 쓰러져 있다가 아자딘이 소란을 피우자 그녀도 깨어난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건….
“전령일족이니까. 황금왕이 죽었으니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물려야지. 게다가 왕성 안으로 사석포를 발사한 건 분명 내 책임이다. 감히 폐하의 거처를 포로 겨눴으니까.”
카르첸도 실각당해 죄수 신세가 되었다는 뜻이다.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군. 당신의 활약이 없었으면 더 끔찍하게 당했을 텐데.”
아자딘이 할둔 일당을 잡아 왔을 때 카르첸은 왕궁 감옥에 폭약을 매설하고 왕성 밖에 배치한 사석포들 일부를 왕성 안으로 배치했다. 전령일족을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그녀가 폭약을 터뜨려 카자스 일당을 내쫓았고 사석포를 발사해 아자딘을 구하고 하티르 일당을 내쫓은 것이다.
하지만 황금왕이 죽은 지금, 왕성을 향해 화포를 쐈다는 죄목으로 그녀 역시 실각한 모양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일족에 투항할 걸 그랬어. 폐하께서 돌아가시니 우린 다시 영혼 없는 불경자 신세로군. 폐하만이 특이하게 편견이 없으셨지.”
카르첸은 황금왕이 없어지자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아마 일이 있기 전 일족들이 그녀에게 접근해와 회유했던 것 같은데, 그녀는 황금왕의 편에 서기 위해 일족을 적대한 모양이다.
“만자-자덱… 폐하는 가치 있는 주군이었지.”
아자딘은 자신을 위해 몸을 던졌던 황금왕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은?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어떻지? 잡혔나?”
“도망치게 했어. 그 아이들은 잡히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로군.”
그때 감옥 밖이 소란스러웠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위험합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암살당할 정도면 내게 황금왕의 후계자격이 없는 거겠지. 길을 비켜라.”
“……?”
아자딘과 카르첸의 감옥 앞에 한 청년이 당도했다.
검은 피부에 금색 눈을 가진 호청년이다. 만자-자덱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린 초상화와 닮아 있고, 키 또한 오우거에 필적할 만큼 크다.
아자딘도 상당히 키가 큰 편인데 아자딘의 약 5할이 더 크고, 어지간한 여자들의 신장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을 지경이다.
“왕자 전하.”
카르첸이 그렇게 말하며 예를 표했다.
“카르첸. 그리고 금령 사자. 일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군.”
“왕자 전하?”
이미 황제의 목소리를 통해 대부분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던 아자딘이었지만 어디 왕자가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해서 시치미를 떼 보았다.
“나는 황금왕의 적자, 제1왕자 아문-자덱이다. 금령사자. 아니 아자딘이라고 부를까? 그래도 되나?”
“물론 편하실 대로.”
“좋아. 그럼 사정을 이야기하지.”
아문-자덱 왕자는 아자딘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말했다.
“자네들이 아버님께 성의를 다했다는 건 알고 있네. 그러나 사람들은 자네들이 적과 내통했다고 주장하지. 무엇보다도 군부 입장에서는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카르첸, 황금왕의 까마귀들을 제거하고 싶은 모양이야.”
“전하. 저는 폐하께 충성을 맹세해왔고 그걸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충성은 물론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시면 변함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카르첸이 그리 말하자 아문-자덱은 쓴웃음을 지었다.
‘왕위를 계승하면? 아직 내가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군.’
하긴, 황금왕에게는 자식이 많았다. 아문-자덱이 가장 계승권자로서 유력하긴 하지만 현재 북쪽 오우거들과 대치하고 있는 요새에는 또 다른 황금왕의 자식인 다르한-자덱이 있었다.
북방의 군대들을 이끌고 오우거들과 싸우고 있던 그가 왕위를 요청한다면?
‘멍청한 여자군. 이 상황에서 원칙을 따지다니. 아니, 그래서 현명한 건가?’
아문-자덱은 카르첸을 보며 짜증과 함께 동정심도 느꼈다.
‘이 여자가 아버님께 충성을 다하긴 했지. 실력도 좋고. 어차피 태생이 전령일족이니 권력에서 위협이 되지도 않아. 도구로서는 참 좋단 말이지. 다만 수도 방위군의 지지도 중요한 데다가 그녀의 충성이 나에게 향하고 있지 않으니 죽여 버려야 할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왕좌는?”
아자딘이 아문-자덱에게 질문을 던졌다.
“황금왕은 전령일족에게 살해당했고 왕좌는 오염당했다. 네더의 힘이 쏟아져나와서 미치광이들의 예언이던 목성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더 이상 브투마를 지키고 있을 수 없어서 우리 모두 왕성을 버리고 피신했다. 나가들이 브투마 왕성을 장악했고 백성들은 계속해서 브투마에서 빠져나와 도망치는 중이지.”
나가들을 일방적으로 유린하며 잘 방어하고 있던 브투마였다. 그런데 전령일족들이 침입해 와 벌인 파괴 공작 한 번에 왕성이 함락당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겠군요. 백성들이 피신하는 데 문제는 없습니까? 식량이나 피신처도 필요할 텐데요.”
“그래. 다행스럽게도 벨 호다 설탕 농장주들의 지원이 있어서 희생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네.”
“그렇습니까?”
아자딘이 요청했던 바를 벨 호다의 농장주들이 그대로 실천한 모양이었다.
역시 신의를 지킬 줄 아는 장사꾼이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급하게 피난해야 했던 사람들이 물자를 충분히 보급받고, 큰 피해 없이 피난할 수 있었으리라.
아자딘이 벨 호다에 요청했을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모르고 그저 유비무환의 차원에서 부탁한 일인데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살렸다.
하지만 아자딘을 바라보는 아문-자덱의 표정은 많은 사람을 살린 공로자를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리고 그들이 자네를 구해 달라고 탄원하더군. 대체 무슨 수를 써서 벨 호다의 수전노들을 포섭했나?”
“…….”
“청건당 천주가 자네의 양아버지라지? 청건당은 네더의 사신, 그림스로운의 권속들이라 이번 사태에선 오히려 큰 힘이 되어주었지. 왕화의 빛이 사라진 때에 그들이 네더의 권속의 힘으로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게 길을 터줬거든. 그 공로가 너무 커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네를 숙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어.”
아문-자덱은 그리 말하고 싱긋 웃었다.
“정말 귀찮은 녀석이야. 상처가 도져서 죽길 바라고 그냥 감옥에 처넣었더니… 죽지도 않고 살아나다니. 생명력이 대단한가 보군.”
“솔직하시군요.”
“자네도 야에가스 신왕의 아들이라면 솔직해질 수 있을 거야. 어지간히 솔직하게 말해도 뒤탈이 없거든.”
아문-자덱은 그리 말하고 일어났다.
“내 손으로 죽일 수는 없지만 자네를 살려둘 수도 없지. 복잡한 입장이 얽혀 있거든. 그러니 이 감옥 안에서 말라 비틀어 버리든가.”
“굶겨 죽이실 겁니까?”
“아니, 그전에 우리가 더 물러나면서 여기에 자네를 버리고 갈 수도 있지. 네더의 권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거든. 결과적으로 굶어 죽거나 아니면 나가들이 자네를 손에 넣겠지. 어느 쪽도 싫다면 밧줄을 하나 넣어주고 갈 테니 필요하다면 그걸로 자결해라.”
아자딘은 벨 호다의 농장주들을 규합하고 청건당원들의 지지를 얻어내어 다가오는 환란에 대비했다.
그 덕분에 브투마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문-자덱에게 있어서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절 살리고 함께 왕좌를 복구할 생각은 없습니까, 전하. 이대로라면 전하께서는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말 뿐입니다.”
“나는 그렇게 희박한 도박에 판돈을 거는 사람이 아니야. 자네가 가져온 신왕진서 사본은, 내가 유용하게 쓰도록 하지.”
“…….”
화가 날 법도 한 말이었지만 아자딘은 이내 흥미를 잃었다.
일족들에게 버림받고, 알디스, 카자스와 척을 짓게 된 지금, 이런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여겨졌다.
“카르첸. 그대는 날 따라오도록. 그리고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알겠지?”
“알겠습니다. 전하.”
카르첸은 아문-자덱의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철창살이 마찰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자딘은 가만히 자신의 감방 안에 앉아서 스스로에게 침잠해 들어갔다.
그런 아자딘의 앞으로 아문-자덱이 비단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허리띠를 던져주었다.
“괴로워 견딜 수 없어지면 이걸로 목을 매라.”
그것이 아문-자덱의 선처였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부디 절 정적 속에 내버려두시지요.”
“그러지.”
아문-자덱과 카르첸이 감옥을 떠나가고 아자딘은 홀로 정적 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