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11
210. 빛을 잃을지라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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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 빌어먹을 원숭이 놈들! 제대로 안 하나?!”
나가 술자들은 대충대충 싸우는 전령일족들을 보며 분개했다. 전령일족들이 대놓고 태업을 벌이는 탓에 나가들만 피해를 보고 있었다.
“아니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쩌라고?”
“나가서 막아!”
“언데드도 있는데 우리가 왜?”
사령술을 건 시체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패하고 무너지고 만다. 내장을 빼내서 방부처리를 하면 그나마 좀 낫지만 그런 미이라들도 비를 맞으며 걸어 다니면 젖어 버리고 파리들이 알을 까면서 순식간에 부패하기 때문에 사령술사가 포함된 군대에서 최전선은 언데드들이 맡는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썩어 없어질 언데드들을 최대한 칼받이, 화살받이로 유용하게 써먹는 게 사령술사들의 원칙인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되니까 그렇지!”
나가 술자가 언데드들을 지붕 위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지붕 위로 언데드를 올리는 순간 뭔가가 우수수 쏟아졌다.
두 동강 난 언데드의 몸이다. 아자딘이 도끼창을 휘둘러 언데드들을 썰어 버리는 것이다. 언데드들이 이렇게 추풍낙엽으로 쓰러지는데 살아 있는 자가 올라가고 싶어 할 리가 없다.
“네놈 일족들이니 네놈들이 처리해 봐!”
나가 측에서는 전령일족들에게 뒷감당을 요구했다. 하지만 젊은 전령들은 절대로 앞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아자딘 저놈이 가지고 있는 도끼창이 겁나게 매운데?’
‘아자딘도 아자딘이지만 저기엔 아라엘이 있다고.’
‘우리 중에 아라엘을 막을 자신 있는 사람?’
‘미쳤냐? 아라엘이랑 예전에 한 번 붙어본 적이 있는데 상대도 안 됐어.’
‘사람 뜯어먹는 괴물들을 위해서 굳이 아라엘 앞에 나설 이유가 없지.’
전령들은 다들 아라엘에게 한 번 혼쭐이 나 봤기 때문에 아라엘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애들 때문에 불만이 많나 보군.”
전령일족들 뒤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시, 시온 님!?”
시온 에타르, 젊은 나이에 에타르 혈족의 장로가 된 남자가 나가들과 소란을 피우는 일족들 뒤로 나타났다.
그는 가면을 쓴 하인들을 대동하고 태업을 벌이던 일족들을 바라보았다.
“아 저기, 이건….”
“잘했다.”
“네?”
“저들이 이제 방심할 거 아니겠느냐? 훌륭한 행동이었다.”
나가들이 보고 있으니 시온 에타르는 대놓고 태업한 이들을 힐난하지 않고 외려 칭찬했다. 그러나 말이 칭찬이지 듣고 있는 이들로서는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뒤따르다 앞에 소개지에서 포위공격 한다. 가자.”
“네!”
시온 에타르는 아라가사의 청년들을 데리고 몸소 아자딘과 아라엘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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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자딘의 발이 멈췄다.
소개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왕성 근처의 수로 쪽 건물들을 헐어 버리고 만든 넓은 공터 주위에 요새를 만들어 놓았는데, 저 요새로 접근하려면 소개지를 지나야 했다.
“개활지로군. 위험한데?”
지금까지 건물에서 건물로 뛰어다니며 적들을 농락하던 일행이었지만 이제 건물을 건너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수로를 통해 접근하는 나가들을 차단하기 위해 브투마 군이 철거한 소개지가 아자딘 일행을 막아섰다. 게다가 소개지를 바라보는 요새에는 이미 상당수의 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태업을 일삼던 다른 아라가사들과 달리 이들의 군기는 엄정하다. 장로가 저들 사이에 있기 때문이었다.
“왔느냐!? 반역자 아라엘!”
“장로 알투아.”
아라엘은 요새를 방비하는 장로를 알아보았다. 깐깐해보이는 중년 여성이 외눈 안경을 쓰고 요새 위에 서 있었다.
“그래. 아라엘! 내 네년을 그렇게나 귀여워 해줬더니만 이런 식으로 배신하는구….”
-퍽!
그 순간 장로 알투아의 머리에 단도가 박혔다.
백여 보가 넘는 거리에서 활도 아니라 단도가 날아와 명중하다니? 별다른 전조도 없는 그 공격에 보고 있던 이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렇게 미간에 단도가 박혔음에도 알투아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윽! 이, 이년이!”
알투아는 자신의 머리에 박힌 단도를 뽑아내고 아라엘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냐!”
“귀여워 해주기.”
“뭐?”
“지금은 내가 너보다 강해. 알투아. 너는 전혀 귀엽지 않은 다 늙은 흡혈귀지만 내 방식으로 약간 귀여워 해주지. 그게 바로 강자의 권리니까!”
아라엘이 그리 말하고 입 앞으로 손을 가져가 자신의 손안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단도에 맞은 부위로부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네더의 언어였다.
“윽, 끄으윽… 꺄아아아!”
알투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상처로부터 검붉은 핏덩이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핏덩이가 눈이 되고 알투아의 몸 여기저기에 눈알이 마치 꽃처럼 피어나며 몸을 파괴한다.
“아으!”
알투아의 육신이 허물어진다. 체중을 지탱해야 할 다리뼈가 눈알로 변하면서 자신의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눈알들이 생성되며 알투아는 거대한 곤죽으로 변해갔다.
“으아.”
요새에 배치되어 있던 전령일족들은 장로를 끔찍하게 파괴해 버리는 아라엘의 무시무시한 힘에 경악했다.
“그래. 조금은 귀여워졌군. 퉤.”
아라엘은 흑요석 칼날을 꺼내 자신의 혀를 그어 네더의 언어를 사용한 반동을 제어하고 피가 섞인 침을 뱉어냈다.
“…허억.”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기겁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일어나라. 바라보는 그림자!”
아라엘이 주문을 시전하자 소개지의 그늘들에서 눈이 생기기 시작했다.
폐자재 더미의 그늘,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가 드리운 그늘, 수로가 드리운 그늘들로부터 눈이 떠지더니 천천히 실체를 가지고 움직였다.
전령일족들이 술렁였다.
아라엘의 침입을 막고 여기서 아라엘 일당을 포획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라엘이 예상보다 너무 강하다. 이대로 싸움이 벌어지면 일족의 피해가 불가피한데….
그때 아라엘이 외쳤다.
“잘 들어라. 지금 우리끼리 싸우면 사상자가 못해도 백여 명은 날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반역자 아라엘!”
“나는 두령에게 도전한다. 하티르는 두령으로서의 자신을 증명해야 해!”
전령의 지위를 놓고 결투를 하는 것은 아라가사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었다. 아라가사들은 위계질서를 중시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중시하는 것이 능력이었다.
그러나 두령의 자리를 놓고 결투한 적은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 두령의 자리는 단지 결투 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것은 뭐?”
아라엘이 묻자 전령일족들도 말문이 막혔다.
혈통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일족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더욱 결투에 나서야겠군? 우리끼리 싸워서 이 많은 일족이 죽으면 일족의 장래가 어두워질 테니 말이야.”
그런데 그때 아라엘을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놀랍게도 이 화살은 아라엘 일행과 대치하고 있는 앞쪽, 소개지 요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뒤쪽에서 날아온 것이다.
“어림없다!”
달의 인딤이 아라엘의 뒤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지만 화살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그를 뒷걸음질치게 했다.
엄청난 위력의 화살이었다.
“큭. 시온!?”
“이런 이런… 허세도 심하시지.”
화살을 날린 이는 시온 에타르와 그 부하들이었다.
그들이 나가와 언데드 군대도 대동하고 나타났으니 아자딘 일행은 순식간에 엄청난 숫자의 대군에 포위당하고 말았다.
“아라엘. 당신이 두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원로원이 당신을 두령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웃기는군. 너희 장로들은 누가 원해서 그 자리를 차지했는데? 우연히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그 자리를 차지한 녀석이….”
“위대한 선조들의 위업과 은덕이 없었던들 지금의 우리가 어찌 있겠습니까? 아, 물론 반역자 아크레의 자식인 당신 입장에선 부모의 공과를 무시하고 그저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그래서 지금 일족의 목숨을 위협하며 행패를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시온 에타르는 아라엘이 반역자 아크레의 딸임을 주지시켰다. 그때 미디암이 나섰다.
“아무리 부모가 위대하다고 해서 그 자식까지 다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죠.”
“…미디암?”
시온은 미디암이 나서는 걸 보고 난처해했다.
반역자의 딸인 아라엘이 뭐라고 해도 그녀가 반역자의 딸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대 혈족인 에타르 혈족의 일원인 미디암이 나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에게 득보다 실이 많은 주장을 하는 것보다 진솔해 보이는 방법이 또 있을까?
“다섯 혈족이 무작정 현 두령 하티르를 지지하니까 지금 이런 꼴이 난 게 아닌가요? 저희는 일족이 번성하길 원했지 그게 네더 사신들의 종복이 되자는 뜻은 아니었어요. 원로원과 두령이 우리의 의지를 곡해하고 멋대로 일을 진행했으니 두령의 직위에 도전해서 항의하겠다는데 그게 왜요. 일개 전령들은 자신의 자격을 결투로 증명해야 하는데 그보다 더한 두령은 증명하는 게 왜 없죠?”
일족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어났다.
“저거 누구야?”
“에타르 혈족의 딸이야.”
“…으음.”
다들 무서워서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전령들은 미디암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오대 혈족의 일원이 아닌 이들은 오대 혈족에게 불만이 있었는데, 오대혈족의 피를 이은 당사자가 그걸 속시원하게 말해 버린 것이다.
다른 이들이 말했다면 가지지 못한 자의 시기심이라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대 혈족의 계승자 본인이 이렇게 말하는데야….
“미디암. 돌아와라. 지금이라면 별문제 없이 막아줄 수 있다.”
“시온 오라버니. 정말 이런 짓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미 성공하지 않았느냐? 그동안 억압받던 우리가 이제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이 있기 전의 세계를 원했어요. 네더의 사신들이 배회하고 나가들이 인간을 도륙하는 세계가 아니라! 가게에 진열된 보석이 갖고 싶다고 하니까, 가게에 불을 지르고 다 타버린 재를 들고 오는 꼴이라고요, 이건.”
듣고 있던 이들이 미디암의 말에 공감하자, 시온 에타르로서는 괜히 말을 걸었다 손해를 본 셈이다.
“정말 반역자들과 함께할 셈이냐?”
“반역자는 우리가 아니라 너희 원로원이다.”
아자딘이 미디암의 앞을 막아서며 도끼창을 짧게 잡고 뭔가를 쳐냈다.
미디암을 향해 날아든 것은 작고 가느다란 침이었다. 시온이 미디암에게 암습을 가한 것이다.
“일족의 소녀 하나 설득하지 못하고 암수를 쓰다니.”
“…아자딘. 이러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정말 답이 없군요.”
시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짓했다.
나가 술자들이 언데드를 앞으로 보내는 것과 동시에 후방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