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12
211. 빛을 잃을지라도 6
아자딘과 아라엘은 반역자 아크레의 자식이기 때문에 전령일족의 악습이나 구태에 대해서 비판하더라도 올바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항상 말싸움에서 불리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타르 혈족인 미디암의 지원은 큰 힘이 되었는데, 시온 에타르는 그런 미디암을 말로 당해내지 못할 것 같으니 암습해 버린 것이다.
아자딘은 그 암습을 걷어내고 분개했다.
“말로 못 당하니까 무력행사인가!?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 말에도 시온의 표정은 담담했다.
“때로는 강제적인 수단을 쓰더라도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네가 올바르다는 건 누가 보증해주는데?”
“우리 일족의 많은 존경받는 어르신들이지요. 당신들이야말로 누가 옳다고 보증해줍니까?”
“아이 잃은 어미의 울음이! 이 도시의 배수구를 적시는 양민들의 피가!”
아자딘의 대답에도 시온 에타르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전령일족들은 달랐다. 그들은 아자딘의 대답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애초에 그들은 시온 에타르에 의해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온 것이다.
나가들이 도시를 학살하고 파괴할 때부터 이미 그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는데 아자딘의 당당한 발언이, 미디암의 호소가 그들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시온 에타르가 장로로서 굳건히 서 있는 이상 그들은 아자딘을 막아야 했다.
아자딘은 도끼창을 톤파처럼 짧게 잡았다. 어떻게든 동족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걸 휘둘러서 과연 이들을 무사히 제압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곤봉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자루부터 끝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우아한 권장(權丈)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림스로운의 곤봉이 돌아온 것이다.
‘아.’
아자딘은 이 곤봉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을 보며 내심 웃음을 터뜨렸다.
아자딘이 손을 잃고 패배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림스로운의 권속들은 자신들의 보물인 저 권장을 가져갔다.
하지만 저 곤봉의 주인은 여전히 아자딘이었다. 아자딘이 나중에 깨어나 곤봉을 찾기 위해 손에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저 곤봉은 이미 브투마를 버리고 멀리 피신한 그림스로운의 사교도들을 떠나 아자딘을 향해 계속 날아와서 마침내 지금 당도한 것이다.
“딱 필요한 때 돌아왔군.”
아자딘은 스스로 나는 그림스로운의 곤봉을 조종해 허공에서 회전시켰다. 빠르게 회전하며 빛의 방패처럼 변한 그것을 앞으로 날렸다.
“뭐야? 저건?!”
“마법 무기인가?”
“재주도 좋아!”
아라가사들은 아자딘의 공격을 피해 멀찍이 물러났다.
‘역시 일반 병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보통 병사들은 두들겨 맞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전령일족들은 전령은 물론 하인들조차 다들 무예의 달인이라서 쉽게 당해주질 않는다. 그러나 의욕이 없는 이들에게는 좋은 핑곗거리이기도 했다.
“뭣들 하는 겁니까?”
시온 에타르는 의도적으로 아자딘에게서 거리를 벌리는 이들을 힐난했다.
“아니, 처음 보는 거라.”
“피하느라요.”
다들 핑계를 대며 미적거린다.
“좋아. 그러면….”
아자딘은 얼른 시온 에타르를 쓰러뜨리고 별 의지 없이 싸우고 있는 전령일족들을 해방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본 아라엘이 경고했다.
“안 돼, 아자딘! 시온은 무시하고 성으로 간다!”
지금 시온을 공격하면 시온은 부하들을 앞세우며 피할 것이고 그리되면 끔찍한 소모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짧은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자딘은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아자딘이 물러나자 시온이 나서서 공격의 고삐를 잡기 시작했다.
‘호락호락하지 않군.’
과연 명망 높은 에타르 혈족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을 부리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나가의 군대, 언데드들, 그리고 그들이 끌고 온 네더의 권속까지 포함해서 이 소개지에는 백여 마리가 넘는 마물들이 들끓었다. 여기에 아라가사들까지 있으니 열 명 남짓한 아라엘과 아자딘 일행으로서는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러나.
“자, 귀가 있는 자들은 귀를 틀어막아라! 어둠의 언어로 그 영혼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아라엘이 네더의 언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림자들에서 돋아난 눈들이 움직이더니 후방에서 접근하는 나가의 언데드들을 차단했다.
나가들 역시 네더의 권속들을 부리고 있었지만 아라엘과는 계통이 다르다. 폭풍우 왕의 혈족과 아라엘이 사용하는 눈의 왕의 혈족들이 격돌하며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산자들의 내장을 헤집는 끔찍한 소리가 모두를 떨게 했다.
“지금이다!”
화조풍월의 4인은 아라엘이 만든 공세의 틈을 타고 재빠르게 이동해 소개지를 가로질러 요새로 향했다. 요새에 있던 아라가사들이 막아섰지만 화조풍월의 4인의 명성은 절대로 허명이 아니다.
세라프와 알레프가 검을 휘둘러 선두를 뚫고 제니스가 독안개를 뿌려 적들을 물러나게 했다.
디미아가 주문을 시전하자 나무 넝쿨이 자라나 계단과 사다리를 형성해 쉽게 길을 이루고, 다른 곳에는 가시 넝쿨을 만들어내어 적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실력들이다. 카자스 해서로 화조풍월의 흉내만 내는 아자딘으로서는 부러울 정도로 뛰어난 능력이었다.
“아라엘은?!”
아자딘이 아라엘을 돌아보니 그녀는 적극적으로 네더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인간이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언어를 내뱉으며 네더의 마물들을 소환해내지만, 그때마다 육신의 일부가 네더의 마물로 변화하려고 했다.
그때마다 아라엘은 흑요석 단검으로 스스로의 살점을 잘라내며 변이를 막아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아자딘? 어서 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 대군을 혼자서 막을 수는… 퉤!”
아라엘은 다시금 피를 뱉어냈다.
네더의 마법을 쓸 때마다 그녀의 몸에도 손상이 간다. 하지만 네더의 마법을 쓰지 않으면 혼자서 백여 명에 달하는 전령과 하인들, 그리고 그 세 배가 넘는 나가와 언데드, 나가들이 소환한 네더의 권속들을 막을 수 없다.
“큭!”
아자딘은 아라엘의 분투를 보며 재빨리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데리고 소개지를 가로질렀다. 화조풍월의 4인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자꾸 뒤에 처져지니 아자딘이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들을 쳐내고 마법들은 본인 특유의 항마력으로 받아내면서 아자딘도 요새를 넘었다.
“아라엘!”
“그래!”
아라엘도 몸을 돌리더니 날 듯이 소개지를 가로질러 요새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수면을 베고 날아가는 제비와도 같은 몸놀림이다.
하지만 아라엘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전신이 피투성이다. 적들의 공격을 당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네더의 힘을 사용한 대가였다.
“후우. 다들 무사한가?”
“네!”
아라엘과 대조적으로 화조풍월의 4인과 그들이 데려온 하인들까지 멀쩡하다.
“…….”
아자딘은 피투성이가 된 아라엘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정도는 곧 나아.”
“곧 낫는다니… 너?”
하지만 놀랍게도 그게 사실이었다. 흑요석 단검으로 잘라낸 살점들의 상처가 아자딘이 보는 눈앞에서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마치 샤티가 사용하는 녹색 마력의 마법과 비슷했다.
“후우. 봤지?”
“괜찮겠어? 상처야 겉으로는 나았지만 소모가 심한 것 같은데.”
“그래서 아자딘 네가 필요한 거야.”
“뭐?”
“아자딘. 두령을 죽이는 건 너다. 거기까지의 길은 내가 열어주지. 하지만 두령은 네가 죽여야 한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달의 인딤이 발끈했다.
“두령을 죽이는 것은 최고의 영예! 아무리 아자딘이 아라엘 님의 동생이라지만 우리에게 별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영광을 주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런 인딤의 주장에 아라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아자딘에게 마치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듯한 소름 돋는 느낌이 들었다. 황제의 목소리가 경고를 해 온 것이다.
[위험하다! 아자딘! 성으로부터 온다!]“뭣?!”
그 순간 왕성 인근의 수목에서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황제의 목소리가 급한 대로 주위의 새들에 빙의해서 육탄으로 방벽을 형성한 것이다.
-퍼억!
새들의 깃털이 빗줄기 속에서 흩날린다.
*********
두령 하티르는 가만히 왕성에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자딘과 아라엘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직접 요격에 나섰다.
하지만 값비싼 흑강전을 사용했는데도 황제의 목소리가 총출동해 저들을 지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더 이상 기습의 이점을 상실한 하티르는 장로들과 함께 왕성 밖으로 빠져나와 아자딘 일행을 맞이했다.
그러자 이번엔 장로들을 향해 흑강전이 날아온다. 아자딘 일행이 바닥에 떨어진 흑강전을, 또 미리 챙겨간 흑강전으로 오히려 장로들에게 반격을 가한 것이다.
“성역전개!”
하티르는 왕의 마법을 사용했다. 야에가스 신왕을 섬기는 왕의 교회에서 나오는 백색 마력의 힘을 사용하고….
“월하의 백향목!”
화조풍월의 마법을 사용하고….
“…….”
네더의 언어를 사용해 날아드는 흑강전들을 전부 막아냈다. 쌍방 모두 흑강전을 다 소모하면서 접근하니 이제 서로가 눈에 들어올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듣자 듣자 하니 우습구나. 설마 내 목숨을 너희들이 논하고 있다니 말이다.”
하티르는 감히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다가온 아라엘과 아자딘 일행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소재지에 상당히 많은 일족을 배치했는데 흑강전을 이리 많이 남겨올 줄은 몰랐다. 본래라면 흑강전을 잔뜩 소모하고 계속된 교전을 벌여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쩡하다는 건 일족들이 그의 뜻에 따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태업을 벌였다는 증거.
‘범속한 것들은 어쩔 수 없구나.’
하티르가 그리 생각할 때였다.
“아자딘….”
하티르의 곁에 서 있던 장로, 카자스는 어느새 손을 회복하고 돌아온 아자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재주가 좋군. 손을 복구하다니. 역시 팔 하나 자르는 정도로는 널 막을 수 없겠구나.”
“스승님.”
아자딘 일행은 황제의 목소리 덕분에 흑강전 세례를 피할 수 있었다.
이 화살들은 공중에서 어둠을 두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다가 목표물에 가까워지면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완벽한 기습공격. 전령일족들조차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황제의 목소리가 그것을 막아준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어째서입니까? 스승님?”
“뭘 말이냐?”
“하티르를 위해서 저를 죽일 수 있다는 그 의지는 어째서입니까? 제가 당신에게 있어서 그것밖에 안 됩니까?”
아자딘은 노골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편애로 고통받는 아이가 부모에게 따지듯이, 왜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해주느냐고 따지는 것이다.
그것은 카자스에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원래 그런 녀석이 아니었는데.’
아자딘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을 항상 과분하게 여기는 아이였다. 알디스가 베푼 은덕도, 카자스의 가르침도,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그저 황송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아마도 다른 이들에게 학대당하면서 스스로의 지위를 낮게 생각하고 납죽 엎드렸으니 그랬으리라.
그러던 아자딘이 지금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자신이 스승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 말대로다. 제자야.’
아자딘은 그에게 사랑스러운 제자였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