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13
212. 빛을 잃을지라도 7
“하티르는 내게 있어서 자식 같은 존재이고 너는 제자이지만 남이지.”
카자스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자딘에게는 오히려 희소식이었다. 적어도 카자스가 하티르의 만행에 마냥 찬성하진 않는다는 뜻이니까.
자식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돕는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하티르가 하는 행위에 충분히 찬동하지는 않는다는 것.
“제가 보기에 하티르가 그렇게 엄청난 효자로 보이진 않는데요? 네더의 사신들을 불러내 목성의 시대를 이끄는 일을 함께 해야 할 만큼 효심이 빼어난 것 같진 않습니다.”
듣고 있던 장로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하티르가 짜증을 내자 장로들이 즉시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자딘은 한없이 실망했다.
그가 어린 시절, 장로들은 일족 안에서 권위 그 자체였다. 그런 이들이 하티르의 눈치를 살피느라 언행을 조심하는 모습을 보니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하티르에게 집중된 권력과 권위에 구역질이 다 났다. 이 세계를 좀먹고 파괴하고 무고한 이들의 피와 살로 강과 산을 만드는 그 모든 행위가 하티르, 저 반신의 행각이거늘, 저런 놈을 카자스는 아자딘보다 더 사랑하고 우선시하다니.
하티르 또한 아자딘의 존재를 참아주지 못했다.
“너 혼자 웃음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 나까지 웃음거리로 만드는구나. 아크레의 아들아. 내 너를 죽였어야 했는데 알디스가 말려서 살려두었거늘….”
“후회하나?”
“그렇다.”
“후회한다면 본인이 과거에 그릇된 판단을 했다고 자각하고 있단 말이군. 그렇다면 지금 하는 짓들도 그릇된 판단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네?”
“쓸데없는 말꼬리를 잡는군. 여흥 삼아 대화를 나누어 볼까 했는데 여흥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구나.”
두령 하티르는 아자딘 일행을 죽이기 위해서 지시를 내리려 했다.
“그렇다면 두령 하티르! 당신에게 결투를 청한다!”
아자딘은 두령 하티르에게 결투를 청했다.
“뭐?”
“여흥거리를 찾는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지? 설마 이제 와서 바쁘다고 핑계를 대진 못할 테고. 내 도전을 받아들이는 게 어때?”
“이놈이….”
냉정히 생각하면 하티르가 이 결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지금 이순간도 후방에서 아군이 충원되고 있으며 잠깐만 시간을 보내면 아자딘과 아라엘 일파는 모조리 포위당할 것이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아자딘은 전령일족의 둔재로 이름을 날리는 인물, 그런 이의 결투 신청을 피한다면 두령의 명예에 큰 타격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회의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라엘이 아무리 네더의 마물들을 사역한다 하더라도 여기까지 당도하지도 못했으리라.
일족이 태업을 자행했기 때문에, 두령 하티르의 비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여기까지 당도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아자딘의 결투 신청을 무시할까?
하티르는 아자딘의 결투 신청을 당돌하게 여겼다.
“네놈 속셈이 빤히 보인다. 그래. 둔재로 유명한 네놈이 청하는 결투를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오명을 남길 수는 없지. 그러나 아라엘이라면 모를까 네놈이? 나와 격이 맞는다고 생각하느냐? 무안의 아자딘? 결투 신청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성립하는 것이다.”
“내 동생에게 이긴다면 내 목숨도 내놓지. 내가 보증하면 어때?”
아라엘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았다.
“너의 목숨은 이미 내 것이다, 아라엘. 이미 손안에 들어온 것을 내걸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느냐?”
“단언하건데 내가 진짜 힘을 발휘하면 여기 장로들 절반은 죽어. 그리고 당신도 내 몸을 살아서는 얻지 못하겠지. 하지만 아자딘을 꺾는다면 산채로 투항해주지. 어때?”
“…….”
“아라엘 님?!”
화조풍월의 4인들이 깜짝 놀랐다. 아자딘이 지면 저항하지 않고 투항하겠다. 아라엘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아니 아라엘 님의 상태가 온전치 않으시다.’
현재 아라엘은 다수의 병력들을 뚫고 들어오기 위해서 많은 힘을 소모했다. 사실 여기까지 당도한 것만으로도 기적과도 같은 일이니 그녀는 이미 기적을 실현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그 대가로 마력과 생명력을 소모하고 피로와 빈혈에 시달리고 있으니, 아라엘이 여기서 하티르와 결투를 벌인다 하면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왜 하필 아자딘인가?’
‘저희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는 왼손을 잃었는데?’
화조풍월의 4인은 아라엘의 선택에 아쉬워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들이 섬기는 아라엘은 결코 헛된 짓을 하지 않는다.
아자딘이 동생이라서 편애해서, 그에게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녕 지금 일행 중에서 하티르를 이길 수 있는 게 아자딘뿐이기 때문에 그를 내세우는 것이다.
“흐음?”
하티르도 아라엘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결투를 성립시키고자 안달 나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좋아. 알겠다, 아자딘. 그 도전 받아들이도록 하마. 기뻐하도록 해라. 너는 150년 만에 두령에게 도전하는 인물이니. 하나 지금 100보 떨어져 일족의 방식으로 시작하는 건 무리겠지?”
“그래!”
그 순간 하티르의 손에서 빛의 검이 휘둘러졌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빛의 검이 아자딘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화, 황제의 검!”
“아라라트!”
보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랐다.
황제가 신화 속의 마물들을 토벌할 때 사용했다고 하는 빛의 검이 하티르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빠르고 또 질량감이 없어서 아자딘조차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아.”
아라엘이 당황하고….
“끝이군.”
하티르는 코웃음 쳤지만….
“?!”
정작 아자딘은 아무런 상처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아자딘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황제의 검, 아라라트의 신화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집채만 한 거인을 쪼개 버린다느니 하는 그 공격이 아자딘의 목을 갈랐는데 이상하게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이럴 수가!”
하티르가 또다시 주문을 시전했다.
이번에는 하늘이 금색으로 불타오르더니 성광의 번개가 아자딘을 직격했다. 그리고 금색은 마치 빛 수천 개를 모은 것처럼 밝아지다가 명멸했다.
마신들조차 태워버리는 성광의 번개.
그러나 아자딘은 이번에도 멀쩡히 서 있었다.
“뭐야?”
보통 사람이라면 눈이라도 부실 텐데, 눈이 없는 아자딘은 눈이 부시지도 않았다.
“이제 내 차례인가?”
아자딘은 깊은 호흡으로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신왕진서의 힘을 끌어올렸다. 백색 마력이 들끓어 오르며 아자딘이 타고난 불완전한 화조풍월의 무색 마력과 서로 격돌해 무서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이것은 아자딘의 신체능력을 강화시켜 주지만 그만큼 아자딘의 몸을 상하게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나 저림 없이 수월하게 힘이 흘렀다.
[힘을 보태마!]황제의 목소리가 아자딘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의 일에 직접 관여할 수 없어서, 오로지 전령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공정령이 자신의 존재를 소모해 가면서까지 직접 아자딘을 돕기 시작했다.
“하긴 이제 전령도 얼마 없지!?”
아자딘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카자스 해서, 어스름!
아자딘의 몸이 사람들의 시선을 속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하티르가 반격하려 했지만 아자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도끼창, 청의 처형인이 하티르의 허리를 베어갔다.
하티르는 빛의 방패를 만들어 내었지만…. 아자딘의 공격이 빛의 방패를 찢고 빛의 갑옷도 뚫어 버리고 하티르를 스쳤다.
하티르가 직격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도 반신반의하면서 방어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반사 신경으로 아자딘의 공격을 피해낸 그이지만 아자딘의 신체 능력 또한 비범해서 청의 처형인에 스쳤고….
그 순간 하티르가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며 튕겨나갔다. 살짝 스쳤을 뿐인데 그의 팔에 근육이 찢어지며 뼈까지 드러나는 상처가 생겼다.
“말도 안 돼!”
그 이유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카자스였다.
“하티르! 황제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그때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의 대행자가 이곳에 있으니 황제의 무구와 마법은 진정한 주인의 목소리를 따른다. 하티르. 너는 파문이다.]“황제의 대행자?!”
모두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자딘이 황제의 전령으로서 유일한 존재, 황제의 목소리의 전권 대리인으로서 이 자리에 와 있으며 일족 모두가, 심지어 황제의 아들인 하티르조차 파문당했다.
그렇다면 하티르는 현인신인 황제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아라가사로서 아자딘을 상대해야 했다.
“웃기지 마라! 신의 힘이 없더라도 네놈 따위를 못 당할까?”
하티르는 뒤로 몸을 날려 거리를 벌리며 칼을 뽑아들었다. 흑강으로 만들어진 보검이 모든 빛을 빨아들일 기세로 흉흉한 어둠을 뿌리며 휘둘러졌다.
하지만….
-카자스 해서 땅거미!
아자딘의 몸이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하티르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지면을 타고 스며드는 푸른빛의 궤적, 아주어 스틸의 도끼창이 지면을 낮게 자르며 그림자를 추수할 기세로 날아든다.
‘아주어 스틸 무기가 대단하긴 하지만 흑강에 미치진 못한다!’
하티르는 무기파괴를 노릴 심산으로 지면으로 흑강검을 겨눠 아자딘의 도끼창을 박살내려 했지만….
-카자스 해서 버드나무!
아자딘의 도끼창이 땅을 찍고 순식간에 그 몸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하티르의 위로 뛰어오른 아자딘이 비수를 뿌리고 맨주먹으로 공격해온다.
“윽!”
하티르 역시 황제의 마법 대신 화조풍월의 마법을 사용해 대항했다.
천둥바람으로 날아드는 비수들을 쳐내고 흑강검으로 아자딘의 맨주먹을 겨눠 쳐냈다.
팔을 자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지만….
-텅!
아자딘의 팔을 따라 호박색 곤봉이 춤추며 회전해 흑강검의 옆을 쳐냈다.
‘맨손 공격을 하면 칼로 자르려고 덤벼들 줄 알았지!’
아자딘에겐 손을 쓰지 않고도 움직일 수 있는 무기, 그림스로운의 곤봉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서 자신의 팔을 지키며 간격을 좁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
하티르의 안면에 아자딘의 주먹이 꽂혔다.
-퍼억!
보고 있던 이들은 그 참상에 놀랐다.
이게 사람의 주먹인가? 아자딘의 주먹 일격에 하티르의 턱이 떨어져 나가고 얼굴의 절반이 없어졌다.
“흡!”
아자딘은 팔을 뒤로 돌려 땅에 찍었던 도끼창을 잡고 휘둘러 하티르의 목과 쇄골을 노렸다. 몸을 사선으로 토막낼 기세로 휘두른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화조풍월 버드나무!
아자딘이 사용했던 기술을, 진짜 마법으로 시전한 하티르가 약 1장 정도의 거리를 공간이동해서 자리바꿈을 했다.
체술을 이용해서 비슷하게 눈속임으로 흉내 내는 아자딘과 달리 진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라가사 일족으로서의 격차는 분명하다.
그러나 수세에 몰린 것은 하티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