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15
214. 빛을 잃을지라도 9
한때 황금의 도시라 불렸던 브투마 전역을 지진이 강타했다.
성벽이 무너지고 건물이 부서지고 도로가 갈라지는 엄청난 재앙, 황금의 도시를 철저히 유린하는 이 힘은 신성한 야에가스의 왕좌가 있는 브투마 왕실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악의 또한 솟구쳐 나온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악한 힘이 도시를 파괴하고 있었다.
덕분에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땅이 갈라지며 원로원 파벌의 요원들과 아라엘 지파의 병력이 단절된 것이다.
“아자딘!”
아라엘은 아자딘을 불렀다.
“하티르를 쫓아야 해! 아자딘! 어서 가! 그리고 이걸!”
아라엘이 허공에 손으로 수결을 긋자 그녀의 몸에서 순백색으로 빛나는 신왕진서 사본들이 나타나 아자딘에게 날아왔다.
사본들이 허공에서 집결해 다시 하나의 빛 덩어리로 변화했다. 브투마의 왕좌를 정화하기 위해 아라엘이 신왕진서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신왕진서의 핵심 코어였다.
아자딘이 그것을 받아들자 자연스럽게 아자딘의 몸 안으로 신왕진서 사본들이 빨려 들어왔다.
“이건….”
“그걸로 왕좌를 정화해야 해! 어서 가!”
“…….”
“어서 가라, 이 자식아!”
달의 인딤이 욕설을 내뱉으며 아자딘을 위해 길을 열었다.
‘미디암은?’
아자딘은 달려 나가면서 미디암을 찾아보았다.
아자딘에게 미디암은 철없는 귀족 집안의 영애에 불과했다. 짜증나고 귀찮은 녀석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이다. 처음엔 그저 짜증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그 소녀가 아자딘이 신념을 잃었을 때, 아자딘 스스로 내뱉은 목소리를 다시 돌려주었다.
아자딘이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 믿음을 되돌려준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물이다. 아무리 난장판이 되더라도 미디암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 일념으로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돌아볼 때 이스마일을 발견했다.
이스마일은 기절한 미디암을 뒤에서 안은 채 아자딘에게 소리 없이 말했다.
‘가세요.’
그 입 모양을 본 아자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
브투마 왕성의 앞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것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네더의 영역과 현실이 융합하면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나가들이 강림시키려 한 존재, 폭풍우의 왕의 영역이 현실과 합쳐지면서 주위는 땅이면서 또한 물속처럼 변해 버렸다.
아직 현실 차원에 접하지 않은 것들이 허공을 헤엄치면서 돌아다닌다.
상어 떼 같은 것들부터, 곳곳에 소용돌이가 일어나 그것이 현세에 돌풍으로 만들어진다.
아자딘은 그런 것들을 피해서 왕성으로 향했다.
왕성에는 아라가사들이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안의 아자딘! 네 아비가 그랬듯이 일족의 염원을 파괴할 셈이냐?!”
“이런 게 염원이라면 기쁘게 파괴해주지!”
“이놈이!”
화살들이 날아온다. 아자딘은 오른손에는 청의 처형인을 짧게 톤파처럼 잡고 왼손으론 그림스로운의 곤봉을 띄워 양손을 크게 휘둘렀다.
청의 처형인으로부터는 푸른 정광이, 그림스로운의 곤봉에서는 호박색 서광이 뿜어져 나오며 아자딘의 앞에서 빛의 장벽이 형성되어 날아드는 화살이 튕겨나갔다.
신왕진서 사본을 수십 장, 아라엘이 모았던 것까지 백여 장 넘게 가지고 있는 아자딘이다. 지금 그의 몸 안에 있는 마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가볍게 팔을 휘두르기만 해도 엄청난 마력이 방출되어 나갔다.
“네놈!”
“시간이 없어서 죽이지 않기는 어려우니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웃기지 마라! 네까짓 놈이!”
오대 혈족에 속하는 전령이 아자딘의 경고를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화조풍월 연작!
마법 탄환들을 연거푸 날리면서 뛰어든 전령이 아자딘의 관자놀이를 향해 장검을 휘둘러온다.
그러나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곤봉을 풍자처럼 허공에서 스스로 돌게 해 그 장벽으로 연작을 막아내고 맨주먹을 찔렀다. 허공을 격하며 충격파가 수장을 튀어나가 전령의 몸통을 가격했다.
그 순간 마치 마른 고목에 낙뢰가 떨어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지직!
굉음과 함께 사람이 말 그대로 쪼개졌다.
“…….”
아자딘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위력이 너무 강했다.
이런 끔찍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아라가사들이 달려든다.
“제발! 비켜!”
피하고 지나가기엔 이들의 실력이 너무 출중하다.
그럴 만도 하다. 하티르가 왕성을 지키기 위해 배치한 이들이다. 최정예 전령들, 아자딘도 평소라면 상대하기 버거운 이들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아자딘의 몸에는 신왕진서의 힘이 충만해 있었다. 아자딘이 반사적으로 청의 처형인을 휘두르자 푸른 검광이 허공을 자르고 그 궤적에 걸리는 모든 것들이 갈라졌다.
상체를 잃은 하반신이 앞으로 달려오다 쓰러진다.
“허억.”
아라가사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고위 전령에다가 오대 혈족의 일원이 된 이들이 일족 최악의 반편이라고 불리던 아자딘의 일초지적이 되지 않는다니.
대체 저게 사람의 힘이 맞긴 한가? 너무나 끔찍한 광경이 그들의 전의를 꺾었다.
“비켜. 제발.”
그들을 죽인 아자딘의 표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비록 아자딘을 경멸하던 이들이라 해도 동족이었다. 가급적 해치고 싶지 않은데 무시하기에는 실력이 뛰어나고, 건드리면 죽는다.
그래서 아자딘은 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입을 벌린 순간 끈적한 피 냄새가 입안에 감돌았다. 아자딘의 코와 입에서 선혈이 울컥 쏟아진 것이다.
신왕진서의 힘이 차오른 것은 좋은데 아자딘의 몸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저 녀석도 한계다!”
“신왕진서를 독차지했군! 주제도 모르고!”
“버티지 못할 거다!”
그 모습을 본 아라가사들은 아자딘이 비키라고 하는 이유를 곡해하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놈들!”
아자딘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일족들에게 분개하며 청의 처형인을 고쳐 잡았다.
사투가 시작되었다.
*********
“하악… 하악….”
아자딘은 거칠어진 숨을 다잡았다. 코피가 계속 나서 코로 숨을 쉬기가 힘들다.
입에서도 점막을 통해서 마치 억제할 수 없는 침처럼 피가 흘러나온다. 몸 전체가 바스라질 것 같다.
아자딘은 자신의 몸에 꽂힌 화살을 뽑아서 내던졌다.
녹색 마력이 아자딘의 몸을 감돌며 상처를 치료해준다. 샤티가 떠나며 걸어준 마법이 아자딘의 몸을 재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마법으로도 육체의 고통을 지워내진 못했다. 아니,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것은 마음의 고통이었다.
‘아라가사는 끝이구나.’
아자딘은 주위에 널려진 일족의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죽인 것이다. 일족의 인재들, 핵심인물들, 재능 넘치고 충성스러운 하인들까지. 그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일족을 죽였다.
몸이 천금같이 무겁고 마음은 그 이상 무겁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아자딘을 막아서다 살해당한 일족들의 비난이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배신자, 반역자, 일족의 재앙, 저주받은 놈.
다 맞는 말이다.
일족들을 죽이면서까지 관철해야 할 일인가?
아자딘이 조금만 더 일족 내에서 영향력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막지 않으면….’
아자딘은 황금왕 만자-자덱이 머물던 옥좌의 방에 들어섰다.
석영 왕좌의 위에는 하티르가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알디스가 장창을 꼬나쥔 채 아자딘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아자딘은 놀라지도 않았다. 어째 이럴 것 같았다.
하티르가 왕좌를 비우고 나타났다면 그동안 알디스가 관리하고 있었겠지.
일족에 인재가 많다고는 하지만 신왕에 필적하는 마법적 능력을 갖춘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알디스와 아라엘, 그리고 하티르 셋 정도가 고작이니 여기에 알디스가 와 있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자딘.”
태연한 아자딘과 달리 알디스는 놀란 표정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니!? 아자딘! 설마….”
아자딘이 열고 들어온 옥좌의 방 너머, 무수한 시체들을 보며 알디스가 경악했다. 일족을 몰살시키고 들어온 침입자의 모습에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이 많은 사람들을, 동족들을 다 죽였단 말이니?”
“네.”
“어, 어째서?”
“네더의 사신을 강림시키는 걸 막아야 했으니까요.”
아자딘은 숨을 헐떡이며 한 걸음 내딛었다. 놀란 알디스가 한 걸음 물러났다.
“일족은 왜?”
“저도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다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절 막아서… 아니, 그전에 알디스. 당신은 이 일을 찬성하신 거예요?”
아자딘이 알디스에게 따지고 들자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하티르가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알디스! 저놈이 가지고 있는 마도서는 아라엘과 아자딘을 새로운 신으로 만드는 사악한 마도서다! 자신들의 야욕 때문에 일족을 죽이며 여기까지 온 거란 말이다!”
하티르는 그리 말하고 알디스에게 아자딘을 처단할 것을 명했다.
“녀석에겐 황제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주의해라!”
“왜 통하지 않는지도 말해줘야지!”
아자딘이 분개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다 하티르 저놈 때문이다. 일족의 두령, 충분히 일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위치에 있던 놈이 사악한 길로 일족을 인도해 이 참상을 만들었다.
카자스는 대체 왜 저런 것을 사랑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끌려 다녔을까? 왜 저런 놈을 자신과 저울질해서 저쪽으로 기울었단 말인가?
아자딘이 하티르에게 적개심을 뿜어내자 알디스의 창이 허공을 갈랐다.
“그만! 아자딘! 즉시 무기를 거둬!”
“…….”
“부탁이야, 아자딘. 널 해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대로 두령 하티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네더의 사신이 세상에 강림할 겁니다. 알디스! 당신도 바보는 아니니 알 거 아니에요!”
아자딘은 말 그대로 피를 토하며 외쳤다.
“황제의 목소리도 절 제외한 모든 전령을 해고했습니다! 하티르의 계획을 막아야 해요! 그런데….”
“일족의 모두가 선택한 길이다! 이 세상에 복수하고 지배하는 것! 그런데 너 혼자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라엘이 만든 더러운 마도서를 들고 와서 네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아자딘.”
알디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저 따사롭고 자애로운 표정에 아자딘은 늘 구원받았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면 안 될까, 아자딘? 나는… 네가 옳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일족의 아픔도, 염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무엇보다 아버님이….”
“…….”
알디스로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하티르를 배신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아자딘 또한 마음이 흔들렸다.
일족을 죽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면 더 죽여야 해. 알디스조차 죽여야 한다.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알디스는 그의 빛이었는데. 그녀를 죽이면서까지 이 길을 가야 하나?
그러나.
-쿠르르르릉!
결단을 재촉하듯 또다시 지진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