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16
215. 빛을 잃을지라도 10
아자딘은 일단 하티르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전장에서 주운 흑강전을 잡고 카자스 해서의 황학을 걸어서 발사한다.
휘어진 바람을 타고 화살이 알디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하티르를 노린다. 행여나 알디스에게 맞을까 봐 저어하는 태도가 이 궤적에서 보인다.
그러나 알디스는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흑강전을 쏘았다.
-콰앙!
흑강전이 공중에서 서로 충돌하며 궤적이 흐트러졌다.
알디스가 활에 마법을 걸었지만 아자딘의 완력이, 활이 더 강해서 마법만큼 상쇄되었다.
“강해졌구나, 아자딘.”
“알디스….”
아자딘은 자신을 가로막는 알디스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라엘이 그 이름을 얻기 전엔 하르코니아의 재래라 불리던 그녀다. 하르코니아에 비견된다는 것은 전령일족 최강의 존재라는 뜻.
그 최강의 존재가 적이 되어 지금 아자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널 막으려면 적어도 팔이나 다리 하나는 잘라야겠구나.”
“그 역도 통하겠지요.”
“…….”
문득 아자딘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래. 알디스를 제압하면 된다. 팔다리 중 하나를 자르더라도 생명에 지장 없이 제압한다면,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전령일족 최강의 요원을 그렇게 쉽게 제압할 수 있을까?
그때 하티르가 자신의 흑강검을 알디스에게 던져주었다.
“이걸 써라!”
알디스는 흑강검을 받지 않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흑강검이 스스로 떠올라 허공에서 춤추며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그럼!”
아자딘의 무릎을 향해 흑강검이 날아온다. 빠르지만 고지식한 공격이다. 물론 알디스의 공격이 이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과연 알디스는 흑강검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창을 머리 위로 던지고 활을 꺼내 아자딘에게 쏘았다.
-청풍명월!
활통에서 쏟아져 나온 화살들이 푸른 마법의 빛을 뿌리며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맴돈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승냥이 떼처럼 무수한 화살들이 허공에서 배회했다.
흑강검을 받아내느라 아자딘이 허점을 보인다면 저 화살들이 그대로 쏟아져 아자딘을 해치리라.
하지만 아자딘은 그림스로운의 곤봉을 날려 흑강검을 받아내는 것으로 허점 없이 알디스의 공격을 무산시키고 자신의 전통을 발뒤꿈치로 차올렸다.
화살들이 화살통에서 튀어 올랐고, 아자딘은 그 화살을 잡고 쏘았다. 청풍명월의 마법이 걸린 알디스의 화살이 터져 나간다.
아자딘은 한 발 한 발 강한 힘을 실어서 화살을 날려 알디스의 마법 화살들을 격추했다.
청풍명월의 화살들이 일제히 아자딘을 향해 쏘아지는 것과 동시에 알디스가 달려들었다.
-쉬이이익!
그녀의 창이 바람 찢는 소리를 내며 무수한 빛의 그림자로 변해 쏘아져 나왔다.
연거푸 일곱 번 찌르는 전광석화 같은 공격. 게다가 가장 위협적인 긴 찌르기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현란한 공격들 사이에 그림자 공격을 넣는 이 기술, ‘벚꽃에 드리운 그림자’는 처음 보는 사람은 당할 수밖에 없는 재주였다.
그러나 아자딘은 그 공격을 청의 처형인으로 받아서 미끄러뜨렸다.
알디스의 비장의 기술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봉쇄하진 못해서 몸 여기저기 긁힌 상처를 입었지만 창이 미끄러지며 간격이 좁혀졌다. 아자딘의 공격권 안에 알디스가 들어온 것이다.
“흡!”
이번엔 아자딘의 차례! 아자딘이 톤파처럼 쥔 청의 처형인을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들었다.
알디스에 비하면 거구인 몸이지만 뛰어드는 순간은 너무나 빠르고 날카로웠다.
몸을 낮추며 뛰어드는 아자딘의 공격은 자신의 눈높이에서 시작해서 알디스의 발목 높이로 떨어진다.
알디스가 뒤로 도망치는 걸 감안해서 창 한 자루 반 분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사실 이 정도 이동능력이라면 창을 휘두르는 이를 상대로도 충분히 간합을 나눌 수 있지만 아자딘은 일부러 알디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맞기까지 하면서 그녀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아자딘의 공격이 펼쳐졌다.
알디스를 수직으로 쪼갤 듯한 청강의 강격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 공격은 흑강검에 막혔다. 알디스가 조종하는 흑강검이 허공에서 스스로 춤추며 날아와 아자딘의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그리고 알디스의 손에서 창이 순간적으로 두 개, 세 개로 불어나며 허공에서 흑강검을 받아 돌린다.
흑강검과 창, 두 개의 무기가 복잡하게 엮여 움직이면서 아자딘의 공격들을 흡수해 버렸다.
그뿐만인가? 알디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곡검을 뽑아 자신이 든 장창 자루에 대고 휘릭 밀었다.
곡검이 스스로 춤추며 마치 창에 매달린 철퇴라도 되는양 스스로 창에 매달리며 회전한다. 긴 장창이 흑강검과 곡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프레일처럼 되어서 어지럽게 흔들린다.
알디스가 그 창을 정말 프레일처럼 휘두르며 아자딘을 공격해 왔다. 아자딘이 창을 피해도 창끝에서 춤추는 검들이 아자딘을 노려왔다.
‘역시나 강력하다. 지금까지 상대한 그 누구보다도 강해! 과연 알디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자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창에 스스로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저 창에 죽는다면 알디스는 마음 아파할까? 영원히 날 기억해줄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자딘은 지금 상황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모진 게 목숨인지… 아자딘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며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아자딘의 팔이 날아드는 곡검과 흑강검을 쳐내고 무릎이 찔러오는 창을 걷어 밑으로 깐다. 그리고 낭창거리는 장창 위에서 빙글 몸을 굴려, 순식간에 알디스의 앞으로 다시금 간격을 좁혔다.
“훌륭하구나!”
알디스가 감탄했다.
어느새 간격을 좁힌 아자딘이 다시금 알디스를 향해 청의 처형인을 휘둘렀다.
그런데….
‘어?’
아자딘은 알디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피하려 하질 않아?’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는 아자딘이 자신의 공세를 뚫고 들어오는 걸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일족의 누구보다도 무력하고 나약했던 소년이 자신의 공세를 뚫을 만큼 성장한 사실에 마음을 빼앗긴 게 아닐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도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관심이 느껴져서 아자딘은 마음이 아팠다.
그 찰나의 흐트러짐이 양측 모두에게 치명상이 되었다.
아자딘은 청의 처형인을 휘두르며 도끼창의 그립을 톤파 그립으로 바꿨다.
이것은 육중한 공격을 받아 흘리는 데 좋다. 검이나 도끼를 길게 뻗어서 상대의 스윙을 받아내면 모든 부하가 손목에 집중되지만 톤파 그립은 팔 전체로 쉽게 부하를 분산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짧다. 아자딘은 일부러 톤파 그립을 고집하면서 짧은 사거리를 뛰어난 돌진력으로 무마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그립을 바꾼 것이다.
그 바꾸기가 어찌나 재빠르고 교묘한지 마치 아자딘의 손에서 무기가 스스로 길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잘린 도끼창 자루를 잡으니 짧은 전투도끼만 한 길이가 나온다.
하지만 알디스 역시 정신을 차리고 반격해 왔다. 흑강검이 아자딘의 목을 향해 날아든다.
-퍼억!
-촤르르르륵!
사슬 갑옷이 찢어지며 왕성 바닥의 지진으로 깨진 포석들 위로 쇠사슬이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아자딘이 휘두른 청의 처형인이 알디스의 팔에 명중했다.
정확히는 목을 노리고 날린 도끼창을 알디스가 단도로 막았지만 단도가 깔끔하게 잘리며 그녀의 팔에까지 도끼창이 닿은 것이다.
청의 처형인은 그대로 알디스의 팔을 가르며 들어가 끔찍한 상처를 입혔다. 팔이 절단되며 날아간다.
하지만 알디스가 날린 흑강검 역시 아자딘의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왔고, 아자딘은 왼팔로 목을 감쌌다.
갑옷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다. 스콧이 마련해준 밀납 팔이 아니라 그 팔꿈치 위쪽 어깨 부분까지 흑강검이 꿰뚫었다.
알디스와 아자딘이 서로서로 팔을 취한 것이다.
“…훌륭하구나. 아자딘.”
“알디스….”
그러나 아자딘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알디스는 왕의 혈통이다. 코랄 사하르의 왕좌를 차지한 장본인이기도 하며 아자딘이 본 바, 코랄 사하르의 왕좌는 아직 오염되지 않아서 여전히 강력한 백색 마력의 마력원일 것이다.
왕의 치유 기적. 알디스는 왕의 치유 기적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디스의 무릎이 꺾였다. 상처에서 피가 너무 많이 흘렀다.
흑강검을 받아낸 아자딘과 달리 알디스는 청의 처형인에 맞았다.
청의 처형인은 날 양옆으로 상처를 벌리는 척력이 발생하는데, 그것에 알디스의 팔이 호쾌하게 잘려나갔다. 심장에 가까운 왼팔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반면 아자딘이 맞은 것은 찌르기. 결국 팔이 잘려 떨어져 나갔지만 알디스와 달리 겨드랑이를 조여 지혈해 실혈을 다소 줄일 수 있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알디스 또한 별로 살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카자스가 그러했듯이 알디스도 자신의 신념과 일족의 염원, 두 개의 가치가 상충되자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눈도 없는 추물인 아자딘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안을 수 있을 만큼 공정하고 자비로웠다. 그런 그녀가 휘브리스인들을 대량학살하는 일족의 염원에 따른 것부터가 잘못되었다.
“뭐 하는 거냐! 왕의 치유를 사용해라! 알디스! 네 목숨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일족의 염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 일족의 꿈을 저버리겠다는 거냐! 넌 할 수 있어! 이 아비의 딸이라면 치유로 수복하고 반역자를 처단해라!”
하티르가 격노하며 알디스를 재촉했다. 그러자 알디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미안해. 아자딘. 나는….”
알디스에게서 금색 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왕의 치유 기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왕의 치유 기적이 빛을 발했을 때 그 대상은 알디스가 아니라 아자딘이었다.
“죄송해요. 아버님. 저는… 아자딘을….”
알디스의 머리가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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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디스!”
아자딘은 자신에게 치유를 거는 알디스를 보며 당황해서 일어났지만, 피를 많이 흘려 쇠약해진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얼굴부터 땅에 처박아 버렸다.
“아… 으…….”
소리 없는 절규가 아자딘의 목 안에서 가래처럼 들끓었다.
알디스가 죽었다.
카자스도, 알디스도….
심지어 알디스는 아자딘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고 말았다.
‘그녀는 나의 별, 나의 빛, 나의 모든 것이었는데!’
‘이까짓 휘브리스인들이 뭐라고 알디스를 내 손으로 죽여야 했나!’
‘그렇게까지 지켜야 할 이상이었나? 정말?’
아자딘은 쓰러진 알디스를 향해 기어갔다.
흑강검에 맞은 상처는 기적의 마법으로도 잘 아물지 않아서 너덜너덜하다. 지면을 기는 순간에도 팔이 찢어져 피가 튀었지만 아자딘은 아픔을 몰랐다.
이미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육체의 아픔을 실감할 수 없었다.
“멍청한 놈이로군. 그리고… 어리석은 딸이었다.”
왕좌에 정좌하고 있던 하티르가 일어났다. 어느새 상처를 많이 회복한 그가 손을 들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흑강검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르르르릉!
다시금 지진이 일어나며 타락한 석영 왕좌로부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