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19
218. 멸망의 전령 3
“아라엘 말이지요. 도망쳤습니다.”
시온 에타르의 말에 하티르는 어이가 없었다.
“도망쳤다고?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도 말인가?”
“네. 다만 중상을 입혀놓았으니 살아남긴 힘들 겁니다. 그러나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명불허전이라니?”
“원로원의 장로들 절반이 그녀의 손에 죽었거든요.”
“그 틈을 타서 네놈이 죽인 게 아니라?”
아자딘이 시온 에타르와 하티르의 말 사이에 끼어들었다.
“화살을 맞았는데도 꽤 여유가 있나 보군, 아자딘?”
시온 에타르가 비수를 아자딘에게 던졌다.
이미 양팔이 부서진 아자딘은 피하지 못했지만 그림스로운의 곤봉이 춤추며 날아와 날아드는 비수를 쳐냈다.
“흠? 네더의 신물인가. 윽.”
아자딘을 죽이기 위해 접근하던 시온 에타르는 자신의 발목을 휘감는 사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알디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사기가 안개처럼 지면에 깔려 있었다. 그것에 접촉하자 전신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원 세상에. 알디스가… 죽었군.”
시온 에타르는 알디스의 상태를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알디스도 죽고, 원로원의 장로들 절반이 사망했으며 그 밑의 일족들도 무수히 죽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아버지여?”
시온 에타르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하티르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살벌한 살기가 담겨 있어서 시온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불을 보듯 뻔했다.
‘이 건방진 놈이!’
하티르는 자신이 쇠약해진 지금 본색을 드러내는 시온 에타르의 당돌함에 격노했지만 그의 심복이자 무기이던 둘, 카자스와 알디스가 전부 사라진 지금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 어리석은 녀석아! 지금 아자딘이 왕좌에 손을 썼다. 이럴 때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알디스는….”
“네. 잘 알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지요.”
시온이 손짓하자 그의 곁에 있던 하인들이 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하티르를 바라보자 다들 손을 떨었다.
하티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신의 아들, 그리고 아라가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에타르 혈족에도 하티르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두령 하티르는 살아 있는 조상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멍청한 자식들.”
시온 에타르는 하인들이 머뭇거리는 걸 보며 혀를 찼다. 그러나 그 역시도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서로 미루던 끝에 하인 중 가장 어린 이스마일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네가 해라.”
“네놈이 아가씨를 제대로 보필하지 않은 죄가 크지 않느냐?”
다들 이스마일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하아.”
이스마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활을 당겨 하티르를 향해 쏘았다.
“무슨!”
하티르가 화살을 쳐내려 했지만 이스마일이 발사한 화살이 하티르의 손바닥을 뚫고 목까지 찔렀다.
“크억!?”
하티르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아라가사의 두령, 황제의 아들이며 살아 있는 신이라 불리던 남자가 처참한 몰골로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이스마일은 무표정으로 다른 화살을 꺼내어 활을 당겼다. 하티르의 숨통을 아예 끊어놓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때 알디스가 눈을 떴다.
“앗?!”
-콰직!
알디스를 중심으로 검은 사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갔다. 낮게 깔린 독 안개가 다가오던 아라가사들을 휩쓸어 버리고 아자딘과 하티르 또한 그 독기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크윽!”
아자딘은 지면에 쓰러지면서 옥좌를 바라보았다.
옥좌 안에서 순백의 빛이 명멸하고 있었지만, 그 힘이 너무 약하다. 어둠은 이렇게나 강하고 짙은데 빛은 미약해서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헐떡인다.
‘이대로 끝인가?’
아자딘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석영 옥좌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그때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제의 목소리?”
[조금 더 너를 지켜보고 싶었다만 어쩔 수 없구나. 아자딘.]“무슨….”
[복무의 계약을 해제한다. 마지막 전령 아자딘.]그 말과 함께 아자딘의 앞에 금박으로 장식된 열쇠가 떨어졌다. 아자딘이 그 열쇠를 집으려 했지만 지금은 열쇠를 집을 힘도 없다.
[이런, 집지도 못하나?]황제의 목소리가 그리 말하자 바닥에 떨어졌던 열쇠가 스스로 떠올라 아자딘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이건?”
[황제의 보물고를 전부 열 수 있는 열쇠다. 지금이 아닌, 진짜 목성의 시대가 왔을 때 열도록 해라. 사람들을 구하고 세계를 구할 힘이 그 안에 들어있을 것이다. 그럼. 뒷일은 부탁하지!]황제의 목소리는 그리 말하고 스스로 브투마의 왕좌로 빨려 들어갔다. 야에가스 신족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정령이 스스로의 존재를 불태우며 옥좌에 백색 마력을 더해주었다.
-우우우웅!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눈부신 빛이, 왕화의 빛이 옥좌로부터 뿜어져 나와 주위의 어둠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아라엘의 마도서에 황제의 목소리, 둘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소환된 네더의 존재들을 쫓아내는 왕화의 빛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워어어어!
밖을 배회하는 거신들, 네더의 사신들의 거대한 그림자들이 흐릿해졌다. 현실화하던 네더의 거신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세계가 다시 회복되려 하고 있었다.
‘서, 성공인가? 황제의 목소리가 자신을 희생해서?’
황제의 목소리는 황제 야에슬라트가 자신의 인격을 복제해 만든 인공정령. 왕좌의 주인 될 자격을 가진 존재이긴 하다.
다만, 인간이 아닌 정령이니 그가 왕좌에 앉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의 소멸. 황제의 목소리는 자신의 소멸을 감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아하하하하하! 대단하구나, 아라가사!”
알디스가,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몸을 차지한 사신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녀가 손을 치켜들자 왕좌에서 뿜어져 나오는 왕화의 빛에 밀려 흩어지려 하는 네더의 힘이 그녀를 향해 집결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역설적이게도 브투마의 다른 곳은 왕화의 빛에 의해 정화되고 있지만 왕좌 밑, 가장 왕좌로부터 가까운 곳에는 왕화의 빛이 닿지 않고 있었다.
알디스의 그림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의 손이 쓰러져 있는 하티르의 육신을 움켜쥐었다.
“크억!”
하티르의 코와 입에서 피가 튀었다. 검은 사신의 그림자가 하티르를 집어 들고 검지로 하티르의 관자놀이를 관통하자 하티르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입에서 타액이 거품이 되어 피와 섞여 나온다.
사신이 알디스의 몸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하티르의 몸까지 노리는 것이었다.
“히이익!”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아라가사들이 놀라 화살을 날렸지만 알디스가 망토 자락을 휘두르자 검은 바람이 일어나 화살들을 전부 떨어뜨렸다.
그뿐인가.
“끄아악!”
“사, 살이 썩는다!”
사기의 바람에 맞은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알디스가 있는 곳에서 가까이 있던 이들은 죽고,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던 이들은 중상을 입으며 쓰러졌다.
시온 에타르조차 놀라서 시체를 앞에 세우고 그 뒤로 엎드려 간신히 몸을 피했다.
‘이런, 젠장. 여긴 다 죽는다! 탈출해야… 하지만….’
아자딘은 졸음이 쏟아지는 걸 느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기력이 다한다.
‘황제의 목소리가 옥좌를 정화했으니 지금 네더의 사신들이 저러는 건 최후의 발악이다. 세상은…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아자딘은 더 이상 힘을 낼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그의 별은 이미 떨어졌다.
그리고 사명을 전해주던 황제의 목소리조차 이젠 사라졌다. 물론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정말 큰 일을 해냈지.
‘어, 뭐야? 그럼 이제 죽어도 되는 건가?’
아자딘은 몰려드는 잠기운에 눈을 감았다.
*********
미디암은 에타르 혈족 수장의 적통으로 장녀는 아니지만 충분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자딘의 편에서 일족을 반역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스마일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일부러 미디암을 쓰러뜨려 에타르 혈족에 투항했었다.
하지만 지금 네더의 사신들이 그 힘을 휘두르는 이때, 이스마일은 미디암을 잡고 있던 이들을 공격해 쓰러뜨리고 미디암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이스마일!”
“도망쳐야 합니다, 미디암!”
“이, 이 자식!”
에타르 혈족의 하인들은 이스마일이 잡아 온 미디암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다들 훈련을 받았기에 알고 있었다. 이스마일이 미디암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위장 투항했었다는 것을.
하지만 설마 어린 시절 한솥밥을 먹던 에타르의 하인들까지 죽이면서 미디암을 풀어줄 줄이야!
“어린 놈이!”
거구의 하인이 양손에 소검을 끼고 찌르기를 날렸다. 현란한 공격이 이스마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스마일은 자신의 검을 세로로 세워 현란한 공격들을 정확히 자신의 칼 기준으로 좌, 우로 나누고 우측으로 이동해 모든 공격을 흘려냈다.
“이놈!”
이스마일의 방어에 유도당한 이가 몸을 움직였다가 알디스가 뿜어내는 사기의 바람에 격중되었다.
“크억!”
순식간에 팔이 썩어들어가며 피부와 근육이 분리되어 덜렁거렸다.
“감사합니다.”
이스마일은 빈정거리며 거구의 가슴을 칼로 찌르고 그의 몸을 이용해 사기의 바람을 막았다 그리고 그의 무기를 빼앗아 미디암에게 던져 주었다.
“자! 어서 도망쳐야 해요!”
“잠깐! 이스마일! 아자딘을!”
“지금 우리 능력으로는 그를 구할 수가 없어요! 덩치가 너무 큽니다!”
이스마일은 냉정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 둘 만이라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아자딘은 덩치가 너무 큰 데다 부상까지 입어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그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스마일이나 미디암이 무사한 채로는!
“부탁해!”
하지만 미디암은 그걸 알면서도 아자딘을 구하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절 보고 당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죽으라는 겁니까?!”
이스마일이 미디암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온전히 사랑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남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자신에게 헌신을 바라다니.
이스마일 입장에서는 참으로 복장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스마일이 ‘아악!’ 하고 머리를 쥐어뜯더니 아자딘에게 달려가 쓰러져 있는 아자딘을 집어들었다.
무겁다.
이스마일이 일족으로서 훈련을 받았지만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들기에는 체격 차이가 너무 크다.
이스마일은 화조풍월을 운용해서 몸 안에 마력을 흘려 근력을 증강시킨 후 아자딘을 들쳐 업었다.
이스마일이 아자딘을 운반하는 동안 미디암이 검을 들고 그 앞을 지켜섰다.
에타르 혈족이라는 미디암의 신분, 그리고 폭주하고 있는 사신 알디스의 사악한 기운 때문에 다들 멀찍이 물러선 덕분에 퇴로가 확보된 상태였다.
“가! 이스마일!”
“…미디암!”
이스마일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뒤에 남으려 하는 미디암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괜찮아. 나는 에타르 혈족이야.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
아니, 죽인다.
시온 에타르는 하티르를 제거하고 자신이 두령이 될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일족을 두 번이나 배신한 미디암을 살려두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번엔 반드시 미디암을 죽일 것이었다.
“고마워. 이스마일. 내 억지에 따라줘서.”
“…….”
이스마일은 싱긋 웃는 미디암의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멍청이군요. 당신이나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