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20
219. 멸망의 전령 4
이스마일은 아자딘을 업은 채 서둘러 브투마 왕성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화살과 마법들이 날아왔지만 미디암이 막아준 덕분에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정신없이 거리를 벌렸다. 뒤를 돌아보면 그대로 발이 멈춰 설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볼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쿠르르릉!
길 옆의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이스마일을 덮쳐왔다. 이스마일은 아자딘을 들쳐 업은 채로 최대한 힘을 아껴가며 그것을 피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히이잉!
어디선가 말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 젠장!”
혹시나 하고 달려가 본 이스마일은 절망했다.
배가 찢어져 내장이 흘러나온 말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 하반신은 네더의 영향을 받았는지 기이한 마물로 변화해 방금 전까지 자신의 일부였던 부위를 뜯어먹고 있었다. 아직 말과 연결되어 있는 마물이 스스로의 살을 뜯어먹는데, 진작에 죽었어야 할 말은 죽지도 못하고 고통에 허우적대며 울부짖는다.
그 끔찍한 모습에 이스마일은 고개를 돌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아자딘과 황제의 목소리가 어떻게든 뿜어낸 왕화의 빛이 네더의 사신들을 다시 다른 세계로 돌려보냈지만, 여기에는 아직도 네더의 사신들이 강림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가들 또한 있었다.
“크르르르!”
바다뱀 나가 부족이 창을 들고 배회하다 이스마일을 발견했다.
“…음.”
이스마일은 오히려 침착하게 굴었다. 바다뱀 나가들은 아라가사와 동맹을 맺었을 터, 오히려 지금은 저들에게서 녹색 마력의 마법을 지원받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봐. 부상자가 있는데 치료해 줄 수 있어? 우린 아라가사다!”
“크르르….”
하지만 이 나가들은 인간의 언어를 잘 알지 못하는지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이스마일이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 뒤로 나가 술사로 보이는 이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죽어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이들 무리의 지휘관이던 나가 술자가 지진에 휩쓸려 죽어 버린 모양이었다.
“젠장. 그럼 혹시 말은? 근처에서 멀쩡한 말을 보진 못했어?”
이스마일이 손짓 발짓 섞어가며 나가들에게 말을 하는 사이, 나가 한 놈이 은근슬쩍 자신의 시야 밖으로 움직이려 하는 게 포착되었다. 뒷걸음질을 쳐 그를 눈 안에 넣었다.
“뭐 하는 거야?”
남아 있는 나가들 중 그나마 직책이 높아 보이는 놈이 그르렁거리며 자신의 목에 난 갈퀴를 떨어댔다.
“아라가사와의 동맹은… 끝이다. 너희들, 약속 못 지켰다. 위대한 왕들, 못 왔다. 실패.”
“그건… 그렇지 않아. 지금도 왕성을 보면….”
“우린 물러난다. 어차피 아라가사 끝장.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나가들의 눈이 번뜩였다. 이스마일을 노리는 것이다.
이스마일은 아자딘을 내려놓고 바닥에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살폈다. 그러나 무너진 건물의 창틀, 그 일부였던 각목을 드는 게 고작이다.
나가들이 킬킬 웃으며 이스마일에게 덤벼들려던 그때였다.
-퍼억!
나가들의 등에서 화살촉이 가슴으로 뚫고 나왔다.
“컥?!”
나가들의 배후에서 한 인영이 눈에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한다. 그러면서 화살을 날리는데 그 위력이 강력하기 짝이 없다.
“큭! 아라가사!”
“도망치자!”
나가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한 아라가사 전령이 내려섰다. 아라엘 지파의 일원이며 화조풍월의 4인. 달의 인딤이었다.
“다, 당신은?”
“아자딘, 살아 있었나! 다행이군.”
달의 인딤은 이스마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자딘을 보고 반가워하더니 그의 맥을 짚어보았다. 목에 손가락을 댄 그가 혀를 찼다.
“너무 맥이 약한데. 꼬마, 왕좌는 어떻게 되었지?”
“왕좌는 정화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사신의 잔향이 남아 있는데 그게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그리고 시온 에타르가 하티르를 죽였습니다.”
하티르를 죽인 것은 자신이지만, 시온 에타르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이스마일은 시온 에타르가 죽였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인딤은 이스마일이 하는 말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시온 에타르가 두령 하티르를 죽이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좋아. 아무리 무안의 아자딘이라 불리던 놈이라 해도 과연 카자스의 제자, 과연 아라엘 님의 동생이군. 그 어려운 일을 해내다니.”
“…대단한 겁니다.”
이스마일은 아자딘을 폄하하는 인딤에게서 반감을 느꼈다.
비록 이스마일 역시 아자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대단함을, 그가 얼마나 강하고 헌신적이었으며 고결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모르고, 명백한 업적을 이뤄내었음에도 폄하하는 인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자딘은 내가 데려가겠다. 너는 어쩔 거냐? 아라엘 님을 섬길 거냐? 아니면 떠날 거냐?”
“아라엘 님을 섬긴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이제 아라가사는 끝장이다. 아, 내 말은 그러니까 원로원이 이끌던 아라가사는 끝장이라는 거지. 아라엘 님은 그래도… 음, 아니다. 넌 떠나라. 나중에 세상이 안정되면 아라엘 님이 다시금 아라가사를 일으킬 테니 그때 보도록 하자. 지금은 좀 곤란해.”
인딤은 그리 말하고 아자딘을 들쳐 업었다. 그러나 이스마일은 아자딘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를 살릴 수 있습니까? 적어도 그가 죽는지 사는지는 봐야….”
미디암이 목숨을 걸고 살린 남자다. 그러나 그는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미디암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했는지 모른다.
아자딘이 깨어났을 때 미디암이 그를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고 아마도 죽었으리라는 걸 말해주지 않으면….
물론 지금 당장 돌아가서 미디암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스마일은 그런 짓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돌아간다고 해도 미디암을 구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러면 미디암이 살 확률이 낮아진다.
‘만약 현장에 하인들이나 다른 아라가사가 남아 있지 않다면 시온 에타르 성격상 사건을 못 본 척 덮어줄지도 몰라.’
미디암이 노골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덮으려면 현장에 있던 하인들과 아라가사들, 시온 에타르가 완전히 통제할 자신이 없는 목격자들을 다 죽이면 된다.
이스마일의 희망적인 기대이긴 하지만 시온 에타르라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물이다. 괜히 여기서 돌아가서 그 목격자를 늘려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알겠다. 따라와라.”
인딤은 아자딘을 집어 들고 말했다.
“따라올 수 있다면 말이지!”
그 순간 인딤이 몸을 날렸다. 그는 이스마일과 달리 아자딘을 들쳐 업고도 가볍게 움직여서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윽!”
그 모습을 본 이스마일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분개했다.
인딤이 이스마일을 자신들의 거처에 데려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뻔하다. 아라엘이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대로 아자딘을 데리고 가면 이스마일 같은 어린 소년쯤은 존재 자체도 잊어버리리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당장 미디암에게 돌아가서 그녀를 살릴 수 있을지, 그녀의 운명을 지켜봐야 하나?
아니면 아자딘을 쫒아가서 그의 운명을 지켜봐야 하나?
“젠장. 깔보고 있어!”
이스마일은 인딤을 따라 길을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뒤돌아본 이스마일이 중얼거렸다.
“여기는….”
이스마일은 이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좌우 모두 똑같은 건물들을 배열해 놓아서 왕성으로 들어가는 길의 장엄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만든 왕성 입구 길목이었다.
지진으로 건물들이 무너지고 땅이 깨진 그 위로 새로운 파괴의 흔적이 덧칠되어 있었다.
‘아라엘과 장로들이 싸운 곳인가?’
이스마일은 무심코 지진으로 기울어진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흡….”
끔찍한 파괴의 흔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라가사는 끝장이군.”
왕성에서 나올 때는 잘 몰랐으나 바로 여기, 아라엘이 힘을 발출했을 곳에서 왕성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라가사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아라엘이 발출한 힘이 얼마나 강했을지 그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우습게도 브투마 왕국의 군대는 아라가사에게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아라가사에게 피해를 준 것은 바로 내분. 아라엘 지파와 원로원의 싸움이 아라가사의 멸망을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 아라엘은 왜 아자딘을 원하는 거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물론 아자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의 아자딘은 살아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설령 살린다 해도 엄청난 회복마법을 들이붓지 않으면, 팔왕좌의 주인이 자신의 피를 흘려가며 살려내지 않으면 폐인이 될 것은 자명하다.
‘팔왕좌의 주인이라. 음, 설마.’
이스마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속 추격해 보자.”
이스마일은 인딤의 인기척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크억….”
아자딘은 눈을 떴다. 몸 전체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 누군가가 뺨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깨어났나.”
“쿨럭… 이, 인딤?”
아자딘은 숨을 헐떡였다.
너무 춥다. 피를 너무 흘려서 몸이 덜덜 떨린다.
현기증과 전신을 부숴 버릴 것 같은 몸살이 밀려 온다.
그리고 눈앞에서 불꽃 같은 뭔가가 흔들거리면서 하늘에서 빛을 뿌린다.
램프인가? 그렇다면 지금 흔들리는 건 배 안이라서?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현기증이 너무 심해서 정말 배 안인지, 아니면 평지인데도 아자딘 자신이 흔들린다고 느끼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아자딘의 몸 안에서는 다시금 녹색 마력이 발동하면서, 샤티가 걸어준 재생의 힘이 상처를 치료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원기 자체가 부족하다. 재생력으로 끌어올 생명력마저 바닥난 상태였다.
이런 중상을 입었으니 오래 살기는 글렀다.
상처란 당장은 아물어 낫는 것 같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곳부터 균열이 생겨 부서지기 마련이다. 땜장이가 때운 냄비 부분이 가장 먼저 닳아 빠지는 것처럼 인간의 육신 또한 그러하다.
“너희가 날 구했나?”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인딤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네 도제이던 소년이.”
“이스마일이? 으윽….”
극심한 두통을 느낀 아자딘은 다시 머리를 눕혔다. 머리조차 마음대로 가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하티르는? 알디스는? 시간은 얼마나 경과했지?”
“대답하기 벅차니까 하나씩 물어라.”
“…….”
“우선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넌 그동안 기절해 있었지. 설탕과 약을 개어서 너에게 먹이고 대소변을 치워줬으니 고마운 줄 알아.”
“…….”
아자딘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팔은 양쪽 모두 근육과 인대가 찢어져 있는 상태다. 그러나 우습게도 손목 아래가 잘려나간 왼팔이 지금은 오히려 더 나은 축에 들었다.
시온 에타르의 화살을 받은 오른팔은 세로로 쪼개져서 그야말로 간신히 붙어 있기만 할 뿐이다.
그 외에도 전신이 엉망진창이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회복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자딘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