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23
222. 예언의 기사 1
과거 휘브리스 대륙은 네더의 사신들에 의해 점거당해 있었다.
이에 쿠르트 신족들은 네더의 사신들과 전쟁을 벌였으며 차후 합류한 야에가스 신족들의 도움으로 휘브리스 대륙에서 네더의 권속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쿠르트 신족은 자신들만이 네더와 싸워 이겼다고 주장하고 야에가스 신족들은 자신들이 도움을 크게 주었다고 주장하며 양측의 주장이 갈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네더의 권속들에겐 그 언어만으로 현실을 오염시키는 힘이 있었으니, 신들은 이러한 네더의 권속을 완전히 격리할 필요를 느꼈다.
그때 선택된 것이 네더스트롬.
그것은 아랑기안 내해와 휘브리스 반도가 접하는 곳에 위치한 거대한 바다 소용돌이였다.
끝없이 휘몰아치는 격류의 밑바닥에 네더 권속들의 시신과 피를 부어 심해에 봉인하니 휘브리스 대륙이 비로소 네더의 위협에서 안전해졌다.
하지만 목성의 인력이 강해질 때 네더스트롬의 물살이 약해지고 네더의 피가 들끓게 되니….
세계가 목성의 영향에 들 때마다 네더의 마물들이 휘브리스 반도에 출몰해 끔찍한 피해를 안겼다. 그렇기에 휘브리스에서 멸망의 시대를 사람들은 ‘목성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은 목성의 인력이 강해질 때 잠시 물살이 약해지는 것뿐이지만 언젠가 목성의 인력이 지금 이상으로 강력해지면 네더스트롬의 봉인이 완전히 깨지고 다시금 네더의 사신들이 이 땅을 지배하리라.
이 멸망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인지, 아니면 늘 있던 봉인이 약해지는 주기인지 모르겠으나 사태가 심각했다.
“아라가사가 다 뒤집어쓰겠군.”
디미아는 자신들의 몰락한 처지, 그리고 앞으로 더더욱 가열 차게 진행될 박해를 예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령일족이 나가들과 손잡고 네더 마법을 쓰며 코랄사하르, 브투마를 공격한 것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 그 후 목성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후 벌어지는 재앙이 타락한 전령일족들의 사악한 마법에 의한 거라고 여기지 않을까?
지금도 이미 박해받고 있는 전령일족들이지만 앞으로는 끔찍한 공적, 눈에 보이자마자 쳐 죽여야 할 철천지원수로 여겨질 것이다.
“그보다 지금은 싸워야겠는데? 선원들만으론 무리다.”
세라프가 바다를 가리켰다.
바다에서 세이렌들이 출몰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출몰한 세이렌들이 노래를 부르며 인간을 유혹한다. 이에 현혹된 선원들이 바다로 뛰어들면 세이렌들이 달려들어 선원을 갈기갈기 찢어 그 피와 살을 먹어 치운다.
“너희들 상태가 안 좋지? 화살이나 쏴라. 내가 가지.”
인딤은 아라엘의 유품인 웬디고의 단검(본래는 아자딘의 것이었지만)를 챙겨 뱃전에서 뛰어내렸다.
세이렌들이 인딤을 자신들의 현혹에 걸린 불쌍한 희생자로 여기고 달려든 순간, 인딤이 마법을 펼쳤다.
-화조풍월, 겨우살이!
적의 머리 위로 공간이동하는 기술을 쓰자 인딤의 위치가 바뀌며 세이렌들의 배후 위쪽에서 나타났다.
-쐐액!
인딤이 아주어 스틸 손도끼와 웬디고의 단검을 휘둘러 세이렌들을 토막 내고 수면 위에 착지했다.
“재주도 좋아.”
디미아는 인딤의 화려한 활약에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인딤은 바다 위를 달리며 손도끼와 웬디고의 단검을 수면에 그으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수면 위에서 일어난 거대한 물보라가 걸리는 세이렌들을 토막 쳐 버렸다.
그렇게 고속 질주하던 인딤이 빙글 몸을 돌리며 미끄러지더니 웬디고의 단검을 수면에 찍자, 바다가 얼어붙으며 얼음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인딤은 그 얼음덩이 위에 서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크윽….”
“아아아아.”
세이렌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딤에게 힐난한다. 수면이 피로 물들고 무수한 세이렌들이 죽어 떠다녔다.
“흥. 꼴 좋다. 응?”
인딤은 갑자기 물 밑에 검은 그림자가 생기는 걸 보았다.
“큰일! 고래, 아 아니….”
갑자기 거대한 악어 같은 생물이 나타나 배를 밑에서부터 들이받았다. 고래만 한 악어룡이 자신의 몸과 흡사한 크기의 범선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린 것이다.
결코 작지 않은 2마스트의 범선이 수면에서 붕 떠올랐다. 약 1장 정도 허공에 떠오른 범선이 수면에 떨어지며 용골이 부러지고 내용물인 선원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악!”
“아아아!”
충격만으로 즉사하는 이들이 있었다. 운 좋게 배의 파편을 피해서, 충격을 받지 않고 수면으로 떨어진 이들도 있지만, 그들은 이내 세이렌의 공격을 받아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젠장!”
디미아와 세라프는 공중에서 파편들을 밟고 균형을 유지하며 바다에 착지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러지 못하고 물에 떨어졌다.
“윽!”
“안 돼! 아라엘 님의 유지가!”
세라프는 근처에 뒤집힌 채 바다에 떨어진 구명보트에 올라섰다. 그걸로 아자딘을 구하려 하자 다른 선원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살려줘!”
“이 자식들….”
세라프는 배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선원들을 해쳐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세이렌들이 몰려와 선원들을 끌고 갔다.
세라프에게도 세이렌이 달려들었지만 세라프는 가볍게 일권을 날려 세이렌의 심장을 명중시켰다. 세이렌이 피를 뿜으며 날아가고 그 반동으로 보트가 출렁였다.
“으음.”
세라프는 자신의 주먹에 맞고 날아간 세이렌이 즉사하지 않은 걸 보며 혀를 찼다. 너무 약해져 있다.
물론 평소의 세라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주먹 한 방에 세이렌을 날려 버리는 그 위력에 경악했겠지만 세라프 자신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지금 움직인 것만으로도 몸이 아프다. 이런 상태로 바다 위에서 세이렌들과 싸우다니.
하물며 저 거대한 악어룡은….
“인딤! 아자딘을 구조해서 육지로 보내겠어! 악어룡을 처치해 줘!”
“저놈을 살리려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렇게 해 주면 네가 아라엘 님의 머리카락 뭉치를 빨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던 건 비밀로 해 줄게.”
“이….”
인딤은 세라프의 말에 경악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걸 말해 버리면 비밀로 하는 의미가 없잖아.”
디미아는 바로 뒤집은 배 위에 아자딘을 올리며 세라프에게 핀잔을 주었다.
“너 그렇게 까불다가 진짜 언젠가 인딤 손에 죽는다?”
세라프는 디미아의 경고를 들은 체 만 체 하면서 아자딘이 탄 보트에 마법을 걸었다. 그것은 반드시 흐르고 흘러도 육지에 닿는 표류의 마법이었다.
이 마법을 쓴 것만으로 모든 마력을 소모한 세라프는 기력을 잃어 수면으로 떨어졌다. 디미아가 그런 세라프를 안아 들고 옆의 다른 보트로 이동했다.
“그럼 우리가 악어룡의 시선을 끌어야겠군.”
표류의 마법이 걸린 보트는 일반적인 풍랑으로는 절대 뒤집어지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얻어 가까운 육지에 당도한다. 하지만 악어룡이나 마물들이 공격해서 배를 뒤집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디미아는 미혹의 안개를 보트에 걸어 이 배가 발견되기 어렵게 하고 세라프와 함께 자신들이 미끼가 되어 마물들을 유인하기로 결심했다.
“…정말 이렇게 할 가치가 있을까?!”
인딤이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며 덤벼드는 악어룡을 보며 물어보았다.
“알레프가 그녀를 사모했으니까. 알레프가 살아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녀의 유지를 이어주고 싶어 했을 거야.”
세라프는 자신에게 흡수되어 사라진 형제의 이름을 댔다.
“그건 너도 그렇잖아. 왜 알레프를 팔아먹어?”
디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활을 들어 악어룡을 겨누었다.
분명히 아라엘은 그들을 배신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부터 화조풍월의 4인은 아라엘이 좋아서 모인 인물들이지 부귀공명이나 권력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저 바란다면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걸. 자신들에게 흉금을 털어두지 않고, 자신들을 믿지 않고 아라엘이 독단적으로 일을 결정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소망을 들어주는 게 사랑의 기쁨이겠지!’
디미아가 부실해진 몸으로 화살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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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기 왕국의 남단, 아랑기안 내해를 굽어보는 들판 위에서 한 죽음의 기사가 배회하고 있었다.
지혜의 플랑크.
구난기사단의 옛 대장 중 한 명이며 한때 지혜의 기사라 불렸던 이 죽음의 기사는 자신의 안식을 깨는 이들을 베며 그 검술과 흉명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아랑기안 내해에 접한 해안 도시 콕스할에서는 이 죽음의 기사를 물리치는 이에게 금화 20닢과 기사 작위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현상금을 걸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죽음의 기사에게 도전하지 못했다.
정작 소문의 주인공인 죽음의 기사 플랑크 마르텐시아스는 칼을 질질 끌며 헌 집을 뒤져보고 있었다.
“무료하구려. 무료함이 이런 고통일 줄, 생전엔 미처 알지 못했소.”
죽지도 못하고 광야와 들판을 배회하면서 살아가는 그는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지만 범상한 사람들은 그의 모습만 봐도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그를 죽이겠다고 덤벼든 모험가들도 그와 열 보 안의 거리에 들어서자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질려 오줌을 지리며 도망쳤다.
이래서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책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랑기안들은 학문보다 남자다움을 숭상하는 이들이 많아서 책을 찾기가 가뭄에 과일 찾기와 같았다.
“아아, 유의미한 것이 없구려. 하긴 글줄 아는 이가 어찌 이런 나무꾼 헛간에 있겠소. …음?”
죽음의 기사 플랑크는 옛 나무꾼 오두막을 뒤져보다가 기둥에 새겨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마도 아이의 키를 재고자 한 것인지 자라나는 아이의 키에 맞추어 몇 차례나 그어진 닳아빠진 흠집이었다.
그것을 만져보며 플랑크 경은 이곳에서 살았을 인간들의 삶과 인생을 상상해 보았다. 책이 없고 지루해 미칠 것 같으니 이 작은 흠집만 하더라도 약간의 심심풀이는 되었다.
“…차라리 잠들고 싶소. 달콤한 망각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렸소이까?”
잠도 잘 수 없는 망령의 몸. 지루해 미칠 것 같은데 할수 있는 게 없다.
어떻게든 이곳을 떠나려 해도 정신없이 걷다 보면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자신이 죽은 장소에서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만날 수 있다면 내 애검도 넘겨주고 싶소이다. 허?”
그때 플랑크 경의 눈에 기이한 새가 한 마리 눈에 띄었다.
보통 새들은 죽음의 기사인 그를 두려워해 감히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데 이 새는 뭔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새의 가슴 부분에 끔찍한 눈알이 달려 번들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대는 누구요? 음?”
죽음의 기사의 질문에 대해서 새는 가만히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흐릿한 인간 여성의 잔상이 있었다.
아름다운 검은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우아한 자세로 손을 들더니 언덕 아래, 시냇가를 가리켰다.
“구조를 바란다면 잘못되었소. 나는 이미 죽음에 속해 있으니 산자에게 득 될 게 없는 존재요. 그러나 이미 봐 버린 이상 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대고 말겠구려.”
플랑크 경은 무료함에 지쳐서인지, 아니면 어떤 운명을 느껴서인지 모르겠으나 여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