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24
223. 예언의 기사 2
플랑크 마르텐시아스는 반릉 왕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문제는 반릉 왕의 사생아가 넘쳐났고, 왕의 교회에도 이미 그의 사생아들이 너무 많았기에 왕의 교회가 그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반릉 지역에 속한 왕의 교회가 반릉 왕의 자식들로 가득차 버릴지도 몰랐다. 혹시 반릉 왕은 자신의 사생아로 왕의 교회를 장악하려는 심산이 아닌가 의심받을 정도였다.
결국 플랑크는 기부금과 함께 구난기사단에 보내어졌다.
야에가스 신왕의 피를 지닌 플랑크는 구난기사단 내에서 승승장구해 계속해서 지위가 올랐고 마침내 기사단장의 바로 아래, 대장의 직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위대한 삼위의 대천사로부터 플랑크 마르텐시아스에게 하나의 예언이 내려왔다.
‘그대가 마지막으로 서임하는 기사는 기사도의 꽃이 되리라.’
플랑크 마르텐시아스는 그 예언을 듣고 크게 실망했다.
자신이 기사도의 꽃이 아니라는 소리가 아닌가.
그가 아무리 노력하고 수양을 쌓는다 해도, 공적을 이룬다 해도 그는 기사도의 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기사를 위한 징검다리가 될 뿐이라니.
당시에는 그 예언이 가져올 파장을 알지 못하고 그저 야박한 예언에 불만을 품었을 뿐이었다.
그 후 그는 세 가지 미덕 중 지혜를 상징하는 지혜의 기사로서 30년 이상을 종사했다.
그의 휘하에서 구난기사단은 계속 번영을 누렸지만 겉으로 보이는 번영과 별개로 내부는 붕괴되고 있었다. 구난기사단의 백색 마법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던 것이었다.
야에가스 신족들의 사생아들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온 덕분에 백색 마법은 어떻게 구색을 갖출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마력이 약해진다면 향후 예언된 목성의 시대가 다가올 때 과연 기사단으로서 맞서 싸울 수 있을까?
그러나 목성의 시대는커녕 네더스트롬도 요동치지 않는 평화가 길어졌다.
백색 마법을 딱히 쓰지 못하더라도 네더의 마물들이 도전해 오는 일 없이 봉토는 계속 풍년을 맞이하여 기사단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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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브리스 반도는 예부터 옥토로 유명했다.
별다른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작물들이 너무나 잘 자라서 예부터 많은 군왕들이 노리던 땅이었지만 이 휘브리스 반도의 앞에는 네더스트롬이 존재했다.
목성의 인력이 강해져 네더스트롬이 요동치면 마물들이 출몰해 쑥대밭으로 만든다. 야심 찬 군왕들이 휘브리스 반도를 차지해도 그 후 마물들이 침공해 오면 홀로 그들을 막아내느라 모든 여력을 소비하고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그 어떤 군왕도 휘브리스 반도를 차지하지 못하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으니 구난기사단만이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구난기사단은 휘브리스 반도의 농토에서 나오는 소출로 기사단을 꾸리고 대신 네더의 마물들을 상대하는 최전선에 서서 싸워야 했다.
그런데 평화가 지속되니… 전비지출이 사라지고 구난기사단에게 막대한 부가 쌓이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딴마음을 품기 시작했고 플랑크 마르텐시아스 역시 굳이 잠재워두었던 야심이 고개를 드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그의 휘하에 한 젊은이가 들어왔으니 그의 이름은 코헨 라이오네어.
어산더 왕의 전 왕자였다.
그는 사생아가 아닌 적출이었으나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인 왕이 재혼하면서 새 왕비의 가장 큰 정적이 되었다.
왕비의 등살에 이기지 못한 그는 죽음을 면하기 위해 구난기사단으로 출가하게 된 것이다.
플랑크는 이 코헨을 이용해 어산더에 자신의 세력을 심을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그 계획을 성공시켜 코헨을 어산더의 왕으로 복귀시켰다.
새로이 등극한 왕의 스승, 위대한 국사이며 그 자신 또한 고결한 반릉 왕가의 핏줄.
플랑크의 계획은 주요해서 그는 위대한 존재로 명성을 얻었다. 반릉 왕가의 가신들이 와서 그 역시 반릉의 왕으로, 왕좌를 노려보지 않겠냐는 은밀한 타진이 들어올 정도였다.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었다.
그러나… 반릉의 귀족들과 만나고 돌아가는 플랑크를 일단의 암살자들이 습격해 왔다.
황제의 전령, 전령일족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이 암살자들은 놀라운 실력으로 플랑크의 측근들, 지혜 미덕의 기사들을 물리치고 손쉽게 살해했다.
플랑크는 그들에 맞서서 싸웠지만 그때 그들 중에 익숙한 검술과 몸가짐을 가진 이를 발견하고 말았다.
“제정신인가? 코헨! 그대는 왕이거늘 어찌 암살에 직접 가담한단 말인가? 하물며 전령일족들과 손을 잡고?”
코헨 라이오네어가 스승, 플랑크를 살해하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이다.
“스승님께서 마지막으로 서임을 준 건 분명히 저였지요?”
“어리석은! 그대는 이미 어산더의 왕이다! 기사도의 꽃 따위 웃기는 예언 때문에 이런 짓을 하다니 말도 안 되지 않는가? 그리고 스승을 암살하는 자가 어찌 기사도의 꽃이라 할 수 있겠느냐?”
“물론 이건 그저 카드를 하나 더 수집하는 것뿐입니다. 쓸지 안 쓸지 모르지만 좋은 카드는 제 손패 안에 두고 싶거든요. 그리고 지혜의 기사 플랑크 경. 그 칭호가 사실이라면 생각해 보시지요. 왕이 된 제가 자기 마음대로 타국의 왕위계승전에 손대 왕을 갈아치우려는 자를 살려둘 이유가 있는지요?”
코헨은 예언이 아니더라도 플랑크를 제거할 이유가 있었다. 예언은 약간의 흥미를 더해 주는 조미료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받은 금화로는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그대와 스승 간의 일이지.”
전령일족들은 플랑크 경외의 다른 기사들을 물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코헨 라이오네어가, 플랑크에게 전수받은 검술로 플랑크를 겨누었다.
“자, 그럼 스승님. 부디 지혜의 기사의 힘을 보여 주시기를!”
“어리석은!”
플랑크는 자신의 제자와 검을 맞대 보았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왕이 되어 신왕진서를 갖게 된 코헨 라이오네어의 힘을 그가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실망이군요, 스승님. 이렇게 노쇠하고 약하시다니! 이래서야 전령일족과 거래하면서까지 스승님을 제거하려고 한 제 입장이 뭐가 됩니까?”
코헨은 플랑크의 심장을 검으로 꿰뚫으며 태연히 말했다.
“훌륭하군….”
플랑크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스승을 둔 덕분입니다. 다만 늙으셨군요, 스승님은.”
그렇게 플랑크는 제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 시체는 들판에 버려졌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 후 그는 죽음의 기사로 깨어나 죽은 장소를 배회하며 무료함에 고통받게 된 것이다.
자신이 죽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코헨 라이오네어와 구난기사단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데 이 적막한 광야에는 오가는 이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오가는 이가 있어도 대부분 죽음의 기사가 된 플랑크를 보기만 해도 얼어 버려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웬 여자 유령이 나타나 사람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니 호기심 때문에라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플랑크는 사뿐히 절벽을 내려가 새하얀 물보라가 연거푸 일어나고 있는 급류의 강가에 내려섰다.
그곳에는 한 청년이 쓰러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아까 본 그 여자 유령과 닮아 보였다.
“애인이나 연인을 구해 달라는 건 줄 알았는데 혈육이었군.”
청년의 주위로 승냥이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네더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인지 승냥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고, 그 그늘 속에 사람 얼굴들이 떠올라 있었다.
“스으으으.”
“고기….”
“먹고 싶다.”
스산한 소리를 내며 청년의 몸에 접근하려 한 승냥이들이 플랑크가 다가오자 일제히 물러났다.
“…지혜의 플랑크.”
“죽지 못한 레버넌트.”
“자신이 키운 제자의 손에 죽었거늘 어찌해 지혜의 이름을 참칭하면서 부끄러움도 없이 배회하는가?”
승냥이들 속의 그림자가 플랑크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플랑크는 쓴웃음을 짓고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에게선 정돈되지 않은 생명의 냄새가 났다. 언데드가 된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매력적인 냄새다.
아마도 이 청년은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과도 같은 마법으로 어떻게든 그 몸을 기워서 살아났으리라.
‘왕의 기적인가. 아니면 네더의 마법인가? 어느 쪽이건 간에 이 청년에게 남은 날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플랑크가 칼자루에 손을 얹자 승냥이들이 물러났다.
“지혜의 플랑크와 싸울 수는 없지.”
“죽지 않는 자에게 어울리는 것은 안식 없는 삶과….”
“공허한 지루함이겠지.”
플랑크의 신세를 비웃으며 승냥이들은 사라졌다.
“원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런 것들이 별다른 마법도 없이 나타난단 말인가?”
플랑크는 사악한 힘의 영향을 받은 승냥이 떼들을 보고 걱정했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그 역시 죽음의 기사가 아닌가?
자신의 처지를 곱씹으며 그는 청년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청년은 몸을 웅크린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아… 이런.”
플랑크 경은 자신의 주위에 퍼지는 냉기의 아우라를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지었다.
죽음의 기사가 된 그의 냉기 아우라가 환자가 된 이 청년을 오히려 더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었다.
플랑크는 청년 주위에 장작을 주워다가 불을 붙이고 자신은 그 불길에서 물러났다.
“번거롭고 우스꽝스럽군. 부디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다행스럽게도 청년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흠칫 놀라서 플랑크 경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플랑크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당신은? 이 불은 당신이 피운 겁니까?”
“그렇다네, 젊은이.”
“…….”
“아주 어여쁜 아가씨 유령이 당신을 구해 달라고 저 위에서 날 불렀네. 그래서 왔지.”
“실례지만 어르신께서는 살아 계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하하. 바로 봤네. 장님은 아니구만. 나는 구난기사단의 세 미덕의 기사 중 지혜의 기사, 플랑크 마르텐시아스라네. 아니 플랑크 마르텐시아스였다고 해야 하나? 아니야. 아니야. 죽었어도 나는 플랑크라는 내 본질을 유지하고 있지. 여기서 내가 잃은 것은 그래, 구난기사단의 세 미덕의 기사라는 지위를 잃었겠구만. 그러니 그냥 플랑크라 부르게.”
“어여쁜 아가씨 유령이라면….”
“자네를 닮았더군. 허허.”
그 말에 청년이 깜짝 놀라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썼다. 마치 보여선 안 될 것을 보인 사람처럼 행동했다.
“얼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나? 하긴 그런 용모라면 여자건 남자건 꽤 골치 아팠겠구만.”
“아뇨. 이건… 제 얼굴이 아닙니다.”
“자네 얼굴이 아니라니?”
“제 누이의 눈을 빼앗은 거지요.”
“흐음?”
플랑크는 그 말을 듣고 흥미가 동했다.
누이의 눈을 빼앗았다니?
게다가 저 청년이 쓰고 있는 가면과 허리에 찬 휘어진 활은 이 청년이 전령일족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집니다만.”
“잘 되었구만. 밤은 길고 장작은 아직 많이 남았고 이 망령은 이야기에 굶주렸으니 자네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나? 내 자네를 구한 값으로 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