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25
224. 예언의 기사 3
“특이한 망령이시군요.”
“그러니까 자네가 살아있는 거야. 자네는 전령일족이지? 날 죽인 자들 중에는 전령일족도 있었네. 내가 평범한 망령이었다면 자네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
“그래서 이야기를 해 줄 건가 말 건가?”
“물론 해 드려야지요. 하지만 그전에… 뭘 좀 먹어야겠습니다.”
“아 그거라면 걱정 말게.”
플랑크는 물가로 다가갔다. 죽음의 냉기를 두른 그가 물가에서 칼을 휘두르니 생선들이 냉기에 충격을 받아 수면으로 둥둥 떠올랐다.
“조리는 알아서 하게.”
“아, 알겠습니다. 그럼.”
청년은 플랑크가 잡아준 물고기의 내장을 빼고 불에 구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아자딘이 깨어났을 때 그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작은 구명보트는 스스로 해류를 타고 흘러가고 있었으며 마법의 힘이 느껴지는 은은한 안개가 배를 감싸 주위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보트의 선창에 남아 있던 비스킷을 깨서 먹고 빗물을 받아 마시며 배가 육지에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바다에서 고립되니 필연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생각을 하니 회한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의 아라엘이 떠올랐다.
오만불손하며 잔혹하지만 아름답던 아라엘.
그것이 주변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의태였다 할지라도 아자딘이 그것을 이해해 줄 이유는 없었다. 본인은 피해자였고 아라엘은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올려 보면 그때의 아라엘은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아자딘 역시 아라엘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천재라고 여기고 그녀의 마음이 피도 눈물도 없는 금석과 같다고 믿었다.
“으아아아!”
생각이 구석에 몰려 분노가 끓어오르면 아자딘은 이유도 없이 바다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아라엘과 아자딘을 이렇게 서로 죽일 운명으로 내몬 아라가사가 미웠고, 오만불손한 하티르가, 독선적으로 모든 걸 혼자 처리한 아라엘이 미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력한 자신에게 신물이 났다.
사람이 오욕칠정을 느끼면 응당 자신의 존엄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법인데 이 세상은 힘없는 자의 존엄을 짓밟는다.
문제는 지금 아자딘의 상태였다.
아라엘의 희생 덕분에 영구적인 부상들이 회복되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몸 속 마력이 어지럽게 꼬여 버렸다.
애초에 카자스 해서는 양날의 검, 마도서 먹는 마왕이라 불리던 카자스의 방식이다.
본래 아자딘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불완전한 화조풍월의 마도서에 카자스에게 전수받은 무색 마력의 마도서를 격발시켜 발생하는 마력을 근력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힘을 발휘했었다.
그것을 추후 신왕진서 사본을 얻게 된 이후에는 신왕진서 사본까지 집어넣어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아라엘이 익힌 마법들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아자딘의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화조풍월에 복잡한 무색 마력의 마도서, 그리고 인간에겐 다루기 힘들다고 하는 다른 다색 마력들의 마도서들이 즐비해 있었다.
이것이 전부다 아자딘에게 흘러 들어오면서 오히려 아자딘은 마력을 다룰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평소 깃털처럼 가볍게 여겨지던 활시위도 이제는 당기는 데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으음.”
폐인이 되는 건 면했지만 적어도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마도서들을 정리할 때까지는 어디 가서 전령일족이라고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자딘은 즉시 자신에게 침잠해 들어가 마도서들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이치를 배우지 않고 그저 몸에 수납된 마도서들을 다스리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타인을 죽이고 먹어서 마도서를 빼앗은 카자스가 카자스 해서라는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마도서들에게서 억지로 마력을 추출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아라엘에게 기인한 마도서들을 카자스 해서로 충돌시킬 것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짓을 하면 가뜩이나 몸 안에 많이 충전되어 있는 마도서의 마력들이 아자딘의 몸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제어할 수 없는 폭풍을 만들 수는 없다.
“맙소사. 스승이 필요하군. 이건… 나 혼자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아자딘은 당혹감을 느꼈다. 아라가사의 원로원이 무너지고 아자딘이 그들의 역적이 된 지금 누가 아자딘에게 마법을 가르쳐 줄 것인가?
구명보트는 아랑기 왕국의 한 어촌마을에 당도했다.
물고기와 빗물로 연명하던 아자딘은 어촌의 사람들에게 부탁해 음식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너무 친절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자딘에게는 돈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라엘의 눈이 그의 몸에 생겨나고 얼굴의 상처가 없어져서다.
절세 미녀였던 아라엘의 강렬한 보라색 눈동자, 전령일족 초대 두령 하르코니아의 눈을 갖게 된 아자딘에게 많은 사람들은 귀족의 혈통으로 보고 두려워하고, 또 매혹되었다.
외모가 아름답고 기품이 흘러넘치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 만큼 그가 무서운 것이다.
눈이 없는 흉물로 경원시되는 게 당연했던 아자딘에게는 참으로 생경한 평가였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 눈을 부끄러워했다. 누이는 아자딘에게 빼앗았던 것들을 돌려주겠다고 말했지만 아자딘에게 그것은 분명히 아라엘의 것이었다.
아라엘의 생명으로도 모자라 그녀의 육체마저 빼앗았다는 증거여서 그는 다시금 가면을 굳게 썼다.
그리고 반드시 사람들에게 먹은 것, 받은 것을 값을 치르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근처에서 사람들을 해치는 마물들이 출몰한다는 게 아닌가?
*********
“그런데 예상보다 제 힘이 너무 약해져서 그 마물들을 처리하지 못하고 도망치다가 기력이 다해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하하하. 전령일족을 파멸시킨 반역자가 그런 하찮은 마물들을 못 당해냈단 말인가? 약해지긴 약해졌나 보군.”
플랑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플랑크는 아자딘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아라엘과의 융합으로 살아났다고 하지만 아자딘이나 아라엘이나 둘 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융합했을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기이한 운명의 청년이다.
저주로부터 태어나 쌍극상살의 이름을 받고, 누이의 혈육을 받아서 죽을 운명에서 벗어났다니. 무엇보다도 그가 진실한 구난기사단의 신앙인이며 기적을 영접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그는 마법의 스승을 갈구하고 있지. 음. 내가 가르쳐야 하나? 하지만 그것은….’
플랑크는 문득 자신에게 내려진 예언을 떠올려 보았다. 플랑크가 마지막에 서임하는 자는 기사도의 꽃이 된다.
‘영혼 없는 불경자 일족의 그가 기사도의 꽃이 된다니… 말도 안 되는 예언이지. 이 친구는 원기를 너무 소모했어. 지금에 와서 가르친다고 해도 과연 살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의문인 몸이다.’
플랑크는 왕족 출신이다. 아무래도 전령일족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없는 그는 제자에게 배신당해 죽음의 기사가 된 지금도 여전히 보수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플랑크는 지루함에 고문당하고 있었다.
“자네 말이네.”
결국 플랑크가 먼저 말을 꺼내고 말았다.
“스승이 필요하다고 했지?”
“네? 아, 예. 어르신.”
“괜찮다면 내가 가르쳐 주겠네. 자네의 안에 있는 마도서들을 좀 정리하고 힘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겠단 말이지. 명색이 지혜의 기사였으니까 아주 못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네.”
“네? 진심이십니까?”
“물론 거저 해 주는 건 아니고 내 소원을 들어줘야겠네.”
“아 네. 물, 물론입니다.”
“흐흐. 급하구만 젊은이. 내가 뭘 원하는지 아직 이야기도 하지 않았네. 만약 무리한 걸 요구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보통은 뭘 원하는지 말씀 안 하고 확답부터 받으려고 하던데요.”
“플랑크 경이라 부르게. 나도 자네를 아자딘이라 부르지.”
“네. 플랑크 경.”
“자 그럼 아자딘. 우선 제대로 된 천막을 구해 오도록. 천막은 음… 곧 해가 뜨면 그 마물들도 안 나올 테니 저쪽 수풀들을 뒤지다 보면 버려진 걸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플랑크는 자신이 코헨 라이오네어에게 살해당한 곳을 가리켰다.
“예.”
“그리고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텐트 외에도 장기간 지낼 때 필요한 물건들을 구해 오게.”
“알겠습니다.”
아자딘은 플랑크의 말을 듣고 지금이라도 짐을 준비하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멈춰 섰다.
“아 그런데 저 플랑크 경.”
“뭔가?”
“아라엘의 유령은 아직도 있습니까?”
“아니. 없어졌다네.”
“…….”
“유령이라도 만나고 싶은가?”
“그건 잘, 모르겠군요. 누이가 안식을 얻었으면 합니다만, 또 보고 싶기는 하군요. 혈육이라면서 이야기를 별로 나누질 못했어요. 너무… 나누지 않았지요.”
아자딘이 마을로 돌아가 있는 동안 플랑크는 다시 광야에 혼자 남았다.
처음 아자딘을 보았을 때 자신을 암습했던 전령일족의 일원이라 여기고 내심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가 사라지자 자신이 얼마나 긴 고독과 무료함 속에서 살았는지 깨달았다.
아자딘의 인생이야기는 결코 짧지 않았다.
긴 밤을 꿰뚫고 산더미 같은 장작들을 전부 재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걸린 이야기였건만 플랑크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무료함을 달래는 와중에 아자딘이 돌아왔다.
“어르신.”
“플랑크 경!”
플랑크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러자 아자딘이 당황하며 말했다.
“네, 플랑크 경. 낮 동안엔 몸이 투명해지시는군요. 해가 지자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놀랍군. 낮엔 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투명해진다고 하다니.”
“아, 예. 제 시력은 좀 특수한 경우라.”
“눈이 없어도 사물을 보는데 지장이 없었다고 했지? 그럼 지금 눈을 감으면 어떤가?”
“보입니다.”
“그럼 그 특수한 시력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게로군. 좋군. 눈부심 마법등에 당하지 않겠어.”
그렇게 감탄한 플랑크는 옆을 돌아보고 흠칫 놀랐다.
“…….”
어느새 텐트가 펼쳐져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낡아 있지만 분명히 플랑크 자신이 살해당할 때 가지고 있던 그 텐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
문득 아자딘이 자신을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살펴보는 게 느껴졌다.
‘그렇군. 지금 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구나. 나 자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시간이 경과한 게야. 생각해 보니 죽음의 기사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내 마음과 존재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믿어선 안 되겠구나. 하지만 그렇다면….’
아자딘이 자신을 어르신이라고 부른 건 그의 당부를 잊어서가 아니라 가끔 의식을 잃고 배회하는 그를 향해 계속 칭호를 다양하게 불러보는 와중에 걸린 것이리라.
그런 상황인데도 아자딘은 자기변명 하나 없이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위계질서가 투철한 전령일족 출신이라서 그런가?
‘…가르칠 만한 재목인 것 같구먼. 안됐군. 스승도 제자도 멀쩡하지 않으니.’
죽음의 기사와 죽어가는 전령일족의 청년, 그 기묘한 사승(師承) 관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