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28
227. 순례단의 수난 2
삼각진 안에 금화가 놓이자 마법진이 번쩍이며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앗. 이즈밀라 경! 어찌 그렇게 단독으로! 이즈밀라 경께서 짊어지기엔 너무나 무거운 책임입니다. 하다못해 제가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가문의 영광, 필생의 홍복이련만. 어찌 저에게 그런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긴 제가 좀….”
맥도갈이라는 문장관이 계속 떠든다. 이런 상황에서 말이 끝도 없이 주저리주저리 쏟아져 나온다.
“풉. 거참. 기사 새끼들 꼬락서니 하고는. 결국 하급 기사가 덤터기를 다 쓰잖아?”
보고 있던 여도적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풍성한 갈색 머리칼에 주근깨가 있고, 언제나 웃는 듯한 인상을 주는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구난기사단의 노동 교화형을 받은 죄수였다.
“입 조심하시지요. 도적. 한 번만 더 기사단의 명예를 우롱한다면 용서치 않겠습니다.”
“글쎄다? 지금 죽는 건 너희들 같은데? 날 용서치 않으면 어쩌려고?”
“맥도갈 경. 그녀에게 훈계를 하세요.”
“알겠습니다.”
“…잠깐. 나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을래?”
여도적은 맥도갈이 자신이 갇혀 있는 수레 앞으로 다가오자 생각을 고쳐먹은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핏덩이로 만들어진 우박이 떨어지는 기세는 점차 거세어지고 있었다.
죄수들이 철창 마차 안에서 몸을 웅크리는 사이 짙은 안개가 그들을 엄습했다.
*********
한 유령이 밤의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케림 산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산과 들을 질주하며 밤의 어둠을 밟고 달리는 이 유령은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빨랐다.
강과 시내를 뛰어넘는 이 유령 산양의 잔등에는 한 청년이 매달려 있다.
청년의 이름은 아자딘, 황제의 전령이며 방금 구난기사단의 서임을 받은 자다.
“빠른 건 좋은데 춥군!”
아자딘은 새의 가면을 쓰고 버릇대로 케림 산양의 털에 몸을 파묻듯 엎드렸다. 추운 날, 케림 산양을 타고 다닐 때는 이렇게 그 털에 몸을 묻으면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유령 산양의 경우는 오히려 뼛속까지 시리는 한기가 찾아온다. 화들짝 놀란 아자딘은 유령 산양의 털에서 손을 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이번엔 차가운 바람이 엄습한다. 겨울은 끝났지만 추위는 여전히 남아서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니 보행으로 걸어 다닐 때는 모르나 화살처럼 바람을 가르며 나아갈 때는 그 위세가 살을 베어낼 듯하다.
“이도저도 안 되겠군.”
아자딘은 바람을 최대한 피하며 유령 산양의 등에 매달렸다.
그때 유령 산양이 멈춰 섰다. 저 멀리서 사람들의 비명과 기합 소리, 그리고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찾아왔나?!”
그 순간 그가 타고 있던 유령 산양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타고 있던 산양이 사라지면 보통은 땅에 곤두박질치겠으나 아자딘은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사뿐히 착지했다.
“아무래도 잘 찾아온 것 같네.”
아자딘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쫓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피의 우박이 쏟아지고 짙은 안개가 깔린 가운데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근 마을 묘지의 시체를 파낸 것인지 썩어 들어간 시체들은 곤봉과 돌, 곡괭이와 쟁기 등, 제대로 된 무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임시 무장을 들고 몰려왔다.
이 정도로는 단련된 기사단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지만, 위험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피우박들 속에서 기괴한 붉은 거머리가 꿈틀거리며 움직여 사람들의 몸에 달라붙는다. 게다가 사방이 어둡고, 짙은 안개가 깔려 있으니 덤벼오는 자들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별 생각 없이 언데드들을 상대하다가 갑자기 빈혈이 심하다고 생각해서 보면 어느새 팔다리에 커다란 거머리가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윽.”
“이, 일단 퇴각하자!”
순례단장 벨주안이 외쳤다.
“죄수들은 어쩝니까?”
값비싼 갑옷으로 무장한 부잣집 영애. 이즈밀라가 묻자 순례단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게 진짜. 이 상황에 왜 그걸 물어봐. 내 입으로 버리자고 해야 해?!’
벨주안은 답답한 말만 해대는 부잣집 영애에게 분노마저 느꼈다. 하지만 세흐나트 주교가 순례를 떠나기 전 넌지시 그에게 일러둔 말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즈밀라 경은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 달라.’
아마도 높으신 분의 혈육이겠지. 어쩌면 세흐나트 주교의 딸일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해쳐 드셨나 보군. 세라마이트 장검에 아주어 스틸 방패라니. 갑옷도 드워프제고.’
그런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즈밀라에게 화가 나더라도 그걸 드러낼 수는 없었다.
“감옥을 열어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감옥 문을 열라는 말씀이시지요? 비록 아직 구난기사단의 숭고한 이념과 아름다운 교리에 의한 교화가 끝나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보장할 수 있도록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들 내면의 선을 믿고 자유를 주기로 허락하신 거군요.”
“…….”
문장관 맥도갈의 말은 너무나 길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말하면서 감옥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죄수들은 오히려 기겁했다.
“히익.”
“무, 무기도 없이 나오라고? 우리 보고 죽으란 겁니까?”
“무기라면 여기, 이것을 준비하였습니다.”
맥도갈이 감옥 마차 바닥에서 뭔가를 던져 주었다. 그것은 식사할 때 쓰는 포크였다. 금속도 아니라 나무로 되어 있으니 차라리 맨주먹이 더 나을 판이다.
“이걸 무기라고 주는 거요?!”
“물론이오. 교화소에서는 식사 때만 제공하고 그 후에는 걷어갑니다. 왜냐면 이 무기들로도 충분히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오. 이처럼 감옥에서 악의 마음에 찌든 죄수들끼리 서로의 폭력을 투사하기 위한 도구일지라도 그대들이 교화되고자 하는 마음과 미덕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틀림없이 악을 멸하는 위대한 운명의 도구로써 큰 힘을 발휘할 것이오. 믿고 따르시오. 그리고 삼위의 대천사의 이름으로 자비가 있기를 바라시오. 아아, 온다. 와! 오오, 자비로우신 천사들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피소서! 천상의 불꽃이 악을 태우고 어둠을 살라 빛을 비추니….”
“으아! 개같은 구난기사단!”
맥도갈이 찬송가를 부르며 흥분하자, 죄수들이 분노하며 감옥 밖으로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뒤를 언데드, 사냥개가 뒤쫓는다.
“이런!”
그 모습을 본 이즈밀라가 죄수들을 구하려 했지만 그런 그녀를 맥도갈이 제지했다.
“그만두십시오, 이즈밀라 경! 저들은 미끼입니다. 미끼를 위해서 당신이 나서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목표는 저라고….”
“죄수들은 당신을 떠나야 오히려 안전해집니다. 저들을 구해 주면 저들이 여기에 들러붙게 되고 같이 죽게 된단 말입니다.”
“아….”
이즈밀라는 그 말을 듣고 그제야 칼을 거두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힘을 아끼십시오. 이즈밀라 경.”
“그럼 퇴각!”
결국 순례단은 죄수 마차를 버리고 높은 언덕길을 올랐다.
그 후 성기사단은 적들의 공세와 마주칠 때마다 죄수와 농민들 일부를 버리면서 그들을 미끼로 도망쳤다.
하지만 점점 고지대로 몰리고 있었다.
안개가 밑으로 깔리기에 고지대 쪽으로 피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을 공격하는 적들 역시 예상하고 있는 바였다.
“단장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즈밀라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에잇! 나도 알고 있어! 어쩌란 말이냐?!”
“차라리 적들과 여기서 결판을 짓도록 하지요. 언제까지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허튼소리!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꼴을 봐도 이놈들은 최소한….”
그러나 순례단장은 그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퍼억!
엄청난 위력의 투창, 발리스타에서나 쓸 법한 커다란 철창이 벨주안의 몸통에 명중해 그를 꼬치처럼 꿰어 버린 것이다. 호스피탈러-팔라딘이란 지위에 있는 남자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즉사해 버렸다.
“다, 단장님!”
“위험합니다! 이즈밀라 경!”
맥도갈이 나서려 하는 이즈밀라를 억눌렀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로 또 하나의 투창이 날아갔다.
-카캉!
투창이 화강암 바위에 맞아 불꽃이 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멀리서 바라보는 번개 같았다.
그 엄청난 위력에 모두들 겁에 질렸다. 단 한 명, 이 투창에 목숨을 위협받았던 이즈밀라 장본인을 제외하고 말이다.
“적들의 사격이 너무나 강력하니 머리를 내미는 것은 곧 자결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사단의 율법은 자결을 금하고 있으니 부디 현명한….”
“이 사악한 놈들!”
이즈밀라는 만류하는 맥도갈을 밀쳐내고 세라마이트 장검을 뽑아들자, 그녀의 장검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성스러운 불꽃, 악을 불사르고 정의를 실천한다는 천상의 불꽃이 검에 깃든 것이다.
악의 세력이 준동하는 어둠의 시대. 저 검의 불길은 그것만으로 신성한 길잡이처럼 보일지 모르나….
“미쳤나.”
여자 도적이 튀어나와 이즈밀라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쐐액!
또 다른 투창이 그녀를 노리고 날아왔다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아주 쏴 달라고 작정을 하지? 불 꺼, 불!”
“하지만….”
“야! 동생!”
“응. 누나.”
“방향 저쪽이다!”
“알겠어.”
여자 도적의 동생, 거구의 남자가 벽에 꽂힌 투창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 구했는지 긴 작대기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에 밧줄을 묶어 만든 매듭에 투창 끝을 걸치더니 크게 몸을 비틀어 힘을 축적하는 게 아닌가?
“흡!”
거구의 남자가 투창을 던지자 안개를 뚫고 투창이 날아갔다.
-퍼억!
“꿰에에엑!”
저 멀리서 흉측한 비명이 들려왔다.
“좋아.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완전 유령은 아닌가보군. 그럼 쳐죽일 수 있지.”
여자 도적은 그리 말하고 방금 죽은 순례단장의 몸을 뒤져 장검과 지갑 등을 챙겼다.
“뭐 하는 겁니까?”
“무기가 필요하잖아.”
“아니, 그런데 지갑은 왜!?”
“그야 당연히 가족에게 유발을 전달하기 위해서 아니겠어?”
“네? 그래도….”
말은 그럴싸하지만 도적질로 잡힌 이 여자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따지자니 이즈밀라로서는 우길 방도가 없었다.
“좋아. 꽤 좋은 칼이군.”
여자 도적이 큰 칼을 동생에게 넘기고 자신은 손도끼와 단도를 챙겼다.
“야. 공주님!”
“네?”
“대답하는 걸 보니 자기가 공주라고 자각하고 있나 보네.”
“아,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수련기사일 뿐입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널 도울 테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사면해 주고 보수도 줘.”
“네?”
“지금 죄수 중에도 꽤 실력 있는 놈들이 있거든? 그 녀석들의 협력을 사란 말야.”
물론 자신들 역시 이득을 볼 것이다. 아니, 제일 먼저 기사들을 돕고 있으니 가장 큰 보상을 받게 되겠지. 그러나 여자 도적은 그런 부분은 빼 두고 말을 꺼냈다.
“그런 건 제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 단장님이….”
“그 단장이 죽었으니 네가 제일 높은 자리일 거 아냐?”
“아닙니다. 저는 에란트일 뿐인데. 저 말고도 고참 기사들이….”
이즈밀라가 그리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성기사들이 분명히 함께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들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있다고 그래? 그 고참 기사들이?”
“아까는 분명… 모두들! 어디 계십니까?!”
그러나 대답은 없다. 이미 모든 성기사들이 그녀와 맥도갈을 남기고 죽거나 도망친 것이다. 기실 이 습격 전부터 그들은 순례단에서 좀 멀어졌다 싶으면 야음을 틈타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