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29
228. 순례단의 수난 3
구난기사단의 정기 순례단은 곡물 판매를 위한 호위 병력을 겸하고 있어서 기병 분전대 1개분의 병력으로 이뤄져 있었다.
단장 호스피탈러-팔라딘 1명.
부단장 호스피탈러-배너로드 1명.
일반 단원 호스피탈러-나이트 7명
하위 단원 호스피탈러-에란트 7명.
그리고 경기병인 스콰이어가 15명해서 기병 30명으로 이뤄진 1개 기병분전대였다.
작은 영지 한두 개쯤은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병력이다. 여기에 기병들을 따라다니는 보병들까지 합치면 백작이나 공작 같은 대귀족들도 골머리 썩힐 정도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남은 건 호스피탈러-에란트인 이즈밀라와 스콰이어인 문장관 맥도갈 둘뿐이었다.
“그게 무슨….”
이즈밀라는 성기사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때 안개 너머로 사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현명한 선택이로군.”
“이즈밀라! 구난기사단의 이즈밀라! 네가 투항하고 따라와라. 그러면 끝날 일이다.”
“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따라오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그게 무슨….”
그러나 그때 여도적이 이즈밀라를 제지했다.
“멍청아, 대답하지 마. 상대는 소리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과연 투창이 이즈밀라의 목소리 근처를 향해 날아왔다.
여도적과 그 동생이 빠르게 방패를 들고 이즈밀라를 방어했는데 이번 투창은 정확하게 날아오지 않아서 인근 바위에 맞고 불꽃을 튀겼다.
“어이쿠. 미안하네.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네. 그저 다치게 해서 끌고 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고.”
“죽이려는 의도는 없으니 안심하게. 이즈밀라 양.”
안개 너머의 상대는 그렇게 말하며 비웃었다. 마치 구석에 몬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그들 자신의 우위를 확신하려는 행동이었다.
이 상황에서 여도적은 이즈밀라를 종용했다.
“자, 그래서 말인데. 성기사 공주님. 우리에게 보수를 약속하겠어?”
“하지만 저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 권한은 막강할걸? 아니면 뭐야? 보수도 약속하지 않고 그저 우리가 헌신하길 바라는 거야? 우리도 도망치는 게 낫겠는데 그럼?!”
“안 돼요! 지금 뿔뿔이 흩어지면 그게 바로 적이 노리는 거라고요!”
그때 죄수들의 감옥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비쩍 말라비틀어진 남자는 어느새 시체들로부터 단도를 집어 들었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당신들이 황제의 금화를 사용한 걸 봤으니 소인이 혈마법 좀 쓴다고 뭐라 할 자격은 없겠지.”
“그렇지.”
“아니, 잠깐만요.”
이즈밀라는 당황했지만 어느새 순례단에서 자신과 맥도갈, 둘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피우박과 안개는 혈마법이오. 우리를 찢어놓기 위해 사용한 마법인데 효과가 엄청 강력하군.”
비쩍 마른 죄수 마법사의 말에 여자 도적이 물었다.
“그래서? 저들이 당신보다 잘난 마법산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요새 혈마법이 점점 강해지고 있소이다.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는 거겠지.”
죄수 마법사가 그리 말하고 자신의 손가락 끝을 단도로 베어서 피를 냈다.
“덕분에 소인의 혈마법도 강해지고 있소.”
그의 피에서 붉은 거미가 나타났다. 거미들이 빠르게 흩어지면서 근처 거머리들을 공격해 뜯어먹고 그 피를 빨아 숫자를 늘리기 시작한다.
“…….”
그 모습을 보며 이즈밀라는 사색이 되었다.
혈마법사에 이 도적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동생이라는 하프 오크 거인까지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다.
“자, 약속하라고. 성기사 공주. 보수를 약속하지 않으면 우리도 도망가 버릴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절 도우면 당신들을 사면하고 보수로 종사의 지위를 약속하지요. 다만 공주라고 부르지만 마세요.”
“아. 종사? 좋다. 그거.”
하프 오크 남자가 누나에게 받아든 칼로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후려갈기며 좋아했다.
“뭐가 좋아? 그래 봤자 호스피탈러들 따까리인데.”
“종사에겐 말 한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집과 농노 세 명이 주어지오. 괜찮은 보수요. 정착할 생각이 있다면 나쁘지 않지요.”
혈마법사가 그리 말하며 하프 오크에게 손짓했다.
“그런데 피의 거미는 내 사역물이니 터트리지 마시오 좀. 콜록, 콜록.”
“하지만 나 거미 싫다. 이게 내 몸 타고 올라와. 싫다.”
“내 거미들은 당신 몸에 붙은 거머리를 공격해서 돕는 거요. 그걸 터트리면 소인이 곤란하오.”
“맞아, 누나?”
“사실이야. 거미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참아 봐.”
여도적이 그걸 확인시켜 주었다.
“자, 그럼 어떻게 도망치느냐인데….”
“황제의 금화를 썼으니 전령이 오지 않을까요?”
“황제의 전령이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을 리가 없잖아. 최근엔 저어기 코라사르를 한바탕 털어먹었다고 하던데.”
그때 갑자기 피 안개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크억!”
“으악!”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더니만 하늘에서 쏟아지던 피우박이 잠잠해졌다.
“?!”
“무슨 일이지?”
“그, 글쎄?”
그런데 잠시 후 안개 너머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혹시 황제의 전령 부르신 분?”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피 안개를 뚫고 들려왔다. 마치 번잡한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걸 알리는 점원의 목소리 같은 태연함에 모두들 얼어붙고 말았다.
“어. 여기….”
별생각 없이 이즈밀라가 일어나려고 하자 여도적이 그녀를 막았다.
“미쳤어? 부른다고 튀어나가는 게 어딨어?”
“하지만 황제의 전령이 아닐까요?”
“몰라. 거기 혈마법사는 어떻게 생각해?”
“…저자가 소인의 거미들을 죽이고 있소. 엄청나게 빠른 속력으로 줄고 있는 걸 보니 상당한 강자요.”
“그래?”
“보아하니 다른 녀석들이 물러나고 있소이다. 다만 저들의 속임수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는 사이 안개도 사라지고 있었다. 안개 마법이 소멸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술자를 제거했거나 아니면 술자가 마법을 거두며 그들에게 모략을 걸고 있는 것이리라.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때 그들의 앞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있었군.”
새의 가면을 쓴 청년이 다가왔다.
“야! 저 녀석 잡아!”
“응! 누나!”
하프 오크 청년이 일어나서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도적이 몸을 옆으로 날려 각을 크게 만들며 손도끼를 투척했다.
이 손도끼에 대응하면 하프 오크의 돌진에 무방비하게 된다. 반대로 하프 오크의 돌진에 대응하면 이 손도끼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새의 가면을 쓴 청년은 날아오는 손도끼를 가볍게 손으로 잡아채고, 자신의 칼은 뽑지도 않은 채 칼집 째로 들어서 손잡이와 핸드가드 부분으로 하프 오크의 무지막지한 검을 받아냈다.
거목도 베어낼 도끼질 같은 무지막지한 힘이 담겨 있는 공격이었는데 청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칼자루 부분으로 검을 받아내더니 몸을 낮췄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부웅!
하프 오크의 거구가 하늘을 날더니 꼴사납게 땅에 처박히는 게 아닌가?
상대의 힘을 이용해 집어던진 무예의 극치에 달한 기술이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요술처럼 보였다.
“윽!”
여도적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며 양손의 단검과 함께 입에서 침을 뱉었다. 작은 쇠구슬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가 청년의 가면을 노리는 동시에 좌우에서 현란한 칼질을 그었지만….
청년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칼을 내밀었다.
이번에도 칼집에서 칼을 빼지 않고 내민 것인데 별로 대수롭지 않은 반응으로 보였지만 여도적이 입에서 뱉은 쇠구슬이 칼자루에 튕겨나간다.
그리고.
-쐐액!
청년이 칼집 째로 칼을 비틀자 좌우에서 날아오는 참격이 허망하게 걷어졌다.
“응?!”
그리고 청년의 팔이 여도적의 턱으로 향하더니 중지를 구부렸다가 딱밤을 날려 그녀의 턱을 때렸다.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공격이었지만 갑자기 여도적의 눈이 핑그르르 돌았다.
“어?!”
여도적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누, 누나!”
하프 오크가 기겁하며 몸을 일으켰다.
“누나?”
칼을 뽑으려던 청년이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라 손을 멈췄다.
“그만하세요!”
그때 이즈밀라가 나섰다.
“제가 당신을 부른 게 맞습니다! 황제의 전령!”
“흠. 그러면. 이 녀석 좀 진정시켜 봐.”
청년은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하프 오크를 피했다.
“으엉! 이 자식이 우리 누나를!”
하프 오크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덤벼들었다. 칼을 무슨 곤봉처럼 휘두르는데, 바위를 치고 칼날이 부러지며 그 파편이 튀어 자신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부러진 칼을 장작 패듯 휘두른다.
“야. 그만 쿤타치! 간식 없다?!”
“누, 누나?!”
간식 없다는 말이 하프 오크가 흠칫 놀라서 공격을 멈췄다.
“아, 진정되었나? 다행이군. 누가 의뢰주인지 몰라서 안 죽이려고 했는데 슬슬 짜증나던 참이었거든.”
청년은 그리 말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황제의 전령 제1령 아자딘이다.”
“제1령?!”
“뭐 황제의 전령 중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지. 당신들은 운이 아주 좋아. 때마침 내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죽을 뻔했으니까.”
“아하. 그래서.”
혈마법사가 손뼉을 쳤다.
“다행이군요. 소인은 실력에 나름 자신이 있었소이다. 솔직히 당신이 황제의 전령 중 최하위라던가 그랬다면 자신감을 잃을 뻔했소.”
“최하위였다면 말인가?”
스스로 아자딘이라 소개한 전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혈마법사가 전령일족들에 대해서 오만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게 어이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런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의뢰주는 누구지?”
“소인이오.”
10대 후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섰다. 문장관 맥도갈이 전령의 고용주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맥도갈 님?”
“이즈밀라 경. 황제의 금화를 사용해 저자를 부른 것은 순례단을 위한 숭고한 선택이셨습니다. 하지만 기사단 내에서 타인의 힘을 빌리는 것, 그것도 하필이면 황제의 전령이라는 악마 같은 존재들에게 의지한 것은 추후 분명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책임은 저같이 하찮은 것에게 맡기시고 이즈밀라 경은 그 경력에 한 치의 더러움도 없이 깨끗한 길을 가셔야 합니다.”
구난기사단은 왕의 교회처럼 황제의 전령을 교리로 금하지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선입견은 그대로 공유하고 있었다.
구난기사단의 구성원들도 결국 휘브리스의 백성들.
신왕 살해자,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는 전령일족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이유가 만무하다.
“하지만 의뢰주는 그 아가씨가 맞는데? 이제 보니까 확실히 알겠군.”
전령은 의뢰주를 알아보는 힘이 있는지 이즈밀라를 가리켰다.
“네. 제가 금화를 사용한 의뢰자 본인 맞습니다.”
이즈밀라가 그리 말하자 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신들을 구해 주었으니 의뢰는 완수된 거지?”
“아닙니다. 저희를 무사히 탈출시켜 주어야….”
“금화 한 닢 받은 것만큼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욕심도 많군.”
아자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