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0
229. 순례단의 수난 4
황제의 금화가 시중에서 비싸게 유통되다 보니 황제의 금화를 사용하면 무슨 옛날이야기의 멍청한 악마를 부리는 것처럼 온 세상 부귀영화를 다 가져다 줄 때까지 전령을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황제의 전령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전령일 뿐이다. 목소리를 전하고 의지를 전한 것으로 우리 할 일은 다한 셈이지. 더 부려먹고 싶으면 금화를 추가로 가져와.”
“그런….”
이즈밀라는 당황했다.
그녀가 황제의 금화를 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후원자에게 받은 것이라 이제 와서 추가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아하니 금화는 더 없나 보군. 그럼 황제의 전령으로서는 여기까지 할까.”
아자딘이란 청년은 그리 말하고 자신의 장검을 뽑았다.
“어?”
문장관은 청년이 뽑아든 장검을 보며 당황했다.
“왜요?”
“세, 세라마이트 장검입니다. 기사단만이 구할 수 있는 검인데 어찌해서 황제의 전령의 손에 들려 있는 걸까요? 설마 모조품…이라기엔 확연히 진품으로 보이는데.”
“그게 뭔데?”
여도적이 물어보자 문장관이 대답했다.
“세라마이트 장검은 은과 천사의 피를 섞어서 만든 연금금속입니다. 악을 멸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고 정당한 구난기사의 손에서는 천상의 불꽃을 발해 악을 뼛속까지 태워 버리지요. 또한 그 칼날은 생명체와 같은 힘이 있어서 날이 상해도 스스로 조금씩이나마 수복되곤 합니다. 칼날 강도나 예리함 자체는 아주어 스틸보다 떨어지고 잘 만들어진 강철 보검보다 약간 무디다는 평이 있지만 자체 수복능력과 천상의 불길 덕분에 병장기로서의 평가는 최상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구난기사단에서만 제조되고 보유하는 병기라서 아무 기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세라마이트 장검은 구난기사단 역사상 아직 150자루가 되지 않습니다.”
“…….”
아자딘은 그 설명을 듣고 자신의 손에 들린 세라마이트 장검을 살펴보았다. 날의 예리함이나 강도에서는 별 감흥을 못 받았었는데 이게 그렇게 뛰어난 칼이란 말인가?
“자세한 설명 감사하군. 그럼 이 다음은 구난기사단의 형제로서 함께 하도록 하지?”
“뭣?!”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나도 구난기사단에 입단하고 싶은데.”
“…….”
“뭐!?”
문장관 맥도갈과 수련기사 이즈밀라는 황당한 소리를 꺼내는 황제의 전령에게 경악하고 말았다.
“구난기사단에 입단하겠다니. 당신이 말인가요?”
“그래. 왜? 안 되나?”
“구난기사단은 그렇게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명예롭고 정의로운 기사들의 모임이란 말입니다.”
문장관이 기를 쓰며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여도적이 초를 쳤다.
“부락의 떨거지들이랑 감옥에 있던 범죄자들까지 끌어가 놓고선 이제 와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우기는 건 너무 추한데?”
“그건….”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인 문장관의 입이 멈췄다.
너희들은 구난기사단에 들여놓는 게 아니라 농노로 쓰려고 그랬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정기 순례에서 순례단이 사람들을 끌고 오는 명분은 어디까지나 구난기사단의 모집이었다.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기사단 소유의 농장에서 일을 하는 농노가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대놓고 일손이 부족해 노예로 끌고 간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째서 구난기사가 되려고 하시죠?”
이즈밀라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지혜와 용기, 그리고 자비의 미덕하에 성실하다면 누구나 구난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들었다. 삼위의 대천사가 이 땅의 민중들을 위해 스스로 내려와 모든 힘을 소진하고도 땅에 남아 사람들을 구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들을 흠모하고 구난기사의 일원이 되고 싶었지. 왜?”
“아니 그건….”
지금에 와서는 구난기사들조차 믿지 않는 전설이 어이없게도 영혼 없는 불경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이즈밀라지만 아자딘이 하는 말은 진심이라기보다 조롱처럼 들렸다.
“어, 어떻게 하죠?”
“절대로 안 됩니다. 이즈밀라 경. 이자는….”
영혼 없는 불경자다.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문장관이었지만 간신히 말을 참았다.
생각해 보면 이 남자의 도움이 없다면 순례단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방법도 없다. 아니, 당장 거절할 경우 이자가 돌변해서 공격을 해 온다면?
“일단 순례단에 가입시키는 게 어때? 지금은 당신이 순례단장이잖아?”
여도적이 이즈밀라와 아자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순례단에 가입시켜도 기사가 되는 건 그 다음에 정할 일 아닌가? 그렇지?”
“그, 그런.”
이즈밀라는 자신이 순례단장이 되었다는 여도적의 말에 당혹감을 느꼈다.
아직 모든 면에서 경험이 부족한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순례단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이 소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다니.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전령일족의 아자딘. 당신을 일단 저희 순례단에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즈밀라는 졸지에 순례단의 임시단장으로서 이런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거 참 앞날이 깜깜하군.’
아자딘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수련기사의 불신 가득한 표정을 보며 당혹감을 느꼈다.
영혼 없는 불경자.
이 단어가 갖는 무게가 새삼스럽게 아프게 다가온다.
아라가사들은 이 휘브리스에서 철저한 이방인이며 또한 불가촉천민이다.
야에가스 신왕들을 섬기는 왕의 교회가 아니라 그 대척점에 있는 구난기사단에서도 아라가사에 대한 대접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구난기사단은 왕의 교회와 경쟁 관계라서 좀 나을 줄 알았더니만 역시 휘브리스인들이라 이건가. 보아하니 아직 브투마의 일이 완전히 전해진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부터 이렇군.’
브투마에서 아라가사들이 대학살을 자행하고 사악한 악의 세력들과 손잡고 끔찍한 사술을 저질렀다는 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도 적개심이 대단하다.
이런데도 구난기사단에 입단해서 저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포기할까?
플랑크 경에게 받은 세라마이트 장검을 돌려주고 그냥 모르는 체 떠나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후에는 무엇이 있지?’
알디스를 잃고 아라엘을 죽게 만든, 한 비루한 영혼만이 남을 뿐이다.
아라엘은 무슨 의도로 플랑크 경과 아자딘을 만나게 했던가?
아자딘은 별로 말도 많이 섞어보지 못한 자신의 누이를 떠올리곤 세라마이트 장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럼 내 입단을 허락한 걸로 알지. 이즈밀라 경. 당신의 이름으로 행한 일이니 당신의 명예를 걸고 이 약속을 지켜 주었으면 좋겠군.”
“당신이 기사단의 품위를 지키고 사명을 다한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그 세라마이트 장검은 어디서 난 거죠?”
“이즈밀라 경, 그걸 물어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상대는 무도하기 짝이 없는 황제의 전령, 금화의 악마,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는 자입니다. 틀림없이 선량하고 고결한 기사를 죽이고 빼앗았을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세라마이트 장검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은 교단에서 인정한 성기사들 뿐이니 말입니다.”
문장관 맥도갈이 아자딘에게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이즈밀라에게 소곤댔다. 다만 아자딘은 귀가 좋았기에 다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순례단에서 세라마이트 장검을 가진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근처에 다른 기사들이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즈밀라와 문장관이 별 의미 없는 귓속말을 나누는 걸 본 아자딘이 그들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한마디 했다.
“이건 돌아가신 스승님에게서 받은 거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아.”
“출발 준비나 하도록 하지. 여기 계속 남아 있는 건 좋지 않아. 장소를 이동하자고.”
“알겠습니다.”
이즈밀라는 아자딘이 자신들의 귓속말을 다 듣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걸 보니 염치는 있는 모양이다만. 저 문장관은 뭔가 아는 눈치인데?’
아자딘은 수련기사보다 더 알고 있는 게 많아 보이는 문장관을 눈여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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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끔찍한 학살의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은 도망치던 죄수와 농민들, 순례단에서 농노로 끌고 가려 했던 이들이었다.
기사들은 말을 타고 있어서인지 다들 잘 도망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습격자의 시체도 있었다.
“이건….”
이즈밀라는 투창 뭉치를 짊어든 채 죽어 있는 시체를 발견했다.
목이 깨끗하게 끊어진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쓰러져 있는데 설마 이 남자가 투창을 발사한 것일까?
“웨어 랫이었군.”
그리 말한 아자딘은 남자의 시체를 뒤져 인장을 하나 꺼내 보였다. 쿠르트 신족 중 웨어 랫의 신, 메제리의 성표였다.
“사교도들이라고요? 왜 사교도들이 순례단을 공격했을까요?”
“그렇다기보다는 사교도로 위장한 암살단이겠지. 만약의 경우에도 뒤집어씌우기 쉬우니까. 뭐 이 녀석들은 실제로 사교도겠지만 돈을 주면 사교도도 고용할 수 있지 않겠어?”
아자딘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여도적이 시체를 뒤져 필요한 것들을 챙겨 동생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매 순간, 시체를 뒤져 알뜰살뜰 챙기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평소 뭘 먹고 살았고 어쩌다가 감옥에 잡혀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 알 것 같다.
아자딘은 여도적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당신들. 기사단 소속은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이 뭐지?”
“아, 나 말야? 나는 카밀라라고 해. 내 동생은 쿤타치.”
“소인은 버나드라고 하오.”
“그래. 만나서 반갑군. 그래서 말인데 이 습격이 왜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여도적 카밀라가 히죽 웃었다.
“보아하니까 이 아가씨가 꽤 귀한 몸인 것 같아. 이 아가씨를 노리고 순례단을 습격한 것 같은데.”
“죽이려고 했나?”
“아니, 죽이려고 한다기보다는….”
“잠깐! 그건 교단의 중요한 행사인데 어찌 외부에 말하려 하는가?! 당신은 아직 교화가 덜된 무도한 죄수의 신분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오! 역시 이래서 기사단의 교화가 필요하다니까! 부끄러움도 모르고 남의 재물을 탐하다 죄수가 된 자가 이제는 기사단의 비밀을 공공연히 떠들다니!”
맥도갈이 분노해서 여도적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때 여도적의 동생, 하프 오크 쿤타치가 나섰다.
“너, 누나 욕했다? 욕한 거 맞지?”
“아, 아니 이….”
맥도갈이 대꾸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하프 오크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누나를 욕하는 놈! 혼내준다!”
하지만 그때 아자딘이 끼어들었다.
“자자! 그만!”
아자딘은 바위도 분쇄할 것 같은 하프 오크의 주먹을 양손으로 받으며 발로는 맥도갈을 밀어차서 둘의 거리를 벌렸다.
-화조풍월, 카자스 해서의 청일송.
아자딘의 몸 안에서 들끓는 마도서들을 지워 나갔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위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식한 하프 오크의 힘을 통제하기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