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1
230. 북방 아라가사 1
“으억?!”
주먹을 휘두르던 힘이 땅 쪽으로 방향이 변화하면서 하프 오크가 자기 기세를 억누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자딘은 그 하프 오크의 목덜미, 옷자락을 잡고 빙글 돌려서 거구의 그를 무슨 새끼 고양이 다루듯 돌려서 다시 세웠다.
“으엉. 누나. 이 녀석 요술 쓴다. 무서워.”
“아, 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내가 다 부끄러워지려고 하네.”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저 거구의 하프 오크를 새끼 고양이 다루듯 하는 아자딘의 재주에 다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황제의 전령. 신왕살해자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니로군.’
‘무섭네. 한번 날뛰면 아무도 못 말리는 쿤타치를 어린애 다루듯 하다니.’
수련기사인 이즈밀라도 아자딘에 대해서 껄끄러움을 느꼈다.
‘계속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위압적이야. 역시 황제의 전령인가.’
그때 아자딘이 이즈밀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기사 아가씨는? 뭐 짚이는 게 있나?”
아자딘은 까칠한 문장관 대신 어수룩해 보이는 이즈밀라를 추궁해 보기로 했다.
“저에게는 세흐나트 주교님의 사생아라는 의혹이 걸려있습니다. 어쩌면 저를 이용해서 기사단의 드높은 명예를 흠집 내려 함일지도….”
“풉.”
이즈밀라가 말하는 도중에 여도적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무례하구나!”
문장관 맥도갈이 참지 못하고 여도적을 노려보았지만 여도적은 물론이거니와 혈마법사까지 납빛 얼굴에 웃음기를 감추지 못했다.
모두들 웃음을 터트린 대목은 ‘기사단의 드높은 명예’ 부분이었다.
구난기사단이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이는 구난기사단 내에도 얼마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물정모르는 수련기사 아가씨는 구난기사단의 명예에 자신의 출생에 대한 구설수가 누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쩐지 수련기사치고는 장비가 너무 좋더라니.”
“뭐 소인은 그녀가 북황제의 딸이라 해도 놀라지 않았을 거요.”
“북황제? 북황제가 뭐지?”
황제를 언급하는 혈마법사 버나드의 말에 아자딘이 깜짝 놀라 물어보았다.
“아, 설마 그걸 모르오? 어산더의 왕 코헨 라이오네어가 북부 연맹을 창설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했다오.”
“코헨 라이오네어.”
아자딘은 그 이름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지혜의 플랑크 경을 살해한 플랑크 경의 제자, 어산더의 왕 코헨이 어느새 황제를 자처하는 처지가 된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플랑크 경 사망 후 꽤 시간이 경과했다는 건데. 그에게 들은 이야기에 시간 경과를 가산해야 할 것 같군. 보아하니 플랑크 경은 죽음의 기사가 되면서 시간감각이 없어진 모양이야.’
황제의 전령으로 임명된 아라가사들은 자신이 담당한 구역에 대해서 꽤 세밀하게 자료 조사를 하고 공부한 후 임무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이 담당한 구역의 지리와 정세는 꽤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자신이 담당하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만큼의 지식이 없기 마련이다.
아자딘의 경우 본래 코라사르 지역을 담당했으니 이곳 아랑기와 어산더 지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부족했다.
“지원을 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지?”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해안도시 콕스할이오. 주교구 도시니 그곳에는 기사단의 영웅호걸들이 구름 떼처럼 운집해 있을 겁니다. 거기까지만 가면 제 아무리 사악한 놈들의 힘이 강대하더라도 마치 일출을 맞이한 어둠처럼 일거에 물러나고 말 것이오!”
구난기사단은 본래 기사단 집단이었지만 세력이 커지면서 행정력과 정치력이 필요해졌고, 그로 인해 성직자 계급이 생겨났다.
주교구가 설치된 도시라면 아마도 거의 왕성에 가까운 상당히 큰 도시이리라.
“그럼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 나는 이곳 지리를 잘 모르니 길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아, 알겠소. 하지만 명심하시오. 순례단도 원래는 콕스할로 대피하려고 했었소. 그런데 적들의 공격이 거세고 그들이 부리는 요사스러운 안개가 길을 잃게 만들어 우리를 밤의 어둠 속에서 쥐떼 몰 듯 몰아갔던 거요.”
“적들도 우리가 콕스할로 대피할 걸 알고 있다?”
“그렇소이다. 우리가 콕스할로 향하는 것은 적들도 예상한 바. 틀림없이 다시금 저들의 사악한 공세가 이어질 것이오. 이 한 몸 상하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이즈밀라 경처럼 장래가 창창한 성기사의 앞날이 끊어질까 그게 두렵군요.”
“흠. 그렇다고 별다른 보급도 없이 무작정 이동할 수는 없겠군. 일단 콕스할 쪽으로 가 보도록 하자. 나는 여기 길을 잘 모르니 길 안내 부탁하도록 하지.”
아자딘은 문장관에게 길 안내를 맡겼다.
현재 이 일행에는 스콰이어인 문장관 맥도갈과 수련기사 이즈밀라, 둘만이 말을 가지고 있었다.
즉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도보에 맞추어 이동해야 했다.
아자딘이 타고 온 유령 산양은 아라엘의 목소리가 변이한 존재인데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나타날 수 없는 듯했다. 그래서 아자딘도 그들과 함께 도보를 걸었다.
“이봐, 당신.”
그런 아자딘의 곁에 여도적이 다가왔다.
“무슨 용무지?”
“다른 녀석들은 속여도 날 속일 수는 없지. 당신은 적의 정체를 알고 있지?”
“…무슨 소리지?”
아자딘은 시치미를 뗐지만 카밀라는 꽤 확신하는지 그 정도 능청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를 안개 너머에서 포위 공격하던 놈들의 배후에서 등장해서 적들을 직접 볼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 적들을 죽이면서 등장한 주제에 시체를 열심히 뒤지지 않더라고. 적들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냐?”
“흠? 아까 웨어 랫이라고 했잖아.”
“단순한 사교도 무리가 구난기사단 순례단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는 없어. 정말 적의 정체를 몰랐다면 열심히 조사했을 거야. 그런데 당신은 그러지 않더란 말이지.”
카밀라는 아자딘이 적들의 정체를 알아챘음에도 숨기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나도 적에 대해서는 몰라. 어차피 콕스할로 가는 도중에 또 적들이 공격해 올 테니 그때 알게 되겠지. 다만….”
“다만 뭐?”
“적들 중에 북방 아라가사가 섞여 있어.”
“북방 아라가사?”
“그래. 내 먼 친척 일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
전령일족은 다섯 척의 배를 타고 이 땅에 당도한 아라가사의 다섯 가문이 그 재주를 높이 산 황제, 야에슬라트에게 거두어져 황제의 전령이 된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황제가 몰락한 이후에도 외부에서 휘브리스 대륙으로 찾아온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복무의 계약에 사로잡힌 기존의 아라가사들과 선을 긋고 따로 거처를 구해 지냈는데 주로 북방에서 출몰했기에 북방 아라가사라 불렸다.
복무의 계약에 묶이지 않은 북방 아라가사들은 황제가 하사한 마도서, 화조풍월은 없지만 여전히 뛰어난 궁사들이었고 강력한 암살자들이기도 했다.
순례단을 습격한 이들은 아자딘의 예상대로 북방 아라가사들이었다.
정확히는 북방 아라가사의 추적자들과 메제리의 웨어 랫, 그리고 리자드맨과 홉고블린이 포함된 혼성 부대였다.
“멍청한 놈들, 기껏 표적에 접근하게 했더니만 물러나다니. 무슨 짓이냐?”
추적자들을 다스리는 젊은 아라가사가 짜증을 냈다. 갈색 피부에 가늘고 날카로운 실눈을 가진 20대 초반쯤의 청년이었다.
“그게… 상대가 황제의 전령을 불렀습니다.”
아직 10대에 불과한 듯한 북방 아라가사 추적자들이 손발을 휘저어 가며 호들갑을 떨며 설명했다.
복무의 저주에 사로잡힌 그들의 동족, 황제의 전령은 그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
“황제의 전령?”
“네.”
“이상하군. 그게 부른다고 그렇게 빨리 오는 거였던가?”
“우연인지 모르지만 굉장히 빨리 왔습니다.”
“흠. 소문에 의하면 하티르 일파는 코라사르와 브투마에서 와해되었다고 들었는데. 정말 황제의 전령이 나타났단 말인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방 아라가사들에게는 자신들의 동족, 황제의 전령들에 대한 소문이 이미 빠르게 돌았다.
황제의 전령은 아라엘의 반역과 내부 분쟁, 그리고 브투마 침공전 때 와해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군. 복무의 저주라는 게 그렇게 강력한 건가 보지? 자기들끼리 개판을 내서 조직이 간당간당해도 황제가 내리는 사명은 수행해야 하나 보군. 불쌍한 놈들 같으니.”
“예. 그래서 아무래도 두령님이 재밌어 하실 것 같아서요.”
“하티르 일파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멍청한 놈들. 임무가 우선이다. 흥미는 나중 일이고. 여기서 너희들이 물러나면 상대는 가뜩이나 기고만장한 녀석들인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게 아니냐?”
십부장이 짜증을 내며 옆을 돌아보니, 웨어 랫 주술사와 리자드맨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너희 대원들이 도중에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임무를 달성했을 것이다.”
“이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셈이지? ‘전령일족’?”
웨어 랫 주술사와 리자드맨들은 음흉한 눈빛을 빛냈다.
정말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서 뭔가 뜯어내겠다는 태도다. 이쪽이 약점을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비열한 종족들이라 그런지 약간의 허점만 보여도 기고만장하다.
‘이래서 싫었는데.’
십부장은 한숨을 내쉬고 몸을 움직였다. 십부장의 손가락이 웨어 랫 주술사의 눈알 바로 앞에서 멈췄다.
-쉬익!
웨어 랫 주술사의 수염이 십부장의 손끝에 걸려 잘렸다.
맨손으로 털을 잘라 버리다니… 칼날로도 이렇게 깔끔하게 자르기 힘들 것이다.
“힉!?”
한 치만 더 들어왔으면 웨어 랫의 뚜껑을 따 버렸을 상황에서 십부장은 손을 멈추고 말했다.
“임무를 도중에 내팽개친 것은 현장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장 판단을 중시하지. 현장은 늘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 판단을 존중하지 않으면 죽은 교범이 산 대원을 해치는 일이 생기거든. 그런 걸 원하는 건가?”
“아, 아니….”
“그리고 우리를 전령일족이라고 부르지 마라. 경고했다.”
십부장이 자신들을 조롱하는 웨어 랫 주술사를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자, 웨어 랫 주술사는 즉시 꼬리를 내리고 물러났다.
“너, 너희를 화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체류에 비용이 든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내 부하들이 굶주리고 있거든.”
“배를 채울 시체라면 충분히 있을 텐데?”
“먹는 동안은 기강이 흐트러지니 말이다.”
“…알겠다. 구역을 나누어 주지. 그곳에서 약탈을 하건 사체를 뜯어먹건 알아서 휴식을 취하도록. 이 황제의 전령은 우리가 처리하지.”
아라가사 십부장은 구획을 나누어 주어 메제리의 일당과 리자드맨들을 후방으로 돌려 주었다.
“부장님. 이러면 저희들만으로 그 황제의 전령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요?”
“상대한다기보다는 일단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지. 혹시나 말이 통하는 상대일 수도 있으니까.”
아라가사 십부장은 그리 말하고 손을 털었다.
“어디 그럼 황제의 전령을 만나 볼까? 천리안 마법을 발동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