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2
231. 북방 아라가사 2
삼거리 가운데에 죄수 수송용 마차가 멈춰 서 있다.
말은 이미 도적들이 해갔는지 마차의 마구가 절단되어 있고 주위에는 농민들과 죄수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는….”
“우리가 습격당한 곳이네.”
여도적 카밀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꽤 오래 걸어왔는데 이제 겨우 처음 습격당한 곳에 도착하다니. 아무래도 기사들만 말을 타고 있고 다들 도보로 걷는 게 문제였다.
“히이잉.”
말들도 괴로워했다.
“물을 먹여야겠군요.”
이즈밀라는 말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이 가라앉아서 흙탕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근처에 모기가 날아다니고 물에 장구벌레가 잔뜩 꼬여 있는 게 말에게 먹이기 썩 좋은 물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즈밀라 경. 이건 말에게 먹여선 안 됩니다. 병납니다. 당장은 갈증을 채울 수 있겠지만 얼마 못 가서 배탈이 나고 반드시 죽습니다.”
맥도갈이 말렸지만 이즈밀라가 주문을 시전했다.
-정화의 성격!
푸른빛의 창이 수면을 강타하자 장구벌레와 모기들이 터져 나가고 흙탕물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아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이 갈렸다.
‘말에 물을 먹이자고 신성마법을 써?’
그 모습을 보며 아자딘은 기가 막혔다.
적들에게 추적당해서 기력이 부족할 텐데 마법을 이렇게 쉽게 쓰다니. 여기서 힘을 낭비했다가 적을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러나 이즈밀라는 태연했다. 이 정도 마법을 써도 소모가 심하지 않은 모양이다.
‘상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군. 일개 수련기사의 수준이 아닌데?’
아자딘은 이즈밀라가 아무래도 상당히 귀한 피를 타고 났음을 느꼈다.
“말이 죽으면 그때는 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마법을 아끼느라 말이 죽게 할 수는 없지요. 맥도갈 님. 당신도 말에게 물을 먹이세요.”
“그, 그러지요.”
“그럼 일단 여기서 좀 쉬고 식사를 해야겠군.”
아자딘은 여도적과 혈마법사, 하프 오크가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알았다. 다들 어제 밤새 안개를 뚫고 도망치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어젯밤 하루만의 일이 아니다. 순례단은 계속해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적에게 쫓기며 신경이 곤두서 있을 테니 며칠에 걸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아자딘이 휴식할 것을 선언하자 하프 오크와 혈마법사는 바로 자리에 드러눕다시피 했다.
여도적만은 기력이 남아도는지 주위를 돌며 시체들과 화물들을 뒤져 식량과 쓸 만한 것들을 챙겨왔다.
그런데 그때….
“음.”
아자딘은 아라엘의 목소리가 주위에 다가오는 적들을 감지하는 걸 느꼈다.
‘황제의 목소리의 역할을 대신하는군.’
황제의 목소리가 아자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소멸한 후, 아라엘의 목소리가 과거 황제의 목소리가 했던 역할을 대신 수행해 주었다.
금화의 계약을 알리고, 주위를 정찰해 적의 존재를 알려 준다.
그리고 그 유령 산양, 그것 또한 아라엘의 목소리가 불러오는 것이다.
원래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아라엘이 아자딘을 위해 자신이 만들어낸 인공정령을 사역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라엘도 참 재주도 좋군.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좀 더 이야기를 해 봤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아라엘은 이제 없다. 아자딘은 정신을 집중해서 적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월각궁과 일각궁, 검으로 무장한 북방 아라가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에 다른 마물들이 없는 걸 보니 아라가사로서의 실력을 겨루기 위함인가? 아니면 이야기를 하러 온 건가?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과연….
북방 아라가사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일각궁을 준비한다.
2인 1조가 쓰는 공성용 활로, 커다란 활대를 한 명이 드러누워 다리로 받치면 다른 한 명이 활을 당겨 그 위에 투창을 걸고 쏜다. 안개 속에서 순례단을 괴롭혔던 투창의 정체였다.
-쐐액!
그들이 투창을 발사했다. 투창은 상상 이상의 거리를 날아와 아자딘을 향해 떨어진다.
‘저들도 날 보고 있군.’
아자딘이 아라엘의 목소리로 저들을 보는 것처럼 저들 또한 어떠한 관측 수단을 통해 아자딘 일행을 보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
직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투창은 정확하게 아자딘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아자딘은 죄수 이송용 마차를 등지고 서서 날아드는 투창을 받아 흘렸다.
-퍼엉!
아자딘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온 투창이 옆으로 휘어져 죄수 이송용 마차에 꽂히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히익?!”
“저, 적습?!”
방금까지 곯아 떨어졌던 하프 오크와 혈마법사가 벌떡 일어났다.
“진정해. 편지일 뿐이다.”
아자딘은 투창에 묶여 있는 편지를 가리켰다.
“아니, 어떤 미친놈이 편지를 그딴 식으로 보내?”
여도적이 분개했다.
정확하게 아자딘을 향해 날아온 화살이었다. 아자딘이 흘려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저 투창에 꿰여 꼬치 신세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정작 공격당한 아자딘도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마치 아라가사들 사이에서 이 정도는 당연한 인사치레인 양 굴었다.
“무, 무슨 일이오?”
“나도 보기 전엔 모르지.”
아자딘은 편지를 풀어서 읽어 보았다.
‘하티르 분파의 동족에게 묻는다. 우리는 아하지 분파로서 비록 섬기는 이가 다르다 해도 동족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대가 보호하는 이들은 오만한 가르침의 광신도들로 전혀 지킬 가치가 없는 목숨이다. 황제의 계약에 묶여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이미 받은 금화분의 일은 했을 터, 한때의 동족으로서 상호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괜찮다면 다가가도 되겠는가?’
이미 투창으로 공격을 가해 놓고선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뻔뻔하게 느껴졌다. 만약 같은 전령일족이 이런 화살 편지 공격을 가했다면 아자딘은 볼 것 없이 상대를 박살 내서 그 뻔뻔한 선제공격의 대가를 치르게 하였으리라.
그러나 상대가 다른 분파의 아라가사이다 보니 묘한 경쟁심리가 고개를 들었다.
선제공격을 감행했다고 이쪽에서 노발대발할 때 ‘이까짓 걸 공격이라고? 이건 우리에겐 인사에 불과한데?’라며 시치미를 뗀다면 오히려 북방 아라가사에 비해 황제의 전령들이 질이 떨어진다고 자인하는 꼴이 된다.
‘자존심상 그럴 수는 없지. 화살을 돌려줘야겠군.’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기묘한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자딘은 즉시 편지를 써서 자신의 화살에 묶고 활을 꺼냈다.
아자딘의 활은 평범한 월각궁. 2인 1조로 쓰는 일각궁의 사거리에 못 미친다.
그러나 아자딘은 아라가사 고류 사법을 적용해 비거리를 늘리기로 했다.
보통의 고류 사법은 활대를 감아 채서 탄속을 높이는 것. 정확도를 약간 희생하는 대신 탄속을 약간 더 얻는 방법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채어쏘기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일각궁만큼의 비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자딘은 거기에 달리기와 본격적인 투창질을 더했다.
달려서 가속하고 몸을 휘둘러 창을 던지듯 활을 내지르면서 가장 가속된 순간에 채어쏘기를 날린다. 정확도를 엄청나게 희생하는 무식한 짓이지만 아자딘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까지 정확도를 떨어뜨려도 충분히 적에게 쏘아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가속된 화살이 하늘을 날아갔다.
*********
“어? 미친놈인가?”
아라가사 십부장은 천리안의 마법으로 이미 아자딘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쏘아 보낸 일각궁을 흘려낸 후, 거기에 묶인 편지를 읽던 전령일족이 편지를 쓰는 것을 보며 내심 비웃었다. 그가 가진 월각궁으로는 아무리 기를 쓰더라도 여기까지 화살을 보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령일족이 갑자기 달리더니만 아라가사 고류 사법을, 그것도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짓을 하며 되쏘는 게 아닌가?
저렇게 쏴서 자기 근처나 오겠나? 설령 오더라도 엉뚱한 데 날아가겠지.
그런데.
-쐐액!
아라가사 십부장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화살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십부장은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으며 기겁했다.
엄청난 비거리를 날아오느라 화살에는 이미 힘이 다 빠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얕잡아 볼 수 없는 기세가 남아 있었다.
“대, 대단하군!”
솔직히 감탄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법으로 화살을 되쏘다니. 그런데도 이런 정확도라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명사수란 말인가.
명궁이 많은 아라가사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명사수라 할 수 있으리라.
“어?”
“되쐈어?!”
“대단한데요. 저놈!”
“몇 위의 전령이지?”
“조용.”
십부장은 그리 말하고 편지를 펼쳐 보았다.
‘황제의 전령 제108령 아자딘이 말한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나 무고한 농민과 비무장한 이들마저 살해하고 메제리의 사도들과 손잡은 모습은 동족이라 여기기엔 너무나 수치스럽다. 하지만 배워먹지 못한 어린 아이가 과오를 범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이치. 나를 어른으로 여기고 내 가르침을 얻겠다면 기꺼이 그대들을 동족으로 여기고 바른 길로 이끌어 줄까 한다.’
편지를 다 읽은 십부장이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인데.”
“대장. 뭐라고 썼는데요?”
“나도 읽어도 돼요?”
“아, 엄청난 악필이네.”
그들도 편지를 읽고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108령이라면 최하위 전령 아닌가요?”
“화살을 되쏘다니 제법인데.”
“화조풍월 아냐? 저들은 복무의 저주에 걸린 대신 황제에게서 마도서를 혈통 계승으로 받는다던데.”
“하긴 마법을 걸었으면 이 비거리도 납득되네.”
“마법이면 별거 아니잖아?”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천리안의 마법으로 아자딘의 되쏘기를 보았던 십부장은 입을 다물었다. 화살에 마법을 건 게 아니라 순수하게 궁술을 사용해서 되쏜 것을 보았기에 마법을 걸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굳이 그걸 말해서 분위기를 초칠 필요는 없었다.
“다들 조용.”
십부장은 부하들을 조용히 시켰다.
“일단 만나 보도록 하자.”
*********
아자딘이 삼거리 한가운데에 정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눈을 감아도 주위 사물을 볼 수 있었다. 이내 이쪽으로 다가오는 북방 아라가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보지 않으려 해도 아라엘의 목소리가 주위를 경계해서 알릴 만한 일이 있으면 자연히 알려 주었다.
“제법이더군. 황제의 전령.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아라가사 십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백 보 밖에 떨어져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가까이서 들렸다.
“아!”
구난기사단 순례단 일행은 자신들의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기겁했다. 그들을 현혹하고 조롱하던 목소리와 똑같은 거리감이다.
“이런 술법이었군. 안개가 없으니까 확실하게 보이네.”
“그런데 누나. 저들 많다.”
“…….”
쿤타치가 지적한 대로 열 명의 아라가사가 다가왔다.
선두에 선 남자를 제외하면 다들 10대 중반 정도의 소년 소녀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저 녀석들이 바로 구난기사단 순례단을 습격해 유린했던 놈들이 아닌가?
저렇게 어린 데도 악귀와도 같은 솜씨를 지니고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