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4
233. 북방 아라가사 4
아자딘의 짐작대로 순례단을 공격한 세력, 북방 아라가사의 배후에는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가 있었다.
“그, 그래도 잡아 두는 게 좋지 않나?”
“됐어. 어차피 잡아 봤자 이 녀석이 도망치려고 하는 걸 계속 지켜봐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우리에게 없다. 피곤하기만 하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손에 쥐고 있던 십부장의 장검을 던졌다.
-촤르르륵!
길 위에 떨어진 장검이 팽이처럼 미끄러지며 십부장의 발 앞에 와서 멈춰 섰다.
십부장은 말문이 막혔다.
정말 아자딘은 그를 포로로 잡지 않고 풀어 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우, 웃기지 마라! 이런 구걸을 받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겠냐! 차라리 날 포로로 잡아라!”
“어허. 치기가 심하군. 포로로 잡지 않는 건 포로를 관리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것도 있어. 현재 우리는 자기 몸 간수하기도 힘들거든.”
“그럼 죽여!”
“북방 아라가사들은 자기 비하가 심하네. 아니면 뭐 단체로 우울증이라도 앓고 있나? 하긴 북방은 해가 부족하다고 들었다. 햇볕을 쬐지 못하면 사람이 음울해지지.”
“…….”
농담이 아니라 십부장은 지금 상당히 위험해진 상태였다.
순례단을 습격한 게 북제의 소행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실수로 아자딘이 배후를 알아챘으니 이대로 아자딘과 그 일당을 살려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살려 주겠다고 풀어 준 놈에게 다시 덤벼들어야 한단 말인가?
어느 종족이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아라가사는 특히 명예를 중시하는 부족이다.
차라리 아자딘이 그를 죽이려 들었다면 기분 좋게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그와 싸웠을 테고 포로로 잡았다면 언제든 기회를 봐서 탈출해 역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풀어 줘 버리면?
“젠장! 알겠다! 알겠어!”
십부장은 머리를 긁적이고 자신의 칼을 아자딘에게 내밀었다.
“나 북방 아라가사의 아하지 지파 야쿠츠 가문의 잔! 지금부터 네놈에게 가담하겠다!”
“뭐?”
아라가사들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문장관 맥도갈이 펄쩍 뛰었다.
“무슨 개소리를! 어림도 없다! 말도 안 돼!”
그러나 아자딘은 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좋아. 잘 생각했다. 자발적인 가담 환영한다.”
“젠장. 자발적 좋아하네.”
“자발적이 아닌가? 그럼 집에 가던가. 풀어 준다니까.”
“아니! 자발적이지! 자발적 맞다!”
북방 아라가사의 십부장, 잔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선택이 자발적이었음을 주장했다.
*********
북방 아라가사, 야쿠츠 가문의 잔이 아자딘에게 투항하자 그의 부하들은 즉시 도망쳐 버렸다.
저들은 이제 상부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새로이 조직을 개편한 후 전력을 다해 잔과 아자딘을 부수러 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자딘이 순례단 공격의 배후에 북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물론 언젠가는 만천하에 알려질 사실이다.
현재 북제는 구난기사단을 장악하기 위해서 이번 순례단뿐만 아니라 다른 순례단까지 모조리 공격하고, 주교까지 납치해 구난기사단의 조직을 토막 낼 생각이었다.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니 언젠가는 들통이 나겠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빨리, 그리고 쉽게 자신의 마각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날 엿 먹이려고 북제가 배후에 있는 걸 알아차렸다고 떠들다니. 큰 실수 한 거야, 당신.”
“아자딘이다. 황제의 전령 제108령이지.”
아자딘은 잔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자 궁금해진 카밀라가 물었다.
“잠깐만. 전에 우리한테는 1령이라며? 그때 그건 뭐였어?”
“틀린 말은 안 했다.”
“뭐? 틀린 말은 안 했다니?”
그러자 아자딘의 말을 듣고 잔도 그제야 사정을 알아챘다.
“젠장. 속았군. 설마 당신이 유일한 황제의 전령인가?!”
“그래.”
“하티르 지파가 아라엘인가 하는 사람의 반란으로 내홍이 장난이 아니라고는 들었는데 설마 황제의 전령들이 싹 다 몰락하다니. 전령일족도 이제 끝이군. 그럼 당신은 제1령이면서 108령인 건가?”
“그렇다.”
“아, 다행이다.”
“뭐가?”
“사실 그렇잖아. 내가 당신에게 상대도 안 되어서 부끄러웠는데 당신이 유일한 황제의 전령이라면 뭐 그렇게 나쁘진 않다 싶어서.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하티르 지파에서도 아주 뛰어난 인재였겠지?”
“…….”
아자딘은 잔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린 시절부터 전령일족들 사이에서도 반푼이 취급을 받던 그였다. 그러나 굳이 그 사실을 말해서 잔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리라.
“아라엘이 바로 내 누나다. 나는 아라엘의 유일한 혈육이지.”
“아….”
사실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잔은 당연히 아자딘 또한 아라엘 못지않은 엄청난 실력자라고 여기고 안심했다.
그런데 그때 아자딘과 잔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맥도갈이 빈정거렸다.
“바로 투항하고 깃발을 바꿔 낀 이가 명예를 신경 쓰다니 우습구나. 그야말로 수치를 모르는 철면피, 투구를 쓸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깃발을 갈아탄 잔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명예스럽고 파렴치한 놈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뭐? 이 자식이?”
잔은 문장관을 노려보았다.
“그는 명예 때문에 깃발을 갈아탄 거야. 그러니 명예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아자딘은 잔을 대신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아라가사는 가문과 혈족이 중요한 집단이다. 고향을 떠나 이곳, 휘브리스 대륙에 온 이후로는 더더욱 소중하지. 그래서 아라가사가 아닌 다른 이들과 싸울 때라면 모를까 아라가사끼리 싸움이 벌어진다면 가문과 혈족, 은원이 얽히는 내전으로 여겨진다. 내전에서 반기를 드는 것은 지휘관의 부덕의 소치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아자딘의 설명이 상당히 객관적이어서 막연히 아라가사로서 결정을 내렸던 잔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자가 고급 장교나 지휘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하급 장교 입장에서 그는 나에게 목숨의 은혜를 입었다. 지금 자신의 조직에 계속 남아 있으면 상부의 명령 때문에 구명의 은혜를 잊고 나에게 칼을 들이밀어야 하는데 그는 그걸 불명예스럽다고 여긴 거지. 그래서 굳이 풀어 주겠다는 데도 투항한 것이다. 애초에 이런 얄팍한 구명의 은혜 따위는 무시한다고 해서 비난할 이도 없는데 말야.”
“아아. 그래서….”
아자딘의 설명에 다들 왜 잔이 아자딘에게 투항했는지 이해했다. 그러자 잔이 고개를 저으며 경고했다.
“오해하지 마. 투항한 시점에서 나는 그 얄팍한 구명의 은혜 상당수를 갚았다고 생각하니까. 언제까지 당신들에게 편하게 붙어 있을 생각은 없다. 당신이 허술하면 난 탈출할 거다.”
“그런 걸 말해 주는 게 또 귀여운 부분이지.”
“윽.”
아자딘이 웃으며 말하자 잔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나저나 북제가 배후에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 북제가 왜 저를 노리는 거죠?”
이즈밀라가 그 점을 궁금해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지.”
잔은 대답을 거부했다.
아자딘에게 투항은 했지만 완전히 아자딘의 편에서 정보를 술술 불 생각은 없다. 오로지 빚진 은혜를 갚고 나면 탈출할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현재 이 무리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작전을 세울 경험이 많은 건 나다. 다들 인정하지?”
아자딘이 일행들에게 물어보았다.
물론 다들 아자딘 덕분에 살아남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문장관 맥도갈은 반발했다.
“아니요! 이즈밀라 경이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교의 사생아라서?”
“아니. 그런 누명을 씌우다니!”
“그럼 넌 뭔가 알고 있나 보군. 왜지?”
“그, 나는 모르오. 아는 게 없지만 그럼에도 한마디 하자면 기사단의 수련기사 또한 존귀하고 의로운 존재요. 현재 여기서 신분으로서 가장 고귀한 이는 이즈밀라 경이니 당연히 그녀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오. 그것이 신이 정한 섭리이고 만약 그렇지 않고 당신 같은 불경자가 우리에게 지시를 내렸고 우리가 그 지시를 따랐다 하면 나중에 심문할 때 우리의 신앙과 성실함을 의심받을 것이오.”
“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저는 당신에게 지휘를 위임하겠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이즈밀라는 아자딘에게 지휘를 이관했다.
“그러면 내가 리더로서 결정을 내리겠어. 물론 구성원 각자를 존중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잔에게는 그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지 마라. 어차피 직접 대답하지 않아도 그가 우리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얻어낼 게 많거든.”
“…….”
실제로 아자딘은 그들의 배후에 북제가 있다는 걸 아주 쉽게 캐치해 냈다. 굳이 잔의 심경을 건드려 가며 도발해 봤자, 그가 구명의 은혜를 다 갚았다고 생각하는 시점만 앞당길 뿐이다.
‘이 자식 능숙하군.’
아자딘은 이미 능숙한 밀당으로 나가 술사인 샤티를 데리고 다니며 인간은 쓰기 어려운 재생의 마법을 실컷 우려낸 경력이 있었다.
아마 샤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아자딘에게 코 꿰인 잔을 진심으로 걱정했을 것이다.
“자. 그럼 지금 좀 눈을 붙이지 그래. 밤에 이동해야 할 테니까. 카밀라. 시체들을 뒤져서 먹을 것들을 챙겼지?”
“아, 그래.”
“그걸 나눠 먹고 좀 자도록 하지.”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죄수 호송용 마차 근처에 널빤지를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
밤이 되자 아자딘이 눈을 떴다.
“다들 푹 쉬었나?”
“내 동생은.”
여도적 카밀라가 그렇게 대답했다.
보아하니 하프 오크인 쿤타치를 제외하면 다들 신경이 곤두서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아자딘은 잘 때 덮었던 모포를 둘둘 말아 배낭에 묶고는 그것을 휙 던졌다.
-쿠루륵….
반투명한 유령 산양이 갑자기 나타나 아자딘이 던진 배낭을 머리로 받더니 그대로 쳐올려 자신의 등에 올렸다. 안장 고리에 배낭이 착 매달린다.
“이건?!”
“내 탈것이야. 밤에만 부를 수 있지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 유령 산양은 아라엘의 목소리가 변모한 것으로 유령이라 그런지 밤에만 불러낼 수 있다.
속도가 하늘을 나는 듯이 빨라서 이즈밀라의 부름에도 빠르게 응할 수 있었지만 역시 남들이 보기엔 좋지 않았다. 미신에 약한 일반 백성들의 눈에는 사령을 타고 다니는 마물처럼 보일 것이다.
역시나 맥도갈이 그 점을 지목했다.
“설마 그걸 타고 갈 셈이오? 길 가는 선량한 사람들을 다 심장마비로 죽일 셈이시오? 보기만 해도 무섭구만. 대체 이런 사악한 재주는 어디서 배운 거요? 역시 전령일족이라 그런가? 아무리 생물의 것이라 해도 죽은 영을 속박해서 부리는 술법을 공공연하게 쓰다니.”
“사령술이 아니라 인공정령이다. 살아 있는 어떤 생명체를 훼손한 건 아니야. 훼손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인공정령을 만들어 낸 주인의 영혼 일부지.”
아자딘은 유령 산양의 안에 남아 있는 아라엘의 자취를 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문장관의 말도 일리는 있다. 밤길 가던 사람들이 심장마비로 죽기 딱 좋은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짐들은 다 산양에 실어. 출발하지.”
짐을 죄다 산양에 옮기고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서 이동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추적자들을 따돌리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