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5
234. 주교 아케나르 1
“그래서 콕스할은 어느 쪽이지? 누가 아냐?”
“음….”
카밀라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콕스할 출신이긴 한데 쭈욱 마차에 갇혀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누나. 나 길 안다.”
“오. 정말?”
“응. 콕스할 바다 냄새 나는 곳. 이쪽이다.”
“…절대 안 돼.”
카밀라가 머리 위로 크게 손을 휘둘러 부정을 표시했다.
“전에도 네가 길 안다고 해서 이상한 산봉우리를 몇 개나 넘었잖아! 일직선으로 간다고 그게 길을 안다고 하는 게 아니야!”
보아하니 쿤타치에게 길 안내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이곳 출신이 아니오. 나는 치타이 출신이지.”
혈마법사 버나드도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소거법으로 골라 보니 콕스할까지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이는 오직 문장관 맥도갈뿐이었다.
‘이 친구 날 대놓고 싫어하던데.’
아자딘은 맥도갈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나? 맥도갈 경?”
스콰이어는 아직 경이라 불릴 입장이 아니지만 아자딘은 일부러 그를 경이라 불렀다.
“물론 길 안내는 할 거요. 다만 당신은 후방으로 가서 저 흉측한 사령 같은 걸 좀 치우시오. 길 가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우리 기사단에게 사령술사와 친하다는 불명예를 안겨 주지 말고.”
“저게 또 지랄이네.”
화가 난 카밀라가 나서려 했지만 아자딘이 그녀를 막았다.
“아니. 지당한 말이야. 길 가는 여행자들을 놀라게 하면 안 되겠지.”
“이런 야밤에 누가 돌아다닌다고. 밀수꾼 아니면 도적이겠지.”
카밀라는 짜증을 냈지만 아자딘이 만류하자 물러났다.
“어서 출발해야 해. 우리가 시간을 끌면 적들은 더더욱 준비해서 우리를 잡으러 올 테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자신의 허리를 매만져 보았다.
원래는 월각궁이 끼워져 있어야 할 곳이지만 현재 아자딘에겐 활이 없다. 조난당할 때 바닷물에 월각궁이 젖어서 파손된 것이다.
북방 아라가사 일당을 상대할 때 활이 부러지면서 파편이 튄 것은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함정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활의 수명이 다한 것이기도 했다.
‘무리해서 장거리 사격을 한 것도 컸지.’
아라가사 십부장, 잔과의 자존심 싸움 때문에 무리해서 초장거리 사격을 한 것도 활에 부담을 많이 주었다.
고작해야 활 한 자루지만 아라가사인 아자딘은 활이 없으니 발가벗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아자딘이 힐끔 잔을 살펴보자, 잔은 자신의 월각궁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었다.
“활은 안 줘. 나도 이거 한 자루 밖에 없어.”
“쳇.”
“어차피 또 습격해 올 테니까 그때 빼앗던가.”
잔은 습격을 예고했다.
“그것 보라니까. 이렇게 데리고만 다녀도 얻어낼 정보가 많은데….”
아자딘은 잔 들으라는 듯 카밀라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때 선두에서 걷고 있던 버나드가 하늘을 가리켰다.
“잠깐. 저쪽을 보시오.”
“응?”
“하늘이 불타고 있소.”
“…아.”
과연 저 멀리 하늘이 붉게 빛나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근 마을이 습격당하고 있다.
“음. 사람이 위험하겠군. 북방 아라가사는 몰라도 그 녀석들 리자드맨이랑 홉고블린, 메제리 사도들이랑 손잡고 있었어. 메제리 사도들은 인육에 굶주려 있고 리자드맨들은 인간의 심장을 뽑는 의식에 환장하지.”
아자딘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 산양에 올라탔다.
“먼저 가서 상황을 보겠어. 따라오도록.”
“잠깐만!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코가 석 자인데 어째서 분란이 확실한 곳에 머리를 들이민단 말입니까? 이즈밀라 경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맥도갈이 반대했다.
“구난을 필요로 하는 자를 구조하는 것, 그게 구난기사의 사명 아닌가?”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구난기사단의 사명에 대해서 언급하는 겁니까? 저는 기사단의 미래를 생각해서 이러는 겁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구난기사의 사명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어.”
“네?!”
아자딘은 지혜의 플랑크 경에게 서임을 받았다.
플랑크 경은 구난기사단에서 당대 세 명 밖에 없는 미덕의 기사. 구난기사단의 정점에 위치한 직위다.
그런 그가 아자딘을 기사로 서임했으니 아자딘에게는 구난기사의 사명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뭐 죽고 난 뒤에 한 서임이니 법적으로 애매하고 증인도 나 자신밖에 없다만.’
그러나 아자딘은 어린 시절부터 구난기사단의 설화와 경전을 그 어떤 기사들보다 더 신실하게 읽고 마음에 새겨 넣었다.
모든 별들을 잃어버린 지금에도 아자딘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동경의 대상. 구난기사단의 믿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아, 됐고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따라와라.”
아자딘은 그 말을 남기고 유령 산양을 달리게 했다.
유령 산양이 정말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앞서 나가자 순식간에 아자딘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졌다.
*********
리자드맨들은 본래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살아가던 문명부족이었다. 나가 제국의 속주국으로써 쿠르트 판테온의 일각을 차지하고 살던 그들은 과거에는 온갖 마법을 연구하던 문명적이고 지성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야에가스 신족들과의 전쟁에서 그들의 신, 심장 먹는 아쿤칼이 육체를 잃고 현세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신이 추방되어 가호가 사라지자 리자드맨들의 지성 또한 열화하기 시작했다.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주술사는 가뭄에 콩 나듯 간간히 나오게 되고 대부분은 피에 굶주린 야수로 태어났다.
자연히 그들의 나라도 멸망했다.
리자드맨들은 야에가스 신족들에게 복수할 것을 맹세하고 부족 단위로 뿔뿔이 흩어졌으나, 그들이 모여 힘이 생기면 자신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자 하는 종교적 열망에 사로잡히곤 했다.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에게 고용된 이 리자드맨들도 그러했다.
용병으로 고용된 그들은 엄격한 군율 속에서 순례단을 습격했었다. 하지만 순례단을 습격하고도 습격의 목표였던 순례 기사 이즈밀라를 잡지 못하게 되자 지휘부는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며 잠시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주어지자 리자드맨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열정(?)을 참지 못하고 심장을 얻기 위해 민간인 마을을 습격한 것이었다.
리자드맨들의 습격을 받은 곳은 콕스할 인근의 농장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도적 떼를 막기 위한 자경단이 있었고 인근 토호와 기사가 고용한 야경꾼들이 돌아다녔지만 전투능력이 뛰어난 리자드맨들의 습격 앞에선 종이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자경단이 몰살당하고 마을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리자드맨들은 마을 주민들을 사로잡고 마을 공터 한복판에 마을의 가구를 쌓아올려 임시 제단을 만들었다. 그 제단에 희생자들의 피로 아쿤칼의 이름을 적고 기도를 올렸다.
“오오. 아쿤칼! 신선한 심장을 바치오니 다시금 돌아오소서!”
“그대의 전사가 전사의 길을 걷나니! 아쿤칼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고 무수한 적들의 심장으로 그대의 배를 부르게 할 것이오!”
리자드맨 사제와 전사들이 제단을 앞에 두고 환성을 지르며 농민들을 제단으로 끌고 왔다. 이미 리자드맨이 우악스럽게 꽂아 넣은 발톱에 사경을 헤매는 한 농부가 제단 위에 던져졌다.
농부는 이미 리자드맨의 발톱에 얼굴이 찍혀 눈이 하나 멀었고 가구를 꺾어 뭉쳐쌓은 제단에 던져지면서 나무가시들이 그의 피부를 찢어발겼다.
리자드맨 전사장은 그 거구를 더더욱 커보이도록 양팔을 크게 펼쳤다.
팔과 몸통을 잇는 거대한 피막이 펼쳐지고 그 피막 뒤로 자란 깃털들이 불타고 있는 농장의 불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난다.
리자드맨은 손에 들린 거대한 갈고리형 칼, 코페쉬를 휘둘러 그 농부의 목을 쳤다.
-퍼억!
선혈이 튀고 묵직한 살덩이가 떨어졌다.
“크와아악!”
하지만 비명을 지르는 것은 리자드맨이었다.
땅바닥에 장검이 꽂혀 있었다. 누군가가 장검을 던져서 리자드맨의 팔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원 세상에….”
칼날을 집어던진 이는 커다란 유령 산양에 올라탄 인물이었다. 아자딘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급한 대로 투검을 펼쳐 리자드맨의 팔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네놈들.”
“크르르르.”
리자드맨 전사가 분노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상처에 대고 붙이는 게 아닌가?
그런다고 붙겠냐 싶지만 리자드맨 주술사가 주문을 외우자 놀랍게도 상처에서 빛이 나더니 잘려진 팔이 붙었다.
“와.”
나가들의 재생력을 이미 본 적 있는 아자딘이지만 잘려진 팔이 바로 붙는 리자드맨의 재생력은 그 이상이었다. 정말 강력한 녹색 마력의 힘이 이들에게서 느껴졌다.
“만만치 않겠는데.”
아자딘은 유령 산양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
“저놈….”
“죽여라!”
코페쉬를 집어든 리자드맨들이 포효하면서 아자딘에게 돌격해 온다.
분노에 깃털을 곤두세운 리자드맨들의 돌격은 보기만 해도 다리가 떨리는 박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런 리자드맨들을 가볍게 돌파했다.
-화조풍월, 땅거미!
카자스 해서가 아닌 진짜 마법이 발동했다.
아자딘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리자드맨들의 배후로 이동했다.
놀란 리자드맨이 코페쉬를 휘둘러 자신의 뒤에 있는 아자딘을 받아치려고 했지만 아자딘이 리자드맨의 팔을 붙잡았다.
리자드맨의 힘을 역이용해서 아자딘은 자신보다도 더 무거워 보이는 상대를 시원하게 집어던지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코페쉬를 빼앗아 들었다.
-퍼억!
아자딘에게 덤벼들던 리자드맨들의 목이 잘려 나가고 깃털이 흩날렸다.
리자드맨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당하건 말건 맹공을 퍼부으며 달려들었지만 아자딘은 얄밉게도 그들의 공세를 능청스럽게 받아넘기며 놀라운 검술로 그들의 공세를 흡수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흘려보내는 갈대처럼 그들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반격하다가 포위당할 것 같으면 화조풍월의 마법을 사용해 자리를 바꿨다.
아자딘은 초반에 자신이 던졌던 세라마이트 장검을 땅에서 집어 들고 코페쉬와 함께 쌍검으로 휘둘러 다가오는 리자드맨들을 베어 나갔다.
그야말로 옛날이야기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달려온 영웅이 놀라운 검술로 적들을 차례차례 격퇴해 나간다.
그 모습에 방금 전까지 리자드맨들에게 죽을 뻔했던 마을 사람들은 감동했다.
그런데 정작 아자딘이 갑자기 칼을 멈추고 어딘가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가면 때문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서 표정을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뭔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제발!”
이를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지쳤나? 아니면 혹시 사용하는 무기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무엇이건 간에 저 남자가 당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끝난 목숨이다.
그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아자딘을 응원하는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