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6
235. 주교 아케나르 2
마을의 동쪽, 콕스할 방면의 가도에서 갑자기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구난기사단의 깃발을 들고 뿔피리를 부는 기수의 뒤로 무장한 구난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씁.”
아자딘은 그들이 등장하는 걸 보며 혀를 찼다.
사실 마을 사람들이 의아해했던 장면은 아자딘이 ‘아라엘의 목소리’로 저들의 접근을 확인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등장하는 구난기사들을 보며 아자딘은 어찌해야 할까 망설였다.
“골치 아프게 되었는데.”
구난기사들이 나타나자 리자드맨들도 이를 갈며 아쉬워하더니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몇몇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자딘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렸지만 그들도 결국 미련을 버리고 도망친다.
아자딘이 리자드맨의 목을 치고 머리를 깨부수며 활약했지만 리자드맨들의 생명력은 또한 놀라운 것이어서 죽은 시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머리가 깨져서 뇌수가 흐르는 와중에도 리자드맨들은 죽지 않고 철수했다.
그 대신 구난기사들이 말을 타고 몰려와 마을에 쇄도했다. 그들은 일제히 아자딘을 에워쌌다.
“무기를 버리고 땅에 엎드려라! 구난기사단 콕스할 주교 아케나르 님의 행차시다!”
“…주교?”
아자딘은 리자드맨의 코페쉬는 땅에 버리고 세라마이트 장검은 칼집에 집어넣은 후 땅에 앉았다.
보아하니 순례단이 습격당했다는 걸 알고 주교가 직접 행차한 모양이었다.
“머리를 숙여!”
말 위에 선 기사가 엄포를 놓았지만 아자딘은 그들의 명령을 거부했다.
“내가 리자드맨들이랑 싸우는 걸 못 봤냐? 내가 진짜 어지간하면 장님 비하는 안 하는데, 네놈들은 진짜 눈 뜬 장님인가 보구나? 날 방해할 시간에 리자드맨이나 추격해서 마저 잡지 그래? 살려서 보내면 또 어디서 사람을 해칠지 모른다.”
눈이 없이 태어나 무안의 아자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아자딘은 어지간하면 남을 비하할 때 장님이니 뭐니 하는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원칙도 무시할 만큼 화가 났다. 도망치는 리자드맨을 추격하긴커녕 그들과 싸우던 아자딘을 제압하는 데나 신경 쓰다니.
이들에겐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리자드맨을 척결하는 것보다 주교 호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닌가.
이들이 아자딘에게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은 혹시나 아자딘이 무기를 빼 들고 휘두를까 봐 경계하는 것. 즉 자신들의 경호 임무를 편하게 하기 위함일 뿐이다.
“우리의 임무는 주교님의 호위다. 네놈이 저 리자드맨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그래서 칼을 내려놨잖아. 이게 다 너희를 배려해 준 거라고.”
“등에 진 그 칼은?”
“이건 너무 중요한 보검이라 조금이라도 상하면 안 되는 거라서 말이지.”
“음?”
그때 구난 기사들이 아자딘의 등에 짊어진 칼을 보며 흠칫 놀랐다.
“세, 세라마이트 장검입니다!”
“뭣이?!”
기사들은 아자딘이 가지고 있는 게 세라마이트 장검이라는 걸 알아보고 경악했다.
“이 자식! 어디서 그걸 구했지?”
“설마 이즈밀라 경을?!”
아무래도 아자딘이 이즈밀라의 세라마이트 장검을 챙긴 것으로 여긴 모양이다.
“아… 진짜.”
아자딘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구난기사들의 모습에 혀를 찼다.
어린 시절부터 아자딘은 삼위의 대천사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인류를 가엽게 여겨 힘이 되어 주기 위해 스스로 천상에서 내려온 세 미덕의 대천사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미덕을 실천함으로써 백색 마력의 힘으로 인류를 지키는 성기사들.
눈이 없고 불완전한 마도서를 가지고 태어나서 동족들에게 천대받았던 아자딘에게 삼위의 대천사와 함께 싸우는 성기사들의 이야기는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기사라 부르기에 민망한 협잡꾼들뿐이다.
물론 아자딘도 현실주의자이기에 인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건 안다. 아무리 올곧은 이상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 해도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인 이상 당연히 타락하고 부패하고 비틀리게 된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지금 여기에 있는 놈들은 심히 질이 떨어지지 않는가?
‘솔직히 순례단 하나가 통째로 와해될 정도로 무력했는데, 그런 주제에 이 자식들이 지금 나를 핍박하는 건 잘도 하네? 너희 실력으로 날 감당할 수나 있겠냐? 내가 진짜 플랑크 경에게 받은 은혜가 있고 나 자신도 어쨌건 서임을 받은 이상 호스피탈러니까 망정이지.’
아자딘 스스로도 지금의 자신을 황제의 전령이자 구난기사단의 구난기사라고 여기고 있다.
플랑크 경이 그에게 기사 서임을 해 준 것은 절대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일 수 없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아자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구난기사니까 참는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나서 주었다.
“저기, 그분이 없었다면 저희는 다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네. 그분이 리자드맨들을 무찌르고 저희들을 구해 주셨어요.”
마을 사람들이 용감하게도 창칼로 무장한 기사들 앞에서 아자딘을 옹호했다.
“엄청났어요! 그 많은 리자드맨들을 이렇게 이렇게 휙휙!”
어린 아이 하나가 칼싸움을 하는 시늉을 하며 아자딘을 흉내 낸다. 비록 어린아이의 행동이라 우스꽝스러워도 요체는 잘 전달하고 있었다.
아자딘이 뒤로 물러나면서 다수의 리자드맨들을 아주 수월하게 상대했다는 사실 말이다.
“으음.”
성기사들도 눈이 옹이구멍은 아닌지 마을 사람들의 호소를 듣고 멈칫했다.
“들었지? 날 방해하지 말고 리자드맨들이나 잡지 그래? 너희들이 상대하기 힘들면 내가 잡으러 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슬쩍 발걸음을 뗐다. 그러나 창칼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지금 이 일대에서 우리의 정기 순례단이 공격을 당했다.”
“조사 중이니 조사에 응하도록.”
“‘응해 주십시오’를 잘못 말한 거겠지?”
그때 이즈밀라와 그 일행이 뒤늦게 마을에 도착했다.
“어?”
“구난기사단?!”
이즈밀라는 즉시 자신의 성표를 들어 보였다.
“순례단 소속의 호스피탈러-에란트, 이즈밀라입니다! 무슨 일이지요?”
“아, 이즈밀라 경.”
“무사했었군요.”
기사들은 이즈밀라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그녀에게 몰려왔다.
“벨린즈 경. 세필드 경? 살아 계셨군요.”
“삼위의 대천사께서 보우하신 덕분이오.”
“대천사의 보우는 무슨. 죽어라 도망친 걸 말하는 거겠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밀라가 코웃음 쳤다. 그녀는 일부러 기사들에게 들릴락 말락 작게 말했다.
기사들이 들었다고 따지고 들면 시치미를 뗄 거고, 행여 정확히 들어서 카밀라가 한 말을 입에 올리기라도 하면… 스스로의 수치를 자기 입으로 떠들어야 하니 그 꼬락서니가 볼만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순례단 기사들이 자신들이 끌고 온 농노나 죄수들을 화살받이로 던지고 도망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들이 천사의 가호를 운운하니 가소롭게 느껴졌다.
기사들이 카밀라를 노려보았지만 그녀의 곁에 거대한 하프 오크가 턱을 긁적거리는 걸 보고는 고개를 돌려 못들은 체했다.
그때 이즈밀라가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교님이 행차하셨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소. 주교님은 마차로 오시는 중이라 좀 늦긴 하겠지만….”
보아하니 이들은 주교의 호위대원 중 일종의 척후들일 것이다.
“그럼 당신들은 정말 콕스할까지 도망치신 거군요.”
이즈밀라의 질문에도 가시가 돋아 있었다.
말이 좋아서 주교의 원군을 부르러 갔다는 거지, 결국 이 기사들은 순례단이 습격당하자마자 잽싸게 콕스할까지 도망친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주교가 행차할 리가 없다.
“어험. 동료들의 위험을 알기에 그만, 어쩔 수 없었네. 그리고 콕스할까지 도망친 건 아니고 주교님께서 습격이 있다는 걸 아시고 먼저 병력을 풀어 주위를 순찰하고 계셨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도망친 것은 아니었네.”
이즈밀라가 자신들을 은근히 비난하자 이 성기사는 부끄러워하면서 변명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아직 분위기를 읽을 줄 몰랐다.
“하하. 말에게 활력 주문을 사용했지. 덕분에 정말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네.”
“그런데 이분은 왜요?”
이즈밀라는 기사들이 아자딘을 경계하는 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아, 이즈밀라 경. 이자를 아시오?”
“세라마이트 장검을 가지고 있던데….”
그들은 힐끔 이즈밀라의 등 뒤를 살펴보았다. 세라마이트 장검이 그녀의 등에도 매달려 있었다.
아자딘의 것과 비교해서 손잡이 가죽이 더 선명하고 폼멜에 조각된 세 날개 바퀴 문장도 더 말끔하다. 아자딘의 세라마이트 장검이 더 오래전에 만들어져 손때가 많이 탄 게 분명하다.
‘어?’
‘다른 거네?’
아자딘이 세라마이트 장검을 가지고 있을 때는 다들 그것이 이즈밀라의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둘의 장검은 서로 확연히 다른 물건이다.
“이분은 그, 황제의 전령이에요. 순례단이 전멸당할 위기여서 염치 불구하고 제가 황제의 금화로 그를 불렀습니다.”
“!?”
“뭣?!”
기사들은 즉시 창칼을 다시금 아자딘에게 향했다.
“무, 무기를 버려라!”
“어서 버려!”
“싫은데?”
아자딘은 코웃음 쳤다.
“이봐. 나는 너희가 불러서 온 거야. 구난기사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서 왔고 보시다시피 충분히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무슨 죄목으로 잡으려는 거지?”
“그, 그건….”
“그 말대로, 그는 제가 불렀습니다. 계약에 의거해 그는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수행했으니 그런 그를 체포하는 것은 배신입니다. 무엇보다 저희는 왕의 교회와 달리 황제를 적대시하지 않는데 무슨 명분으로 그를 체포하려 하십니까?”
이즈밀라도 아자딘을 옹호했다.
“하지만….”
그런데 그때 조용하지만 힘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냐면 황제의 추종자들이 브투마와 코라사르 왕국을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네?”
어느새 마을 어귀에 당도한 마차의 문이 열리며 은색 귀부인 가면을 쓴 여성이 내려섰다. 구난기사단의 콕스할 주교 아케나르가 당도한 것이었다.
“주, 주교님을 뵙습니다.”
이즈밀라가 말에서 내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즈밀라 경.”
“화, 황송한 말씀이십니다.”
“그럼 황제의 전령….”
주교는 아자딘을 돌아보았다.
“이즈밀라 경을 구해 주신 것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황제의 추종자들이 코라사르와 브투마를 멸망시키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당신을 구속하겠습니다.”
“싫다면?”
“그렇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단련된 황제의 전령을 잡는 데는 저희들의 힘이 부칠 수도 있겠지만 정의를 행함에 있어서 힘이 부족하다고 악을 모른 체해서야 되겠습니까?”
주교 아케나르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