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8
237. 주교 아케나르 4
“놀랍군요.”
아자딘은 주교 아케나르의 신분이 예상 이상으로 높다는 사실에 놀랐다.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데 주교 자리를 차지했으니 신분이 높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설마 출가한 전 왕비였을 줄이야?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당신에게 이야기를 들으려면 제가 숨기는 것이 없어야겠지요. 그럼 우선 코라사르와 브투마의 일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러지요. 아, 그런데 그전에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아케나르 주교는 아자딘의 요청에 의문을 품었다.
“믿을 만한 이들을 이 마을에 남겨 둬서 리자드맨들이 다시금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방비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병들은 마차와 함께 움직일 수 있으니 보병들이 낫겠지요.”
아자딘은 마을 사람들을 염려해서 그렇게 말했다.
리자드맨들은 사람을 제물로 삼고 싶어 하니 한 번 공격해서 털어먹었던 마을을 다시 공격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조금 전에 리자드맨들을 상대할 때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혀 놨어야 했는데 구난기사들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자딘의 제안을 들은 마부 겸 호위가 짜증을 냈다.
“우리 보고 병력을 쪼개라는 뜻인가?”
“아니요. 이분은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시는 겁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교구의 보병대를 남겨 두고 뒷정리를 시키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아자딘은 아케나르 주교에게 공손한 태도로 예의를 갖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령일족에게 내려진 복무의 저주, 그것을 이용해 스스로 황제가 되려 한 두령 하티르와 그 하티르에 반기를 든 아라엘의 싸움, 그 와중에 공격당한 코라사르와 브투마, 브투마의 황금왕 만자-자덱의 죽음과 일족의 몰락을 최대한 간략하고 빠르게 이야기했다.
“세상에. 그럼 당신이 지금 유일한 황제의 전령이란 말인가요? 이즈밀라 경은 운이 좋았군요. 아니면 이것이 운명의 인도일지도 모르겠군요.”
“운명의 인도라 하심은?”
“예. 당신은 플랑크 경에게 내려진 예언을 아시나요?”
“아니요. 모릅니다. 무슨 예언이지요?”
“그가 마지막으로 서임한 자는 기사도의 꽃이 된다는 예언이 있답니다.”
“…네?”
“현재까지는 플랑크 경이 마지막으로 서임한 기사는 바로 코헨 라이오네어, 어산더 왕이지요. 그래서 플랑크 경이 사고를 당한 것도 코헨 왕이 예언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일부러 손을 썼다고 하는, 그런 경망스러운 소문도 있답니다.”
“…….”
아자딘은 자신을 죽인 이가 코헨이라는 것을 플랑크 경에게 직접 들어 알고 있었다.
경망스러운 소문이 아니다. 적어도 코헨은 그 예언을 진짜로 믿고 예정된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손을 쓴 것이다.
‘이런, 망할 영감탱이. 그런 건 말해 줬어야지. 코헨이 날 죽이려 들 거 아냐?’
아자딘이 플랑크 경에게 서임을 받았다는 소문이 난다면 코헨 라이오네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말인데 서류상으로는 제가 당신에게 서임을 해준 것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이 자리에 많은 이가 듣고 보았는데 괜찮겠습니까?”
“뭐 제가 괜히 주교인 건 아니니까요.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음….”
주교 아케나르는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가면을 쓰고 있는 제가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당신의 가면 속을 보고 싶군요.”
“가면 속 말입니까?”
“예. 얼굴도 모르는 남자를 서임했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거든요. 사실 안 봐도 상관없지만. 아, 그냥 순수한 호기심입니다. 안 보여 주셔도 됩니다.”
“네?”
“그, 그런데 좀 보고 싶군요.”
주교 아케나르가 몸을 배배 꼬면서 말했다. 높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행동을 보면 무슨 십대 소녀 같았다.
“보기 역겨운 추물이라서 감추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 안 보여주시는 건가요? 많이 아쉽군요.”
“하아.”
아자딘은 하는 수 없이 가면을 벗었다.
“…….”
“보셨습니까? 그럼.”
“아, 저기 조금만 더….”
주교 아케나르가 아자딘을 말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갑자기 경고가 날아들었다.
주위를 정찰하던 아라엘의 목소리가 아자딘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다.
그런데 그 경고도 상당히 늦었다. 상대 역시 마법을 써서 자신들의 종적을 최대한 감추고 접근한 것이었다.
“이런! 실례!”
아자딘은 즉시 마차의 좌석 등받이와 천장을 발로 밟아 몸을 지탱하고 아케나르 주교를 안고 충격에 대비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마차가 지면에서 튀어 올랐다.
“꺄악!”
마차가 뒤집어지며 천장이 부서진다. 전복시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 아자딘은 마차의 창문 밖으로 주교와 함께 뛰쳐나왔다.
밖에는 웨어 랫 무리와 홉고블린 석궁수들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런데 홉고블린 석궁수들의 무기가 굉장했다.
그들은 대나무 통에 흑색 화약을 채워 넣어 만든 폭약통을 석궁으로 발사해 기사단을 혼비백산하게 만들고 있었다.
“으아악!”
“네, 네놈 때문이다! 보병대만 있었어도….”
“보병대가 있어도 이건 당했지.”
아자딘은 적들의 치밀한 공격에 혀를 내둘렀다.
흑색 화약은 드워프들이 만들어 파는 값비싼 것으로 같은 무게의 은보다 비싼데 보관도 힘들고 관리도 어렵다. 코헨 라이오네어가 저들 뒤에 있으니까 저런 무기를 쓸 수 있는 것이리라.
‘우선 저 석궁수들을 어찌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것 같은데.’
아자딘은 주교를 안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즈밀라를 발견했다.
“이즈밀라!”
“네!”
“주교님을 부탁해.”
아자딘은 이즈밀라에게 주교 아케나르를 넘기고 가면을 썼다.
-화조풍월 땅거미!
그림자를 따라 어둠을 타고 흐르며 아자딘의 몸이 순식간에 5장 정도를 이동해 적들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암살에 특화된 근거리 공간이동술!
그동안 이걸 못 써서 무식하게 체술로 흉내 내고 있었다니. 아자딘은 새삼스럽게 전령일족의 마도서, 화조풍월의 위력에 경탄했다.
메제리의 사도들이 아밍 소드를 양손에 쥐고 미친 듯이 휘두르며 기사들의 접근을 막으며 도륙했지만 아자딘은 그런 메제리의 사도들을 뛰어넘어 단번에 홉고블린 석궁수들에게 당도했다.
놀란 석궁수들이 저항하려 했지만 아자딘은 석궁수들이 발사하는 불붙은 화약통을 메제리의 사도들에게 날려 보냈다.
-퍼엉!
굉음과 함께 메제리의 사도들이 박살난다.
웨어 랫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동안 아자딘은 세라마이트 장검을 뽑아 휘둘렀다. 검신에서 눈부신 황금색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홉고블린들이 쓰러진다.
‘아하. 이렇게 쓰는 거로군. 성스러운 불길이 일어나는 검이라니. 그런데 여기서 쓰면 안 되겠다.’
아자딘은 불타오르는 검을 휘두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화약통을 들고 있는 놈들을 불타는 칼로 때리다가 폭발이라도 하면 아무리 아자딘이래도 함께 골로 갈 게 뻔하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칼날에서 불길이 사라졌다.
‘조절이 되나? 다행이다. 칼날이 무뎌서 베는 맛이 아주어 스틸보다 떨어지지만 이 검은 이렇게 쓰는 거로구나.’
아자딘은 불길이 사라진 세라마이트 장검으로 홉고블린들을 베어 쓰러뜨렸다.
카자스 해서는 약화되었지만, 화조풍월의 온전한 습득 덕분에 아자딘의 살상능력은 더더욱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아자딘의 모습이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동하며 홉고블린들을 베어 내고, 그다음 순간 그의 몸이 낮게 깔리며 고속으로 이동해 또 다른 홉고블린들을 전부 베어 버렸다.
화조풍월에서 카자스 해서를 연결해 사용하는 두 마리 땅거미, 금색 검광이 춤추며 순식간에 홉고블린들을 처리한다.
덕분에 무딘 세라마이트 칼날이 뭉개지며 날이 상했지만.
아자딘이 칼을 치켜들자 칼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불꽃이 칼날을 녹여 다시금 재형성한다. 마치 새것처럼 반짝이는 매끈한 칼날이 달빛을 반사한다.
‘그렇군. 이것이 아우렐리아 던이구나. 멋진 칼인데?’
아자딘도 세라마이트 장검의 매력을 깨달았다.
마치 불사조처럼 스스로를 불살라 다시금 수복되는 검.
과거, 카자스 해서의 괴력 때문에 무기를 자주 갈아야 했던 아자딘에게 딱 맞는 검이다.
지금은 그런 괴력이 나오지 않지만 홉고블린을 참수하고 나면 충분히 날을 되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말도 안 돼….”
보고 있던 구난기사들은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라마이트 장검에서 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성기사들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어째서 저놈의 세라마이트 장검이 불타는 거지?’
‘심지어 칼이 스스로 칼날을 녹이고 재형성했다!’
구난기사단의 신성한 힘이 약해지고 있는 지금, 세라마이트 장검에서 불길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는 구난기사단에서도 유능한 성기사에게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자딘이 그 세라마이트 장검에서 불길을 너무 쉽게 이끌어 내니 다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다.
화조풍월에서 카자스 해서로 이어지는 연계에 따른 공격력이 엄청나다. 혼자서 홉고블린 궁수들을 싹 쓸어 버린 것이다.
“히익.”
“말도 안 된다!”
“처, 철수!”
메제리의 사도들은 홉고블린들이 몰살당한 것을 보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바닥에 떨어진 화약통을 집어 들어 세라마이트 장검으로 쳐서 날렸다.
불길이 이어지면서 화약통이 메제리의 사도들 사이에서 폭발한다.
“크악!”
도망치는 메제리 사도들은 정신을 못 차렸다. 아자딘이 계속 추격하려고 했지만.
-투둑.
아자딘의 턱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음?’
턱을 훔치니 손등에 피가 묻어 나온다. 깜짝 놀란 아자딘은 얼굴을 매만져 보았다.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
아직 몸이 온전하지 않다. 아라엘의 마법 재능을 계승한 지금, 아자딘의 힘은 엄청나지만 그 힘을 몸이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아쉽군.’
현기증과 함께 열기가 엄습해 왔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어지러움을 느낀 아자딘은 추격을 멈추었다.
그때 아자딘의 뒤에서 뭔가가 날아들었다.
“음?”
빠르게 손을 뻗어 받아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월각궁이었다.
“하.”
아자딘은 그것을 누가 던졌는지 알아채고는 허리에 월각궁을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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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아라가사의 십부장 잔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탈출했다.
정황상 아자딘에게 투항하긴 했지만 이대로 계속 아자딘의 곁에 남을 경우 구난기사단에서 심문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고문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아라가사라 하더라도 답이 없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건 가능하겠지만 고문을 당하고 나면 폐인이 되어 버리기 마련이라 차라리 그 전에 자살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설마 절 구해 주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잔은 자신을 구해 준 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야 당연하잖아. 아버님께서는 스스로를 황제라 여기고 계시니까 말야. 아라가사들의 충심을 사고 싶어 하신단 말이지.”
무수한 마물과 메제리의 사도들, 거미 여왕 아트라의 사도들 사이에 야에가스 신족의 피를 이어받은 은발의 청년이 서 있었다.
“그럼 가면서 이야기해 보자고. 잔. 과연 어떤 대단한 놈이길래 널 생포했는지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