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39
238. 그리고 새로운 사명에 1
콕스할로 돌아가는 동안 아자딘은 계속 열이 오르더니 급기야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추가 습격은 없었다.
콕스할 인근에서 주교와 순례단을 걱정한 콕스할 태수가 사병들을 이끌고 나와 맞이해 준 덕분에 순례단과 주교 아케나르는 무사히 콕스할 구난기사단 본부로 귀환할 수 있었다.
콕스할에 위치한 구난기사단 본부는 주교구 건물과 교당, 기사단 건물로 이뤄진 커다란 장원이기도 했다.
그 장원에 도착한 아케나르는 아자딘에게 하인을 붙여 주고 숙소에서 가장 좋은 방을 내어 주도록 했다.
“그를 간호하세요. 의사를 불러오시고요.”
“네? 주교님. 이자는 전령일족입니다. 그런데….”
“아니요. 지금 그는 우리 교단의 형제입니다. 제가 그를 서임했으니 그는 제 보증하에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를 의심하는 것은 제게 불명예를 선사하는 행위입니다. 향후 또 그런 발언을 한다면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하오나….”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는 건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교 아케나르가 그의 기사 서임을 인정했고 공식적으로는 그녀가 아자딘에게 기사 서임을 거행한 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아자딘의 신분은 호스피탈러-에란트. 이제 겨우 수련기사다.
일개 수련기사에게 주교가 직접 자신의 하인들을 붙여 주고 병간호를 지시한다는 건 지나친 편애다.
“지금부터 왈가왈부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명령하는 대로 따르세요.”
아케나르는 그리 말하고 서둘러 구난기사단의 주교실로 향했다. 이곳에는 고대 유물인 석영 거울이 비치되어 있는데 같은 짝의 거울끼리 마법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치였다.
이것으로 구난기사단은 세계 각지에 주교구를 두고도 긴밀하게 조직을 운영할 수 있었다. 신묘한 보물이라서 왕의 교회조차 매번 탐내는 기물이다.
“저는 그럼 순례단을 습격한 이들이 북제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주교들에게 알리겠습니다. 긴 회의가 될 수 있으니 순례단원과 다른 기사들은 휴식을 취하도록 하세요. 순례단원들은 이 주교구를 떠나지 말도록 하십시오. 아직 밖에 습격자들과 암살자들이 배회할지 모르니까요.”
아케나르는 그 말을 남기고 주교실로 향했다.
“으음.”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카밀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주교님이 아주 친절하시네. 하지만 기사단이 북제가 습격했다는 말을 믿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전령일족이 북제를 고발한 꼴이잖아? 누가 감히 전령일족 따위의 증언을 믿고 야에가스 신왕을 의심하겠어?”
“그, 그러게요.”
이즈밀라는 그리 말하고 힐끔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하인들이 아자딘을 들것에 실어서 침실로 옮기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기회에 이 놈의 얼굴을 봐야지. 궁금했었어. 이 자식. 어떻게 생긴 놈이길래 맨날 가면을 쓰고 사나. 으헤헤.”
카밀라가 신이 나서 아자딘을 뒤따라간다. 그러자 동생인 쿤타치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엉. 누나. 나 배고파.”
“저기 성직자들에게 밥이나 달라고 해. 나는 저놈 얼굴을 봐야겠다.”
“잠깐만요.”
이즈밀라가 카밀라를 말렸다.
“굳이 병자를 귀찮게 해야겠어요?”
“그 병자를 간호하려면 어차피 가면은 벗겨야 하잖아.”
“그것도 그렇네요…가 아니라 당신이 간호할 것도 아니잖아요?”
이즈밀라는 얼굴을 붉혔다.
“당신도 보고 싶잖아? 안 그래?”
“그, 그게, 저는 어두울 때 잠깐이지만 봤어요.”
“봤다고? 어땠어?”
“자, 잘은 모르겠어요. 어두울 때 잠깐 본 거라서. 하지만, 음.”
“못생겼어? 아니면 뭐 흉터라도 나 있어?”
“어두워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잘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음, 말도 안 돼. 제가 잘못 봤겠죠.”
“뭐가 말도 안 된다는 거야?”
“그게 터무니없이 잘생겼었던 것 같아서.”
이즈밀라가 그리 말하고 몸을 꼬았다.
“뭐? 그 정도로 잘생겼다고? 얼마나? 아니, 네 취향이 이상한 거 아냐? 혹시 내 동생 같은 거 좋아해?”
“아니에요!”
“하여튼 네가 그러니까 더더욱 안 볼 수가 없네. 뭐 지금 보면 알겠지.”
“그러지 마요. 아픈 사람한테 무슨 짓을….”
“하지만 너도 다시 확인하고 싶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럼 보는 거지 뭐. 따라와. 같이 보자.”
카밀라는 이즈밀라의 반응을 무시하고 하인들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하인들은 아자딘을 주교당의 2층, 고위 사제용 침상에 올려놓고 그의 옷가지를 벗기고 마지막으로 가면을 벗겼다.
“어….”
카밀라는 마침내 드러난 아자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다시금 아자딘의 얼굴을 확인한 이즈밀라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잘생겼잖아. 재미없게…. 못생겼으면 놀려 먹으려고 했는데.”
“흠. 흠.”
이즈밀라와 카밀라, 둘 다 헛기침을 하면서 램프를 가져와 탁자 옆에 두었다. 빛이 늘어나서 더욱더 자세히 아자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아자딘이 눈을 떴다. 눈이 부셔서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그는 자신이 눈부심을 느낀다는 사실에 놀랐다.
“뭐야? 눈이 아파…. 왜 다들 여기 와 있어?”
“와. 누, 눈이 보라색이네.”
“음?”
아자딘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 보곤 쓴웃음을 지었다.
가면이 벗겨져 있다니.
게다가 보라색 눈이라니. 하르코니아의 눈이 아닌가? 전령일족이 상서롭게 여기는 초대 두령의 눈동자, 아라엘이 가지고 있던 그 눈이 아자딘에게도 발현된 것이다.
그녀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당연하다.
“야. 잘생겼네. 후후. 이 보기 좋은 걸 왜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어? 좀 세상에 많이 드러내지. 아 상처날까 봐 그런 거야? 그런 거면 인정이지.”
“…….”
아자딘은 지금까지 용모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눈이 없는 그의 해괴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다. 전령 선별 훈련 때는 동기나 선후배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아자딘의 얼굴을 구경거리처럼 본 적도 있었다.
선배들에게 당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자신보다 기수도 낮은 후배들에게까지 구경거리로 여겨지면서 능욕당했던 것은 아직도 자다가 악몽에 나올 정도로 아자딘에게 큰 상처였는데 이들 둘이 아자딘을 구경하고 있으니 그때의 아픔이 다시금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그녀들의 눈에는 호의가 깃들어 있다.
“아. 지금 내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인가?”
“그래. 야. 주교님이 널 끔찍하게 아끼던데 혹시 주교한테도 얼굴 보여 줬어?”
“보여 줬지. 기사로서 내 후견인이신데 얼굴을 보이지 않는 건 무례인 것 같아서.”
“아하하. 그럼 주교님이 너에게 반한 거 아냐?”
듣고 있던 이즈밀라가 깜짝 놀라서 카밀라의 등짝을 딱 때렸다.
“말조심하세요. 어찌 그런 무례를!”
“아니. 아주 없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나는 주의하라고 하는 말이야. 주의. 애초에 주교님이 쓰고 있는 그 가면, 여자 성직자들이 남정네들 딴 마음 품지 말라고 쓰는 가면이잖아. 그런 가면이 왜 만들어졌겠어? 과거에 성직자들이랑 외간 남자들이랑 모종의 사고가 있으니까 생긴 거지.”
“그러니까 그런 말 하는 것 자체가 불경하다는 거예요. 누가 들으면 경을 칠 소리니까 삼가세요.”
“다 좋은데.”
아자딘은 자신의 열을 낮추기 위해 하인들이 준비해 준 물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쉬고 싶으니까 좀 나가 있지?”
“그러지. 그런데 눈은 왜 가리는 거야?”
“난 이 얼굴을 좋아하지 않아.”
“뭐? 왜?”
“내가 내 누이의 생명을 빼앗아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하니까. 그리고 내 얼굴을 누가 구경거리처럼 보는 건 더더욱 싫고. 자 됐지? 나가 줘.”
아자딘은 두 사람을 내보내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열병이 그를 집어삼켜 마치 끝도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이내 잠이 들었다.
“안 나갈 거지롱.”
카밀라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즈밀라에게 옷자락이 잡혀 질질 끌려 나가야 했다.
*********
주교 회의는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이즈밀라를 포함해 죄수들, 카밀라와 그 하프 오크 동생인 쿤타치, 그리고 혈마법사 버나드는 계속해서 지리한 심문을 받아야 했다.
너무 지루해서 정신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다 아예 미쳐 버릴 때쯤 되어서야 겨우 주교 회의가 끝이 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지요?”
주교 아케나르는 열병에서 회복한 아자딘을 맞이했다.
“그저 감기일 뿐입니다. 몸은 다 나았습니다.”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 그는 감기나 잔병을 겪지 않았다. 전령일족들 모두가 그러했는데 화조풍월의 마도서가 자잘한 병마들의 침범을 용서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아자딘의 신체는 그야말로 죽기 직전이나 다름없는 병자의 상태. 아라엘에게 받은 마도서들과 마법의 적응력 때문에 힘은 강력해졌으나, 그 강한 힘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취약함과 공존했다.
마치 얇은 유리잔 안에 불붙은 독주를 담아 둔 것과 같아서 언제 이 화력에 의해서 유리잔 자체가 깨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게다가.
‘마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
우습지만 아자딘은 자신의 안에서 다시금 신왕진서의 마력이 나타나는 걸 느꼈다.
신왕진서와 화조풍월, 이 두 마도서가 마치 여름날의 수초처럼 몸 안에서 빠르게 자라나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을 휘두르게 된다면?
이미 죽음의 문턱에 들어갔다 돌아온 몸이 버티질 못한다. 그래서 코나 눈에서 피가 흐르고, 열이 오르는 것이다.
‘어차피 죽었어야 할 목숨, 아라엘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다. 고맙게 여길 일이지.’
아자딘은 그런 상처와 아픔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주교 아케나르에게 감사를 표했다.
“주교님 덕분에 무사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본래 구난기사단은 아자딘을 심문실과 지하 감옥에 처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주교 아케나르는 아자딘을 특별히 주교구의 가장 좋은 침실로 머물게 하고, 자신의 하인들을 붙여 병간호를 시켰다.
그녀가 방패가 되어 아자딘을 폭거로부터 지켜 주었던 것이다.
“본래라면 당신에게 포상을 드려야 마땅합니다. 순례단의 위기에서 기사단을 도왔을 뿐 아니라 습격당한 마을을 구하고 또 지혜의 플랑크 경을 안식에 들게 한 그 상훈도 대단한 것이지요. 당장 콕스할의 태수가 플랑크 경을 안식에 들게 하는 자에게 포상을 약속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주교들은 당신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케나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는 구난기사단 모두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는 구난기사단 출신의 왕입니다. 구난기사단에서 왕을 배출했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기사단 내에서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럼 다른 주교들은 진실에 상관없이 오히려 절 제거하고 싶겠군요. 북제를 비방하는 전령일족이라니.”
“네. 아자딘. 기사단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