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40
239. 그리고 새로운 사명에 2
그런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영혼 없는 불경자, 신왕살해자.
이방인 중의 이방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니까.
“당신이 구난기사단에 들어온다면 그들은 당신을 차드라 고원으로 보낼 것입니다.”
“차드라 고원 말입니까?”
“네. 휘브리스 반도의 북쪽, 네더스트롬에서 뿜어져 나온 고대신의 피가 비에 섞여 내리는 지옥 같은 땅이지요. 구난기사단이 매년 순례를 하며 각지의 죄수와 농노들을 끌어 모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물이 끊임없이 출몰하는 땅. 이곳 때문에 많은 군왕들은 휘브리스 반도의 비옥함을 포기하고 구난기사단에 이 옥토를 떠맡겼다.
“구난기사가 되길 포기하신다면 저는 당신에게 콕스할 주교구의 경비대장직을 제안할까 합니다. 기사는 아니지만 안정적이고 괜찮은 직업이지요. 제 보호하에서 그 누구도 당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곳에도 사람들을 위협하는 사교도, 살인자, 납치범들이 들끓고 있으니 임무 또한 보람찰 것이고요.”
아케나르는 아자딘에게 자신의 개인 사병대 대장 자리를 제안했다.
“만약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난기사단에 입단하겠다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제가 당신의 후견인이 되겠습니다만… 기사단의 인사권은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형벌부대에 편성해서 차드라 고원으로 보내겠지요.”
구난기사가 되어 자신을 혐오하는 상층부의, 그리고 아마도 북제의 입김하에 있는 이들의 뜻대로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명백하게 호의를 보이는 아케나르 주교의 사병이 되어 호의호식하며 콕스할에 머무를 것인가?
생각할 것도 없는 선택이었다.
“저는 이미 서임을 하였으니, 이제 와서 호스피탈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당신을 형벌부대에 보내 사실상 힘이 다할 때까지 싸우다 죽기를 바란다고 해도 말인가요?”
“네.”
“어째서입니까? 지금의 기사단은 솔직히 당신 같은 분이 헌신할 만한 곳이 못됩니다.”
그것은 기사단의 주교가 해서는 안 될 폭언이었다. 하지만 가감 없는 진심이기도 했다.
왕의 폭거로 인해 강제로 이혼당해 억지로 주교직을 떠안게 된 전 왕비, 아케나르는 기사단의 더러운 꼴을 질리도록 보아 왔다.
이들은 권력과 야합한, 아니, 권력 그 자체이다. 그런데 대체 왜?
“저는 죄인입니다.”
“죄인이라고요?”
“예. 사랑하는 이들을 제 손으로 죽이고 전령일족의 상당수를 제 손으로 파괴했으니까요.”
“…….”
주교 아케나르는 아자딘의 말에 충격받은 듯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런 소리를 이만한 무게를 가지고 할 수 있는가?
아자딘은 세라마이트 장검의 칼집, 그 어깨끈을 매만졌다.
구난기사단의 징표, 세 날개가 달린 수레바퀴의 문장이 만져졌다.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이 별을 보며 길을 잡아 간다면, 저는 제 길잡이, 저의 별들을 스스로 파괴했지요. 그렇게 가야 할 길을 잃고 방황하던 중에 어린 시절에 구난기사단을 꿈꿨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의 구난기사단은, 그들의 가르침은 분명히 제게 구원이었으니….”
“하지만 지금의 구난기사단은 누군가의 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말인가요?”
“네. 너무 제 걱정은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힘들면 도망칠 테니까요.”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의 구난기사단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은 조직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서임한 플랑크 경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아자딘 경.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녀는 그리 말하더니 아자딘을 흘겨보았다.
“대신, 매주 제게 편지로 보고하도록 하세요. 다른 기사단의 간부들로부터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황송할 따름이군요. 감사합니다. 주교님.”
아자딘은 아케나르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
전멸당한 순례단은 새롭게 재편성되었으나 재편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순례단이 습격당할 때 도망쳐서 살아남은 이들, 그리고 콕스할의 부랑자를 섞어서 새롭게 순례단을 꾸렸고, 순례단 단장으로는 주교구에 당도해 구원을 요청했던 벨린즈가 임명되었다.
벨린즈는 40대 중년 남자로 까칠한 시선으로 아자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도 이제 우리 순례단의 일원이네. 아자딘… 경. 그리고 여기 자네가 기사단에 적응하는 걸 도와줄 자네의 부관이네. 수련기사에게 본부가 스콰이어를 붙여 주는 건 예외이긴 하지만… 자네가 그 예외인가 보군.”
“으아아악! 젠장! 어째서입니까! 왜 제가!?”
부관으로 소개받은 이는 이즈밀라의 문장관이었던 맥도갈이었다. 아마도 그가 아자딘의 부관으로 새롭게 임명된 모양이었다.
“저는 본래라면 스콰이어를 끝내고 슬슬 수련기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란 말입니다! 애초에 그걸 약속 받고….”
“뭐?”
“아니 그걸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하여튼 이번에 임무가 무사히 끝나면 수련기사가 되기로 약속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영혼 없는 불경자의 부관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맥도갈이 펄펄 뛰자 보고 있던 아자딘이 한마디 했다.
“그야 이번 임무를 실패해서?”
“네?”
“성공은 아니지 않나.”
벨린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례단이 전멸되었다고 저를 강등시킨다는 겁니까? 말도 안 돼! 이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조직 사회의 신상필벌이라는 게, 음. 알지 않나.”
“으아악! 제기랄!”
맥도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아자딘은 그런 맥도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럼 네가 내 부관인가. 이봐. 부관. 심부름을 좀 해야겠는데.”
“…….”
“이걸로 가서 박하사탕을 좀 사 와.”
아자딘은 은화 한 닢을 맥도갈에게 튕겨 주었다.
“진심…이십니까?”
맥도갈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아자딘에게 당황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도 오히려 부관으로 부려 먹다니?
그러나 아자딘은 미소를 지으며 능청을 떨었다.
“빨리 다녀오는 게 좋을 걸.”
“큭!”
맥도갈은 명령을 내린 아자딘이 아니라 이 장소에서 가장 경력이 긴 고참 기사, 벨린즈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시키는 대로 박하사탕을 사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자, 그럼 시끄러운 녀석은 내보냈고, 순례단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시끄러운 문장관을 치워 버린 아자딘은 새로운 순례단장에게 물어보았다.
“이곳에서 배를 기다리라고 명령받았네. 순례는 끝이다. 이대로 순례단은 구난기사단의 총본산, 세인트 말로리 요새로 돌아갈 걸세.”
“그런데 세인트 말로리 요새가 뭔지는 아나? 성기사가 되었는데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벨린즈와 함께 순례단을 버리고 도망쳤던 생존자, 세필드가 시시덕거리며 물었다. 벨린즈보다 좀 더 젊은 이 남자는 노골적으로 아자딘을 조롱할 준비 만만이었다.
“구난기사단의 성지이자 총본산 아닙니까? 삼위의 대천사와 천사들이 힘이 다하여 석상으로 변해 버린 통곡의 언덕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자, 잘 알고 있군.”
“그런데 배를 기다리라니. 혹시 니스라프가 오는 겁니까?”
아자딘의 목소리가 기대로 들떴다.
“기함 니스라프. 구난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보물, 전장 육백육십육척, 자율 재생소재로 천년이 지나도록 따개비 하나 들러붙지 않고 신품과도 같은 몸체를 유지하는 미지의 선체. 돛도 노도 없지만 네더스트롬을 가로지를 수 있는 유일한 배. 아마도 그걸 보내겠지요? 순례단이 전멸당하는 추태를 보였으니 떨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도 구난기사단은 힘을 보여야 할 겁니다. 니스라프만큼 구난기사단의 힘과 사명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게 그리 많지 않지요. 당장 보여 줄 수 있는 기적의 증거이니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직접 육안으로 니스라프를 보는 것을 꿈꿔 왔습니다만 이거 잘하면 그 니스라프에 탈 수도 있겠군요. 후후.”
“…….”
“어. 음.”
구난기사단 대원들은 니스라프의 제원마저 줄줄 외우는 아자딘을 보며 당황했다.
“아, 아마도 그럴 걸세. 그런데 니스라프도 알고 있다니 대단하구만.”
벨린즈은 그리 말하고 헛기침을 했다.
“어쨌건 아자딘 경. 자네는 소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일단 여기가 자네 소대의 인원들이네.”
여도적 카밀라와 그 동생 하프 오크 쿤타치, 그리고 혈마법사 버나드가 아자딘의 소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자네 소대의 첫 임무는 살아남은 농민들, 부랑자들을 데리고 차드라 고원의 버밀리온 요새에 당도하는 것이다.”
“흠. 고작 일개 소대만으로 말입니까? 게다가 소대라고 해도 이건 분대도 안 되는데요.”
이동시켜야 할 농민과 부랑자의 숫자가 못해도 50명은 되는데 그 많은 인원을 고작 이 정도 소대로 움직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안심하게. 세인트 말로리까지는 우리가 함께할 테니 말이네.”
“흠?”
그때 갑자기 창밖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콕스할 도시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세상에!”
“니스라프다! 니스라프가 왔다!”
구난기사단의 기함, 니스라프가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자딘의 예상대로 구난기사단은 기함 니스라프를 보냈다.
순례단이 기습에 와해되어 인망을 잃자 기사단은 실존하는 전설, 니스라프를 보내 사람들에게 기사단의 건재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아자딘은 혹시 자신이 니스라프에 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호스피탈러-나이트 벨린즈 경. 당신을 수행중대의 중대장으로 임명합니다.”
“예?”
“이 명단에 있는 기사들 모두, 수행중대로 이관해 차드라 고원에 위치한 버밀리온 요새까지 농민들과 죄수들을 이송하시오. 그리고 이후는 버밀리온 요새에서 복무하도록….”
“그, 그 말씀은?”
“저희 보고 차드라 고원으로 가라는 말이 아닙니까?”
아자딘은 본래부터 차드라 고원으로 갈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기사들은 자신들이 그곳으로 배치받자 기겁했다.
“세, 세인트 말로리 요새도 들리지 않고 육로로 이동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세인트 말로리 요새는 성역이라서.”
명령서를 가져온 기사가 노골적으로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아자딘이 순례단에 포함된 이상 그들을 세인트 말로리 요새로 들일 생각은 없다. 아울러 니스라프에 태울 생각도 없으리라.
“어차피 우린 차드라 고원으로 가는 거긴 한데. 다른 기사들 표정이 개박살 나는 걸 보니까 왜 이렇게 즐겁지?”
카밀라가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히죽 웃었다.
“그야….”
아자딘도 미소를 짓고 대꾸했다.
“길동무가 많고 분위기가 화목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