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5
24. 성기사들의 학살 1
“그러니까 개척민 놈들은 게으른데 그놈들이 지금 비 좀 덜 왔다는 이유로 자기네 지역을 넘어서 남들이 다 일군 비옥한 토지에 가서 살고 싶다는 거잖아? 어떤 영주가 그런 걸 들어주겠냐고.”
타르키는 개척민들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감추어야 할 치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가난한 놈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가난한 거라고.”
“음.”
아자딘은 그런 타르키의 발언을 듣고 혀를 찼다.
“네가 계승권 싸움에서 패배자가 되어 왕의 교회로 출가하게 된다면 그때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뭣? 날 모욕할 셈이냐?”
“응. 모욕할 셈이다. 어쩔 건데?”
“아, 아니 그치만 나는 금화를 가지고 청원한 사람인데.”
타르키는 자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알고 감히 아자딘에게 대들지 못했다.
“사생아 주제에 남을 깔볼 수 있는 그 삶의 태도가 부럽다. 나도 너처럼 머리가 나빠서 생각이 짧았으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갔을 것 같은데 말야. 네가 뭐 네 손으로 동전 한 닢 벌어 보고서 하는 말이냐?”
“아니 나는 그래도 귀족인데! 아버지는 살라스마 변경백인 카젤 백작이고 어머니는 노르트 남작 영애이자 코진 상회의….”
“그리고 나는 귀족들 죽이는 게 일이지. 우리 일족이 왜 신왕살해자라 불리는지 알면 귀족 혈통을 내 앞에서 자랑하진 않을 텐데?”
“…….”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귀족 죽이는 걸로 소문난 놈 앞에서 자신이 귀족혈통이라고 자랑하다니.
“다행스럽게도 너는 별로 대단한 귀족이 못 돼. 대단한 귀족이었으면 마법으로 네 몸을 좀먹는 아트라의 권속들쯤은 태워 버렸겠지.”
“다, 당신도 마법 못 써서 꼬마에게 시켰잖아?”
“그래서 나는 개척민들을 무시하지 않지. 운명 앞에서 겸허해라. 운 좋게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서 굶지 않고 멋대로 성장한 주제에 타인들을 깔보다니. 개척지가 왜 옥토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대가리로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행운에 감사하라고.”
아자딘은 타르키를 비난하면서 근처 병사의 시체에서 할버드를 집어 들고 날을 살펴보았다. 경비대장의 것이었는데 할버드의 날이 정말 잘 만들어져 있었다.
아자딘은 그걸 들고 관문에서 살육을 벌이고 있는 거미 용병에게 다가갔다.
다가갔다고 해서 바로 습격하지 않고 근처 장애물을 이용해 최대한 접근한 뒤 담벼락을 타고 올라갔다가 그 위에서 뛰어내리며 일격을 가했다.
-퍽!
단 일격에 용병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목을 잘라 버리면 잘 먹히는군.”
아자딘은 거미 용병의 목을 잘라 버리고 빠르게 지푸라기를 뿌린 뒤 횃불을 던져 불을 질렀다.
거미 용병들은 지휘하는 용병대장이 사라지자 제대로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식욕을 채우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덕분에 피해는 보기보다 크지 않았다. 죽여 버린 인간의 시체에 매달려 허기를 채우는 걸 우선해서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질린 사람들이 공격하면 반격으로 사람들을 죽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미 용병들을 피해 멀찍이 도망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아자딘은 차례차례 거미 용병들을 처치했다.
“…청원도 해결했고 적당히 수를 줄였으니 더 이상 이것들을 죽여 봤자 무의미합니다.”
이스마일은 미디암을 부축하면서 아자딘에게 충고했다. 그러니까 마을이 괴물들에게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살해당하건 말건 내버려 두자는 소리였다.
‘이놈은 나이답지 않게 냉정하고 박정하군. 아니면 미디암 때문에 짜증이 잔뜩 나 있는 건가?’
아자딘은 이스마일의 당찬 발언을 마음에 새겨두면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청원을 했다가 살해당한 사람이 원했을 게 이거인 것 같아서. 청원자가 죽어 버렸다고 해도 공짜로 금화를 챙기는 건 원하지 않거든.”
“그럴 리가요. 아마 저 사생아처럼 자기만 살자고 했을 겁니다.”
“사, 사생아? 너 지금 말이라고 했냐?”
타르키는 자신을 사생아라 부르는 이스마일을 보며 분개했다. 나이도 어린 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니 화가 잔뜩 난 것이다.
“그만. 거기까지.”
아자딘은 타르키에게 할버드를 겨눴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이 녀석들 입 험한 건 인정하는데 그래도 넌 사생아로 충분해.”
“아니 내 이름 정도는 알려야.”
“뭐하게? 쓸데없이 머릿속 기억공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사생아면 족하지 뭐.”
아자딘은 타르키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하고 또 다른 거미 용병들에게 접근했다. 다들 제각각 고기를 먹느라 서로서로의 연계가 흐트러져 있었다.
차례차례 각개격파가 가능하다.
“흠, 해치워볼까.”
아자딘은 자신에게 뒤를 보인 채 시체를 물어뜯고 있는 거미 용병에게 다가갔다.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가자 거미 용병이 몸을 돌려 아자딘을 의식한다. 마치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사냥꾼을 경계하는 마수 같다.
하지만 그 경계심도 소용이 없었다.
-어스름!
아자딘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거미 용병의 간격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할버드로 일격! 단숨에 거미 용병의 머리가 잘려나간다.
단면을 작은 거미들이 메워서 막으려 하지만 이미 잘려서 떨어져나간 부위는 어쩔 수 없다.
“크룩!”
또 다른 거미 용병이 아자딘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할버드를 사선으로 휘둘러 놈의 팔과 거미 다리, 그리고 목까지 단번에 잘라 버렸다.
“처음엔 상대하기 까다로웠는데 점점 익숙해지는군. 그런데….”
아자딘은 할버드가 덜렁거리는 걸 느꼈다. 사람의 목뼈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팔뼈, 그리고 외골격으로 된 거미 다리까지 베다 보니까 할버드의 자루에 부담이 많이 간다.
나무로 만든 자루가 부서지고 비틀리는 걸 본 아자딘은 아예 할버드 머리를 떼어서 챙기고 또 다른 용병의 검을 집어 들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사생아?”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타르키가 당황했다.
‘어, 엄청나잖아? 이 자식, 이게 전령일족인가?’
타르키는 아자딘의 무력에 경외심까지 느꼈다. 자꾸 자신을 사생아라 부르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의 성질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아자딘이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였다.
북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왕의 교회다!”
“왕의 교회가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나타났다!”
“우린 이제 살았어!”
사람들의 환성이 들려오는 걸 보니 근처에 있던 왕의 교회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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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왕의 교회는 쿠르트 신족과 마물들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고 왕의 법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난 성기사들이었다.
각자의 영지를 가진 영주들은 자신들의 재산에만 관심을 기울이니 영지를 가지지 못한 성기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초기에는 분명히 그런 사명이 있었으나 현재 왕의 교회는 완전히 세속화되어 있었다. 이는 왕의 교회가 크게 세 부류의 구성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범죄자들.
귀족의 핏줄을 이었으나 왕법을 어긴 이들은 왕의 교회로 출가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둘째는 궁정 암투에서 밀려난 자들.
형제들끼리 상속권 다툼을 할 경우, 가주의 지위를 상속받지 못한 이들은 보통 암살자들에 모살당하기 마련인데, 죽는 게 싫다면 모든 상속을 포기하고 왕의 교회로 출가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는 사생아들.
귀족의 피를 이어 백색 마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상속권 다툼에도 참여할 자격이 없는 사생아들이 왕의 교회로 출가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많은 이가 왕의 교회에 투신하게 되면서 교회는 점점 세를 불려나가게 되었고 이는 곧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교회의 성기사들을 먹이고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강력한 무력집단이 된 왕의 교회는 그러한 자원들을 억지로 왕과 귀족들에게 받아내었으며 귀족들 간 상속 전쟁에 관여해 그들의 권력을 강화했다.
본래 이단시되었던 구난기사단이 팔왕국의 인가를 받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왕의 교회로만 귀족들과 사생아들을 출가시키면 권력과 병력이 왕의 교회에 쏠리기 때문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성기사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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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평소라면 다들 두려움에 떨게 하는 왕의 교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나 반갑다.
“왕의 교회?”
다만 전령일족인 아자딘에게는 귀찮은 자들일 뿐이다. 이미 권속을 상당히 처리했는데 이제 등장하다니.
“어쩌죠?”
“뭐 왕의 교회라면 쿠르트 신의 권속들에게 그렇게까지 무력하진 않을 테니까 뒤는 그들에게 맡기자. 그들과 만나봐야 좋을 게 없으니.”
아자딘은 더 이상 거미 용병들을 해치우는 걸 포기하고 케림 산양을 불러왔다.
“그럼 청원은 이루어줬다, 청원자여.”
아자딘은 타르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어. 그, 그래.”
“혹시 뭐 추가로 부탁이 있나? 널 백작으로 만들어 달라는 멍청한 요구 말고.”
“그… 일단 여기서 도망치게 해주십쇼.”
타르키는 아자딘에게 겁을 먹었는지 존댓말을 썼다.
“왕의 교회가 조사를 시작하면 지금 사고 친 용병단이 제가 고용한 놈들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럼… 끝장이에요! 적어도 이놈들 없는 곳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알겠다. 어쨌건 금화의 청원자를 왕의 교회의 손에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아자딘은 타르키의 동행을 허락했다. 자신을 백작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은 들어줄 가치가 없지만 그렇다고 그를 왕의 교회에 잡히게 할 수는 없었다. 고문당하면 바로 불어 버릴 테니까.
“그럼 탈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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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 일행은 서쪽 관문을 통해 역참 마을을 탈출해 서진했다. 계속되는 전투와 강행군으로 아자딘뿐만이 아니라 모두 다 지쳐 있었다.
“아, 바로 어제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미디암은 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바로 어제,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의 캐러밴에서 목욕을 하고 새 옷을 갈아입었던 게 거짓말 같다.
산뜻한 기분은 하루만 지나도 사라지고 땀과 먼지로 새 옷이 엉망이 된다.
“좋아. 해가 뜬다. 이 정도 왔으면 왕의 교회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좀 쉬자.”
아자딘은 휴식을 명하고 길가에 멈춰섰다.
인근에 농장 건물들이 보이지만 입구에는 사냥개들이 지키고 있었다.
아마 조금 시간이 지나면 농부들이 일을 하겠지. 그때 마구간 등을 빌려서 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쪽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며 세계가 자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자딘은 나무에 기대어 멍하니 일출을 바라보았다.
“뭐 하고 있어요?”
미디암이 물어보았다.
“일출을 바라보고 있지.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는 경계선이 하늘을 달리는 장면은 볼 때마다 장엄하군.”
아자딘은 미디암의 질문에 답하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피곤하긴 한데 너무 피곤해서 잠이 잘 안 오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컨디션 조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