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50
249. 기사단의 비밀병기 3
“만나서 반갑군요.”
아자딘도 칼린츠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래. 자네의 등에 차고 있는 그 칼이 아우렐리아 던이로군.”
“알고 계십니까?”
“구난기사단의 명검 중 하나지. 그걸 수복해서 들고 있다는 건 자네가 그 플랑크 경을 안식에 들게 했다는 거겠군?”
“예.”
“후후. 혹시 괜찮다면 나와 함께하지 않겠나? 나는 여러모로 인재가 필요하네.”
“애석하오나 지금의 저는 구난기사단의 수련기사에 불과한지라, 제멋대로 누구를 섬길 수는 없습니다.”
“아 그랬지. 참. 후후. 그럼 몸조심하게. 챕터 마스터가 고문관과 병사들을 집무실에 불렀던데 자네를 위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칼린츠 왕자는 그리 말하고 아자딘의 어깨를 두들겼다. 곰 앞발 같은 엄청난 손이 아자딘의 어깨를 털어 준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아자딘 경.”
“예. 왕자님. 다음에 또.”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에게 의미심장한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십부장 잔과 그 휘하의 북방 아라가사들도 칼린츠 왕자를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문으로 하인이 걸어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챕터 마스터께서 부르십니다. 수행원은 이곳에서 기다리시고 혼자 들어오시랍니다. 아 그리고 무장을 해제하시기를….”
노골적인 요구다.
“어으. 이상하다. 누나.”
심지어 머리가 나쁜 쿤타치조차 챕터 마스터의 악의를 느끼고 있었다.
“괜찮겠어? 그냥 확 뒤엎어 버리고 도망치는 게 어떨까?”
카밀라가 그렇게 말했지만 아자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맨손이래도 별로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
“뭐?”
“그보다 무기는 내 동료들이 들고 있어도 되겠지? 이건 보통 명검이 아니라서.”
“그,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인들은 아자딘의 요청에 응했다.
아자딘은 자신의 장검, 아우렐리아 던과 월각궁을 풀어서 쿤타치에게 들게 하고 작은 생활용 단검까지 다 풀고 나서야 챕터 마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
챕터 마스터 헥센마이어 경은 이제 45세의 북방인이었다.
본래 그는 북방의 홉고블린 부족들과 싸우던 전쟁 군주 중 한 명으로 그 놀라운 무력을 높이 사서 구난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용기의 기사단의 일원이 된 그는 언젠가 자신이 용기의 기사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독신의 계율을 어기고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을 윗선에서 문제 삼았고, 결국 그는 용기의 기사 경쟁에서 밀려나 이곳 파이어글리프의 챕터 마스터가 되었다.
챕터 마스터 역시 높은 직책이었으나 차드라 고원의 챕터 마스터라는 건 영원히 이곳에서 마물들이나 상대하며 살아가라는 유배나 다름없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는 같은 북방인 출신인 북제의 회유에 응해서 순례단의 정보를 유출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순례단이 전멸당하는 걸 막은 장본인, 아자딘을 자신의 영역에 출두시켰다.
이미 병사들을 준비시키고 진술서를 작성할 문장관, 그리고 아자딘을 고문할 고문관까지 대동한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온 흑발의 청년을 보고 순간적으로 감탄했다.
마치 천상의 천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화한 것 같은, 위풍당당하고 우아한 자태를 가진 청년이었다.
고대의 신상과도 같은 수려한 이목구비에 신비한 보라색 눈동자, 매끄러운 피부는 거친 북방인 전사 출신인 그에게도 감탄사를 유발했다.
“멋지군. 그대가 황제의 전령 아자딘인가?”
“네. 그리고 지금은 호스피탈러-에란트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자딘이 그리 대답하자 병사들도 당혹했다.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리 우아하고 품격 있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버밀리온 요새는 어떤가?”
“최근 복무하던 소대장들이 계속해서 순직했더군요. 저는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말입니다.”
“미안하군. 이야기해 주지 않아서.”
헥센마이어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지금 당장 상대를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소리를 내뱉다니. 헥센마이어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그만큼 상대의 품격이라고 해야 하나? 분위기가 남다른 아자딘에게 말려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바쁘신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버밀리온 요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자네는 무사한가? 전임 소대장들은 어떤 이유로 순직했는가? 살인범은 이제 무력화되었나?”
헥센마이어는 이미 사건이 셰이드 해그들의 소행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그러나 살인범이 무력화되었냐고 물어보는 시점에서 아자딘은 그가 알면서 허튼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자딘이 셰이드 해그들을 처치했을 리가 없으니까 살인범을 잡았냐고 묻지 않고 무력화되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범인은, 셰이드 해그들이었습니다. 전임자들이 저지른 파계의 부정 속에서 고통받던 여성이 마녀가 되어서 셰이드 해그들을 불러들였고 그녀들은 마녀의 계약에 의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지요.”
“자네는 그럼 어떻게 살아남았나? 마녀의 저주가 계속 깔려 있을 텐데?”
“부끄럽게도 셰이드 해그들이 저의 영혼은 황제의 것이라 하며 저주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문장관이자 스콰이어인 맥도갈이 순직하고 말았습니다만.”
아자딘은 미리 준비한 거짓말을 입에 올렸다.
‘음. 그렇군. 역시 셰이드 해그들의 저주는 구난기사단에게만 적용되는가? 이 자식은 우리의 일원이 아니라 황제의 전령이니까 저주의 대상 밖이라는 거군. 저주가 해소됐더라면 버밀리온 요새를 빼앗아서 내 수입원으로 삼을 텐데. 현재로서는 요새를 관리할 수 있는 인재가 이 녀석밖에 없나?’
아자딘을 숙청시키면 버밀리온 요새는 다시금 관리 불가의 무주공산이 된다. 진사라는 희귀 자원을 필요로 하는 기사단 입장에서는 아자딘을 숙청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아자딘이 노리는 바였다.
버밀리온 요새를 관리할 수 있는 건 오직 아자딘뿐. 진사의 안정적인 공급을 원한다면 아자딘 밖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하나 헥센마이어는 단지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아자딘을 출두시킨 게 아니다.
“아자딘 경, 믿을 수 있는 정보원에 의하면 당신이 신왕진서 사본을 갖고 있다던데….”
“신왕진서 사본 말입니까? 한때는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브투마를 위협하는 네더의 사신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손상을 입은 브투마의 석영 왕좌에 반환했습니다. 콕스할에서 이미 진술서로 써낸 내용입니다만.”
“으음. 진술서는 보았네만.”
아자딘을 직접 만나기 전, 헥센마이어는 아자딘을 자신의 감옥에 감금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 보니 아자딘의 기품이 장난이 아닌 데다가 그가 없으면 진사 생산에 차질을 빚게 생겼다.
“오해하지 말게. 자네를 부른 건 버밀리온 요새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이만 물러가도 좋네. 버밀리온 요새에 필요한 것들은 내가 마련해 줄 테니 품의서를 작성하도록 하게. 문장관도 새로이 뽑아서 보내 주도록 하겠네.”
결국 챕터 마스터 헥센마이어는 아자딘이 계속해서 버밀리온 요새를 경영할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
“큰일 날 뻔했네.”
챕터 마스터와의 면담을 끝내고 나온 아자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딱 보아하니 아자딘을 감금하려고 한 모양인데 아자딘의 변명, 진사 채굴의 중요성, 그리고 호감을 주는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챕터 마스터의 원래 계획을 틀어지게 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맥도갈이 자비 교단의 암살자라는 건 알지 못했는지 그의 순직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저 한 명의 이름 모를 문장관의 죽음 정도로밖에는 여기지 않았다.
챕터 마스터 헥센마이어는 용기 성기사단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니 자비 교단과는 관계가 없으리라.
“거봐. 내가 말한 대로지? 얼굴 까고 다니라니까.”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밀라가 아자딘에게 으스댔다.
“뭐 얼굴을 까고 다니는 게 물론 유효하긴 했어. 그렇지만 진사 광산을 운용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다는 걸 어필한 것도 크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으스대는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얼굴에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으면 감방에 처넣었겠지. 딱 보니까 조지려고 작정하고 부른 거더구만. 인정할 건 인정해.”
“그래. 조언은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카밀라. 네 덕이네. 아니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지? 그러면 뭐 좀 사 가자.”
카밀라가 말을 꺼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혈마법사 버나드가 나섰다.
“기왕 온 김에 연금술용 장비를 좀 구매했으면 합니다.”
“연금술?”
“예. 제가 연금술을 좀 합니다.”
“하긴. 당신은 혈마법을 연구하려고 일부러 여기에 온 거지?”
“네. 뭐 연구에만 쓰자는 건 아니고 연금술로 수익도 창출하겠습니다. 진사 광산이 있는 곳에서 직접 연금술을 하면 수익성이 아주 좋지 않겠습니까? 제 실력도 어디 처지는 건 아니고요.”
“흠. 알겠어. 구매하도록 하지.”
아자딘은 파이어글리프에 온 김에 시장에 들러 연금술 장비 등을 비롯한 물품들을 사기로 했다.
아자딘 일행은 시장 상인들에게 연금술 장비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 보았다.
“그런 거라면 반다이크 상회가 거래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반다이크 상회를 추천하자 아자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상회가 여기에도 점포를 내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좀 비싸긴 하지만 진귀한 물건들이 있어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상회지요. 광장에 가장 큰 건물이 바로 반다이크 상회의 것입니다.”
“아, 저기군요.”
아자딘은 광장 한복판에 있는 상점을 발견하고 잠시 망설였다.
반다이크 상회는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처럼 전령일족의 하부 조직이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돈을 벌어 세속의 권력을 얻기 위한 도구. 오대 혈족의 사업체였다.
황제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이제 유일한 황제의 전령은 아자딘만 남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령일족들, 하르코니아계의 아라가사들은 멸망하지 않았다.
그들의 세속적인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괜히 갔다가 습격당하는 거 아닐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이제 가면 그들이 날 좋게 볼 리 없는데.’
일족들에게 있어서 아자딘은 그들의 염원을 방해한 철천지원수일 것이다.
과연 두령 하티르가 몰락한 이후 다른 일족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게 궁금하긴 하지만 아자딘은 굳이 이들을 만나서 화를 자초하지 않기로 했다.
“연금술 장비는 버나드. 당신이 직접 가서 고르도록 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비용이나 흥정은?”
“이 정도 예산 안에서 해결해 보도록.”
아자딘은 은화와 금화가 담긴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물건들 보고 나면 저기서 만나도록 하지.”
아자딘은 파이어글리프 승전비를 가리켰다. 과거 이곳에서 싸운 영웅들의 승리를 기념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령하기 위한 승전비가 광장 입구에 만들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자딘은 일행들과 떨어져서 파이어글리프 승전비를 살펴보았다.
삼위의 대천사들이 파이어글리프에서 네더의 군대들을 막아낸 ‘파이어글리프 전쟁’을 기념하는 승전비다.
이후 800년이란 시간이 지나 이 승전비의 비문은 빗물에 녹고 사람 손때에 닳아 잘 보이지 않지만 아자딘은 그 비문을 보며 한때 온 인류가 힘을 합쳐 거대한 이형의 악신들에게 대항했던 시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