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58
257.천사의 피의 행방 2
“아니, 왜 나는….”
파벨 경은 자신을 제외한 아자딘의 결정에 난처해했지만, 이미 이곳의 분위기는 아자딘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은 군말 없이 자기 머리칼을 잘라서 아자딘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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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이 베어버린 두 명 외에 다른 도플갱어는 없었다.
하지만 조사단은 심정적으로 완전히 아자딘에게 굴복해버렸다.
자신들 만으로는 이 임무를 해나갈 수 없다. 자신들의 인원 중 둘이 도플갱어로 교체되는 동안에도 눈을 뜨고 당하고 있었으니, 독자적으로 해보겠다고 주장해 봐야 설득력을 잃는 것이다.
이렇게 아자딘은 조사단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자 그럼 우선 뭘 조사하러 왔는지부터 들어봅시다.”
“그건 일개 수련기사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오.”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요. 적은 이미 조사단의 목적과 인원, 그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즈밀라 경은 파이어글리프 거리 한복판에서 날개를 드러냈고요.”
“으음. 하지만 비밀은 지켜져야.”
“파이어글리프처럼 기사단 내부 깊숙한 지역에서 습격당했다는 건 기본적으로 기사단 안에 적과 내통하는 배신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자딘이 그 점을 지목하자 다른 기사들이 흠칫 놀랐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아자딘같은 ‘외부인’ 에게 지적당하고 싶지 않다는 치기가 치밀어 올랐다.
“자자. 형제들이 기밀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겠으니까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지요. 첫 번째 선택지는 당신들이 맡은 임무를 포기하고 기사단 본부로 돌아가는 것. 그럼 당신들이 안전한 곳에 갈 때까지 나와 내 동료들이 호위하겠습니다.”
“으음.”
파벨 경은 크게 신음했다.
첫 번째 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조사단원으로서 상황을 조사할 것을 명받았는데 그 임무를 중도포기한다니.
도중에 대원들이 죽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임무를 포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될 노릇이다.
임무를 포기해도 비난받지 않을 만큼, 모두가 알법한 피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피해는 하나뿐인 목숨을 잃는다는 것. 과연 누가 죽고 싶어 하겠는가?
“두 번째는 뭔가?”
“두 번째 선택지는 맡은 임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제 도움을 원하면 임무에 대해서 최소한의 정보 공유는 필요합니다. 뭐 제 도움 없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마는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추천할 수 없군요.”
오만한 말일지도 모르나 이미 임무 실패의 턱에 걸린 이들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심리적으로 완전히 몰려있는 상태에서 자신 있게 나서는 아자딘의 태도에는 다들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인 용모에 엄청난 자신감, 그리고 흔들림 없는 이 태도. 모든 면에서 다들 아자딘에게 심리적으로 억제당할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겁니까?”
“저로서는 이미 순례단 습격 때 실패를 겪었는데, 이번에도 도망치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셀레스티얼이라고 형제자매들이 애지중지해주는 건 고맙습니다만, 본디 셀레스티얼은 이 세상의 어둠이 찾아올 때 희망의 등불이 되기 위해 기사단에서 안배한 것. 그런데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이즈밀라는 순례단 습격 사건 이후 계속해서 작전 실패를 거듭하고, 기사단의 보호대상이 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기사단의 보호대상으로 보호받느니 한 사람의 제대로 된 기사가 되고 싶었다.
조사단원들은 그런 이즈밀라의 강력한 의지를 느끼고 난처해했다.
“알겠네. 이즈밀라 경의 뜻을 우선하도록 하지.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연금술사 자코모라는 자일세.”
“연금술사 자코모? 어떤 인물입니까? 수배지는 있겠지요?”
“이렇게 생긴 인물이라네.”
파벨 경이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 안에는 초상화가 접힌 채로 들어가 있었는데 초상화를 펼쳐보니 머리의 절반은 대머리, 절반은 백발을 기른 기이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본래 죄수 출신이나 그 재주를 인정받아 지혜의 기사단에서 여러 연구에 참여한 자라네. 연금술사이니 이래저래 쓸모가 많은 자였지. 그런데 차드라 고원의 지질조사단에 합류했다가 지질조사단을 다 죽이고 잠적했지.”
“흠, 다른 지질조사단이 살해당했는데 그가 죽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뭡니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지질조사단의 시체에는 자코모의 마법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었네. 분명히 그가 지질조사단을 살해한 거야.”
“헥센마이어 경은 뭐라고 합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에게도 자코모 추격 및 체포의 명령이 내려졌을 텐데요?”
파이어글리프의 영향권 안에서 벌어진 일이니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헥센마이어에게 자코모 체포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헥센마이어 경은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하셨네만. 자코모가 워낙 신출귀몰하여 잡지 못했다고 하셨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서 추가 조사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순례단 습격사건에서 별 활약을 못 한 이즈밀라 경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조사단에 합류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흐음. 미심쩍은데.”
아자딘의 말에 이즈밀라 경도 놀랐다.
아자딘은 이 조사단 자체가 셀레스티얼, 그러니까 이즈밀라 경을 외부로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 조사단 멤버를 결정한 사람은 누구지요? 누가 이즈밀라 경을 조사단 멤버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나요?”
아자딘이 노골적으로 물어보자 파벨 경은 당황했다.
“자네 지금 설마 기사단의 형제들을 의심하는 건가?”
“네. 아무리 형제라 해도 합리적인 의심은 해야지요. 만약 그런 의심을 거부한다면, 그쪽이야말로 절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자딘의 말대로였다.
파벨 경은 아자딘의 정체, 그가 황제의 전령이라는 사실에 불안을 품고 있었다.
이런 자에게 구난기사단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 즉 파벨 경이야말로 아자딘을 구난기사단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형제를 의심하냐고 비난하다니.
“알겠습니다. 이즈밀라 경을 조사단에 합류시킨 사람을 언급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로군요.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그렇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네. 어차피 자네는 변방의 성기사가 아닌가. 중앙의 일을 굳이 캐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야.”
아자딘이 먼저 한발 물러나자 파벨 경은 신이 나서 그렇게 말했다.
물론 듣고 있는 다른 조사단원들로서는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분명히 세흐나트 주교님이라고 들었는데요.”
“아.”
조사단원들은 그 이름이 나오자 신음했다.
세흐나트 주교는 분명히 이즈밀라 경의 후견인 중 하나로 그녀가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는 이즈밀라 경이 사실 세흐나트 주교의 사생아라더라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직접 세흐나트 주교를 의심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세흐나트 주교라.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래서 이 자코모라는 연금술사를 찾기 위해서 와서 뭘 했지요? 조사단의 타임라인을 되짚어보도록 하지요.”
“우선 헥센마이어 경에게 그간의 수사에 대한 정보를 인수인계받았습니다. 이 보고서들을 이제부터 읽고 정리해야 하는데.”
이즈밀라가 서류뭉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어디 줘보시죠.”
아자딘은 이즈밀라에게서 서류뭉치를 받아 들고 파라락 넘기며 대충 읽어보았다.
대부분은 파이어글리프의 휘하에 있는 마을이나 요새 등지에 나가 있는 기사단원들로부터 올라온 쓸데없는 보고서들이었다.
보아하니 헥센마이어는 연금술사 자코모에 대해서 수배서만 돌렸을 뿐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다가 수배서의 보고서들만 모아서 자료랍시고 제출한 모양이었다.
“흐음. 게으르거나 한패겠군.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건데. 헥센마이어 경을 칠 각오는 되어있습니까?”
“무, 무슨?!”
조사단원들은 아자딘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조사를 위해서 직위 이상의 권한을 보장받은 조사단원들이지만 챕터마스터를 탄핵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물며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한 달 넘기고 두 달을 바라보는 수련기사.
게다가 영혼 없는 불경자다!
“미쳤나! 본색을 드러내는군!”
파벨 경이 분노했지만 아자딘은 대답 대신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저기, 저거 보이지요? 헥센마이어 경이 손을 먼저 썼군요. 잘 선택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뭣?!”
헥센마이어 경의 병사들, 파이어글리프의 병사들이 일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수배자 조사단의 파벨 경이시지요? 저희는 파이어글리프의 치안 및 내사를 담당하는 파이어가드, 얀입니다.”
“같은 파이어가드, 타민입니다.”
“저희를 따라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파이어가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기사들은 아자딘 일당을 발견했다.
“이들은 누굽니까?”
“버밀리온 요새의 소대장 아자딘이다. 우리는 현재 세이프시프터들의 공격받고 있다.”
“음?”
파이어가드들은 버밀리온 요새의 소대장이라는 아자딘을 보며 당황했다.
“세이프시프터라고요?”
“그래. 그리고 그들은 파이어글리프의 병사로 위장했었지. 그뿐만이 아니다. 파이어가드들에게 조사받고 나오던 중에 우리 중 일부가 바꿔치기 당했다.”
“…….”
“그래서 우리는 파이어가드라고 해도 막연히 믿을 수가 없군. 부득불 한 사유가 있으니 이해해 주고 이걸 따라 해 주도록.”
아자딘은 단도로 머리칼을 약간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머리칼을 잘라서 보여주면 그대들이 도플갱어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아니 이 무슨 무례한….”
“이봐 버밀리온의 소대장이라면 그 영혼 없는 불경자잖아? 직급도 고작 호스피탈러 에란트일 텐데.”
“그, 그래. 고결한 핏줄일지도 모르겠지만, 야에가스 신족의 혈통 같은 건 구난기사단에서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
그들은 아자딘의 잘생긴 용모를 보고 그가 고결한 혈통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실제로 아자딘은 황제-하티르의 혈통을 잇고 있으니 야에가스 신족들로서도 고귀한 혈통이 맞긴 하다.
“빨리 해라. 이쪽은 지금 도플갱어들에게 연거푸 습격당해서 화가 나 있는 상태니까. 파이어글리프의 병사로 위장한 녀석들에게 당했단 말이다! 여기, 이게 안 보이나?”
아자딘은 그리 말하며 도플갱어의 시체들을 보여주었다.
“협조를 거부하면 강제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피차 감정이 상할 것이다. 아니면 그냥 도플갱어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뜻이렸다?”
“윽…….”
얀과 타민, 두 기사는 어쩔 수 없이 머리칼을 일부 잘라서 아자딘에게 보여주었다.
“좋아. 당신들은 도플갱어가 아니군. 하지만 파이어글리프의 통제요청에는 거절하겠다.”
“뭣?!”
파이어가드들은 기껏 머리칼마저 자르게 하고선 통제는 거부하겠다는 아자딘의 아전인수격의 발언에 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