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6
25. 성기사들의 학살 2
거기에 생각이 미친 아자딘은 이스마일에게 물어보았다.
“데릭에게 받아온 음식이 있지?”
“아, 그거 말입니까?”
이스마일이 데릭과의 식사 초대 때 챙겨둔 음식을 꺼내주었다.
“다들 이걸 먹고 농장 사람들이 깨어나면 거기 가서 좀 쉴 수 있는지 물어보자.”
아자딘은 생선구이를 뜯으며 여전히 시선을 하늘에 고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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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의 시간 동안 식사를 한 아자딘은 매의 가면 대신 투구를 꺼내 썼다.
“왕의 교회 사람들이라면 이 가면을 보자마자 알아챌 수도 있으니까. 눈에 흉터가 있다는 이게 문제란 말이지.”
아자딘은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일행들과 함께 근처 농장으로 향했다. 개들이 짖어대자 아침 일을 하던 농부들이 아자딘 일행을 바라보고 흠칫 놀랐다.
한눈에 봐도 기사인 타르키가 다가오니 농부들은 겁에 질려 얼어 버린 것이다.
기사들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보자마자 저렇게 기겁한단 말인가?
“무, 무슨 일이십니까?”
“여행 중인데 농장을 좀 빌리고 싶다.”
타르키가 그리 말하자 사람들은 진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농장을 빌리고 싶다는 게 여기에 진을 치고 약탈을 하겠다는 말인지 아니면 그냥 자고 가겠다는 건지.
“쉬어갈 곳이 필요합니다.”
아자딘이 타르키의 말을 알기 쉽게 풀어 이야기해주었다.
“아, 그런 거라면 저희 오두막을 쓰십시오. 어차피 저희는 밭일을 해야 해서.”
“누추한 부부 침실입니다만….”
“흠. 과연 누추한 침실이군. 뭐 돼지우리보다는 조금 낫겠….”
타르키가 그렇게 말하자 아자딘이 그의 옆구리를 찔러 입을 다물게 했다.
“헛간이나 창고면 충분합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진짜. 어차피 저 농부들은 밭일하느라 집을 안 쓸 텐데 그동안 저희가 안에서 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 길게 쉬면?”
“그럼 뭐 농부들이 헛간 가는 거지요. 헛간에서 돼지도 키울 텐데. 그런 데서 어떻게 쉽니까?”
당연한 듯 말하는 타르키는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됐다. 내가 널 어찌하겠니.”
아자딘은 타르키와 이야기하는 걸 포기하고 은화를 농부에게 주었다.
“이, 이건?”
“폐를 끼치겠습니다. 혹시 저녁식사 때 저희 몫도 준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무, 물론입니다.”
“그럼.”
아자딘은 농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헛간으로 향했다.
헛간은 1층에 돼지나 가축들이 살고 있고 그 위로 사다리가 있어 위에는 건초를 비축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2층에 올라 건초 더미들 옆에 모포를 깔고 그 위에 다시 망토를 벗어 덮었다.
건초 더미 안에는 각종 벌레가 있어서 이렇게 두껍게 깔아도 뭔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이가 들끓으면 어쩌려고….”
“뭐 대부분은 굼벵이나 그런 거지.”
아자딘은 그렇게 만든 잠자리 위에 드러누워 죽은 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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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의 농장들은 기사, 제란 경의 봉토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는 이곳 농장들의 세금 징수권을 가지고 매년 봄과 가을, 두 번에 걸쳐 세금을 징수하고 필요하다면 부역을 발생시켜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곤 했었다.
그 대신 제란 경은 이곳의 치안을 책임지며 마물들이 나오면 그것들을 사냥해 사람들을 지키기로 계약되어 있었다.
그런데….
“음, 큰일이구먼.”
농장 외곽 울타리가 부서진 걸 발견한 농부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동부 내륙지에서 시작된 가뭄은 마치 역병처럼 이곳 살라스마 변경에도 퍼져가고 있었다.
이미 많은 난민이 발생한 상황. 그런데 여기도 가뭄이 계속되면서 원래 사람들의 영역에 오지 않던 짐승들이 농장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제란 경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아서. 기사들은 당장 찾을 수 있는 마물이 아니면 손을 대지 않는다고. 딱 하루 만에 잡을 수 있는 거 아니면 안 해. 그치들이 계속 산이야 들판이야 헤매고 다니면서 짐승들 찾는 거 좋아하겠어? 괜히 마을에 오래 체류하면 우리만 손해야. 알아?”
농부들은 기사나 귀족들의 행패를 두려워했다. 팔왕국의 법, 야에가스 신족이 세운 법률은 농민들에 대한 부당한 착취나 학대, 강간 등을 금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에서나 적용되는 안전망이다.
교외나 변방, 봉토의 농부들은 귀족들의 사유재산이나 다름없었다.
제란 경은 그나마 귀족 기사 중에서는 나았지만 그렇다 해도 영민들 입장에서는 가급적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래도. 잘못하면 사람 죽겠는데요.”
농부의 아들이 울타리를 들어 보였다. 울타리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나 있는데 간격을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큰 괴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네가 제란 경에게 가서 이야기해 보겠느냐? 대신 네가 제란 경의 길잡이를 해야 한다.”
“…울타리를 보수하죠.”
기사에게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하느니 그냥 울타리를 보수하고 그저 짐승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란다.
농민들 모두가 그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을 때였다.
“어이!”
아침에 수레를 끌고 역참 마을로 채소를 팔러 갔던 이가 돌아왔다.
“지금 난리 났어! 어젯밤에 역참 마을에서 마물들이 습격해왔대!”
“뭐? 아니 역참 마을에 마물이라니.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니까! 무려 제란 경이 죽었다지 뭔가?”
“어?”
“정말?”
“아니 내가 이런 거 가지고 농담하겠나?”
“제란 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마물이 역참 마을을 밀어 버렸으면 우리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아, 그거 말인데 성기사들이 와서 마물들은 다 격퇴했다네.”
“그건 다행인데… 혹시 성기사들이 이쪽으로 오나?”
성기사들은 다른 기사들보다 더 안 좋다. 봉토 없이 돌아다니는 이들이니 더 탐욕스럽고 책임의식도 흐릿하다.
“아니, 아직 그쪽에 남아 있던데 잘은 모르겠군. 그런데….”
그때 갑자기 말하던 농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머리에 화살이 꽂힌 것이었다.
“어?”
“히익!”
“으아아악!”
숲속에서 농부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귀족자제들이 왕의 교회에 출가하게 되면 우선 수련기사가 된다. 원래 수련기사나 기사 작위를 가지고 있던 이들일지라도 일단 왕의 교회에 들어오면 성기사단의 수련기사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말도 없이 사슬 갑옷을 주로 입고 다니며, 주교나 성직자들을 수행하거나 다른 성기사를 따라 임무를 수행하며 다니게 된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 가즈렉은 그런 수련기사들을 육성하는 고참기사였다.
본디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은 수련기사 하나에 고참기사 하나가 멘토로 달라붙어 검술과 마법, 마물에 대한 지식과 기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전수하는 끈끈하고 깊은 연대를 가지는 교육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참기사 하나에 수련기사 여럿을 붙여 적당히 실적을 올리고 수련기사를 일반기사로 올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귀족 놈들이 사생아를 좀 많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서 왕의 교회는 항상 입문자로 미어터졌기 때문이다.
지금 가즈렉 경의 임무도 수련기사들 다섯 명을 데리고 마수를 토벌하는 것이었다.
“으, 겁나 싫은데. 귀찮군.”
마수 토벌이라고 해봐야 정말 마수를 상대하는 건 아니다. 보나 마나 늑대나 곰을 사냥하는 것이겠지.
숲속의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는 귀족이 왕의 교회에 돈을 기부하면서 자기 영지의 숲 한복판에서 출몰하는 위험한 짐승들을 잡아 달라고 청탁을 넣은 것이다.
이건 짐승을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찾는 게 문제다. 아무리 살벌한 맹수라도 금속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인간들이 돌아다니면 다들 숨어 버린다.
동물이 제풀에 지쳐 거주지를 옮길 때까지 장창과 활을 들고 숲속을 계속 배회해야 하는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니 가즈렉 경. 마수 토벌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언제까지 여길 돌아야 하는 겁니까?”
수련기사인 타시그는 일행을 대신해 불만을 토로했다.
“조용히 해라. 짐승들이 들으면 다 도망간다.”
“아니 참 가즈렉 경. 이미 우리 무기랑 장비에서 소리가 나잖아요. 이 정도면 짐승들도 다 압니다. 실제로 토끼도 못 봤잖아요?”
“아 저기.”
그때 다른 수련기사 하나가 활을 쏘았다. 수풀 사이를 지나던 토끼의 몸통에 화살이 꽂혔다.
“…토끼도 못 봤다고?”
“아, 아닙니다. 야, 벤. 활 잘 쏘네?”
“연습했으니까.”
벤이란 수련기사가 다가가 토끼에게서 화살을 뽑고 으쓱거리며 토끼를 배낭에 맸다.
“이건 나중에 안주로 구워 먹자고.”
“그런데 말입니다 가즈렉 경.”
“뭐?”
“따님이 굉장히 미인이시던데요.”
“신경 끊어라 이놈들아.”
“아니 그런데 그녀가 저희 상관이잖습니까? 이게 가능한 겁니까?”
왕의 교회로 출가하는 귀족들은 자식이 없으면 성기사, 자식이 있거나 결혼을 했던 적이 있으면 성직자로 직책이 결정된다.
그런데 가즈렉 경의 딸은 그들과 같은 성기사인 데다가 가즈렉 경보다 더 계급이 높았다.
“왜겠냐. 성기사일 때 낳은 애라 그렇지.”
“캬하, 대단하십니다.”
“아서라. 너희들 주교부 주무관에게 눈독 들일 거냐? 그것도 아비인 내 앞에서?”
“하지만 따님께서 저희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맞아 맞아. 자유연애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허튼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수련이나 해라. 응?”
가즈렉은 그런 수련기사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가즈렉 때만 해도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은 수련기사 과정 동안 검술과 창술, 그리고 왕의 교회 교전을 다시 공부해 강력한 신성마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수양을 거치고 난 후에야 기사가 되었는데 최근에 살라스마 주교가 바뀌면서 방침이 변했다. 무조건 수련기사를 많이 받고 그들의 가족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다.
기사들의 훈련에는 돈이 드니까 철저히 교외로 돌게 하면서 수금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도 알아서 구해라. 돈도 알아서 벌어라. 사실상 약탈을 방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뭐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
가즈렉 경은 자신 밑으로 온 수련기사들에게 뇌물을 받으며 그들의 평가를 좋게 하고 수련 임무를 멋대로 조작하고 있었다.
이번 일도 대충 돌아보고 마수를 뭐뭐 퇴치했습니다. 그렇게 적다가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엉?!
갑자기 그들 머리 위에서 바보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이런… 씹!”
그 소리를 들은 가즈렉 경이 욕설을 퍼부었다.
“네?”
“왜요?”
“야 조용히 해. 와이번이다.”
“네?!”
“힉!?”
수련기사들이 일제히 조용히 했다.
-우엉? 우엉?!
바보 같은 소리가 가까워져오니 확실히 소리가 크다. 모두가 긴장해서 무기를 빼 들었다.
-우드드득!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검은 비늘로 뒤덮인 와이번 한 마리가 나무 위를 달리는 게 보였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은 송아지만 한 와이번이었다.
하지만 어린 와이번이라 해도 꼬리에는 말벌 떼 수천 마리에 쏘이는 듯한 고통을 주는 독침이 있고, 이빨은 단검처럼 날카롭다.
대인 전투술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와이번 독침을 맞고 고통 속에서 죽는 경우가 흔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강적인 것이다.
문제는 저런 어린 와이번이 돌아다닌다는 건 숲 깊은 곳에는 다 큰 와이번이 있다는 사실….
“야! 쏴!”
“네!”
당황한 수련기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