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60
259.천사의 피의 행방 4
헥센마이어는 이즈밀라 경이 파이어글리프에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북제가 눈에 혈안이 되어 찾는 존재, 그게 아니더라도 기사단 제일의 보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두어야 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헥센마이어 경은 도플갱어들을 움직여 이즈밀라 경과 조사단원들을 파이어글리프 성의 지하감옥으로 불러들여 거기서 은밀히 그들을 제압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즈밀라가 도플갱어를 알아보면서 일이 꼬였다.
도플갱어들은 이즈밀라에게 전부 퇴치당해 버렸는데, 그때 북제의 부하들이 이즈밀라를 납치해 버리는 데 성공했다.
알고 보니 북제의 부하들, 왕자 칼린츠와 그 휘하의 요원들 또한 헥센마이어 경의 복심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 후 아자딘 일행이 출격해 북제의 부하들을 내쫓고 이즈밀라를 되찾아왔기에 파이어가드들을 보내서 좋게 좋게 그들의 신병을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보낸 파이어가드들과도 연락이 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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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군.”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걸 여긴 헥센마이어 경은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들, 기사단보다 그에게 더 충성하는 이들을 이끌고 직접 이 사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전령일족 놈이 외모가 곱상하고, 재주가 비상해서 아깝게 여겨서 놔줬더니만. 이렇게 호의를 원수로 갚는군.”
본래 아자딘을 감금해 두려고 했던 헥센마이어 경이었지만 아자딘이 아니면 버밀리온 요새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아자딘이 자신에게 별다른 적의가 없고 임무에 충직하다는 점, 생긴 게 마음에 든다는 점을 높이 사서 내버려 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설마 이놈이 이즈밀라 경 사건에 끼어들어서 일을 망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 추악한 괴물아. 너희들의 재주가 통하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냐?”
헥센마이어 경은 도플갱어들의 대장을 노려보았다.
헥센마이어 경의 하인으로 위장한 상급 도플갱어가 부복하며 대답했다.
“헥센마이어 경.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희 능력 이상의 일이었습니다.”
능력 이상의 일을 지시해서 못 하는 건 지휘자 잘못 아니냐?
은근한 비난이 섞여 있었지만, 헥센마이어 경은 도플갱어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이봐 티모시. 이 상황을 어떻게 풀면 좋겠나?”
티모시라고 불린 이는 파이어 가드의 대장인 호스피탈러-팔라딘으로 그 역시 헥센마이어 경처럼 색욕의 죄를 범해 파이어글리프로 유배온 처지였다.
이곳에서 가정을 꾸린 그는 헥센마이어 경의 충직한 부하로서 그와 뜻을 같이하고 업무에서 발생하는 여러 향응, 떡고물도 나눠 먹는 그런 인물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낙수효과를 누리는 자라 할 수 있었다.
“이즈밀라 경은 저희가 체포할 명분이 없습니다. 있다고 하면 그녀가 도플갱어와 뒤바뀌었다고 선언하고 잡아야겠습니다만….”
“전령일족 놈은?”
“녀석이 버밀리온 요새에서 진사나 캐면 살려두는 게 이득입니다만 그렇지 않고 제 주제를 모르고 여기저기 끼어들려 하면 죽이는 게 이득이겠지요. 염려 마십시오. 그는 전령일족의 첩자였다고 밀어붙이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증거야 반다이크 상회에 만들어달라고 하면 그만이지요.”
그들은 이미 반다이크 상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이 반다이크 상회의 보호자이며 후원자였다. 반다이크 상회는 그들의 음습한 욕망을 이뤄주기 위한 사치품들을 제공하고 암살자, 도플갱어들을 제공하는 대가로 파이어글리프에서의 막대한 교역 이득, 그리고 기사단의 정보를 빼가고 있었던 것이다.
헥센마이어 경과 티모시 경, 이들은 기사단의 정보를 북제뿐만 아니라 전령일족들에게도 팔며 양쪽 모두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던 중이었다.
“좋아. 전령일족 놈은 죽이고 이즈밀라 경은 생포한다. 셀레스티얼을 손에 넣으면….”
셀레스티얼은 기사단의 최고 중요한 기밀. 그 가치는 지금까지 헥센마이어 경이 팔아넘긴 기사단의 기밀 전부를 합쳐도 감히 비교할 것이 아니다.
그 가치를 생각해 보면 엄숙한 헥센마이어 경에게도 절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변방 시골에 처박힌 그에게 이런 큰 기회가 오다니!
이 기회를 살리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파이어글리프에 온 이상 이건 내 주머니 안의 것이나 다름없다. 칼린츠 왕자 놈에게 빼앗길 뻔했던 걸 막아준 건 고맙지만, 전령일족 놈, 너무 까불었다. 그나저나 셀레스티얼을 손에 넣으면 어떻게 하지? 독자적으로 연구해서 그 힘의 비밀을, 제조법의 비밀을 알아내야 할까? 판다면 누구에게 팔아야 비싸게 팔 수 있을까? 대가로 뭘 요구하지?’
헥센마이어 경이 벌써부터 이즈밀라의 몸값을 셈하고 있을 때 파이어 가드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였다.
“챕터마스터 님! 큰일입니다!”
“음? 무슨 일이냐?”
“중앙 광장의 감시초소가 점령당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버밀리온 요새의 아자딘 경이 병사들 사이에 도플갱어가 섞여 있다고 주장하면서 병사들을 잡고 농성 중입니다!”
“뭐야?”
헥센마이어 경은 갑작스러운 파이어 가드의 호소에 깜짝 놀랐다.
*********
“…….”
이즈밀라는 두통이 밀려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새하얀 달빛 아래, 셀레스티얼의 날개를 드러낸 그녀는 스스로 은은한 금빛을 발하며 광장 한복판에서 마치 우미한 고대 신상처럼 위엄찬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자딘이 그걸 노리고 그녀를 광장 분수대 위에 올려놨으니까.
이즈밀라는 그 위에서 불타는 세라마이트 장검을 들고 위엄있게 밑을 바라보려 애쓰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와 난리가 났다.
“오오! 천사님이다!”
“천사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본래 파이어글리프는 구난기사단의 영토, 천사신앙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설령 신앙을 등진 범죄자, 유배자 출신의 이들이라고 해도 이즈밀라의 천사 모습 앞에서는 죽었던 신앙도 되살아나서 그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그녀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낯 뜨거워 견딜 수 없다.
그때 인파를 헤치고 일단의 기사와 병사들이 다가왔다.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헥센마이어 경과 파이어가드 대장 티모시 경, 그리고 그 외 부하들이 몰려온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아 헥센마이어 경. 잘 오셨습니다.”
아자딘이 경비초소 지붕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치 허공을 떠다니는 듯 경쾌하게 움직여 이즈밀라의 곁에 섰다. 윤기 흐르는 흑발과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달밤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게 요사스러울 정도의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즈밀라의 곁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이게 했다.
아자딘은 그렇게 이즈밀라의 천사신앙으로서의 숭배대상, 존귀함을 빌려온 것이다.
“세상에!”
“또 다른 천사님인가?”
사람들은 아자딘의 수려한 용모를 보고 그가 천사, 아니면 적어도 그에 필적하는 고귀한 존재라고 여겼다.
아자딘이 매력적인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 사람들 잘 들으라고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주위의 일반 시민들도 다 들을 수 있었다.
“저희는 구난기사단의 사태 조사단으로서 파이어글리프에 숨어든 악을 고발하는 중입니다. 도플갱어들이 병사들 사이에 숨어들어 있어서 그들을 적발했습니다.”
아자딘이 그리 말하며 초소 앞을 가리키니 그곳에는 병사들이 밧줄에 묶여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우, 우린 도플갱어가 아니야!”
“그, 그래요! 이건 뭔가 착오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천사의 모습을 한 이즈밀라와 그 대칭에 선 병사들의 증언, 어느 쪽을 사람들이 믿을지는 자명하다.
“이봐. 저들은….”
“아, 아닙니다. 저들은 그저 인간입니다.”
상급 도플갱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놈. 보아하니 나를 압박하기 위해서….”
헥센마이어 경이 분개하며 칼을 뽑아 들었다.
“이 전령일족 놈이 지금 사람을 호도하는 거냐!?”
헥센마이어 경은 아자딘의 위엄을 갂기 위해 그가 전령일족 출신이라는 걸 지적했다.
그러자 아자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분명히 전령일족 두령 하티르의 핏줄, 황제 야에슬라트의 피를 잇고 있습니다.”
“헉?”
“야에슬라트….”
“황제의 혈통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황제를 왕의 교회의 규율을 깨부순 파천황으로서 두려워하지만, 두려워하면서도 또한 존중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 황제의 혈통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마치 자신의 저주받은 혈통에 고통받는 비극의 주인공 마냥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조각상처럼 매력적인 얼굴이 우수에 가득 차 있는데 행동이 너무나 연극적이다.
‘이 자식이!’
헥센마이어 경은 당황했다.
주위 사람들은 아자딘이 황제의 혈통이라는 것, 그리고 그 수려한 용모에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때 아자딘의 입술이 열렸다.
“저는 분명히 전령일족 출신이나 세 미덕과 대천사들에게 귀의하여 일평생 미덕을 수호하고 천사들의 대업을 돕기로 결의하였습니다. 헥센마이어 경. 어찌해서 칼을 빼 드시는 것입니까? 설마 도플갱어들을 구출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웃기지 마라! 네놈들! 여기의 지휘자는 나다! 네놈들이 무슨 권리로….”
“지혜의 기사단에서 조사임무를 내렸습니다. 그 조사단의 사명을 지금 부인하시겠다고?”
“네놈! 요설을 펼치지 마라!”
분개한 헥센마이어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놈을 당장 잡아다 놓아라!”
“네?!”
“하, 하지만.”
그들은 이즈밀라의 천사의 모습, 그리고 아자딘의 매력적인 선동에 질려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광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이즈밀라의 천사의 모습에 경도되어 있으니 이즈밀라 일당에게 칼을 들이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았다.
“이즈밀라 경! 지금 당장 셀레스티얼의 모습을 거둬라!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그것은 기사단의 비밀이다! 그리고 네놈은….”
헥센마이어는 분개해서 아자딘을 향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때 아자딘의 손에서 검은 사슬이 뻗어나갔다.
흑강사슬이 헥센마이어 경의 몸에 휘감겼다.
그 순간 강력한 마력이 헥센마이어 경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 그를 단번에 마비시켰다.
“컥?”
셀레스티얼인 이즈밀라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흑강사슬은 헥센마이어 경에게도 고스란히 먹혀들었다.
몸 안의 마력이 진탕 친다.
경악한 헥센마이어 경이 말하려 했지만 사슬 일부가 그의 입을 휘감아 입술을 치아들 사이로 처박아버렸다.
“으읍, 우에?!”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안나온다.
“이런, 왜 판별의 사슬이? 하지만 도플갱어들 상대로는 마법 도구들도 완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자 그럼 도플갱어인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단도를 들고 와서 헥센마이어 경의 머리칼을 자른 뒤 그것을 달빛 아래 치켜들고 휙 뿌렸다.
수은색의 핏물과 허물이 흩뿌려졌다.
“아….”
“도, 도플갱어다!?”
주위 사람들은 수은의 피를 보며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