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63
262.천사의 피의 행방 7
이 상황에서 자코모를 기사단에 데려가는 건 그를 죽이는 일이라는 데는 이즈밀라도 동의했다.
문제는 아자딘을 믿을 수 있는가?
이즈밀라는 아자딘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아자딘은 피식 웃었다.
어찌 보면 기사단의 방만함을 비웃는 것 같은 웃음인데도 그 비웃음조차 매력적이어서 이즈밀라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왜 이렇게 믿음이 가지?’
믿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믿음이 간다.
그러는 사이 자코모의 혀는 계속 증식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제 혀는 작은 강아지만 한 크기로 증식했다.
“카밀라! 쿤타치!”
“어!”
“불렀어?”
“자코모를 피신시켜. 바깥에 사람들 못 보게.”
“어려운 걸 요구하는군.”
“카밀라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어렵다고 말한 건 내가 아니라면 어려울 거라는 거였어. 그 점을 명시하고 나중에 보상해 줘.”
“알겠다.”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카밀라는 쿤타치에게 연금술사 자코모를 맡기고 밧줄을 준비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같이 가 누나!”
“야! 은밀작전이니까 조용히 해!”
카밀라와 쿤타치가 연금술사 자코모를 데리고 사라졌다.
*********
“자 그럼….”
“뭐 이건 별거 아니지?”
아자딘은 아우렐리아 던을 다시금 장검 형상으로 되돌리고, 날뛰는 자코모의 혀를 돌아보았다.
자코모의 혀에서 길쭉한 촉수가 튀어나와 아자딘을 공격했다.
아자딘이 아우렐리아 던을 휘둘러 그 촉수를 잘라버렸는데 촉수의 독성점액이 아자딘의 눈으로 튀어들었다.
“흥.”
아자딘은 고개를 돌려 피해버리고 아우렐리아 던에 불을 붙여 다시금 촉수를 난자했다.
이미 온갖 괴물을 다 상대해본 아자딘에게 이런 건 적수가 되지 않는다.
‘젝트 경의 촉수와 비슷하군. 하지만 더 약해.’
잘린 촉수들은 원래 크기보다 약간 줄어들었지만, 확실히 잔해를 남겼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군!”
아자딘은 자코모의 혀를 수직으로 쪼개버렸다.
어느새 송아지만큼 커졌던 자코모의 혀가 불길에 타오르며 쓰러졌다.
“대담무쌍하군요. 아자딘. 만약 제가 당신의 이 협잡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쩌실 건가요?”
이즈밀라는 아자딘을 믿기로 결심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사단의 기밀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라서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러면 자코모의 불쌍한 딸은 고통받다가 죽을 테고 자코모도 헛되이 죽겠지. 그를 이용해서 이즈밀라 경 당신을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은 기세등등해서 날 실각시킬 테고.”
“…….”
“당신도 알고 있지? 기밀 인가도 없는 조사단장을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애초에 이건 당신을 적들에게 넘겨주려는 함정이었어. 파벨 경은 조사단을 이끌 역량이 없더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연장자를 모독하는 것은 기사단의 예법에 어긋나지만…. 파벨 경의 역량이 지금 임무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군요. 그리고 당신은 자잘한 규율을 어기고 있긴 해도 기사단이 처한 위협은 오직 아자딘 경, 당신만이 헤쳐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아자딘 경. 당신과 협력하지요.”
이즈밀라는 아자딘과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
구난기사단의 정식 통신 채널은 주교들이 가지고 있는 고대의 거울을 사용한 정보 전송 마법이었다.
하지만 파이어글리프는 주교가 없는 비주교구였기에 일반적인 혈마법사들이 쓰는 혈서 전송 방식을 통해 상부에 보고하고 있었다.
“으아… 빨리 해 주쇼. 이거 피 많이 나온단 말야.”
버나드가 기침하며 거부했고, 원래 이런 마법은 하던 사람이 하는 게 원칙이라 파이어글리프의 공인 혈마법사가 전송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피를 담아내기 위한 수반 위로 자신의 칼을 들고 벌벌 떨고 있는 노인이었다.
“확실히 노인 몸에 피가 얼마 없긴 하지.”
“그러니 최대한 내용을 축약해서 말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아자딘은 이단의 마법에 기대야 하는 게 못내 아쉬운지 입이 튀어나와 있는 파벨 경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번 조사는 전부 당신의 공이오. 아자딘 경. 보고도 당신이 하시오.”
“아하하.”
아자딘은 난처함을 감추기 위해 웃었다.
아무리 자질이 부족하다 해도 조사단장인 파벨 경이 보고해야 하는데. 아자딘이 보고하면 조사단장 파벨이 죽은 줄 알 것이다.
‘그가 죽기를 바란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파벨 경의 성정이나 그의 행정능력을 볼 때 그에게 혈마법 전언을 사용케 하면 혈마법사가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자코모 확보, 범인은 헥센마이어 경. 조사단장 파벨. 이렇게 보내주십시오.”
“아, 알겠네.”
혈마법사는 자기 손을 베어 피를 내어 수반에 섞고, 그 피를 찍어서 마법진 위에 놓인 종이에 혈서를 썼다.
수신지에 똑같은 글씨가 써져서 보고가 되리라.
“이야 그럼 그동안 파이어글리프는 누가 통치하는 거지? 대장이 하는 건가?”
카밀라가 궁금해하자 파이어가드인 얀과 타밀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게 말입니다. 본래는 챕터마스터가 없으면 파이어가드에서 대행으로 이곳을 통치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파이어가드의 대장인 티모시 경도 공범으로 잡혔지.”
“네. 그래서 아마도 대행을 조사단장님이 지정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
파이어가드의 두 기사는 힐끔 파벨 경을 바라보았다.
지긋한 나이에 이제 겨우 평기사, 호스피탈러 등급인 이 남자는 지독하게도 재주가 없거나 아주 늦게 기사단에 입문했으리라.
어느 쪽이건 간에 파이어글리프를 통치하기엔 자질이 부족하다. 이곳을 찾아올 차드라 고원의 기사들에게 계급이나 경험 면에서 다 뒤처진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이 거대한 도시를 통치할 생각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하하. 내 비록 재주가 일천하나 이런 대업에 분골쇄신할 각오로 임하겠네.”
파벨 경이 그리 말하자 파이어가드들이 당황해서 말을 꺼냈다.
“그건 좋습니다만.”
“저 혹시 차드라 오걸이라고 아십니까?”
파이어가드들은 마치 아이들을 겁먹게 하기 위한 옛날이야기라도 풀어내듯 은밀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파이어가드들은 차드라 오걸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며 몸서리를 쳤다.
말하기만 해도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시큰둥했다.
“아니. 전령으로 훈련받을 때 대륙 곳곳의 주요 인물들과 영걸에 대해서 배우긴 했지만, 금시초문인걸?”
‘어디서 촌놈들끼리 자기들끼리 오걸이니 뭐니 추켜세우냐? 부끄럽지도 않나?’
라고 말하는 듯했다.
“차드라 고원에 유폐되었지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다섯 명의 죄수들을 말하는 겁니다. 기사단에서 그들의 죄질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재주가 너무 뛰어나서 죽이지 못하고 유폐시킬 수밖에 없던 이들이지요.”
“어떤 인물들이지?”
“사령 기사 소크 경.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 밀수왕 차샨, 히포그리프 라이더 셀림 경입니다.”
“아아.”
아자딘은 감탄했다.
“다섯 명 다 금시초문이군.”
그러나 그 이명을 들어볼 때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들은 아닐 것 같았다.
이들을 제치고 아자딘이 파이어글리프의 통치를 행한다면 이들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만약 아자딘이 파이어글리프를 파벨 경에게 맡기고 버밀리온으로 돌아간다면?
‘파벨 경이나 이즈밀라의 역량을 볼 때 역부족이겠군.’
결국 아자딘이 파이어글리프를 통치하는 게 현실적으로도 가장 나은 선택지일 수밖에 없었다.
‘뭐 파벨 경에게 맡겨놔봤자 결국 내가 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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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왕 차샨은 드워프 범죄조직의 수장으로 반릉과 아랑기 전역을 오가는 거대한 마약 밀수 조직 ‘드워븐 애로우’를 결성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를 체포한 반릉에서는 그의 사후, 조직이 새롭게 분열해 더더욱 늘어날 것을 염려해서 구난기사단에게 넘겼다. 구난기사단 역시 처리가 마땅찮았던 지라 차드라 고원에 유폐해 조직의 약화를 꾀했다.
이후 ‘드워븐 애로우’는 차샨을 대신해 새로운 보스를 세우고 조직을 계속 운영했으나, 차샨은 이 차드라 고원에서도 새로이 조직을 결성, 독자적인 밀수 라인을 조성하고 파이어글리프에서 직접 제품마저 만들며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다.
차드라 오걸 중 가장 정보망이 뛰어난 그이다 보니 파이어글리프의 챕터마스터 헥센마이어 경과 그 경비대, 파이어가드의 대장 티모시 경이 실각했다는 소문을 제일 먼저 접할 수 있었다.
“황제의 전령 아자딘이라. 이거 참 기사단이 또 엉뚱한 놈을 차드라 고원에 들여놨군.”
차샨은 전신에 푸른 문신을 했는데 그 문신이 얼굴까지 올라와 있는 기괴한 모습의 드워프였다.
이는 그가 드워프 소서러임을 입증하는 마법 문신이었다.
선천적인 마력의 힘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만들어진 마력 문신은 차샨의 감정에 따라서 스스로 빛이 나며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보스?”
밀수왕 차샨의 거점은 동남 바위 성벽. 이곳의 관리자는 구난기사단의 기사 브라함 경이었다.
나이 지긋한 호스피탈러-팔라딘으로 차드라 고원에 있는 기사 중 헥센마이어 경과 티모시 경 다음가는 직위였다. 성기사로서의 경력은 그들보다 오히려 더 오래된 노인이었다.
그런데 이 브라함 경이 자신이 관리해야 할 죄수인 차샨을 보스라 부르며 비굴한 태도로 웃고 있었다.
“브라함. 네가 여기서 가장 관록있는 성기사잖아? 아니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이제 막 기사단에 입문한 전령일족 놈이 파이어글리프를 꿀꺽하는 건 안 되지. 그런 맛있는 구역을 혼자 독차지하는 건 신참에게도 좀 힘들 테니까 분할 통치나 공동 통치를 하자고 제안을 해보자.”
“아 제가 가장 경험이 많은 성기사는 아닙니다. 소크 경이 저보다 계급도 높았습니다만.”
사령술 기사 소크 경. 그는 사령술 연구에 심취해서 파계를 범한 자로 현재는 성기사가 아니라 죄수의 신분이었다. 하지만 차샨이 그러는 것처럼 그도 사실상의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놈은 죄수잖아. 그놈의 성기사로서의 관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놈 꼭두각시의 관록이 중요한 것 아니겠어?”
“그, 그것도 그렇군요. 과연 보스. 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분할 통치를 하자고 제안하자면 다른 녀석들도 나설 거 아닙니까?”
“물론 우리가 먼저 가서 판을 짜놔야지. 가장 맛있는 걸 누가 먹을지는 우리가 정하고 다른 놈들은 우리가 짠 판에서 들어온다. 아무래도 이 파이어글리프는 혼자 먹으려고 하면 체한다. 그 전령일족이라는 놈도 설마 혼자 먹으려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자 애들 불러 모아. 장사하러 가보자.”
“알겠습니다.”
브라함 경은 즉시 파이어글리프로 떠날 채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