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66
265.차드라의 패자 3
“파벨 경.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면 그건 나중에 고스란히 파벨 경의 책임이 됩니다. 상부에서는 당연히 현상 유지하고 챕터마스터만 교체하는 걸로 끝내고 싶지, 갑자기 죄수들이 위원회를 구성해서 자치하면서 수면 위로 나오는 걸 좋아하겠어요?”
“아….”
그제야 파벨 경은 그나마 저들과 충돌하는 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 가장 후환이 적은 방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제가 저들을 격퇴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파벨 경께서는 이 파이어글리프에서 챕터마스터 대행직을 그대로 수행하시면 됩니다.”
아자딘은 파벨을 안심시키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이즈밀라가 따라 나오며 물어보았다.
“괘, 괜찮겠어요? 아자딘 경? 저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뭐 찾아와서 뭐 하자고 하는 이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 사령술 기사 소크 경이랑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 그들이 좀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럼… 더 큰 일이잖아요?”
이즈밀라가 당황해서 물어보았다.
파이어글리프를 임시로 통치해야 하는데 밑의 간부들이 죄다 반기를 들게 만들다니.
말하자면 대영주가 자기 밑의 소영주들 모두에게 반기를 들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대영주라고 해도 이래서는 남아나질 못할 짓인데… 아자딘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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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과의 교섭이 결렬되었을 때 가장 큰 불만을 가진 것은 밀수왕 차샨이었다.
아자딘이 교섭을 거절했어도 다른 둘, 히포그리프 라이더 셀림 경과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은 현상 유지가 된다.
그러나 차샨에게 지금 이 상황은 현상 유지가 아니다.
사실 차샨과 그의 조직은 헥센마이어 경과 모종의 계약을 맺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차샨은 산중험로를 개척해 그곳으로 약물들을 이송시킨다고 하지만 그러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교역량을 달성할 수 없다.
헥센마이어 경의 묵인하에 파이어글리프를 통해 물자를 나르기에 지금과 같은 물량을 나르고, 그만한 금력과 영향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헥센마이어 경이 퇴출당하고, 그 자리를 맡은 아자딘이 밀교역을 틀어막고 있으니. 차샨에게 아자딘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방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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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글리프의 뒷골목, 음습한 선술집에서 차샨은 부하들과 만나고 있었다.
이미 파이어글리프에는 그의 밀수조직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아자딘과 회담을 마치자마자 바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크아. 우리 조상님들의 이름에 걸고! 아무리 아지트로 만든 선술집이라고 해도 이 맥주는 너무 맛이 없군. 말 오줌에 당나귀 오줌을 섞어서 만든 것 같은 맛이야! 똑바로 못 만드냐?”
차샨은 투덜거리며 입의 맥주 거품을 닦았다.
“아자딘이라는 놈은 어떻게 할까요? 헥센마이어 경처럼 뇌물로 구워삶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선술집의 점주이자 조직원인 남자가 테이블을 닦으며 말했다.
“음?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저는 그가 천사와 함께 도플갱어들을 잡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름답고 위엄에 가득 찬 게 그 또한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아자딘의 활약상, 그리고 사람들을 매혹하는 그의 기품을 직접 경험한 조직원은 차샨에게 그날의 충격을 어떻게 해야 전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었다.
그야말로 천사의 화신, 정의의 대변인처럼 보이던 아자딘은 범죄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네놈이 본 녀석과 내가 본 녀석과는 좀 다른 것 같군.”
차샨은 코웃음 치며 말오줌 같다고 폄하한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가 본 아자딘은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마약이 가져오는 압도적인 부를 싫어할 리가 없다. 설령 마약 자체를 싫어하는 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묵과할 가능성이 크다.
“안심해라. 그를 회유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는 챕터마스터가 될 수는 없어. 챕터마스터가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자리를 차지한 녀석을 굳이 포섭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 제거한다.”
“암살자를 고용할까요? 하지만 어지간한 암살자들은 어림도 없을 겁니다. 상대는 전령일족, 영혼 없는 불경자니까요.”
“멍청한 녀석, 그저 죽여서 치워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냐. 만약 그리핀을 풀어서 오가는 파발들을 습격시키면 저놈이 누구를 원망하겠냐?”
“히포그리프 성애자인 그 소대가리겠지요.”
“그렇지? 언데드를 풀어서 상인들을 공격하면? 다른 차드라 오걸들과 싸움을 붙이면 이제 막 챕터마스터 자리를 대행하는 놈이 파이어글리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나? 결국 위원회 결성에 동의하겠지. 설령 분노해서 이빨을 드러내더라도 나 아닌 다른 놈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겠나?”
“아하.”
“직접 암살할 필요는 없어. 저 녀석은 어디까지나 챕터마스터의 부재 동안 임시로 자리를 차지한 녀석이다.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알아서 굴복할….”
그러나 차샨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여기가 밀수조직의 파이어글리프 쪽 지부로군.”
낭랑한 목소리가 차샨의 고막을 때렸다.
깜짝 놀란 차샨이 바라보니 아자딘과 웬 장신의 하프엘프, 그리고 거구의 하프오크가 그들의 아지트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명분상 선술집이지만 입구에 경비병을 세워두었는데, 그들이 별 구실도 못 하고 물러나는 게 보였다.
“아니 이런… 미행당하는 기색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야 내가 헥센마이어 경의 저널을 손에 넣었으니까.”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염병할 놈이군. 아 자네 말고 헥센마이어 말야. 뇌물 받는 놈이 저널에 이거저거 적어두면 안 되지.”
“그는 자신의 챕터마스터라는 지위가 스스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영원할 걸로 믿었던 모양이지.”
아자딘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사실 헥센마이어 경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공식적인 저널에는 일언반구 뇌물이나 뒷거래에 대한 걸 적어두지 않았다.
비밀 장부를 두고, 거기에 따로 기록하긴 했지만, 아자딘이 차샨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아라엘의 목소리로 미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굳이 아자딘이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알려줄 이유는 없다. 오해하게 내버려 두는 게 나으리라.
차샨은 맥주를 벌컥벌컥 비우더니 빈 조끼를 바텐더에게 던져주고, 아자딘을 돌아보았다.
“기어이 나를 찾아오다니. 무슨 속셈이지?”
차샨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 빛을 발하자 그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마치 유황불 증기처럼 치솟아 오른다.
강력한 소서러인 차샨은 지금이라도 마력의 불로 아자딘을 불태울 준비 만만이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대놓고 위협하는 차샨의 행동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물어보았다.
“밀수업이 아니라 정식으로 상회를 만들고 그걸 운영할 생각은 없나?”
그 순간 차샨의 부하 브라함 경이 흠칫 놀랐다.
아자딘의 제안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밀수꾼들에게 합법적인 정식 상회 결성을 제안하다니? 하지만 이것은 기사단의 방침을 벗어난 일이 아닌가?
‘운 좋게 헥센마이어 경을 처치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군. 뭔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브라함 경이 놀란 것과 달리 차샨은 아자딘의 제안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호? 제정신인가? 우린 범죄자다. 저 구난기사단도 우리가 고원을 벗어나 힘을 떨치는 걸 원하지는 않아. 기사단의 방침을 벗어나는 짓이 될 텐데.”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다가오는 파멸에 대항할 수 없지.”
“하하. 당신도 목성의 시대를 예언하는 시장의 광인인가?”
“필요하다면 광인 취급 당하는 것도 감수해야겠지.”
“제정신인가?”
차샨은 코웃음 쳤다.
“마약을 빼면 뭘 하라고? 그 어떤 것도 마약보다 수익이 나진 않아. 운송은 힘들고 그에 비해 수익은 별로지. 설탕이 그나마 마약만큼 수익이 나긴 하지만, 그건 덥고 비가 많이 오는 기후에서 잘 자라서 아무리 차드라 고원이 옥토지대라 해도 설탕을 만들 수는 없다.”
“식량과 무기, 양모, 모피, 천, 치료용 연고.”
브라함은 아자딘이 말하는 제품들을 듣고 혀를 찼다.
마약보다 무겁고 가격이 낮아서 운송비용이 대부분인 밀수꾼들에겐 전혀 매력적인 상품들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목성의 시대가 다가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물자들이다.
‘진심으로 목성의 시대가 온다고 믿고 있는 건가?’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눈앞에 있는 놈은 광신도다.
말이 통하지 않고 위협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상대. 지금까지 차샨이 휘두른 폭력, 위협, 협박과 매수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뜻이다.
‘정말 목성의 시대를 믿는다고? 그렇다면….’
브라함 경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늙고 타락해서 더는 뛰지 않던 가슴이었다. 물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차샨의 조직원으로서 가슴 철렁한 경우야 일상다반사였지만. 진정한 의미로 가슴 뛰는 경우는 정말 오래간만에 체험하는 것이었다.
아자딘의 말에, 그가 그리는 비전에 가슴 떨려 하는 브라함 경과 달리 차샨은 아자딘을 과소평가했다.
“미친놈. 더 말할 것도 없군. 그런 걸 팔아서 어떻게 드워븐 애로우를 되찾지? 이 마약이라는 건 그냥 단순한 담배 같은 기호품이 아니야. 인간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힘이다. 설령 목성의 시대가 사실이라서 식량과 무기를 생산해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지. 날 여기 촌구석에 처박은 놈들이 모조리 파멸할 테니까.”
“내가 고민하는 건, 차샨.”
아자딘은 싸늘한 시선으로 차샨을 노려보았다.
“당신이란 존재가 살려둬야 이득인지 죽여야 이득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뭣이?!”
“지금 말하는 게 진심인가? 아니면 자신의 일탈로 담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누가 우습게 볼까 봐 두려운가?”
“선을 넘었구나! 이놈!”
그 순간 차샨의 몸의 문신이 불타올랐다. 차샨의 안광은 그저 위협이 아니다.
-불태우는 시선!
순수한 적색 마력이 차샨의 눈에서 방출되어 아자딘을 덮쳤다. 무수한 대항자들을 죽여온 차샨의 마법이었다.
차샨의 부하 브라함 경은 차샨이 저 불태우는 시선으로 선배 기사를 공격했던 걸 떠올렸다.
판금 갑옷을 입은 고결한 기사가 화염 광선을 맞고 하반신만 덩그라니 남긴 채 잘린 모습을 본 이후로 브라함 경은 차샨의 심복이 되어야 했었다.
그러나 아자딘은 달랐다.
-화조풍월 연작!
아자딘의 앞에서 무수한 마탄이 쏟아지며 불태우는 시선과 격돌했다. 시선과 마탄이 폭발하자 그와 동시에 아자딘이 옆의 의자로 옮겨 앉았다.
마치 흔들의자에 기대어 앉는 동작과 동시에 발차기가 차샨의 턱을 강타했다.
발차기라기보단 거만하고 화려하게 의자에 앉는 거로 보였는데, 차샨이 그대로 뒤로 붕 날아가 나가떨어졌다.
“크악!”
차샨의 턱이 박살 나 피가 흐른다.
드워븐 애로우의 창설자, 광란의 드워븐 소서러 차샨이 저 청년의 발차기 일격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