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67
266.차드라의 패자 4
“어?!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브라함 경이 칼을 뽑으려 했지만, 그런 그에게 리전이 달려들어 손목을 붙잡았다.
리전은 늑대로 변신해 그 날카로운 이빨을 브라함 경의 목에 들이밀었다.
“얌전히 있어, 노인네. 오늘로 이 세상에서 하직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하프오크 쿤타치도 쇳덩이같이 커다란 펄션을 뽑아 다른 이들을 위협했다.
‘큭, 실수다. 빨리 파이어글리프를 떠나야 했어. 차드라 오걸 중에 제일 먼저 우리를 노렸군.’
브라함 경은 아자딘이 왜 차샨을 찾아왔는지 알았다.
차드라 오걸 중 조직력과 금력이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밀수왕 차샨, 아자딘 입장에서는 제일 먼저 제압해야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설마 회담이 결렬된 당일 바로 추격해 올 줄이야.
‘무엇보다 차샨이 한방에 나가떨어지다니.’
차샨은 주먹싸움도 엄청나게 강했다. 지금까지 불만 있는 녀석들은 전부 서로의 손목을 묶고, 술통 위에 올라가 주먹다짐으로 다 제압한 인물이었다.
타고난 싸움꾼이자 강력한 적색마력의 소서러.
그런 차샨이 설마 아자딘과의 격돌에서 단 일격에 무력화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멋지다….”
“야, 임마.”
차샨의 부하들 사이에서도 아자딘에게 홀리는 이들이 나올 지경이었다.
수려한 용모를 지닌 아자딘이 절제된 동작으로 펼치는 무예는 그 자체로 예술과도 같았다.
“크르르륵!”
분노한 차샨이 일어났다.
턱이 깨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적개심을 가지고 주문을 시전하려 했다.
“자 그만. 그 이상 하면 죽인다.”
아자딘의 경고와 함께 쿤타치가 펄션의 날을 차샨의 목젖에 들이댔다.
“크르륵.”
턱이 깨져 피거품이 입에서 줄줄 새고 있고, 목에는 차디찬 칼날이 겨누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샨은 굽히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죽음이 두려워서 벌벌 떨 줄 아냐?!”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아자딘은 차샨의 외침에 반문했다.
“…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차샨이 당황했다.
아자딘은 다리를 꼬고 깊은 눈빛으로, 진심으로 차샨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죽음을 초월해서 뭘 증명하고 싶기에 두려워하지 않나?”
“너 같은 샌님에게 당한 채 죽어버리면 죽어도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차샨이 그리 말하자 아자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금 저항하면 안 되지. 나 같은 샌님에게 당한 채 죽어버리게 될 텐데.”
“이 새끼가!”
차샨의 눈에서 다시 빛이 끓어오른다.
그러나 그 순간 쿤타치가 칼날의 옆면으로 차샨의 턱을 올려 쳤다.
살짝 쳤음에도 불구하고 차샨이 나뒹굴었다.
“눈 착하게 떠라 너. 아자딘 대장 앞에서 그런 눈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
쿤타치는 차샨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자딘도 차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용기가 아니야. 웃음거리가 되는 게 두려워서 자살을 택하는 더 질 나쁜 겁쟁이지.”
“뭣?!”
차샨은 입에서 피거품을 마치 게나 가재처럼 뿜어내면서도 분개했다.
자신을 겁쟁이라 부르다니?! 지금까지는 그 어떤 놈도 그를 겁쟁이라 부를 수 없었다.
“차샨. 세력을 키워서 뭘 이루려고 했지? 무엇을 원했길래 마약을 팔아가면서까지 금력을 갈구했나?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거야.”
“이 애송이가! 네놈이 얼마나 나를 안다고 아는 체하냐?”
“그러니까 물어보는 거다.”
-촤라라락!
아자딘의 손에서 흑강사슬이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끊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사슬로 보이지만, 흑강 특유의 싸늘한 한기 때문에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자딘이 그 사슬을 던져 차샨을 휘감고 저주를 발동시키자 차샨의 몸에서 빛나던 문신들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식어가는 쇳덩이처럼 빛을 잃고 이내 차갑게 식어버린 문신이 차샨을 당황하게 했다.
마력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 이런… 네 놈! 나를 없애면 내 조직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범죄 조직의 수장을 제거하면 그 휘하의 패거리들이 서로 권력다툼을 시작해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는 법. 그래서 차샨을 제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위였다.
임시로 파이어글리프를 장악한 아자딘에게는 더더욱 경솔한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준비해야겠지.”
아자딘은 담대하게 그렇게 말했다.
차샨과 거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차샨의 조직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걸 택한 것이다.
“그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다인가? 그러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때 브라함 경이 일어났다.
“여기 외에 또 다른 안가가 있습니다. 아자딘 경.”
“뭣?!”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차샨이 깜짝 놀랐다.
“이, 이 자식 배신을….”
“무리해서 말하지 말게. 차샨. 나중이 치료되었을 때 예후가 안 좋아질 테니.”
브라함 경은 차샨의 몸 상태를 걱정해 주며 그리 말했다. 그러나 언제나 보스라 부르며 아부하던 비굴한 태도가 아니었기에 차샨은 그가 확실히 배신했음을 알았다.
“개자식! 넌 죽었어! 내 형제들이 널… 이 배반자 새끼!”
그러나 차샨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아자딘이 손짓하자 쿤타치가 노끈과 재갈을 가져와 차샨의 입을 묶어버린 것이었다.
“턱 부서졌는데 괜히 떠들다 죽지 말고. 브라함 경, 이야기를 해볼까? 왜 나에게 협력하겠다는 거지? 솔직히 나로서도 너무 갑작스러운데?”
“환시를 보고 있네.”
“환시?”
“다가오는 목성의 시대.”
“…….”
“그게 두려워서 향락에 손을 대다 차샨에게 굴복했다네. 향락에 몰두해 있는 동안은 죽음도, 파멸도 잊을 수 있었으니까.”
브라함은 그리 말하고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두려웠다네. 차샨의 폭력이. 기사로서는 실격이지. 결국 나는 비열한 겁쟁이라네.”
“그렇다면 환영하지요. 브라함 경.”
아자딘은 브라함 경의 합류를 받아들였다.
*********
차샨의 밀수 조직은 파이어글리프를 포함해 차드라 고원 전역에 퍼져 있었다.
이들은 무장을 갖추었으며 그들의 아지트, 연락망은 곳곳에 나뉘어져 있었다.
게다가 파이어가드들을 매수해 두었기에, 제압하고자 한다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결코 제압할 수 없는 히드라 머리 같은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직의 이인자인 브라함 경이 아자딘에게 붙는 바람에 적어도 파이어글리프에서 조직을 검거하는 것은 수월하게 끝이 났다.
*********
파이어가드의 병영, 본래 티모시 경이 자리하던 파이어가드 본부에는 아자딘이 자리하고, 그 직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브라함 경을 믿으시나요? 아자딘.”
이즈밀라는 그런 브라함이 내키지 않는지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자딘에게 다가와 물어보았다.
“흠. 왜 그런 의문을 품지?”
“걱정되어서 그러지요. 브라함 경은 호스피탈러-팔라딘입니다. 현재 이 차드라 고원에서 구난기사단 서열이 가장 높은 분이지요. 만약 다음 챕터마스터 자리를 노리고 접근해온 거라면….”
이즈밀라는 행여 브라함 경이 야심을 숨긴 채 아자딘에게 굴복한 게 아닌지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브라함 경은 약점이 너무 많아. 차샨과 붙어먹은 죄도 있고 나이도 너무 많고. 챕터마스터로 임명될 리가 없는 사람이지. 게다가 본인부터 마약중독자이기도 하지.”
“마약 중독자라고요? 그럼 더더욱 그런 사람을 믿지 말아야죠.”
“하지만 믿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
“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스스로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거든. 겁쟁이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죽으려는 사람들도 많지. 그러니까 자기를 겁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인 거지.”
“아. 아하핫.”
이즈밀라는 아자딘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아니요. 제 스승님들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야 나도 명색이 성기사니까 가끔은 성기사다운 말도 해야지. 이즈밀라 경.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내 신앙심은 깊거든.”
아자딘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때 파이어가드의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으아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아자딘 경!”
파벨 경이 직접 뛰쳐들어온 것이다.
“동남 바위 요새에서 반란이 일어났네! 차샨의 형제인 드워프 소서러들이 요새를 장악하고 보급관을 구금했다네! 차샨을 풀어주지 않으면 보급관을 죽이겠다고 난리일세. 명색이 내가 챕터마스터 대행일 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파벨 경은 벌벌 떨고 있었다. 그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챕터마스터를 실각시키고, 그 대행을 맡았다. 그런 와중에 이런 반란 사건이 벌어지다니. 그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 계속 일어나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아니, 파벨 경. 파벨 경께선 현재 챕터마스터 대행이십니다. 제게 직접 오시지 말고, 전령을 보내서 부르시지 그랬어요?”
“전령일족에게 전령을 보내라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번 일은 결국 자네가 그 차드라 오걸들을 자극해서 생긴 일 아닌가. 어찌 책임질 건가? 이거. 나는 지금 헉헉, 심장이 너무 뛰어서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뭐 동남 바위 요새에서 반란이 일어났단 말이지요? 잘됐군요. 그거.”
“잘됐다니! 지금 이 상황이?”
“이 땅에 만연한 타락을 뿌리 뽑기 위한 좋은 명분이 생겼으니 좋아할 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파벨 경. 이런 건 다 고스란히 파벨 경의 업적이 된다고요.”
“내 업적이 된다고? 무슨 소린가?”
“그야 전임 챕터마스터가 기사단에 불충한 범죄자였으니, 당연히 그 썩은 고름들이 들어차 있지 않겠습니까? 그 고름을 쥐어짜고 환부를 제거하면 그만큼 상부에서 파벨 경을 높이 평가하게 될 겁니다.”
“하, 하지만 고블린이라면 모를까 인간 상대로는 피를 본 적이 없네.”
“에이. 파벨 경은 파이어글리프를 지키셔야죠. 반란 토벌은 제게 맡기시고, 파벨 경은 여기서 챕터마스터 대행의 임무를 수행하시면 됩니다.”
아자딘은 파벨 경을 안심시키며 일어났다.
“토벌에는 1주일도 안 걸릴 겁니다.”
“그, 그렇다면야. 믿고 맡기겠네. 아자딘 경.”
아자딘이 단 1주일 만에 동남 바위 요새의 반란을 평정하겠다고 말하자 파벨 경은 안심했지만, 이즈밀라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동남 바위 요새까지 거리가 걸어서 2~3일 걸려요. 그걸 일주일 안에 평정하겠다니.”
실질적으로 하루나 이틀밖에 여유가 없다. 하지만 아자딘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미 준비해 두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후후. 그러니 염려하지 말지어다. 이즈밀라 경.”
“으음. 왠지 사기 치는 것 같은데.”
이즈밀라는 아자딘의 미소에 불신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