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70
269.차드라의 패자 7
익숙한 이름이 나왔지만 아자딘은 놀라지 않았다.
세흐나트 주교는 바로 조사단장에 파벨 경을 선임해 이즈밀라를 빼돌리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이름이 나온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하나씩 맞추어져 가는 이 정황증거들의 큰 그림에 아자딘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세흐나트 주교인가?”
“그래. 세흐나트 주교님께서는 교단에 악의 세력들이 심어둔 스파이가 만연하셨음을 알아채고, 나에게 히포그리프를 키워서 선택받은 이들에게 전해주는 사명을 맡기셨지.”
“뭐?”
아자딘은 셀림의 반응에서 그가 아자딘의 감탄을 달리 해석했음을 감지했다.
셀림은 세흐나트 주교의 진의가 선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아자딘이 세흐나트 주교의 이름을 듣고 감탄함을 주교의 성실함과 광명정대함, 그리하여 악행을 저지르려 하는 아자딘을 가로막는 선의 방파제로서의 경탄이라 여겼던 것이다.
셀림의 머릿속에서 아자딘은 악, 주교는 선이라는 이 그릇된 방정식은 이미 자체적으로 증명이 끝난 절대명제가 되었다.
“메리 벨을 닮은 녀석을 죽여야 한다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구난기사단을 위협하는 놈이니 널 살려 둘 수는 없겠군.”
“잠깐.”
아자딘은 셀림의 말에 반박했다.
“목숨 구걸이냐?”
“아니 그 전에 왜 내가 악당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주교께서 네놈이 악당이라고 했으니까.”
“반대로 주교가 나쁜 놈일 수도 있잖아?”
“그럴 리 없다. 주교는 날 기사로 만들어 준 분. 그분이 나쁜 놈이면 나도 나쁜 놈이 된다. 나는 나쁜 놈이 되기 싫으니까 주교님을 믿는다.”
“아 그래?”
아자딘은 더는 말해봐야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셀림의 앞에서 주교를 욕하는 것은 곧 셀림을 욕하는 것, 이제 셀림은 주교를 비호하기를 넘어서 주교와 한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어?”
셀림이 놀라서 돌아보는 순간, 호루라기 소리와는 다른 직각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와 셀림의 목덜미에 꽂혔다.
“아자딘! 이 자식 세흐나트 주교의 암살자야! 살해 의뢰서가 있다!”
카밀라가 아자딘에게 외치며 다시 자신의 숏보우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어!? 이것들! 내 사무실을 도둑질했구나!”
셀림은 분개하며 목덜미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사람이라면 치명상이 될 깊이의 상처였지만 미노타우르스의 두꺼운 가죽에는 그저 찰과상에 지나지 않았다.
“젠장! 괴물이네?!”
카밀라는 다시금 셀림에게 화살을 쏘았지만, 셀림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마치 흐르는 수면 위로 나뭇잎들이 미끄러지듯 화살이 미끄러지며 떠내려간다.
별다른 방어동작이 아닌 그저 움직였기 때문에 화살이 박히지 않고 미끄러진 것이다.
‘원참. 카밀라의 활은 엄청나게 약하군.’
아자딘은 카밀라의 활이 약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녀의 완력에서 쉽게 다룰 수 있는 활, 작고 휴대도 간편하면서 빠르게 쏠 수 있는 활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화살 하나하나를 소중히 쓰려고 하는 전령일족 입장에서 보면 저런 활은 화살을 낭비하는 기구다.
차라리 손으로 화살을 던지는 게 더 위력적일 지경이다.
그러나 그런 발상은 아자딘 자신을 어린 시절 괴롭혔던 이들과 일맥상통한다.
‘나도 전령일족 다 됐군.’
아자딘은 자신이 나서서 셀림을 퇴치하려 했지만 셀림은 아자딘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카밀라에게 돌진한다.
여기서 공격하면 뒤를 공격하는 게 되어서 아자딘은 잠시 망설였다.
해치우자면 참 좋은데, 셀림 스스로 기사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 뒤를 기습하기가 꺼려진다.
그때 호루라기를 불었던 쿤타치가 펄션을 빼 들고 셀림에게 다가갔다.
둘다 쿵쾅쿵쾅 거침없이 걸어가서 서로 들이받을 기세다.
“누나에게 덤비지 마라!
“흥! 멍청한 하프오크가!”
“아니 너도지지 않게 멍청해.”
아자딘이 듣고 있다가 한마디 해주었다.
“나는 글도 읽고 쓸 줄 안다!”
셀림은 아자딘의 말에 그리 항변하며 목장 울타리 옆에 놓여있던 도끼를 집어 들고 쿤타치에게 휘둘렀다.
“뭐?!”
쿤타치는 놀라며 펄션을 휘둘렀는데….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쿤타치의 펄션이 튕겨 나갔다.
힘에서 셀림이 더 위다.
“으어!?”
당황한 쿤타치가 무의식중에 박치기를 날렸다.
“감히!?”
셀림도 박치기로 응수했다.
쿤타치가 머리를 도중에 틀지 않았다면 셀림의 뿔이 쿤타치의 머리를 으깨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쿤타치는 미노타우르스의 뿔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절묘하게 머리를 틀어 미간끼리 충돌하는 데 성공했다.
-빠악!
생명체끼리 부딪쳐서 이런 소리가 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충돌음이라기보다는 무슨 천둥 같다.
그 천둥소리의 반향이 사라지자 쿤타치가 무릎을 꿇었다.
“이, 이럴 수가? 내가 졌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지금까지 박치기 싸움에서 백전백승해 왔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미노타우르스랑 박치기를 하고 무릎 꿇는 정도로 끝나다니. 쿤타치의 머리도 이만저만한 돌머리가 아니다.
“그, 글자도 읽을 줄 알면서 이렇게 세다니!”
“흥. 멍청한 녀석! 감히 날 이기려고 해?”
셀림은 무릎을 꿇은 쿤타치를 향해 도끼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셀림의 도끼가 무거워졌다.
“음?!”
“세상에. 미노타우르스랑 박치기하다니.”
셀림은 자신의 귓가에 와닿는 아자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아자딘이 그의 곁에 와서 도끼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놀란 셀림이 아자딘을 떼어내기 위해 도끼를 휘둘렀지만 아자딘의 손바닥이 그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스칵!
아자딘이 뛰어올랐다.
푸른 검광이 아자딘을 따라 그어지며 셀림의 뿔을 잘라버렸다.
“끄아아악!”
뿔의 뿌리부터 잘랐는지 피가 튀었다.
아자딘이 아주어스틸 단도로 셀림의 뿔을 하나 잘라버린 것이었다.
“이, 이 자식!”
분노한 셀림이 도끼를 풍차처럼 휘둘렀지만, 아자딘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셀림의 공격과 공격 사이를 빠져나가며 아우렐리아 던을 뽑아 들었다.
세라마이트 장검이 불타오르며 금색 화염이 눈부시게 빛난다.
셀림의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셀림이 도끼를 휘두르는 걸 절묘하게 피한 아자딘이 셀림의 얼굴을, 정확히는 잘린 뿔을 향해 아우렐리아 던을 찔러넣은 것이다.
-치이이익!
아우렐리아 던의 금색 불꽃이 셀림의 뿔이 잘린 부위를 지져 지혈시켰다.
그리고….
‘고소한 쇠고기 냄새가 나네….’
살이 타면서 쇠고기 냄새가 사방을 진동시켰다.
“크아악! 이놈! 재빠르기는! 파리 같구나!”
분노한 셀림은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아자딘에게 돌진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설령 옷자락도 못 건드린다고 해도, 병장기끼리 부딪치기만 해도 이후의 공방을 유리하게 가져갈 자신이 있다.
셀림이 자신의 완력을 믿고 폭풍처럼 휘몰아치지만, 아자딘은 침착하게 그 공격을 다 피해내며 오히려 셀림에게 투항을 권고했다.
“파이어가드 대장 대행으로서 명한다. 투항해라 셀림 경.”
“이 녀석! 쇠파리보다 재빠르군! 하지만 일단 스치기라도 하면 너는….”
셀림의 도끼질이 불러일으키는 광풍에 목장의 파리조차 휩쓸려 산산이 조각난다. 그러나 아자딘은 침착하게 그런 도끼질을 피해낸다.
‘크윽. 이 자식! 너무 침착하잖아?’
셀림은 지금껏 보지 못한 침착한 눈의 아자딘을 보며 당황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상대들은 설령 제아무리 재빠른 발재간을 가진 이들이라 해도 그의 도끼가 광풍을 부르며 울어대면 겁에 질리고 안색에서 핏기가 사라져 이내 손발이 꼬이며 겁에 질려 제풀에 고꾸라지곤 했다.
그런데 아자딘은 그런 기색 없이 태연하게 셀림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대단한 담력이다.
“안 되겠군. 아자딘. 그래도 당신을 구난기사 취급해서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왜 우리 목장에서 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지 궁금하지 않나?”
“…구, 궁금하군 그건.”
셀림의 공격을 무심하게 피해내던 아자딘도 셀림의 그 말엔 흥미를 보였다.
“바로 이렇기 때문이지! 자 그리핀아! 밥 먹자! 구구구구구!”
그 순간 상공을 배회하던 그리핀들의 기척이 변화했다.
그전까지는 그냥 상공을 날던 그리핀들이 이제는 명백한 살의를 가지고 지상을 내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알에서 직접 부화시킨 그리핀들이다! 날 어미로 생각하고 나와 닮은 소들은 공격하지 않아!”
상공에서 그리핀이 급강하하다 활강에 들어가 아자딘을 덮친다.
일반적인 매의 사냥법에 비해서는 느리지만 대신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리핀이 급강하하던 속도를 타고 그대로 활강하며 덮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박력 그 자체였다.
아무리 아자딘이라 해도 그리핀들의 활강 중 공격은 위협적일 터! 게다가 여기에 지상에서 셀림의 공격까지 이어진다면?
단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3차원 입체 공격이 연거푸 펼쳐지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기사단의 안녕을 위해서다! 아자딘!”
셀림은 아자딘을 자기 손으로 처치해야 하는 현실에 아쉬워하면서도 승리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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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아자딘은 셀림의 말을 듣고 슬쩍 위치를 이동해 검은 젖소, 메리벨에게 다가갔다.
“어?!”
셀림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그리핀들의 활강 중 공격은 이제 메리벨 때문에 쓸 수 없게 되었다.
아자딘을 치고 지나가면 필연적으로 메리벨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핀들은 소를 공격하고 싶지 않은지 이리저리 배회하며 각도를 바꿔 보았지만, 그때마다 아자딘은 메리벨을 끼고 돌며 메리벨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리핀들이 훈련이 잘되어 있군, 셀림. 애정을 가지고 키웠나 봐?”
“큭! 비겁하다! 아자딘! 메리벨에게서 떨어져! 메리벨! 그 녀석은 나쁜 놈이다!”
하지만 메리벨은 아자딘이 목을 쓰다듬자 그저 좋아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는다.
“어이쿠. 이쁘네. 셀림. 당신 말이 맞아. 이 소. 예쁘네.”
“이 자식! 나의 메리벨을!”
그때 그리핀들이 목장에 착륙했다.
활강 공격으로는 답이 없자 육탄전을 벌이기 위해 내려온 모양이었다.
거대한 불곰만 한 크기의 그리핀들이 연거푸 지상에 착지해 아자딘을 에워쌌다.
“아, 아자딘!?”
“대장!”
카밀라와 쿤타치도 그리핀들이 내려오는 걸 보며 기겁했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이 괴수들이 적대적으로 나올 경우 카밀라와 쿤타치조차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젠장. 여기서 써야 하나?’
카밀라가 옷자락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바로 그때였다.
“셀림. 마지막 경고다. 투항해라.”
“뭐? 네가 투항하겠다는 걸 잘못 말한 거겠지?”
셀림은 코웃음 쳤지만, 그 순간 아자딘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조풍월 땅거미!
전령일족을 마술사들의 천적으로 만들어 준 마도서, 화조풍월의 힘이 발동한 것이다.
깜짝 놀란 셀림이 도끼를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아자딘은 셀림의 머리에 아우렐리아 던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