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72
271.세라마이트 1
“자 그럼 다음은 세드린인가?”
차드라 오걸 중 둘을 제압한 아자딘은 다음 목표로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앞에 작은 새매가 하나 날아와 앉았다.
“그럴 필요 없어.”
새매는 순식간에 엘프 여성으로 변신했다.
헐렁한 의복에 훌쩍 큰 키, 호리호리한 체구의 엘프 여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쳤다.
“재밌는 구경이었다. 아자딘 경.”
“이미 와있었군. 의외인데?”
아자딘은 아라엘의 목소리가 세드린을 파악하지 못한 것에 놀랐다.
그 사실을 세드린도 알고 있는지 답했다.
“황제의 목소리 같은 인공정령은 에너지를 아끼게 되어있으니까. 내가 살의를 뿜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인공정령이 감시한다 해도 쉽게 들키지 않지.”
“알고 있었나?”
“당신 스스로 말했잖아? 황제의 전령이라고. 황제의 전령이라면 당연히 황제의 목소리가 함께 하고 있겠지.”
보아하니 아자딘에게 붙은 것이 황제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라엘의 목소리라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라엘의 목소리는 황제의 목소리와 달리 네더 마법의 영향이 있는데 그 차이를 모른다고? 아 하긴, 원래 황제의 목소리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네더 마법의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래 황제의 목소리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
아자딘은 그리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뭐 찾아갈 수고를 덜어서 좋군. 세드린. 혹시 그리핀들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조정하고 통제할 방법이 없을까?”
“죽여버리면 되잖아?”
세드린이 그리 말하자 셀림이 깜짝 놀랐다.
“주, 죽이다니?”
“흥. 주교가 시키면 사람도 팍팍 죽이려고 했던 멍청이가 그리핀 목숨은 소중히 여기는군.”
“그래도 드루이드가 동물을 죽이자는 소리를 해도 되나?”
“나는 와일드 드루이드야. 균형이 어긋난다면 죽여서라도, 파괴해서라도 균형을 맞추는 게 맞지. 애초에 그리핀이라는 괴수는 이렇게 멋대로 늘어나지 않는다고. 둥지에 반짝이는 물건들을 모으려고 하는 그리핀 습성상 알의 부화율이 떨어지게 되어있는데, 어떤 멍청이가 알들을 집에 가져가서 따뜻한 수건으로 덮어서 부화시키는 바람에 균형이 어긋났잖아?”
세드린은 셀림을 비난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받은 셀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서 정신을 못 차렸다.
아자딘이 세드린과 셀림의 설전을 말렸다.
“와일드 드루이드의 방침은 알겠어. 그러나 셀림이 멋대로 늘려버렸다고 이제 와서 죽여버리는 것은 생명에게 너무 무례한 짓 같군. 최대한 살리면서 균형을 회복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흐음?”
세드린은 아자딘의 앞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아자딘을 다방면으로 뜯어보았다.
“생긴 것도 예쁘장한 게 말은 더더욱 예쁘게 하는군. 마음에 드는데? 전에 보았을 때는 좀 오만하다 싶었는데, 그때는 차샨이 먼저 시비를 걸어서 그랬었나?”
“그거 다행이군.”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리핀을 그저 살려두자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써먹고 싶어서 내게 상의하는 거겠지.”
“바로 그렇다. 실은 하늘을 나는 짐승을 이용해서 가교를 만들고 싶다.”
“가교?”
“차드라 고원에서 반릉과 아랑기 왕국으로 이어지는 길들을 개척하고 싶어. 절벽에 가교나 로프를 설치하면 길을 많이 단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건설작업에 하늘을 나는 짐승들을 동원한다면 쉬워질 것 같아.”
아자딘은 차샨과 셀림, 그리고 세드린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정상적인 교역 집단을 만드는 것을 구상하고 있었다.
차드라 고원의 옥토에서 생산되는 압도적인 잉여생산물들을 현재는 기사단이 독점하고 있다.
“그리핀으로 공중 수송은 무리야. 효율이 나쁘지.”
“그래. 하지만 가교 등을 건설하는 데는 쓸만하지 않을까? 건설 자재만 살짝 날라주기만 해도 매우 유용할 텐데.”
세드린은 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당신 말이 맞아. 그리핀이 유용한 가축으로서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와일드 드루이드의 율법에도 균형에 속한 존재로 여겨지겠군.”
“죽이지 않고 해결 볼 수 있겠지?”
“그래. 다만 나도 당신에게 부탁할 게 있어.”
“부탁할 게 있다고?”
“그래. 언데드 기사 소크 경을 처단해줘. 그러면 나도 당신에게 헌신하도록 하지. 저 셀림이 그러했듯이 말야.”
셀림이 무기를 넘기며 충성 서약을 한 것은 왕과 가신들 사이에서나 할 법한 매우 강도 높은 충성서약이다.
세드린은 자신의 충성을 바치는 조건으로 소크 경의 토벌을 내건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셀림이 그 말을 듣고 아자딘에게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게. 아자딘 경. 아무리 그대라도 소크 경은 이길 수 없다네..”
“음? 아니 잠깐?”
아자딘은 소크 경의 이름을 듣자마자 포기하는 셀림에게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다른 차드라 오걸, 차샨과 그 형제들 역시 그랬다.
다들 소크 경에 대해서는 한 수 접어준다. 아니 이 정도면 한 수 접어준다기보다는 소크 경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크 경은 왜?”
“그전에 일단 내가 얼마나 유용한지부터 보여줘야겠군.”
드루이드 세드린이 손짓하자 셀림을 걱정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그리핀들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녀에게 다가왔다.
세드린이 손등으로 그리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당장 앞발로 후려치기만 해도 사람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는 이 괴수들이 마치 순한 양 떼처럼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다.
“어? 애들아.”
셀림은 자신이 직접 먹이를 줘가며 키운 그리핀들이 허망하게도 세드린을 따르는 걸 보며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세드린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이 빛을 발하는 게 보였다.
그녀는 지금 마법을 쓰는 것이다.
“소와 말들을 공격하지 않도록 심층의식에 새겨두도록 하지. 그러면 히포그리프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아니 그런 게 가능하다면 진작에 해줬어야지? 내가 고생하는 걸 빤히 보면서….”
셀림은 히포그리프를 만들기 위해 애쓰던 자신을 생각하며 세드린을 원망했다.
그나마 사이가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셀림이 고생하는 동안 세드린은 해결방법을 알면서도 그냥 지켜봤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게 만든 히포그리프가 북제의 군대에 공급되는 데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거든.”
“북제의 군대?”
“셀림이 키워낸 히포그리프는 북제의 왕자들에게 가고 있어. 세흐나트 주교는 북제의 끄나풀이거든.”
세드린은 아자딘에게 손짓했다.
“당신이 북제에게 대항하고 언데드 기사 소크를 제거해 준다는 약속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약속하진 않았는데. 소크 경이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다들 정색하는 거지?”
“소크 경은, 핌불 호드의 우두머리네.”
셀림 경이 그렇게 말했다.
“핌불 호드? 겨울의 약탈자들 말인가?”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소크 경은 본래 오크 마법사였다.
구난기사단, 지혜 교단의 초청으로 찾아온 그는 구난기사단과 함께 여러 마법적 연구를 거두어 세라마이트의 합성, 각종 역병의 치료제를 만드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 역시 오크였기에 계속해서 근육이 증강되어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는 협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에 소크 경은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 사령술에 손을 댔고 스스로의 생명을 육신에서 분리해 리치가 되고 말았다.
구난기사단은 소크 경을 파문했지만, 세라마이트의 제법을 알고 있는 그를 기사단 밖으로 내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사단은 소크 경을 사멸시키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지만… 리치가 되어 더는 협심증에 고통받지 않는 소크 경의 적이 되지 못했다.
끔찍한 전투 끝에 기록상 구난기사단이 승리했다.
그러나 그 후 처리를 보면 사실상 기사단이 패배하고 화의를 맺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소크 경은 세라마이트의 제법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차드라 고원으로 유배되어, 비아르 늪지에서 지내게 되었고 기사단은 소크 경을 두려워하며 비아르 늪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소크 경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차드라 고원을 떠나 어산더, 반릉, 아랑기 등을 자신의 언데드 군대와 함께 공격하였으니….
사람들은 소크 경을 두려워하며 그의 언데드 군대를 핌불 호드라 불렀다.
*********
“핌불호드라면 들어봤지. 이럴 수가. 차드라 오걸이라고 해서 몰랐는데 설마 핌불 호드가 소크 경이었다고?”
옛날이야기에 나올법한 악몽의 괴물들, 그것이 핌불 호드였다.
그런데 그 우두머리가 소크 경이라니?
세드린은 셀림이 소크 경에 대해서 아자딘에게 경고하자 얼굴을 구겼다.
“젠장. 셀림! 네가 좋아하는 그놈의 그리핀들이 지금 내 손아귀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핀을 다 죽이더라도 할말은 해야지. 아자딘 경. 아무리 그대라 해도 소크 경은 무리네.”
보아하니 세드린은 어떻게든 아자딘에게 소크 경을 퇴치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자딘이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소크 경은 왜 미워하지?”
“그의 가신단에는 와이트들이 있는데 그 와이트 들은 내 혈족의 시체로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혈족의 시체를 훔쳐 가서 부려 먹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마저 장악하고 있지. 사악한 사령술이다.”
“…….”
사령술로 진사 채취를 하는 아자딘으로서는 뜨끔해지는 발언이었다.
물론 아자딘이 사용하는 사령술은 죽은 자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는 저급한 수준의 사령술이라 죽은 이의 영혼을 모독하지는 않는다지만, 드루이드인 세드린 입장에서 그 차이가 있을까?
‘그녀에게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겠군.’
아자딘이 내심 찔리는 바가 있어서 망설이자 세드린은 그 역시 소크 경을 두려워해 머뭇거린다고 여기고 한탄했다.
“아 구난기사단에 이다지도 인물이 없다니. 아자딘 경. 나는 당신을 돕기 위해서 이미 그리핀들을 진정시켰어. 당신이 소크 경을 파멸시켜 주겠다고 선언만 하면 나는 이 그리핀들로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가교를 건설하고, 길을 오가는 도적들을 처치하겠어. 심지어 내 충성도 바치도록 하지.”
세드린이 그렇게 안달하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은 소크 경의 이름만 들어도 꽁무니 빼기 바빴나 보다.
“들은 체도 하지 말게. 아자딘 경. 세드린은 인육도 먹는 와일드 엘프라고.”
“너야말로 인간 잡아먹는 미노타우르스면서!”
“자자. 둘 다 진정하고.”
아자딘은 서로 싸우는 셀림과 세드린을 말렸다.
“잘은 모르지만 일단 조사는 해보도록 하지.”
“조사?”
“그래. 소크 경이 정말 네 가족을 사령술로 부리고 있다면 그들을 해방하겠다. 그를 퇴치할지 말지는 그다음 문제고.”
“…좋아.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하지. 알겠다. 아자딘.”
세드린은 아자딘이 소크 경에게서 자신의 가족을 해방해 주려 노력하겠다는 말 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만큼 핌불 호드의 수장, 소크 경을 다들 두려워하고 있단 뜻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