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74
273.세라마이트 3
‘무엇보다도 이 엘프 언데드만 해도 예사롭지 않은데.’
아자딘은 달리아에게서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자딘을 욕망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심히 매력적인 시선이지만, 그것이 아자딘의 사랑을 갈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자딘의 피와 살을 뜯어 먹고자 갈망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아. 젊고 아름다운 분. 후후후. 달콤한 피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군요.”
“언제쯤 도착하지?”
“이제 다 왔습니다.”
마차가 언덕길 위를 오른다. 무수한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아서 도저히 지나가지 못할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안개가 싹 걷히는 순간. 어느새 마차는 커다란 저택의 정원, 앞뜰에 당도해 있었다.
소크 경의 저택이 그 웅장하고 스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 그럼 이쪽으로.”
달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아자딘 일행을 소크 경에게 안내했다.
*********
저택 입구는 대도시의 귀족 저택에서나 볼법한 갖가지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조각과 회화, 그리고 금박을 입힌 액자가 이 저택의 주인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대변한다.
하지만 스산한 검은 영기가 주위를 감돌고 있고, 도깨비불이 떠다닌다. 도깨비불의 창백한 빛은 저택을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퇴색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한 저택 입구, 로비에는 이미 시종들이 도열해 있었다.
깔끔한 연미복으로 맞춰 입은 남성 엘프들과 여성 엘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소크 경의 종복이랍니다.”
달리아가 자랑스럽다는 듯 말한다.
하인들과 하녀들이 눈을 뜨자 그들의 눈 안에 푸른 도깨비불이 넘실거린다.
‘와이트(wight)로군.’
달리아를 포함해 여기 있는 엘프들, 모두 저주받은 망자, 와이트가 되어 있었다.
세드린과 닮은 외모와 비슷한 문신을 새긴 것을 보니, 아마도 이들이 세드린의 혈족이리라.
왜 세드린이 자신의 충성을 조건으로 소크 경을 토벌해달라는 지 이제 그 심경이 이해가 갔다.
자기 혈족이 와이트가 되어 소크 경에게 하인으로서 부려지고 있다면 기분이 나쁠 법도 하다.
그런데 그때 2층에서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위대한 주인, 죽음조차 극복한 소크 경께서 납시오.”
스산한 벨소리와 함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
-쿵!
계단이 울린다.
그도 그럴게 소크 경은 미노타우르스인 셀림보다 약간 작은 정도의,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거구였기 때문이었다.
그 거구에 판금갑옷을 두르고 있으니 무게가 엄청날 것이다.
“손님은 정말 오래간만이군. 대접이 미흡하더라도 양해하게.”
소크 경은 그리 말하고 아자딘의 앞에서 투구를 벗었다.
두꺼운 엄니가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근육질 오크의 모습이었다.
몸에 생기가 없고 눈에서 귀화가 감도는 게 그가 살아있는 몸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오크에… 언데드, 미노타우르스도 있고. 이렇게나 구성원이 다양한데도 내가 구난기사단에 들어갈 때 그렇게 반대를 한 건가.’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에 이렇게 신기한 구성원들이 많은 걸 보며 어쩐지 억울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그대가 아자딘 경이로군. 놀라운걸. 설마 셀림 경을 대동하고 오다니. 게다가 셀림 경의 머리가….”
소크 경의 시선이 뿔이 잘린 셀림의 머리로 향했다.
위풍당당하던 셀림의 뿔이 양쪽 모두 잘려 나가고 흉한 상처가 드러나 있었다.
“무슨 용무로 찾아왔나?”
“소크 경이십니까? 실은 검은 숲의 숲지기, 세드린에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만 혈족들의 시체를 반환해달라고 하더군요.”
“아 세드린의 요청인가? 어지간하면 나도 들어주고 싶지. 그러나….”
소크가 달리아에게 턱짓하자 달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시다시피 당사자들이 반대하고 있다네.”
와이트가 된 엘프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이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다는 듯한 그들의 웃음은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다.
아자딘은 소크 경의 망발에 쓴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없는 좀비나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와이트는 생전의 인간과 흡사하면서도 왜곡된 괴물들이다. 그들이 저렇게 생전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주기적으로 사람의 생혈을 빨아먹기 때문에 가능한 일. 생전 모습과 흡사한 용모의 와이트라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꾸준히 살인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세드린은 이들이 사령술로 왜곡되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합니다만?”
“그런 주장을 한다면 응당 그 근거 또한 대야겠지? 만약 누가 자네가 미쳤다고 주장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자신이 온전한 정신을 가졌다고 주장할 것인가?”
“물론 상태가 멀쩡하다면 괜한 사람을 미쳤다고 하는 건 무례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술병이 뒹굴고 있고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풍겨온다면 제정신이냐고 묻는 것도 합리적인 의심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말 한번 잘하는군.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게. 세드린에게 날 토벌해달라고 부탁받았겠지?”
“당신이 세드린 혈족의 시체들을 지니고 있으니 당연하지요. 그녀는 당신이 저들의 시체를 얻기 위해 혈족을 해쳤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이야기로군. 하지만 오해해도 상관없네.”
그 순간 엘프 하인들의 모습이 일변했다.
생전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서 순식간에 피에 굶주린 악귀로 돌변했다. 이빨이 튀어나오고 새빨간 혀와 충혈된 눈, 날카로운 짐승의 손톱을 가진 흉물로 변이한 것이다.
달리아 또한 그렇게 변하였는데 바로 그것이 이들의 본질이었다.
와이트, 살아있는 이의 피와 생기에 굶주린 사령들이 바로 그들의 본질이었다.
“셰이드 해그들이 당신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지. 아자딘 경.”
“싸우려는 건가? 나야 좋지.”
아자딘은 아우렐리아 던을 뽑아 들었다.
검신이 불타오르며 금색의 빛을 뿜어내지만….
사방에서 농밀한 안개와 어둠이 갑자기 밀려 들어왔다.
저택 안이 어둠으로 뒤덮이고 와이트들과 소크 경의 귀화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자딘의 검이 뿜어내는 빛은 어둠에 휘감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큭?!”
셀림이 도끼를 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느새 흩어졌다 다시 모인 와이트들이 사방에서 입맛을 다시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렇게 습격하는 건 재미가 없겠지? 내 저택에 제 발로 찾아온 손님인데 숫자의 우위로 찍어 누르는 건 멋이 없는 것 같군. 내가 직접 상대해 주겠네.”
갑자기 어둠의 일부가 걷히며 소크 경이 아자딘의 앞으로 다가왔다.
“황제의 전령, 그리고 지혜의 플랑크의 마지막 서임을 받은 기사 아자딘.”
“그것도 알고 있었나?”
“셰이드 해그들이 나에게 말해주었지. 하… 대체 그대는 뭐가 다르기에 나와 달리 그런 영광을 얻었지?”
“…….”
놀랍게도 소크 경이 아자딘에게 보이는 감정은 질투였다.
그는 아자딘이 플랑크 경의 예언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질투하고 있었다.
‘내 삶이 누군가의 질투의 대상이 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즐거움보다 고통이 더 많은 삶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언데드에게는 그것조차 질투할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 보여주겠나. 운명의 기사의 힘을?”
“싫어도 보게 될 텐데?”
아자딘이 돌진해서 소크에게 검을 휘둘렀다.
전광석화 같은 일격이 소크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소크는 피하지 않고 아자딘에게 검을 맞찔러왔다.
검술이고 뭐고 간에 언데드인 소크와 아자딘이 서로 맞찌르게 되면 생신인 아자딘이 손해다.
‘음!’
아자딘이 상대한 괴물 중 가장 자신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자딘은 소크 경의 칼을 튕겨내며 그의 목을 노렸다.
-치이익!
아자딘의 발이 미끄러졌다.
‘이런….’
예상보다 소크 경의 힘이 강하다!
게다가 아자딘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다.
아자딘의 근력은 그 자신의 육체의 힘과 카자스 해서의 마력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어나는 결과.
그런데 이 어둠이 아자딘의 마력을 방해하고 있었다.
“놀랍군. 과연 운명의 기사야.”
소크 경은 자신의 갑주, 목받이에 명중한 아자딘의 칼이 남긴 흔적을 매만지며 감탄했다.
두꺼운 갑주에 아자딘의 칼이 살짝 겉에 흠집만 남겼을 뿐이다.
‘빌어먹을, 갑주가 엄청 튼튼하군. 아우렐리아 던은 날이 너무 물러.’
아주어스틸 장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세라마이트 장검은 칼날이 무르다. 평소의 아자딘이라면 아우엘리아 던으로 저 갑주를 파괴할 수 있겠지만, 사방에 깔린 어둠이 아자딘의 마력을 방해하는 지금은 좀 힘들다.
“자, 이게 전부인가? 더 보여주게. 아자딘. 황제의 전령이며 운명의 기사!”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는 건 그만두지! 소크 경!”
아자딘은 아우렐리아 던을 치켜들고 다시 뛰어들었다.
소크는 주문을 외우며 왼손을 땅으로 향했다 마치 공을 굴리듯 아자딘에게 휙 손을 올려 쳤다.
지면을 따라 뼈의 칼날이 형성되며 아자딘에게 달려든다.
아자딘은 그것을 뛰어넘으며 순간적으로 화조풍월 땅거미를 사용해 진입 각도를 바꾸었다.
-캉!
소크의 뒤에서 아자딘의 칼날이 그 목을 노렸지만 소크는 팔을 들어 아자딘의 공격을 받아냈다.
“훌륭한 재주지만 애석하….”
“불타라!”
아우렐리아 던이 눈부신 황금빛을 발하며 소크의 말을 끊었다.
화염이 순식간에 끓어올라 검날이 녹아내렸다. 액화된 불길이 소크 경의 팔을 타고 내려와 그의 몸을 통째로 강타했다.
뜨거운 납물과도 같은 금색 불길이 소크의 몸을 태운다.
“크아아아악!”
소크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공격하기 좋은 절호의 찬스! 그러나 아자딘의 아우렐리아 던은 칼날 부분이 액체 금속이 되어 소크의 몸을 태우는 중이다.
아자딘은 잽싸게 월각궁을 들어 활줄을 걸고 청강전을 재워서 소크의 머리, 심장, 그리고 공격의 힘의 중축이 되는 허리를 쏘았다.
청강전이 갑주를 뚫고 들어가 푹푹 박혔다.
“좋아. 아주어스틸은 잘 통하는군!”
아자딘은 아주어스틸 단도를 집어들고 소크 경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부하들이 얌전해?’
소크 경이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데도 와이트들이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이 정도는 소크경에게 위협이 아니라는 건가?
‘리치라고 했지? 분명히 생명을 다른 데에 감춰두고 있는 불사의 존재니 지금 공격으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육체가 부서지는 걸 반길 리도 없는데?’
아자딘은 소크를 경계하며 활줄에 아주어스틸 단도를 걸어서 활을 채며 쏘았다.
빠르게 날아간 아주어스틸 단도가 소크 경의 목에 꽂혔다.
그리고 뒤이어서 아자딘의 발차기가 아주어스틸 단도의 자루에 명중해 소크 경의 목을 뜯어냈다.
“크악!”
목이 잘려 나간 소크 경이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린다.
“크… 아하하하하하하.”
하지만 휘청거리던 소크 경의 몸이 갑자기 춤을 추듯 빙글 돌며 웃어대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