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76
275.세라마이트 5
‘이 인간 남자. 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지? 설마?’
세드린은 아자딘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실은 셀림이 추락해서 원치 않게 벌어진 사고였지만, 세드린으로서는 아자딘이 자신의 요청을 바로 들어주기 위해 무리한 일정을 감행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이유가 없다.
제정신 박힌 놈이 소크 경에게 이렇게 빨리 덤벼들 리가 없으니까.
결국 세드린의 생각은 단 하나로 귀결되었다.
이 인간, 나에게 호감이 있다. 그렇게밖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날 좋아하나? 아, 이거 곤란하네. 인간은 그 뭐냐? 노인네들 즐겨 먹는 고기 정도로만 봤는데.’
일족을 소크 경에게 잃은 후 와일드 드루이드로서 살면서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그녀였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제때 잘 씻지도 않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녀서 맨살이 드러나건 말건 신경 안 쓰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전에는 분명히 미녀로서 인간 남성들의 다양한 호의를 받던 몸이었다.
‘그런데 고기치곤 굉장히 예쁘게 생겼는데? 대체 우리 할아버지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인간을 잡아먹었담? 잡아먹기엔 너무 귀엽고 예쁜 거 아냐?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몇 살이지? 아무리 봐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네가 나에게 호감을 보인다고 해도 내가 그렇게 쉽게 호락호락 내주긴, 아, 아니 그런데 소크 경을 무찌르면 내가 충성하기로 약속했잖아? 나는 가신이 되겠다는 뜻이었는데 설마 그쪽으로 해석하는 거 아냐?’
세드린은 아자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의문을 풀기 전에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소크 경이 비아르 늪지를 빠져나와 여기까지 추격해 온 것이다.
*********
소크 경은 검푸른 영기를 흘리고 있는 와이번에 올라탄 채로 검은 숲의 상공에 떠 있었다.
자신의 영역인 비아르 늪을 떠났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많이 약해진 모습이지만, 팔 하나를 잃은 니셀다, 피를 많이 흘려 기력을 잃은 셀림과 아자딘에게는 여전히 당해내지 못할 적이었다.
다만 검은 숲 안쪽으로 들어오면 세드린의 숲의 마법이 있기 때문에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상공에서 마법으로 숲 전역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자딘 경. 내 목소리가 들리겠지?”
“…….”
“이런 젠장.”
“숨소리도 내지 마.”
소크 경의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 겁에 질려 숨을 죽였다.
그러자 소크 경이 상공에서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안심하게. 그대의 대답으로 그대가 숨은 위치를 특정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간만에 즐거운 경험이었네. 아자딘 경. 이건 순수하게 내게 즐거움을 준 자네에 대한 찬사일세. 이런 즐거움을 준 상대를 그런 하잘것없는 속임수로 잡으려고 하면 벌 받을 일이지.”
모두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세드린도, 니셀다도 아자딘의 판단에 맡긴 것이다.
“왜 나에게 질투하지?”
“나도 한때는 정의로운 인물이 되고 싶었지. 이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 구난기사단에 들어섰는데, 그들이 나를 배신했지.”
“핌불 호드의 악명을 들어보면 기사단을 배신한 것은 당신 같은데?”
“하하하. 나는 소인배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정말 끔찍한 악이라네. 진정한 기사도의 꽃이 그대라면 기사단이야말로 반드시 타파해야 할 거대한 악이지. 그렇지 않은가? 자네가 지금껏 보아온 기사단은 어떤가?”
“확실히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지. 그러나 타파해야 할 정도로 악하지도 않았어. 적어도 언데드가 되고 다른 이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당신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아자딘 경. 천사의 피에 대해서 알고 있나? 기사단이 그걸로 무슨 짓을 했는지?”
“세라마이트를 제조하는 데 쓴다고 들었다만….”
“그래. 그렇긴 하지. 내가 바로 그 세라마이트 제조에 참여했던 마법사라네. 나는 천사의 피의 비밀을 알고 있지. 어떤가? 자네도 들어보지 않겠나?”
“…….”
소크 경이 천사의 피와 세라마이트를 언급하자 세드린과 셀림, 그리고 니셀다 까지 흠칫 놀랐다.
구난기사단의 기사들에게 세라마이트는 인정의 증거다.
세라마이트 장검을 가진다는 것은 구난기사단의 공헌자들에게만 허락된 영예. 그리고 그 제법은 구난기사단 최고의 기밀 사항이었다.
그런데 소크 경이 그걸 밝히다니.
“소문에 의하면… 세인트 말로리에는 삼위의 대천사를 포함해 인류를 위해 헌신하다 힘이 다한 천사들이 돌이 되었고, 그 천사의 석상은 목성의 힘이 강해질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기적을 행사한다던데. 세라마이트는 그 피눈물의 기적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지?”
아자딘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그리고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말해보았다.
구난기사단의 비밀, 천사의 피에 대해서는 전령일족들 조차 그렇게까지 밖에 모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세드린이나 니셀다를 돌아보니 그녀들 역시 고개를 끄덕여 아자딘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녀들도 천사의 피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알고 있던 모양이다.
“하하하. 그렇게 알려져 있겠지.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라네. 아자딘 경. 우리 잘나신 기사단은 가끔 벌어지는 기적보다는 자신들이 직접 기적을 통제하고 싶어 하거든. 무슨 뜻인지 알겠나?”
“설마 천사 석상을 깨부수기라도 하나?”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옆에 있던 셀림이 흠칫 놀랐다.
미노타우르스이긴 하지만 셀림 또한 호스피탈러. 그런 이에게 천사들의 석상을 파괴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불경한 짓이다.
“그래. 그들은 감히 천사의 석상을 훼손하고 있다네. 저주받은 못으로 천사의 석상을 깨서 피를 내고 있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이번에는 직접 천사들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과연 그 천사들은 뭐로 만들었을까?”
소크 경이 말하는 만들어진 천사들이라는 건 아마도 이즈밀라를 비롯한 셀레스티얼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그놈들은 용서할 수 없군!”
셀림이 참지 못하고 육성을 냈다.
세드린과 니셀다가 놀라서 고개를 가로젓고 입을 막는 시늉을 하자, 셀림도 화들짝 놀라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자딘 경. 알겠나? 기사단은 자네가 헌신할 가치가 없는 곳이야. 플랑크 경이 그대를 서임했다면 더더욱….”
아자딘은 소크 경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전령일족의 일원이면서 구난기사단에 들어선 것은 어린 시절, 아자딘을 지탱해 준 것이 바로 구난기사단의 믿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지고, 어른이 되고 난 후에 실제로 본 구난기사단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조직이었다.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던 헌신은 없고 뼈와 가죽만 남아서 지탱되는 관료제와 추악한 인간들의 야욕이 전부인 허울의 기사단.
그것만 해도 사실 절망할 것 같았다.
그런데 소크 경이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사실이겠지….’
아자딘은 소크 경의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
소크 경은 세라마이트를 만드는 과정을 함께 했던 대마법사다.
그가 하는 말이니 절대로 빈말이 아니다.
구난기사단이 천사들의 유체를 훼손해 세라마이트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
“자 그런 의미에서 나와 손을 잡는 건 어떤가? 아자딘 경. 나와 함께 기사단을 혁파하세나. 비록 언데드가 된 몸이지만 나야말로 진심으로 기사단의 장래를 걱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소크 경은 아자딘을 회유했다.
“…셰이드 해그들이 당신에게 날 잡아주면 보상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자네를 잡아다가 셰이드 해그에게 바쳤을 때의 보상은 꽤 좋지. 그러나 자네 그 자체만 한 보상은 아니라네. 살아있는 아자딘 경, 자네는 셰이드 해그들에게 받을 수 있는 보상보다 더 가치 있다네. 그래. 나는 그대를 높이 평가하는 바라네.”
소크 경은 그리 말하고 웃었다.
“셰이드 해그들과 손을 끊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네를 높이 평가한다네. 거, 옛말에 뜻이 있는 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산다고 하지 않았나. 이 정도면 나만큼 자네를 높이 평가하는 자도 없을 텐데.”
“그건 고맙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향후 계획은 있나?”
아자딘이 물어보자 소크 경은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었다.
“내 병력으로 세인트 말로리를 함락시킬 걸세. 지금 자네가 파이어글리프의 파이어가드 대장을 맡고 있지? 자네가 승인해 준다면 우리는 아무런 피해 없이 파이어 글리프를 내려가 기사단이 대책을 강구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세인트 말로리를 점령할 수 있다. 위대한 삼위의 대천사를 포함해 인류를 위해 헌신한 천사들에게 걸맞은 존중과 안식을 주고 타락한 기사들을 처리하고 그 후 자네가 기사단을 바로 세우게. 나는 언데드이니… 그 사명을 끝마치고 나면 죽어도 좋네. 자네가 맹세만 한다면, 내 생명의 근원을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사명을 다하면 날 죽이게.”
놀라운 제안이었다.
이제 겨우 수련기사에 불과한 아자딘에게 함께 구난기사단의 총본산을 점령하고 그 정점에 서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마저 내어주려고 하다니. 소크 경은 진심으로 구난기사단의 타락을 걷어내기 위해 이러는 것일까?
“하아….”
그 말을 들은 아자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봐 아자딘 경. 설마 할 건 아니지?”
셀림은 아자딘이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아니, 아자딘. 일단 저놈 생명의 근원부터 받아내. 그러면 소크를 죽일 수 있다. 소크만 죽여준다면 내 평생 그대에게 충성을 다하겠다. 아 그, 그러니까 신하로서의 충성 말이지.”
세드린은 혈족의 원수인 소크의 목숨을 죽일 수 있다는 말에 흥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