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78
277.북제의 야망 1
소크 경과의 분쟁은 기묘하게 끝이 났다.
끝이라기보다는 유예라고 불러야 좋으리라.
“하지만 대단하군.”
세드린은 아자딘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본래라면 내 일족을 해방시켜 주는 조건으로 충성하겠다고 했으니, 아직 충성할 때는 아니지만… 좋아. 아자딘. 당신만이 내 일족을 해방해 줄 수 있겠지.”
“그 말은….”
“오, 오해하지 마라. 나는 어디까지나 네 수하로서 충성하는 거지 딱히 그런 것까지는…. 알고 있어? 요새는 엘프들이 식인을 안 하긴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은 가축 같은 거야. 나는 늙은이들처럼 인간을 잡아먹진 않지만, 엘프 입장에서 인간은 뭐라고 해야 하나.”
“흠?”
아자딘은 왜 세드린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 세드린. 그렇다면 지금 즉시 동남바위 요새로 가서 브로험 경을 도와줄 수 있겠어? 가교 건설에 너의 마법으로 그리핀이나 히포그리프를 조종해서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음. 그래.”
“그러면 셀림. 우리는 파이어글리프로 돌아갈까?”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세드린이 멈춰 세웠다.
“잠깐만? 그게 전부야?”
“일단은?”
“아니 왜 셀림하고는 파이어글리프에서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나는….”
“그야 가교 건설에 그리핀을 쓰려면 동물을 잘 다루는 당신이 필요하니까?”
“아, 그렇지. 그렇군. 흠. 알겠어. 명분이 중요하지.”
세드린은 아자딘의 반응을 보고 뭔가 스스로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할까요? 아자딘 경.”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는 차드라 수녀원에서 수녀원장의 오른팔로 활동하고 있었다.
구난기사단의, 아니 전 세계의 유배지인 이곳 차드라 고원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삶은 너무나 가혹하다. 수녀원은 속세와 연을 끊어내는 것을 조건으로 여성들을 보호해 왔다.
이러한 수녀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근처를 넘보는 도적 떼와 불한당 무리가 들끓기에 수녀원은 자체적인 무력이 필요로 했다.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와 그녀가 속한 수녀원 자매단이 바로 그 수녀원의 무력이자 억제력이었다.
“팔은 괜찮은가?”
“솔직히 말해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물론 일반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처치할 수 있습니다만.”
“수녀원에 돌아가는 건?”
“실은 당신을 따라 파이어글리프에 가고 싶습니다. 아자딘 경.”
니셀다가 그리 말하자 세드린이 놀랐다.
“아니 설마? 잠깐. 니셀다. 무슨 뜻이지?”
“오해하지 마시길. 아자딘 경. 당신에게는 혈마법사가 한 명 부하로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버나드 말인가?”
“네. 만약 그가 반릉의 버나드라면 그는 제 아버지입니다.”
“…….”
“제 동행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동행 환영하지. 니셀다.”
“감사합니다. 아자딘 경.”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는 아자딘과의 동행을 결정했다.
*********
검은 숲에서 개인 정비를 하는 데 하루 정도 걸렸다. 목욕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식사하고 잠도 자고.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뒤에 아자딘은 셀림 경과 하프 뱀파이어 니셀다를 동행한 채 히포그리프를 타고 파이어글리프에 돌아왔다.
아자딘이 파이어글리프의 마구간 위에 내려서자 조사단장 파벨 경과 이즈밀라 경이 다가왔다.
“세상에… 히포그리프 아닙니까? 아자딘 경.”
조사단장 파벨 경은 무려 히포그리프를 타고 날아온 아자딘을 보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네. 셀림 경의 도움으로…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마중을 나오다니.”
“아, 아자딘 경. 구난기사단 본부에서 새로운 챕터마스터를 임명했소. 이제 조사단은 대행 업무를 이관하고 해산할 것이오.”
소크 경과 실랑이를 한 게 바로 어제의 일인데… 그사이에 새 챕터마스터가 임명된 모양이었다.
“벌써요? 새 챕터마스터는 누구입니까?”
“칼린츠 왕자요. 이미 파이어글리프 요새에 들어와 계셔서 현재 업무를 이관하고 있소.”
“칼린츠 왕자라면….”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북제의 아들, 칼린츠 왕자는 이전 챕터마스터였던 헥센마이어 경과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새 챕터마스터가 된단 말인가?
“설마 그가 기사단의 일원이었습니까?”
“아 최근 서임을 받았소. 하하. 실은 무려 내가 그에게 서임해 주었다오.”
“언제요?”
“바로 오늘 아침이오.”
“…….”
구난기사단의 호스피탈러는 본인이 미덕에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딱히 누군가의 서임이 없더라도 이미 성기사이다.
아자딘은 전령일족 출신으로 데스나이트가 되어버린 플랑크 경에게 서임을 받았으니 타인의 기사로서의 자격에 대해서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기사 서임을 받은 당일 바로 챕터마스터가 된다고요? 다들 뭐라고 안 합니까?”
“무, 물론 뭐라 하는 이들이 있네만,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임시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칼린츠 왕자는 그야말로 영웅호걸의 자질이 있다네. 자네도 보면 마음에 들 거네.”
조사단장은 자신이 유력한 기사의 서임자가 된다는 영광을 놓치기 싫었는지 적극적으로 칼린츠 왕자를 옹호했다. 왕자와 별로 인격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의 인품과 됨됨이를 찰나의 인상만으로 결정하고 옹호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기까지 했다.
“아자딘 경. 죄송합니다. 기사단 상층부에서는 당신이 너무 빨리 세력을 확장하는 걸 두려워해서 어떻게든 당신을 무력화하려고 애쓰더군요.”
“어허. 이즈밀라 경.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렇게 말하면….”
파벨 경이 아자딘의 세력확장을 경계하며 상부에 보고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되지 않는가?
하지만 사실 파벨 경이 말하지 않더라도 아자딘은 당연히 파벨 경을 의심하고 있었다.
‘뭐 상급자에 보고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
전령일족 출신의 갑자기 기사가 된 인물이 파이어글리프의 실권을 임시로 장악하자마자, 그간 차드라 고원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닌다는 세력을 차례대로 격파하고 굴복시켰다. 그것을 보고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 그게 오히려 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짓이리라.
‘하지만 파벨 경은 너무 무능하고 무욕하군. 보통 자기 직급 이상의 높은 관할구역의 대행직을 맡게 되면 이 기회에 자신의 실력이나 역량을 보여서 공로를 쌓아두길 원할 텐데.’
아자딘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어흠. 험… 험험. 아자딘 경 오셨습니까?”
칼린츠 왕자의 심복이자 북방 아라가사의 십부장 잔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왕자님, 아니 이제는 칼린츠 경이라고 해야겠지요. 챕터마스터 칼린츠 경께서 아자딘 경을 뵙고자 하십니다. 구난기사단의 일원으로서 검소함을 실천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전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연회를 개최하려 하니 그때 꼭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란다고 하십니다.”
“연회라. 알겠다. 꼭 간다고 전해주게.”
“네. 아자딘 경.”
잔은 넉살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
“호스피탈러가 연회라니….”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구난기사는 성실과 검소함이 기본이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정작 그걸 지키는 이는 없는 모양이다.
“그럼 연회에서 봅세. 나도 그때 나오도록 하지.”
파벨 경은 그리 말하고 아자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자딘 경, 그간 수고 많았네. 상부에도 자네의 칭찬을 내 많이 해뒀어.”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과연 상부에서 파벨 경의 칭찬을 순수한 칭찬으로 보았을지, 아니면 위협으로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일 확률이 높으리라.
무서운 속도로 차드라 오걸을 굴복시키고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그 모습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테니까.
“아자딘 경.”
이즈밀라는 파벨 경이 떠나는데도 남아서 아자딘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즈밀라 경. 건강은 좀 어떻지?”
“워낙 튼튼하게 태어난 덕분에 걱정은 없습니다. 다 아자딘 경의 덕분이지요. 걱정해 주셨나요?”
“물론.”
“그렇다면 기쁘군요.”
이즈밀라는 미소를 지었다.
“조사단이 해체되면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세인트 말로리로 돌아가나?”
“순례단에서의 사건 때문에 제 경험 부족이 문제 시 되고 있습니다.”
이즈밀라는 기사단이 모종의 수단으로 태어난 셀레스티얼이기에 천사의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수상한 놈들에게 납치당하는 수모까지 겪었으니, 내부에서도 그녀에게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으리라.
“어디서 경험을 쌓게 한다는 거지?”
“아마도 새로운 내부 조직을 만들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안에는 제 형제자매들로 채워지겠지요.”
“설마 전부 셀레스티얼로 이뤄진 부대를 창설한단 말인가?”
“네. 그곳에 배속될 것 같습니다.”
“흐음. 이론상으로는 괜찮다만. 지혜, 용기, 자비 중 어느 교단이 통솔하는 거지?”
“내부에서 따로 단장을 뽑고, 독립부대로 운영할 예정인 것 같아요.”
“다들 이즈밀라 당신처럼 용모 수려하고 천사의 위엄을 갖추고 있나?”
“…그런. 과찬이세요.”
이즈밀라는 자신 앞에서 대놓고 용모와 재기를 말하는 아자딘의 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아자딘의 표정은 칭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민중은 셀레스티얼을 숭배할 거야. 천상의 존재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들을 모아둔다면, 그 위상은 절로 드높아지겠지. 그러면 기존 구난기사단의 조직들의 위상이 추락하겠군. 게다가 셀레스티얼의 존재 자체에 의지하는 건 구난기사단의 이념을 오히려 약화하는 게 아닐까?”
“네?”
“천사의 핏줄이 아니라 천사와 나눈 언약이야말로 구난기사단이 지켜야 할 본질인데, 대중들은 셀레스티얼의 아름다운 용모와 힘에 열광하겠군.”
“…….”
“미안하군. 이즈밀라 경.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지금까지 늘 배워 온 구난기사단의 교리를 설마 당신의 입에서 들을 줄은 몰랐어요.”
“내가 전령일족이라서?”
“아니요. 그렇군요. 지금까지 우리는 교리를 배워왔지만, 교리를 믿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서요. 당신은 정녕 믿음을 가지고 있군요.”
이즈밀라는 아자딘에게서 믿음을 보았다. 구난기사단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평생을 그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이를 보는 것은 너무나 생경해서 눈이 부셨다.
설마 전령일족이라는 아자딘에게서 이렇게 순수한 믿음을 보게 될 줄이야.
정작 아자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뭘 새삼스럽게. 그럼 이즈밀라 경. 무슨 일 있으면 파이어글리프에 편지를 보내줘. 그걸로 추후 연락하도록 하지.”
“네? 아… 네.”
아자딘은 이즈밀라가 속하게 될 셀레스티얼들로 이뤄진 부대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한 말이지만, 이즈밀라는 아자딘의 말에 당황했다.
‘나, 남녀가 편지를 주고받으면 그건 결혼할 사이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