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0
279.북제의 야망 3
“아니, 이게 누구야? 아자딘 경이 아니신가!?”
아자딘과 젝트 경의 사이로 칼린츠 왕자가 끼어들었다.
북방인 특유의 호탕한 거구의 남자이면서도 머리칼은 은발, 야에가스 신족의 특징이 꽤 강하게 발현된 인물이었다.
미노타우르스인 셀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인지 의심 가는 사자갈기 머리를 한 이 남자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아자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굉장한 미남이로군. 인물이 훤한데. 자네가 작업한 일들은 잘 보았어. 정말 유능하더군. 차드라 오걸을 차례차례 격파하다니.”
“격파라니 그들의 명예에 누를 끼칠 것 같군요. 저는 보고서에 설득과 양해를 구함이라고 했습니다만. 그리고 소크 경에게는 오히려 죽을 뻔했지요.”
“그런 것 치고는 얼굴 혈색이 좋은데? 핌불 호드의 두목과 만나서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전설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자자. 뭣들 하나? 어서 연회를 즐기라고.”
“그보다 새 챕터마스터시지요. 어째서 이 자리에 왕의 교회의 기사들이 있는 겁니까?”
아자딘은 대놓고 물어보았다.
“이들은 챕터마스터인 내 권한으로 고문으로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거네. 알다시피 우리 부왕, 코헨 라이오네어께서는 통합의 의지를 드높이고 계시거든. 구난기사단도 왕의 교회도 다 같이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인류를 수호하고자 하는 데 서로서로 다툴 필요 없잖아?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화합의 장으로 삼고 싶군.”
“유흥가에서 화합의 장이라니 너무 감동적이라서 눈물이 다 날 것 같군요.”
아자딘이 빈정거려도 칼린츠 왕자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의 표정은 구겨졌다.
“아자딘 경, 최근 명성이 드높다 들었습니다. 성기사로서 온갖 궂은일을 해내고 위엄이 드높다고요.”
젝트는 미소를 지으며 아자딘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말했다.
“그런데 신왕진서 사본은 어쨌습니까? 그리고 제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당신에게서 신왕진서의 마력이 느껴지는데요.”
젝트는 아자딘이 성기사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신왕진서의 힘을 훔쳐서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신왕진서와 구난기사단의 기적은 문외한이 보면 둘 다 똑같은 백색 마력의 마법일 뿐….
그러니 젝트가 그렇게 의심하는 건 왕의 교회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인 것이다.
“저도 몰랐는데 부끄럽게도 제 몸에는 황제의 피가 옅게나마 흐르고 있더군요.”
아자딘이 그렇게 대꾸하자 평소에도 눈을 가늘게 실눈으로 뜨고 다니던 젝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웃기지 마라. 영혼없는 불경자. 네가 신왕진서 사본을 챙기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감히 네놈이 야에가스 신족의 혈통이라고?”
“나도 이게 빈말이면 좋겠는데 내 보라색 눈은 전령일족 사이에서 하르코니아의 눈이라고 불린다. 황제의 연인이던 하르코니아의 혈통이라는 뜻이지.”
“…….”
왕의 교회는 신왕의 혈통을 귀하게 여기니 아자딘은 젝트 앞에서 자신이 황제의 핏줄, 비록 왕의 교회에선 이단시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혈통임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젝트는 왕족 출신의 왕의 교회 성기사이니 아자딘이 황제의 혈통이라고 해서 꿀릴 것 없다.
다만 아자딘이 야에가스 신족의 혈통이라고 주장하면 그를 수색할 명분이 없어진다.
“신왕진서는….”
“내가 모은 건 전부 브투마의 왕좌에 돌려놓았다.”
“그걸 날 보고 믿으라는 건가?”
“믿지 않는다면 대화를 나눌 이유도 없지. 좋을 대로 생각하면 되잖아?”
“……….”
“그보다 이단심문관 씩이나 되는 인간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 거지? 흑마법을 너무 써대서 좌천이라도 당했나?”
아자딘이 빈정거리자 젝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제가 흥분했군요. 인정합니다. 아자딘 경.”
젝트의 핏발선 눈이 다시 평소의 실눈으로 돌아갔다.
놀랍게도 그는 방금까지 보인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칼린츠 왕자가 화합의 장이라고 말한 곳에서 아자딘과 싸울 수는 없을 테니 당연한 선택이지만, 그 당연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자리에서는 칼린츠 왕자를 봐서 참겠습니다만 아자딘 경. 제가 이곳 파이어글리프의 치안 고문으로 온 이상,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아 그거참 웃기는 일이로군. 왕의 교회의 최상위 이단심문관인 당신이 유배지나 다름없는 이곳의 고문이 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격이 안 맞는데 괜찮은 건가? 진짜 좌천당한 거 아냐?”
“……….”
아자딘의 질문에 젝트의 입이 다물어졌다.
아자딘이 말한 대로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은 전체 교단에서 16명 밖에 없는 고위 성기사.
그에 비해 파이어가드의 대장은 도시 경비대장 급으로 격이 떨어진다.
“뭐, 일단 이것만으로도 재밌는 일이 벌어진 거는 맞네. 그럼 대체 왜 이단심문관이나 되는 인물이 이런 수모를 자처했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데?”
“왜일 것 같나?”
잠자코 아자딘과 젝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칼린츠 왕자가 끼어들었다.
“…셀레스티얼 때문에? 정확히는 셀레스티얼 때문에 구난기사단에서 위기감을 느낀 조직이 끌어들인 거겠지. 용기 교단인가?”
“호오…”
칼린츠 왕자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
구난기사단은 세 가지 미덕의 기사단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성직자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집단은 바로 지혜의 기사단.
천사의 피로 세라마이트를 만들어 내고, 각종 마법을 연구하며 심지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키기까지 한 곳이다.
셀레스티얼만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편성하고 그들을 대중 앞에 공개한다면 그 부대에 대한 실권은 지혜 기사단이 쥘 게 분명하니….
다른 기사단은 왕의 교회와 협력하더라도 지혜 기사단의 독주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특히 북제와 손을 잡고 있던 용기 교단이 주도했음이 분명했다.
“이거 참 놀랍군. ”
칼린츠 왕자는 아자딘이 그 내막을 단번에 통찰했다는 걸 알아채고 감탄했다.
구난기사단에 오랫동안 헌신해 온 성직자들과 고위 기사들조차 얼떨떨해하는 것을 이 전령일족은 기사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꿰뚫어 본 것이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게 말이지. 우리 부왕, 북제께서는 야에가스의 왕족이기도 하시니까. 궁극적으로는 왕의 교회와 구난기사단을 통합하고 싶어 하신단 말이지.”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의 야망.
그것은 구난기사단과 왕의 교회 모두를 통합해 자신의 휘하에 두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구난기사단과 왕의 교회, 그리고 여덟 왕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 스스로 온전한 휘브리스의 통합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통합은 이제 곧 이루어질 것이고, 모든 것이 부왕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만족스러운가 왕자님은? ”
아자딘은 그걸 물어보았다.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는 만족스럽겠지. 구난기사단과 왕의 교회 모두를 통합시키고 북부연맹의 맹주로서 황제 이상 가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 아들인 칼린츠는 어떤가?
칼린츠는 즐거운 당혹감을 느꼈다.
그를 상대하는 이들은 다들 그 너머의 북제를 볼 뿐, 칼린츠 자신의 욕망과 야심에 집중하는 이들이 없었다.
왕의 아들에게 개인적인 야욕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자딘은 북제 코헨 라이오네어의 뜻이 아니라, 칼린츠 왕자의 뜻을 물어보고 있었다.
“…아 그건 음. 좀 지금 대답하기 곤란한 이야기로군. 우리 서로 더 친해지고 난 뒤에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마침 술도 있으니 여기서 친해져 보는 건 어떻겠나?”
“아니 나는 다음 약속이 있어서. 그럼 화합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아자딘은 젝트와 칼린츠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리를 떠났다.
*********
아자딘의 발걸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일족들에게 핍박받을 때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가르침에 구원받았다.
미덕을 지키고 수호하는 것으로, 선량하고 정의로운 가치를 숭상하며 피부색과 종족이 달라도 형제가 되어 함께 교감하는 것.
지금 당장 가혹한 학대와 구타와 경멸이 쏟아지더라도 이 세상은 네가 보지 않은 곳에 여전히 아름다움이 있고 사랑스럽다.
구난기사단의 가르침은 아자딘에게 있어 구원이었고, 약속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기사단에 접하게 되었을 때.
미덕은 자취를 감추고 음습한 정치공작과 협잡이 판치는 시장바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아자딘도 더는 그때의 소년이 아니기에 이럴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우습군. 두들겨 맞으며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우던 아이가, 그 와중에 책 몇 권에서 주장하는 아름다움이 현실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니.’
아자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이 불쌍했다.
그리고 그 시절엔 믿었던 것을 지금은 믿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불쌍했다.
“아, 아자딘 대장이군.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런 곳에서?”
“누나. 이런 데서 아는 체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
아자딘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도적 카밀라와 그 동생 쿤타치가 길거리의 테이블에 앉아서 아자딘을 부르고 있었다.
“식사 중인가?”
“그래. 적당히 술도 마시고. 왜 그렇게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어?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었어?”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
“그럼 같이 마실까? 기대할 것도 없는 녀석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기보다는 차라리 나랑 노는 게 어때?”
그녀는 자신의 테이블 옆자리를 가리켰다.
아자딘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 기대할 것도 없는 녀석들에게 상처받느니 여기서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시골이잖아. 뭘 기대한 거야?”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인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카밀라는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녀가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굳이 그녀의 오해를 고쳐잡지 않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어? 이야기를 해봐. 대장. 언제나 당신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덜컥 결정을 내려버리더라고.”
“그건 미안하군.”
“알면 이야기해 봐. 앞으로 뭘 하려고 동남 바위 요새에 가교를 건설한 거야?”
“교역, 이곳의 사람들에게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그리고, 우리가 거래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흠.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여기 사람들은 죄인이야. 그런 놈들에게 더 나은 생활이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당장 차샨만 하더라도 그놈이 마약 팔면서 죽이고 폐인으로 만든 놈이 엄청나게 많은걸. 살려둘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는 놈들에게 살기 좋은 길을 만들어 주겠다니.”
“물론, 심판해야 할 순간이 오면 심판한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증오하고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자비가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너무 가혹하니까.”
카밀라도 그제야 아자딘이 그저 단순히 유흥가를 배회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어. 카밀라.”
아자딘은 고독했다.
일족 내에서 그는 따돌림받는 존재였고 그에게 애정을 준 자는 알디스와 카자스, 그보다 윗연배의 동정과 배려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이야기를, 미덕을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왔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위로를 얻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철인이거나 미덕이 빼어난 자가 아니더라도 그저 가슴속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위로가 되는 것인데….
아자딘은 그걸 몰랐다.
입으로는 인간을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가슴으로는 왜 인간이 아름다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기사들조차 믿음을 지니지 못하지. 내가 그들을 보고 실망할 처지가 아니었구나.’
아자딘은 자신이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하염없이 무지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자각했다.
“고마워. 카밀라. 너는 아름답구나.”
무심코 아자딘은 그렇게 말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