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1
280.내부 단속 1
“…….”
카밀라는 갑작스러운 아자딘의 말에 당황했다.
“곤란한데. 남동생이랑 함께 나왔는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바라보면.”
“…누나.”
“아, 아니, 쿤타치. 괜찮아. 별일 아니야.”
“아니 누나 그런 게 아니라. 저기 봐봐!”
“응?”
아자딘은 그녀의 옆, 골목길을 보고 있었다.
파이어글리프의 시내에서 구걸하고 있던 걸인 한 명이 몸을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술에 취한 모습일까?
그러나 술에 취한 취객의 몸은 그의 의지를 술기운이 방해하는 것.
하지만 지금 이자는 고통의 채찍질에 내몰려 몸을 비틀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은 얼굴 근육이 피부를 찢을 듯하고, 뒤틀린 몸은 보는 자들마저 덩달아 괴롭게 했다.
“아… 으아아아!”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가 흘리는 핏물은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얼어붙으며 마치 종유석처럼 바닥에 자라났다.
“무슨?!”
아자딘이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지만 차마 그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걸인의 몸에서 피와 얼음이 쏟아져나와 골목을 덮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차가운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무슨?”
“엘리멘탈 웨일링이야! 하지만….”
카밀라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렇게 빨리 발병하고 터지는 질병이 아닌데!?”
*********
전령일족, 황제의 전령은 왕후장상을 베어내기 위해 벼린 검이었다.
그 말인즉 왕후장상의 잘못과 그들의 부재가 불러일으킬 정치적 파문을 이해할 최소한의 식견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아라가사들은 선천적으로 다들 뛰어난 공간감각과 완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자딘은 예외지만.
그래서 10살만 되면 성인들이나 다룰 법한 활에 시위를 걸고 화살을 쏘면 곧잘 첫째 화살을 둘째 화살로 맞추곤 한다.
아자딘은 예외지만.
하지만 지식과 경험만은 교육으로 때려 박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령일족은 독자적인 비법으로 아이들을 훈련시켰다.
오대 가문의 일원이 아닌 아이가 식견이 부족하면 처맞거나 굶는다.
오대 가문의 일원이라면 마법사들이 달라붙어서 정신고양과 집중마법을 걸고 교육해서 단기간에 식견과 학문을 터득하게 만든다.
아자딘은 예외였다.
오대 가문의 태생이 아니지만 운 좋게 카자스 장로의 눈에 띄었기에 오대 가문 못지않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오대 가문의 일원이 아닌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동일하게 받았다.
정신고양과 집중마법을 받고 성과가 안 나오면 체벌을 받았던 것이다.
‘재능이 없어도 괜찮다. 때려 박으면 다 되거든. 버티지 못하는 놈은 죽으니까.’
스승 카자스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추리란 결국 넘겨짚기다.
재료가 없을 때 무작정 추리하고 넘겨짚으면 그것은 편견이 되고 아집이 된다.
목숨 걸고 다니는 황제의 전령에게는, 아니 그냥 이 휘브리스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편견과 아집은 때로는 목숨을 위협하는 독이 되곤 했다.
재료가 없을 때는 없다고 무작정 찍지 말고 충분한 자료와 판단의 근거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다만 기사단은 믿을 수 없었다.
차드라 고원에서 오걸이라는 걸물들을 차례차례 격파하고 (소크 경에게는 역으로 당했지만 살아 돌아왔으니 논외로 치자.) 명성을 드높이긴 했지만 애초에 차드라 고원은 기사단의 덮어둔 솥뚜껑이다.
보기 역겨운 것들을 치워둔 유배지였고 거기서 아자딘은 수련기사에 불과했다.
하물며 전령일족 출신이니 기사단의 핵심 고급 정보를 줄 리 없다.
그러나 이곳에 아주 훌륭한 정보상이 있지 않은가?
*********
“그래서. 이 야심한 밤에 처자가 자는 침실에 쳐들어왔다고?”
눈앞의 여성은 짜증을 내며 램프에 불을 밝혔다.
얇은 가운 한 벌 차림의 여성의 주위에는 그녀의 경호원들, 그리고 도플갱어들이 쓰러져있었다.
“…도플갱어는 쓰러질 때 변신이 풀리는군. 죽이지 않고 기절시킨 건데 처음 알았다. 어쨌건 경호원도 있고, 도플갱어도 있는데 처자 혼자 자는 침실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아?”
아자딘은 반다이크 상회의 파이어글리프 지부장 딜리아의 침실에 들어와 있었다.
“네놈에겐 상식이라는 게 좀 있어야겠군. 아자딘. 네놈의 말이 옳다고 하면 나는 경호원들과 도플갱어들과 자는 여자가 되잖아? 졸지에 문란한 여자가 되는데?”
“…자신을 포지션 하는 건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렸지. 하지만 내 견해를 말하자면 딜리아 당신은 그렇게 문란하지는 않은 것 같아.”
“아니, 헛소리하지 말고. 이번에는 또 왜 왔어?”
“일족의 정보가 필요해. 지금 일족들은 알고 있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치미 떼지 말고, 세상의 정보 말야. 코라사르, 브투마, 타라사르 등의 정보.”
전령일족에게는 황제의 목소리라는 인공정령이 있었다.
이것은 전령들에게 들러붙어서 이야기하고 작은 쥐나 새, 생명체들을 조종해서 육성을 전하고 주위를 정찰하기도 하면서 여러 편의를 돌봐주는 존재였다.
또한 황제의 금화 계약의 주관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존재가 있으면 부수적으로 이득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휘브리스 대륙 전역의 정보를 매우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황제의 목소리를 통해서 아무리 먼 거리에서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령일족들은 그 정보를 이용해 어디에서 가뭄이 들면 누구보다도 먼저 식량을 사들이고, 병이 나면 약을, 불이 나면 텐트를 사들이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단지 사소한 이익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업, 대업에도 아주 유용했었다.
“황제의 목소리는 사라졌어. 이제 우리도 편지와 파발로 통신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날 바보 취급하지 마. 딜리아. 원로원이 황제를 등질 각오를 했을 때부터 그들은 황제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의 대비를 했을 거야. 지금 반다이크 상회가 잘 굴러가는 것부터가 그 증거 아닌가?”
사실 이건 아자딘이 빼어난 추리를 발휘한 것은 아니다.
그냥 반다이크 상회가 너무 잘 굴러갔다.
아자딘이 반다이크 상회를 휘저은 날, 본래 일반적인 상회라면 여기저기 파발을 보내고 담당자 오가면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그런데 평소처럼 간결하게 업무가 돌아가고 있었다.
‘황제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정보를 전달할 도구가 있다.’
그렇게 말하고 다닌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반다이크 상회를 휘젓고 도플갱어들 여럿을 골로 보낸 아자딘이 보기에는 너무나 명확한 일이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우리 일족의 꿈을 배신하고 모두를 배신한 네놈을 어째서 내가 도와줘야 하지? 너는 파문당했어. 아자딘. 더 이상 우리 아라가사가 아니다.”
“원로원은 날 증오할지도 모르지. 아니, 너 역시 나를 증오할 거다. 딜리아. 그러나 증오하고 말고를 떠나서 너에게는 내가 필요해.”
“무슨….”
“파이어가드들의 가드마스터로 젝트 경이 임명되었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딜리아. 네가 이곳 파이어글리프에서 살아가려면 앞으로도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날 협박하는 거야? 내 정체를 왕의 교회에 팔아넘기겠다고?”
“그런 뜻에서 말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이해해도 상관없지. 하지만 딜리아. 내가 말하는 위협은 왕의 교회가 아니야. 그보다 더 너머의 일이다.”
“뭘 말하는 거야?”
“내가 물어보는 것이 바로 내 질문의 답이야.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아자딘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미 세계 각지에서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젝트 경이 이곳에 찾아와 굳이 구난기사단의 고문 역을 자처한 것은 자존심 강한 왕의 교회가 서로의 격조차 맞추지 못할 만큼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기랄. 일족의 배신자 주제에….”
딜리아는 너무 화가 나서 이를 갈았지만, 아자딘이 말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왕의 교회가 그 높은 콧대를 꺾어야 했던 이유가 딜리아에게도 공포를 안겨주었다.
“왕의 교회가 괜히 지금에 와서 구난기사단과 손을 잡은 게 아니야. 엘리멘탈 웨일링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리고 브투마와 코라사르가 나가들에게 함락당하고, 왕좌를 수복했던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들이 살해당했다.”
“그게 끝인가?”
“그것만이 아니야. 보고에 의하면 남쪽 바다가 얼어붙었어.”
“남쪽 바다?”
“네더스트롬이 있는 안다즈 내해에서 거대한 빙산이 떠내려온다고 하더군.”
안다즈 내해 연안은 아열대 바다로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를 가진 곳이었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은커녕 평생 눈도 보기 힘든 곳인데 바다가 얼어붙고 빙산이 떠다니다니?
딜리아는 전령일족들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정보를 전해주며 눈살을 찌푸렸다.
통상적인 정보유통 수단으로는 몇 달은 걸릴 이야기다.
물론 왕의 교회나 구난기사단도 정보 전달 수단이 있어서 그런 정보를 빨리 전달할 수는 있었지만, 민감한 정보일수록 일반인과 하급자들에게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왕의 교회가 왜 구난기사단에 왔나 했더니만….”
“그래. 왕의 교회도 자신들만으론 브투마와 코라사르를 수복할 수 없다고 여기고 철수한 거야. 한때 우리 일족의 땅이 될 수 있었던 곳인데 네가 망쳤어.”
“그런 걸 보면 원로원도 현재로서는 방향을 못 잡고 있나 보군. 나가들과의 동맹은 끊어졌나?”
“네가 동맹의 구심점이던 두령님을 죽였잖아? 게다가 일족이 열심히 모았던 신왕진서 사본까지 소모했지. 하티르 님도, 아라엘 님도, 전부 죽게 만든 네가 참을 수 없이 밉단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딜리아는 손을 떨고 있었다.
그녀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증유의 위협이 세계를 급습한다.
두렵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