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5
284.핌불베르트 1
아자딘는 차샨 일당을 묶어두고, 그들의 숨겨둔 자산을 드디어 완전히 몰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마약상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재화를 모아뒀는지 빼앗은 자금이 너무 많아서 수레로 금화와 은화를 실어 날라야 할 판이다.
하지만 아자딘은 자금을 빼앗은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자, 본론부터 말하지. 반릉 아카데미에서 관리하는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와 연락을 취하고 싶은데.”
“미쳤나?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는 반릉 아카데미의 재산이다. 반릉 왕은 야에가스 신족이지만, 반릉 아카데미는 드워프들의 것, 우리는 왕의 명령보다 아카데미를 우선한단 말이다.”
“아, 내 말이 부드러워서 부탁으로 오해한 것 같군. 우선 산뜻하게 수염부터 밀어볼까?”
아자딘이 손짓하자 그의 부하가 면도칼을 가져왔다.
“드워프의 수염을 깎는다는 관용구가 있긴 한데 실제로 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야! 이 자식아!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하였거늘! 야만스러운 인간 놈들! 우리 부모님이 주신 귀한 수염을 해칠 셈이냐? 차라리 날 죽여라!”
“마약상 놈이 그런 말을 하나? 자기 신체 소중하다는 놈이 남들 신체는 왜 신경 안 썼대?”
“그야 드워프 아닌 다른 놈들의 부모 따위 알게 뭐냐? 내 직접 그놈들의 부모도 죽여버릴 수 있는데. 그놈들 부모에게 받은 신체가 마약에 망가지건 말건 그놈들의 선택이지!”
차샨을 비롯한 이 드워프 소서러들은 다른 종족 따위 알 바 없다는 듯 비웃었다.
“음, 너희들 상당히 짜증 난다. 면도로 산뜻해지면 좀 보기 좋아질 것 같군.”
“큭! 아, 알겠다! 엘리멘탈 웨일링 환자들을 찾고 싶다는 거지?”
“알고 있나?”
“나는 몰라! 하지만 드워븐 애로우에 아직 내 영향력이 있으니까, 그들을 통해서 조사할 수 있을 거다! 내 수염을 깎아버리면 그건 다 끝장이니까! 수염 없는 드워프의 말 따윈 듣지 않을 거란 말야! 네놈의 목적을 위해서도 내 수염 건드리지 마!”
차샨은 면도칼의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다.
싸우다 패배하거나 포로로 잡히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수염을 깎인다는 것은 드워프들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수치다.
만약 아자딘이 차샨의 수염을 밀었다면 차샨은 자살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좋아. 이렇게 해서 자금도 확보하고, 엘리멘탈 웨일링에 대한 실마리도 마련했군.”
조직을 이탈하겠다고 하던 자코모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그의 투정까지 들어주겠다고 한 아자딘에 대해서 아자딘의 동맹, 모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 문제를 너무 빠르게 해결해 버렸다.
“얼마 걸렸지?”
“…하루군요.”
니셀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 자비는 강자의 권리로군요. 다른 이들은 아자딘 경 당신처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비를 베풀 수 없습니다. 베풀었다가 배신당하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으니까요.”
“화났어? 베풀 가치가 없는 자비를 베풀었다고?”
“천만에요. 오히려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와 제 아버지에게는 사적인 문제가 있는데, 자코모의 일도 해결해 주시는 아자딘 경을 보면서 저희는 오히려 기뻐하고 있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무섭게. 대체 뭘 시키려고?”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니셀다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자딘이 손을 들었다.
하늘에서 얼음조각이 떨어진다.
“우박인가?”
여름에 우박이 떨어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투둑… 투두두….
우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이런!”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의 얼음조각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투구를 쓴 이들이라도 정신이 없을 판이고 갑옷을 챙겨입지 않은 이들은 쓰러질 지경이었다.
다들 일단 차샨의 요새에 숨어들어서 쏟아지는 우박을 피했는데….
“어?”
잠시 후 우박들 사이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에 눈이?”
모두 그 모습을 보며 기겁했다.
*********
차드라 고원에 눈이 내렸다.
차드라 고원지대는 여름에도 다른 곳에 비해 시원한 곳이며 높은 봉우리에는 여름에도 눈이 오곤 했었다.
하지만 저지대의 한낮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다행히 쌓이지는 않고 있지만,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서 모두가 당혹스러워했다.
아자딘은 우박으로 쑥대밭이 된 농장들의 피해 상황을 살펴보았다.
여기저기서 갑작스러운 우박 때문에 피해가 많이 발생한 상태였다.
농작물들이 우박에 맞아 드러누운 것은 물론, 건물들도 우박에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사람도 다치고 죽은 이들이 많았다.
“부락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상황 점검하고, 지붕 보강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아자딘은 이 우박이 한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파이어글리프로 향했다.
파이어글리프도 쑥대밭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 와중에 반다이크 상회의 직원들이 시장에 나돌고 있는 곡물들을 사들이는 게 보였다.
우박피해에서 집을 보강하기 위한 자재와 부상자를 위한 약을 팔면서 대신 시장의 곡물들, 식량들을 매집하는 것이다.
‘이것들이… 알고 있었군?’
아자딘은 즉시 반다이크 상회로 향했다.
“윽. 아자딘.”
반다이크 상회의 지부장, 딜리아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식량 사재기를 하고 있군?”
“딱히 오늘만 한 거 아니야. 꾸준히 사모으고 있었어. 그리고 원래부터 구난기사단령에서 식량을 사지 뭘 사가겠어?”
“그래도 수확 철도 아닌데 사재기하는 건 이상하잖아? 뭔가 지시가 있었나?”
“브투마와 코라사르가 드디어 망해버렸거든. 거기서 나오는 난민들이 엄청나서 왕의 교회가 구난기사단에게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야. 젝트 경이 여기에 온 것도 그런 이유야.”
“젝트 경이 왜 여기에 왔나 했더니만 이미… 다른 곳은 난리가 났었군.”
왕의 교회에서 성기사들의 정점이라 할 이단심문관이 왜 차드라 고원 같은 오지에 왔나 했더니만 이미 다들 식량 부족을 예상하고 휘브리스 대륙 제일의 곡창지대인 구난기사단의 영지에 몰려온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족은 북제와 왕의 교회 간에 구난기사단의 영토를 빼앗기 위한 모종의 협약이 있을 거로 추정하고 있어.”
“증거는?”
“없으니까 추정이지. 어때? 아자딘? 당신이 조사하는 건? 당신은 왕의 교회를 싫어하잖아?”
“싫어하지 않는데?”
“뭐?”
“왕의 교회 성기사인 친구도 있다고.”
“지벡 경 말이지? 그 신왕살해자로 유명한.”
“…신왕살해자?”
아자딘은 익숙한 호칭에 깜짝 놀랐다.
보통 신왕살해자라면 전령일족들에게 붙는 칭호다.
그런데 왜 지벡 경에게 그런 이름이 붙었단 말인가?
“음? 내가 말 안 했던가? 잠깐만.”
딜리아는 잠시 사무실에 들어가서 뭔가를 뒤적이더니만 수배서를 꺼내왔다.
“이거 맞지?”
“어?”
아자딘은 그 수배서를 보고 흠칫 놀랐다.
지벡 경의 수배서였다.
죄목은 놀랍게도 왕족 살해, 그것도 브투마의 황금왕 만자-자덱의 아들인 다르한-자덱을 살해했다고 되어있었다.
“이건?!”
“왕의 교회의 수배서야. 아직 정상적인 루트로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보군.”
“다르한-자덱이 죽었다고?”
황금왕 만자-자덱의 아들이며 브투마 북방 요새에서 쿠르트 신족의 권속들과 싸우며 명성을 드높이던 인물, 다르한-자덱이 지벡 경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수배서엔 적혀있었다.
“그래. 덕분에 브투마 군은 와해되고 왕국은 거의 멸망… 난민들이 탈주하고 있다. 식량값이 폭등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렇군.”
아자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명이군.”
“정말 지벡이라는 그 성기사가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면 애초에 지금까지 무명이었을 리가 없어. 상당한 검술과 마법을 가지고 있는데도 너무 고지식해서 자신이 파견된 곳의 주인에게 반항도 못 했었지. 만약 다르한-자덱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죽어서 이런 거대한 혼란이 발생한다면 묵묵히 참고 있을 사람이다.”
아자딘은 지벡의 인물됨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르한-자덱의 평판을 생각해 볼 때 그가 용서 못 할 악인일 리는 없다. 설령 그가 소문과 달리 흉악한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이 이리 막중한데 지벡에게 암살당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왕의 교회가 자신들의 성기사를 암살범으로 모는 건 누워서 침 뱉기 같은데?”
“누명을 씌운 주체가 왕의 교회가 아닐 수도 있지. 혹시 일족이 한 거 아냐? 브투마 왕국을 붕괴시켜서 이득 볼 세력이 그리 많지 않은데.”
“선 넘지 마라. 아자딘. 그런 질문에 내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딜리아는 아자딘과 협력하기로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선은 확실히 그어두고 있었다.
“그래서 일족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에 곡물 사재기로 이득을 볼 셈인가?”
“이득을 본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주지 그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흉작이 여기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군.”
“코라사르 왕국이 가뭄에 시달리는 건 알고 있지? 그리고 최근, 아랑기와 치타이에 인접한 바다에….”
“네더스트롬이 있는?”
“그래. 그 안다즈 내해 쪽에 커다란 빙산들이 떠밀려 오고 있다고 해.”
“…….”
네더스트롬이 있는 안다즈 내해는 남쪽 아열대 지방의 바다임에도 차가운 한류가 밀려 들어와 수온이 낮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아열대 기후로 스콜이 쏟아지는 곳인데 빙산이 온전히 떠내려올 리가 없다.
“큰일이군. 그건. 마치 핌불베르트 같잖아?”
핌불베르트. 그것은 멸망의 겨울이라 불리우는 일종의 예언이었다.
목성의 시대가 임하고 고대신들이 돌아올 때 파멸을 알리기 위해 혹한의 겨울이 시작되고, 3년간 여름이 오지 않아 냉해로 모든 작물이 얼어 죽는다. 가장 신실한 자들조차 인육을 뜯어먹으며 생존해야 하리라는 끔찍한 예언.
“핌불베르트라니. 헛소리야.”
“식량을 사재기하면서 핌불베르트를 무작정 부정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이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어.”
지금 당장이야 그냥 돈 내고 식량 사재기했구나 하고 말지만, 만약 나중에 기근이 들어서 정말 사람들이 굶주리기 시작하면 그때는 상인들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자재를 대주잖아? 우박에 지붕이 뚫리는 걸 막아주는데 무슨….”
“절대로 정당한 거래는 아니지. 하지만… 지벡의 소식을 알게 된 건 고맙군. 혹시 지벡 경을 발견한다면 내게 데려와 줄 수 있나?”
“그건 일개 지부장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원로원과 거래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좋아. 지벡 경의 안전에 대가를 지불하지.”
“흠. 많이 컸군. 아자딘. 무안의 아자딘이라고 남들에게 조롱당하던 녀석이… 너무 컸어.”
딜리아는 원로원에게 대등한 거래를 요구하는 아자딘의 발언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기대는 하지 마. 현재 난민들 틈에 숨어서 움직이고 있을 테니 찾기 힘들 거야. 그리고 우리 일족은 누가 배신한 바람에 손발이 다 잘려버렸거든?”
“그래.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어. 다만 조금이라도 협력해 주면 고맙겠다.”
“흥. 말은 잘해요.”
딜리아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상점 문에 단 황동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온 것이다.
“아자딘 경. 여기 계십니까?”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
그와 함께 스산한 한기가 반다이크 상회의 상점 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달리아.”
아자딘은 이 스산한 한기를 최근 느낀 적이 있었다. 바로 소크 경의 수하가 된 언데드 엘프들… 그 수장격인 와이트, 달리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