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286
285.핌불베르트 2
“뭐?”
“아니, 너 말고 저쪽.”
아자딘은 딜리아에게 그리 말하고 등에 짊어진 세라마이트 장검, 아우렐리아 던을 붙잡았다.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제 주인님께서 당신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엘프의 모습으로 걸어들어온 여성은 와일드 드루이드 세드린의 언니이며 이미 죽어 핌불 호드의 일원이 된 달리아였다.
그녀의 주인이라면 바로 핌불 호드의 수장, 언데드 기사 소크 경일 것이다.
“소크 경이 날 보자 했다고?”
“예. 주인님께서 호의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다만 아무래도 소크 경은 파이어글리프로 들어오시기에는 좀….”
“알겠다. 가도록 하지.”
아자딘은 자신을 부르는 소크 경의 부름에 따라 파이어글리프 밖의 약속 장소에서 소크 경을 보기로 했다.
*********
파이어글리프의 밖, 물레방앗간에 소크 경의 부하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생전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엘프들이지만, 그 정체는 끔찍한 언데드, 와이트들로 인간의 피와 정기에 굶주린 괴물들이었다.
그런 이를 만나는데 아자딘은 별다른 부하도 없이 혼자서 출두했다.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와이트들은 부하도 없이 혼자 온 아자딘을 보며 당황했다.
그러나 아자딘으로서도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이제 파이어글리프에는 젝트 경도 있고, 칼린츠 왕자도 있지. 날 손에 넣는다고 해서 아무런 저항도 없이 세인트 말로리로 쳐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도망치는 데는 자신이 있으니까.”
아자딘은 자신에게 빈정거리는 와이트들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 옆에 바위를 쓱 손으로 만져보았다.
눈과 우박은 녹았지만, 바위는 여전히 차가웠다.
여름의 바위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온도다.
“왔는가?”
그때 방앗간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건장한 오크 기사가 걸어 나왔다.
검은 갑주를 걸치고 있는 그는 아자딘이 혼자인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아자딘 경. 나를 믿는 건 좋지만, 해그들이 아직 그대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게. 해그들이 약속한 힘과 지식을 내가 탐내고 있다면 어떻게 할 텐가?”
파이어글리프를 내려가 세인트 말로리를 치겠다는 핌불 호드의 야욕은 꺾였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아자딘의 목을 노려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의 위협이 공허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아자딘을 잡을 생각이라면 공격부터 가하고 봤겠지. 스스로 경고할 리가 없지 않은가?
“충고 고맙습니다. 소크 경.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놀랍군. 왜 이제 와서 태도를 공손히 하나? 혼자 와서 두려움을 느끼는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당신이 호의로 불렀으니, 저도 당신을 기사단의 선배로 생각하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말이죠.”
이전에 아자딘이 소크 경을 만났을 때는 그의 영지를 날아들어 간 침입자였다. 그에 반해 지금은 서로 약속하고 만난 사이니 아자딘은 소크 경을 선배로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경우 있는 후배로군. 마음에 드네. 자네가 날 선배로 여긴다면 나도 선배답게 굴어야겠지.”
소크 경은 아자딘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고 경고를 시작했다.
“핌불베르트가 시작되고 있다. 앞으로 3년간 여름이 사라질 것이다. 구난기사단은 미덕을 잃었고 왕들은 왕좌를 잃었다. 휘브리스를 지키는 왕화의 빛은 사라지고 있으며 실제로 브투마와 코라사르의 왕화의 빛이 꺼졌다. 인류의 위기가 닥치고 있다.”
“대책은 있습니까?”
“있지. 언데드가 되는 것. 식량과 난방연료가 필요하지 않는 몸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
소크의 언데드 군단인 핌불 호드는 애초에 핌불베르트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대책이 언데드 되기라니?
“…리치인 당신이야 그렇다 쳐도 와이트들은 피와 정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다른 언데드들을 써보니까 몸이 닳는데 회복은 되지 않고, 닳아빠지기만 하더군요.”
일반인들에게는 무적의 존재, 불길한 저주로 느껴지는 언데드이지만, 사령술로 언데드를 부려보니 부족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언데드가 된다고 해서 핌불베르트를 마냥 견뎌낼 수 있을 리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어떤….”
“고대신의 유물 중에 아샤지트의 눈이라는 게 있다. 끝없이 피를 흘리는 보석이지. 하나가 있으면 피로 분수대를 붉게 만들고 두 개가 있으면 강을 적신다고 하지.”
“설마 모두 언데드가 된 후 그 피를 먹으면서 살아가자는 겁니까?”
농담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소크 경은 왜 아니겠냐는 듯 아자딘을 바라본다.
진심이구나.
역시 이 소크 경이란 작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리치가 되어서 제정신이 아닌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제정신이 아니니까 리치가 된 것인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자네는 살 자격이 있어. 자네에겐 미덕과 신념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미덕을 지키지 못하는 기사 놈들에겐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 인간으로서 살아갈 자격이 없는 놈들이 사람을 뜯어먹게 만드느니 언데드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인류의 절반을 언데드로 만든다면 식량 소모도 절반으로 줄게 되겠지.”
“…핌불베르트를 막을 방법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기대가 과했군요. 그래서 그 아샤지트의 눈은 가지고 계십니까?”
“애석하게도 내게는 없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고는 있지. 하나는 차드라 수녀원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리셀다라는 흡혈귀가 가지고 있다.”
“그리셀다?”
“니셀다의 모친이지.”
“아아.”
아자딘은 혈마법사 버나드가 고대신의 피를 찾아왔다고 하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렇게 맞춰지는군.
버나드가 찾고자 하는 고대신의 피가 그것이었나?
‘하지만 역시 리치라서 그런가. 인간들을 언데드로 바꾸고 그런 수상한 것에서 나오는 피를 먹이며 살자니. 제정신인가?’
아무리 오크들이 괴짜라고는 하지만 핌불베르트를 극복하기 위한 게 언데드가 되어 수상한 고대신의 피를 마시며 살자니 정말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한 발상이다.
아자딘은 소크 경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며 물어보았다.
“설마 그래서 지금. 절 보고 그걸 가져오라는 겁니까?”
“차드라 수녀원은 언데드인 내가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지. 수녀원장의 강력한 마법이 나를 거부하고 있네. 물론 그녀의 마법적 방호를 내가 공격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깨트릴 수 있겠지만 그녀와 나는 상호 간에 존중하기로 약조를 나눴네. 내가 먼저 그 약조를 깰 수는 없지.”
성욕과 지배욕으로 여자를 손에 넣으려 하는 불한당들이 그득한 이곳, 차드라 고원에서도 차드라 수녀원은 금남의 구역으로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게 수녀원의 요원인 니셀다의 솜씨인 줄 알았는데 수녀원장이 따로 실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게 소크 경마저 함부로 수녀원에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강한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절 보고 수녀원 안에 있는 아샤지트의 눈을 가져오라는 거군요.”
“그것만이 아니네. 그대의 휘하에 니셀다가 있지? 그녀에게 그리셀다를 찾는데 협력하라고 하게.”
“우선 이렇게 선배님 대접을 해드리면서 말씀드리기 참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그 사람들을 언데드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하겠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아샤지트의 눈에 대해서도… 그 제안을 거절해야겠지요.”
“그런가? 굶주림이 시작되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그럼 그때 가서 상의해 보도록 하지요.”
“굶주려서 힘이 떨어지면 그때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지도 모르네. 수녀원장이나 그리셀다는 그렇게 만만한 적이 아니야. 그리고 자네도 사령술을 쓰는 걸로 아는데? 언데드에 거부감이 있나?”
“산 사람이 병마에 시달려 죽게 만드는 것보다는 죽은 고깃덩이가 대신할 수 있는 건 대신하게 하자는 쪽입니다. 저도 가능하면 사체의 존엄을 훼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다른 건 없습니까? 핌불베르트를 극복할 만한 다른 것들, 고대신들의 지식에 꽤 박식하신 것 같으니 부탁드립니다.”
“…뱀파이어들을 불태우는 영원한 태양이라는 보구가 있지. 뱀파이어들을 싫어하는 솔레이유의 보구이지만 그것으로 작물을 키울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행방은 잘 모르겠군. 그리셀다가 알지도 모른다.”
“네. 음.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황제, 야에슬라트가 핌불베르트를 연구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세웠다고 하더군. 이건 황제의 전령인 자네가 더 잘 알지 않겠나?”
“…금시초문이군요.”
“그리고 사신 웬디고의 뼈로 만든 칼이 있으면 겨울의 한기를 몰아내는 방벽 주문을 쓸 수 있다. 핌불베르트의 추위에 장작을 때우다 보면 온 세상 숲을 다 베어넘겨야 할 테니까 한기의 방벽 주문은 생존에 매우 유용하겠지.”
“…아.”
웬디고의 뼈로 만든 칼이라는 말을 듣고 아자딘이 깜짝 놀랐다.
“왜 그러나?”
“아니요. 한때 그게 제 손에 있었는데 싸우다 잃어버렸습니다.”
“저런.”
소크 경은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무기 찾는 운명의 주문을 가르쳐주겠네. 자네와 인연이 있는 무기의 위치를 알아내고 자기 손에 돌아올 여건을 만들어 내는 옛 주문이네. 청색의 운명 주문이긴 한데. 들어봤나?”
“네? 아니요. 견식이 짧아서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음. 그럼 받게나. 직접 익히면 되겠지. 자네 실력이면 익힐 수 있을 거야.”
소크 경은 자신의 품에서 펜을 꺼내더니 허공에서 쓱싹쓱싹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력으로 빛나는 글씨들이 나타나 페이지를 이루고 그것이 아자딘에게 날아왔다.
아자딘이 그걸 손으로 받자 반짝이는 마도서의 페이지가 되어 아자딘의 손에서 실체화한다.
“이건….”
아자딘은 소크 경의 어마어마한 마법적 재주에 경탄했다.
이것이 오크의 숙명에서 벗어난 존재의 마법인가? 언데드가 되어서라도 오크의 단명하는 삶에서 벗어난 이유를 이제야 좀 이해할 것 같았다.
“직접 가르쳐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 이 정도면 자네 스스로 익힐 수 있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너무 고마워하지 말게. 니셀다와 그리셀다 문제로 그대와 다시 싸우게 될지도 모르니. 그때가 되면 자네의 피와 살로 와이트들이 축제를 벌일지도 몰라. 다만 웬디고의 뼈로 만든 칼을 되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고 그리하는 거니, 빠르게 익히고 사용해 보게나.”
“아, 저 염치없지만 그럼 물어보는 김에 물어보겠습니다. 혹시 엘리멘탈 웨일링을 천사의 피로 치료할 수 있을까요?”
“…….”
너무 뻔뻔했나? 아자딘은 말문이 막힌 소크 경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소크 경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엘리멘탈 웨일링을 천사의 피로 치료하겠다니. 정말 묘한 발상이로군.”
“묘한 발상이라니요?”
아자딘은 반신반의했다.
사실 자코모가 연금술사라고 하지만 아자딘이 보기에 자코모의 기량은 소크 경은 물론 버나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가 평생을 걸쳐 연구했다고 하지만 소크 경의 발상에서 크게 벗어날 리 없다.
그런데 소크 경이 묘한 발상이라고 말하다니? 자코모의 발상이 소크 경의 구상을 뛰어넘기라도 했나?